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20-second songwriting genius, a 200,000-second monster RAW novel - Chapter 27
20초 작곡천재, 200,000초 괴물 되다 27화
젖은 아스팔트의 밴드맨(3)
나는 기타를 칠 줄 안다. 남들이 예상하는 것 이상으로 꽤 잘 친다.
피아노만큼 다루지는 못하지만 듣는 사람이 어깨를 으쓱거리기는 할 정도.
‘기타는 대체재가 없으니….’
작곡가들 사이에서 자주 입에 오르는 주제.
기타 가상 악기로 시퀀싱을 X빠지게 하기 vs 차라리 그 시간에 진짜 기타를 배워서 녹음하기.
여느 케케묵은 논쟁이 그렇듯, 쉽사리 답이 내려지는 법이 없었다.
다만 언제나 승리하는 사람들은 ‘기타도 칠 줄 알고 시퀀싱도 하는 사람’이었다
‘난 승리한 인간 쪽이 되고 싶었지.’
그러므로 두 개 다 했다. 기타를 배웠다. 아주 X빠지게.
물론 작곡가가 기타를 배웠다 하더라도 진짜 기타리스트만큼의 실력이 나오지는 않는다.
물리학자가 수학을 잘하긴 하지만 수학자만큼은 아닌 것과 같달까. 두 직업이 접근 방식부터도 다르고.
작곡가와 기타의 관계 또한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러므로 …
‘상대가 될 리가 없지.’
나는 메고 있는 기타와 기타의 주인을 번갈아 보면서 그리 확신했다.
애초에 쌓아온 경험치가 다르다. 아니, 경험치 문제가 아니라 이 양반은 기타밥 먹는 인간들 중에서도 실력이 최상위권이었다.
내가 막 상태창이 있어서 스킬로 관객들 혼을 쏙 빼놓는 게 아닌 이상 답이 없겠지.
다만,
‘곡’이라면.
기타를 매개체로, 곡 자체를 변화시켜 버린다면.
기타로서는 진다. 하지만 곡으로서는 이길 수 있다.
완벽하기 그지없는 계획이었다.
팃팃팃-!
시작을 알리는 하이헷, 이어지는 베이스.
나는 곧바로 줄을 튕겼다.
원래 잡아야 할 단순하기 그지없는 코드가 아닌, 메이저 세븐과 서스코드를.
스트로크가 아닌, 피크 아르페지오를.
곡의 분위기가, 확 살아났다.
‘멜로디 자체는 좋은 곡이야.’
대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때, 분명히 그리 느꼈다.
문제는 각 악기의 조화에 있었다.
‘섞이질 못했지.’
기타도, 베이스도, 드럼도. 실력은 모두 빼어났지만, 서로가 감싸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청량한 보컬이 부조화에서 시선을 빼앗고 있지만, 한계가 드러났다.
단순히 힘을 뺀다고 해결될 게 아니었다.
곡의 구조를 뜯어고칠 수밖에 없는 문제.
그리고 내가 알기로, 회귀 전에도 문제는 온전히 해결되지 않았었다.
‘슬랩 라인도 고쳐야 되고… 스네어는 너무 눈에 띄고, 박자가 복잡해.’
연주자들이라고 딱 연주만 할 줄 아는 건 아니다. 흐름은 기본으로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다만 지금 이 곡은… 진짜 숙련된 작곡가가 아니라면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나는 연주 템포를 늦춰 속도감을 저해했다.
그리고 원래 파워코드가 들어가야 할 자리를 재즈 진행으로 대체함으로 곡의 강렬함을 지우고, 멜로디에 색채를 더했다.
…비 오는 골목의 아스팔트 바닥.
낡은 간판을 비추는 낮고 어두운 수면이, 자연스레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리고, 그제야 잊혀져 있던 기억이 온전히 머릿속에 떠올랐다.
‘…블랙 벨트.’
단순하기 그지없는 이름의, 갑자기 음악계에 뚝 떨어진 신성 밴드.
실력파 4인방인 그들은, 데뷔하자마자 차트를 고공행진 했다.
나이가 젊지는 않았다. 한 명 빼고 거의 40줄이 다 되어가는 양반들이었으니까.
그들은 등장과 함께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다만, 오래가지는 않았다.
음악이 ‘외부’에 나오기는 했지만 내부에 차 있던 문제가 곪아 터졌던 것이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매우 안타까워했었다.
‘이 사람들이었구나.’
약 10년 뒤, 대형 기획사 ST엔터테인먼트에서 폭로 설전을 벌인 뒤, 장렬히 산화하는 밴드맨들이.
