A 20-second songwriting genius, a 200,000-second monster RAW novel - Chapter 144
20초 작곡천재, 200,000초 괴물 되다 144화
위대한 울림을 위하여(5)
신기하게, 요 며칠간 꿈을 꾸었다.
꿈 좀 꾸는 게 뭔 별 대수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나한테는 특별한 경험이 맞다.
회귀 후에는 한 번도 꿈 비스무리한 것조차 구경 못 했으니까.
‘이것도 육체가 강해진 탓일까.’
꿈이란 건 원래 뇌의 화면 보호기 같은 거라고 하잖은가?
화면 보호기가 침투하지 못할 정도로 푹 잠을 잔다는 거겠지.
여튼 간에 꿈의 내용을 설명하자면, 김빠질 정도로 단순했다.
사람이 징그러울 정도로 우글거리는 퇴근 시간대의 강남역.
모두가 멈춰선 채 옥외 전광판에 비치는 나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선가 들려오던, 처음 들어보는 멜로디에 정신이 팔린 채,
그저 입을 벌린 채로, 그저.
그리고 난, 이런 꿈을 꾼 이유를 알고 있었다.
기대감.
너무나도, 말로 설명할 수도 없을 정도로 커다란, ‘꿈이 이루어진다’는 기대감 때문었다.
“…오랜만에 개 피곤하네.”
이른 새벽이었지만 나는 꼼꼼히 물 세수를 하고, 오랜만에 옷을 차려입은 채로 밖으로 나섰다.
스무 살의 3월 2일이 되었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신입생이 되는 모두가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는 날이라는 소리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잘만 하면 이성이랑 눈도 맞고.
교수한테 선생님이라고 불러도 보고.
다 그때만의 추억 아니겠는가?
‘근데 나한테는 해당 안 되지.’
당연했다.
나는 이제 학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학생답지 않게 입학식 첫날부터 자차를 몰고 다녀도 별문제가 없다는 소리다!
“우와…! 나 트럭 처음 타봐!”
입학식이라 그런가, 한껏 고급스러운 코트를 차려입은 봄이는 내가 몰고 온 탑차에 어색하게 영차 오르면서도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버스 앞자리 탄 거 같당. 히히.”
보통 사람들이라면 화려하고 비싼 자동차에 눈이 빛나게 마련이기는 하지만, 뭐.
우리는 국산 3.5톤 하이캡 탑차 안에 차려진 스튜디오 정도는 봐야 눈이 돌아가는 인간들이었다.
“완벽한 입학식이야. 고마워!”
“다행이구만.”
사실 뭐, 입학식이라고는 해도 내가 입학하는 건 아니다.
입학하는 건 봄이뿐.
따지고 보면 나는 입학이 아니라 첫 출근인 셈.
“미국에서 미술품 만드는 영상 봤어!”
“어땠어?”
“아빠랑 할아버지는 힘이 진짜 괴물 같다고 하셨구… 엄마는 작품 제작 과정 보자마자 엄청 좋아하셨어!”
“올.”
봄이의 반응은 뭐랄까, 평온했다.
아무리 쉬지 않고 개난리 부르스를 떨어도, 역시 옆에 오래 있으면 적응이 되는 법이랄까.
그냥 일상 속에 들어가 버리는 듯했다.
그리고 그런 반응이, 나에게는 매우 평온한 안정감으로 다가왔다.
안정감….
일 터인데.
“….”
“….”
그닥 오래가지는 못하더라.
대학의 정문을 지나고, 음대 건물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까지 트럭을 끌고 올라갔는데,
왜일까. 사람들이 도열해 있었다.
일순간 신학기 기념행사라도 하는 것일까 착각을 이 들었지만,
“음주님이다!”
“음주님께서 행차하셨다아아아아아!”
내 광신도들이었다.
“아니 뭔….”
유재호가 서울 음대에서 내 팬클럽을 만들었다고 했고, 대충 나도 알겠다고 대답은 했었는데.
그때는 분명 한 십수 명 정도 규모라고 들었었는데.
“모시겠습니다아아악!”
지금은 아니다. 적어도 100은 넘어가는 바글거리는 숫자가, 음대 주차장에서부터 대강당까지 나를 에스코트했다.
“대학 생활 증말 다이나믹하겠구만.”
당장은 아니더라도 다음 학기에는 강의에 들어갈 수도 있을 거다.
그때 내 운명은 대체 어떻게 되는 걸까?
떠올리는 것만으로 정신이 나가 버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여튼 간에.
입학식은 진행되었고, 학생들은 학과 강의실로 향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완전 아싸였던 봄이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올라갔는지, 어렸을 때 알고 지냈다고 하던 여자애들 두 명이랑 같이 잘 다니더라.