뒤늦게 밴드 음악에 모든 것을 바쳤지만, 모든 것을 잃고 잠깐 섰던 무대에서 퇴장하던 그림자들이.
나는 기막힌 우연에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아주 약간, 측은지심이 들었다.
‘…진심인 인간들이었으니.’
재능 있는 자들이 피나는 노력을 거듭해 무대에 섰다.
그렇지만 모든 노력이 합당한 결과를 동반하는 건 아니다.
회귀 전의 그들은 실패했다.
다만,
만약에.
내가 여기서 이들을 도와준다면.
조금 더 일찍, 올곧게 날개를 펴준다면.
대중음악 업계에, 새로운 지평선을 열 수 있지 않을까?
디이잉~
마지막 코드와 함께 곡이 끝났다.
나는 스윽, 작은 무대를 완전히 에워싼 인파를 둘러보았다.
크게 뜨인 눈, 만족감 가득한 표정들.
그리고,
와아아아아아아아아-!
귀를 강타하는 뜨거운 열기의 함성들.
‘좋구만.’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핸드폰을 바닥에 놓고 촬영을 돌려놨는데, 그럴 필요는 없어 보였다.
언제 왔는지 모를 봄이와 이유림이 멋들어지게 최신 핸드폰을 들고 있더라.
아마 내 거보다 화질이 좋겠지.
“….”
나는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박민수를 바라보았다.
이 정도 인파에 둘러싸인 것은 난생처음인지, 놀람과 환희가 섞인 표정을 내비치고 있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그의 마이크를 뺏었다.
“작곡가 김도일입니다! ‘폭탄처리반’ 작곡 우튜브를 하고 있습니다!”
놓칠 수 없는 기회. 나는 냅다 홍보를 갈겨 버렸다.
여기 모인 사람들이 직접 우튜브를 구독해도 좋고, 소문만 퍼뜨려 놓아도 좋다. 내 영상이 인터넷에 나돌면 더더욱 좋다.
‘우선은 공모전에 제출한 곡 몇 개랑 연습용 곡 좀 올리고….’
‘좋은 곡이 올라오는 채널’이라는 것을 각인시킨 다음, 틈틈이 찍어둔 페어리스 작업 영상을 올리며 주목을 모은다.
그렇게 몸집을 점점 키우면, 사람들은 내가 쓰는 곡에 민감하게 주목할 테고, 내 목표인 ‘정상’의 작곡가에 한 발자국 더 가까워지겠지.
오늘 이유림 말을 듣길 정말 잘했다. 통모짜 핫도그 다섯 개 사줘야겠다.
“당신은… 정체가 대체 뭡니까?”
박민수의 말투가 바뀌었다. 나이 어린 사람에게 하는 하대에서,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의 존대로.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2년 안에 대단한 작곡가가 될 사람입니다.”
“….”
명백한 자만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박민수는 부정하지 않았다.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미래를 알고 있다.
이들이 몸집만 큰 악덕 엔터에 들어가서, 자기들보다 열 살이나 어린 골칫덩이 가수 지망생을 밴드에 끼워 데뷔하는 것을.
혹을 달고서 그 정도 퍼포먼스를 냈는데, 지금은 혹도 없고 나이도 젊다.
미래를 아는 내 입장에서는 절호의 기회였다.
‘근데… 그걸 나만 아는 게 문제지.’
페어리스 때랑은 경우가 다르다.
눈빛을 보니 더 위로 올라가고 싶은 건 확실해 보이는데, 내가 직접 꼬셔내기는 좀 그렇다.
그러므로,
나는 이들이 직접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게 할 작정이었다.
“무대 너무 좋았어요. 세 분 다 실력이 엄청나시네요.”
“어…?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순수하게 감사를 표하는 박민수와 베이시스트 홍승현. 부끄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는 김건우.
나는 내려놓았던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번호 교환해요.”
“……?”
“세션 맡기려고 그러는 건 아닙니다. 그냥 여러분이 여기서 훨씬 커질 수 있을 것 같은 직감이 들었거든요.”
“여기서 더….”
“그러니까 곡 하나 만들어 드리고 싶은데요… 아, 완전히 드리는 건 아니에요. 권리는 제 겁니다.”
그들의 눈이 크게 떠졌다.
얼굴에는 불안함이 크게 드러나 있었지만, 눈빛에 희망이 조금씩 아른거렸다.
‘회사 가서 땡깡 한번 부려볼까.’
먹힐지 안 먹힐지 고민하는 것보다, 나는 우선 하고 보는 편이었다.
* * *
EL엔터테인먼트 제2 스튜디오는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담당한다고, 프로듀서 권종철은 생각했다.
위상은 분명 히트곡 메이커인 제1 스튜디오에는 못 미친다.
다만, 제2 스튜디오도 그에 못지않게 인기곡을 다수 뽑아냈으며 인기 있는 앨범의 서브 곡들은 모두 이곳을 거쳐갔다.
제2 스튜디오가 증발해 버린다면 회사는 망해 버릴 것이다. 그리고,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프로듀서님!”
“하하, 그래요.”
수많은 가수, 아이돌들이 고개를 숙이는 이 위치를 보라.
대체 어디가 제1 스튜디오에 밀린단 말인가?
월요일 아침이었지만, 권종철은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기분이 좋은 상태로 자신이 대가리로 있는 스튜디오의 문을 열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근데 평소보다 인원이 적었다.
“……?”
원래 제2 스튜디오는 월요일 아침마다 컨디션 조절을 위해 일을 쉬는 게 관행이었다.
담배를 피우거나, 사사로운 잡담을 나누거나.
평소엔 자리를 비우는 이들은 없었는데, 오늘은 스튜디오가 거의 텅 비다시피 했다.
“…직원들 다 어디 갔어요?”
권종철은 남아 있는 2년 차 직원에게 물었다. 그리고,
“3스튜디오 갔습니다.”
평소에는 절대 들려올 리 없는 대답을 들었다.
“아, 오늘이 그날인가요? 가사가 빨리 써졌나 봐?”
“제대로 불붙은 모양이에요.”
이미 알고 있었다.
제3 스튜디오에, 이변이 일어났다는 것을.
‘다 죽어가는 아이돌이 부활한다지.’
회사에서 거의 버려지다시피 한 페어리스가 신곡을 등에 입었단다.
그리고 그 신곡을 쓴 사람이 3스튜디오에 있… 는 건 아니었다.
‘외부인이라고 했지.’
무성한 소문의 정체는 고등학생.
어쩌다 3스튜디오에 연이 닿았고, 엄청난 곡을 뽑고서 사라졌다고 했다.
마치 드라마 같은 이야기였지만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 만들어진 곡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녹음 몇 시부터죠?”
“이제 곧 시작할걸요?”
“호오.”
갑작스러운 천재의 등장에 회사는 술렁였다. 포섭해 와야 하는 것 아니냐, 아니면 조금 더 일거리를 주며 시장 반응을 지켜볼 것이냐.
그 누구보다 듣는 귀가 좋다고 자신하는 권종철은 무조건 포섭해 올 생각이었다.
아직 고등학생이라 기다리긴 해야 했지만, 졸업하자마자 높은 연봉을 제시할 것이다. 자신에게는 그만한 권한이 있었다.
‘못 알아보다니! 멍청한 것들!’
만약 시장에서 헛발을 찬다 하더라도 재능이 있는 건 확실하다.
그럼 데려다가 교육시키면 되는 거 아닌가?
쯧쯧, 혀를 차며 권종철은 층계 하나를 내려가 제3 스튜디오에 불쑥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는….
“어? 이사님? 우진이도?”
회사의 개국공신 둘까지 스튜디오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오, 종철이 형.”
“식사는 하셨습니까?”
“전 원래 아침은 안 먹지요.”
거물 둘까지 지켜보는 녹음.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예삿일이 아니었다.
종철은 힐끗 녹음실 너머를 바라보았다.
페어리스 멤버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근데,
그것을,
‘고등학생’ 소년이, 애써 진정시키고 있었다.
마치 이 스튜디오의 주인이 된 마냥.
“…진짜 프로 같네. 어색하지가 않아요.”
홍우진의 중얼거림에 권종철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저것은 프로의 자세였다. 대체 어떻게 고등학생이 자세까지 연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2스튜디오에 데려오자.’
평균 초봉의 1.5배.
그 정도면 되겠지.
권종철은 속으로 미리 연봉의 액수까지 정해놓고 슬슬 삐져나오려는 웃음을 삼켰다.
약, 10초간.
“녹음 들어가겠습니다!”
‘10초’ 동안.
‘어…?’
녹음실에 들어간 멤버 한 명 한 명의 목소리가 모니터 스피커에서 울려 퍼진다.
그리고 점점 웃음기가 사라져갔다.
자신의 생각이, 애초부터 잘못됐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허어….”
“진짜 좋은데요?”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훠얼씬.
곡이 좋게 느껴졌기에.
‘연봉… 1.7배? 아니….’
그리고 문뜩 의문이 들었다.
…저 소년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과연 회사에 묶일 정도의 몸집일까?
…묶일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작곡가가 되지 않았을까?
의문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