‘역시 이 바닥이 좁긴 좁구만.’
뭐, 그건 학생이 아닌 교수의 입장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교수들을 만나러 연구동으로 향하자, 곧바로 아는 얼굴이 즐비했다.
묻는 건 다들 비슷비슷했는데, 바로 ‘진짜 화성에 갈 생각이냐’라는 질문이다.
‘지금 타이밍은 참 애매해.’
어영부영 정보를 흘리는 것보다, 최대한 내게 이득이 될 수 있는 시점에 밝히는 것이 나을 거다.
그러므로 내가 해야 할 일은, 그저 허허 웃으며 입을 다무는 것뿐.
“나중에 거 소주 한잔합시다!”
교수들은 그럼에도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우지 않으며 소주잔을 넘기는 시늉을 할 뿐이었다.
그리고, 한상훈 교수와 둘이 남게 되었다.
“잘 부탁합니다. 한 교수님.”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김 교수님.”
한상훈 교수와 처음 만난 것은 다름 아닌 첫 피아노 콩쿠르 때였다.
그는 멀리서 봐도 뭐랄까, 다른 심사위원들과는 눈빛과 포스 자체가 남달랐는데,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힘이 세기 때문.
리사이틀 쪽에서도 꽤 끗발 넘치는 활동을 펼치고, 교수로 임용된 다음에는 수많은 제자를 키워내고, 엄청난 양의 논문을 내고.
그야말로 평생에 걸쳐 쌓아온 업적이 곧 권위와 무게로 바뀐 인물이기 때문.
‘내 앞에서는 좀 웃긴 표정을 짓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우스운 인물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럴 터인데,
“흐흐히.”
…이건 아무리 봐도, 우스운 소리가 맞는 것 같은데?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나 봅니다?”
“미안합니다. 너무 즐거워서 그래요. 웃음이 내 의지랑 상관없이 새어나올 정도로.”
한상훈 교수는 믹스 커피를 입에 가져다 대면서도 미처 떨리는 손을 주체하지 못했다.
“내 지금까지 꽤 많은 논문을 써왔어요. 아마, 서울음대를 통틀어 나보다 많이 쓴 사람은 없어질 게 분명하죠. 근데!”
한상훈 교수의 안광이, 심각할 정도로 번뜩였다.
“이 정도로 두근거린 적이 없었어! 지금 느껴지는 가슴 떨림은! 처음 논문을 출간했을 때 그 이상이야!”
“…!”
“FDRE! 잊고 있던 손! 이 모든 것은 피아니스트들에게 엄청난 격변을 일으키고 있어! 다만, 자네가 너무 바빠 아직까지도 이론 정립이 안 되어 혼란을 겪고 있는 상태!”
수십 단어를 단 한 번도 안 쉬고 한 번에 쏟아내 버렸던 탓일까, 한상훈 교수는 매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고서,
“근데 거기서, 처음으로 내 이름과 창조자인 자네 이름으로 논문이 나간다면? 그건 그야말로, 천지개벽이 될 게 틀림없어!”
아주 확신에 찬 어조로, 단언해 버렸다.
‘…이런 양반이었을 줄이야.’
뭐랄까, 지금까지는 그저 조용하고 품위 있는 지식인 노신사 같은 이미지였다고 한다면,
이제는 그저 음악에 미친 광기 넘치는 노인 같달까.
‘하긴, 저 논문 수는 광기 없이 달성할 만한 게 아니지.’
대충 납득이 되긴 했다.
물론 그의 광기는 다른 사람들의 것과 달리 불순물 하나 없는 순수한 형태였지만.
-크흠!
아주 잠시 정적이 흐르자, 한 교수는 곧바로 크게 기침을 하며 분위기를 다잡았다.
“…미안합니다. 내가 너무 과하게 흥분했지. 우선, 이것부터 읽어주겠어요?”
그러고서는 업무실 책상에 빼곡히 쌓여 있는 서류 용지를 나에게 건넸는데,
내가 개발한 기술에 대해 내용 정리를 해둔 것들이었다.
“김교수가 검토해 보고, 추가 사항이 있으면 작성해 줘요. 1학기에는 수업에 들어가지 않을 테니 충분히 여유가 있겠죠?”
“그럼요.”
“그럼. 난 강의실에 얼굴 좀 비추고 오겠습니다.”
한 교수는 그리 말한 뒤 업무실에서 떠났다.
딱히 뭐 할 것도 없이 덩그러니 남겨졌는데,
“개꿀 직장이구만.”
뭐, 계약직인 데다가 입사 초기이기는 하지만, 전생에 몸담았던 스튜디오와 비교해서는 천국 같은 근무 환경이었다.
어찌 됐든 간에.
나는 계속해서 한 교수의 연구를 읽었다.
약 한 시간 정도 걸렸는데, 다 읽고 나니 알겠더라.
개꿀 직장이 아니라, 아예 꿀통에 빠져 버렸다고 말이다.
“몇 개만 추가하면 내가 손댈 데가 없겠네.”
교수직을 겸해야 하니, 원대한 계획의 걸림돌이 될까 싶었는데, 그럴 우려는 없어 보였다.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남이 해둔 거에 숟가락만 얻는 꼴은 좀 그러니, 미래 논문 먹거리 같은 것을 만들어 두어야겠지만.
“우주 피아노 논문.”
바로 굿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피아노 제조사’, 더 나아가서는 아예 종합 악기사를 인수하는 것이 필수적이겠지.
이러나저러나, 여유를 부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나는 대충 첫날 오리엔테이션이 끝날 때 즈음에 봄이를 만나러 갔고, 서울음대 근처 밥집에서 밥을 입에 쑤셔 넣으며 멜론에게서 받은 메일을 검토했다.
그리고, 봄이랑 같이 봄이네 회사로 향했다.
“무리한 부탁이었을 텐데… 진짜 고마워.”
“히힣. 우리 사이에 뭘.”
…사실 아까 봄이가 놀라지 않은 이유가 있다.
다른 사람한테는 비밀로 해도, 봄이한테는 솔직하게 털어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한 사람 더 알게 될 것이다.
이젠 국내 ‘2위’ 취급을 받는 강선 자동차의 회장님이 말이다.
“할아버지이!”
“우리 똥강아지! 입학식은 잘 마쳤니?”
“엄청 긴장했는데! 아는 친구가 있어서 다행이에요!”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는 부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뭐랄까.
지금부터 꺼내야 할 이야기가 마음에 꽤 걸린달까.
‘130억으로는 부족했어.’
음향 연구를 하면서, 시장 반응도 크게 나쁘지 않게 만드는 피아노 제조 회사란 꽤나 적었다.
그리고, 그런 회사 지분 51%의 값어치는 130억보다는 비쌌고.
친한 사이라도 돈 얘기는 꺼내지 말자는 것이 나의 지조 비스무리한 것이었는데,
“회장님.”
지금 깨졌다.
나는, 오손도손한 안부 얘기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본론을 꺼내었다.
백만 원, 천만 원도 아닌 수백억의 거금이 오가는 이야기인 탓일까, 회장님의 눈은 계속해서 커졌지만,
“그려, 우주에 간다고?”
“예.”
“…위험하진 않겠어?”
“멜론도 같이 탑승한답니다.”
“생각보다 덜 위함한가 벼. 좋네.”
…대답이,
생각보다,
너무나 빨랐다…?
“어…? 예?”
“악기 회사는 나도 알아봐 주겠네. 내 개인 금고를 열어서 인수 지원도 하지. 이번 달 안이면 되겠나?”
“아니 그….”
“왜 즉답하냐고? 이것도 다 상징성이여, 상징성.”
빠른 것뿐이랴,
입가에 걸리는 미소를 숨길 생각도 없어 보이셨다.
“자네 말이 사실이라면, 자네의 악기를 만든 회사의 주가는 열 배 높게 치솟을 거야. 자네 이름값, 최초로 다른 행성에서 연주된 최첨단 악기. 호재뿐이잖나? 출발이 내년인가 내 후년이라고 했제? 수익률이 1,000퍼센트가 넘는데 투자하지 않을 이유가 있겄어?”
회장님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으셨다.
“나는 자서전을 쓰고 있네. 그리 적게 팔리지는 않을 거야. 당연히 절판되지도 않을 거고.”
그리고, 조금 쑥스럽다는 듯이 책상 서랍에서 원고지 뭉텅이를 꺼내었다.
꽤 두꺼운 게 거의 다 써가는 모양이셨다.
“하지만 자네는 자서전을 쓸 필요가 없어. 역사책을 열면 자네 이야기가 나올 테니까. 그 역사서가 ‘음악 역사서’라면 1페이지에 자네 사진이 실리겠지.”
“과찬이십니다….”
“허허. 요놈 참!”
회장님은 괜한 겸손을 떠는 나를 바라보며 다시금 호쾌하게 웃음을 터뜨리셨다.
“자네는 너무 높이 올라가서 걱정이 됐어. 근데, 이젠 걱정이 안 들어. 자네는 흙을 끌어다가 정상의 높이를 높이는 놈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