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20-second songwriting genius, a 200,000-second monster RAW novel - Chapter 64
20초 작곡천재, 200,000초 괴물 되다 64화
오디션의 무법자(4)
탑 싱어의 첫 방송까지 남은 기간은 약 6일.
생각보다 그렇게 빡센 일정은 아니었다.
내가 밀어주는 이들의 실력을 믿고 있었기 때문.
가장 먼저 해결할 문제는 호식이의 첫 무대였다.
“키에에에에에에엑!”
예고의 보컬과가 그냥 재미 삼아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도 아니고.
업계에서 구르고 구른 가수급은 아니라고는 하지만, 노래는 확실히 잘 부르더라.
올릴 수 있는 옥타브가 상당하더라.
쉬즈곤을 부르며 기선제압을 건다고 하던데, 충분히 납득이 가는 계획이라 생각됐다.
“…목소리가 딱 발라드네.”
“오 그 소리 많이 들었음.”
쉬즈곤은 원래 ‘메탈’이다.
강렬하면서도 헤비한 디스토션이 코드를 구성하고, 그 위에 찌릿거리는 목소리가 고음을 분출하는 노래라는 말이다.
‘…호식이한테는 좀 안 어울리긴 하네.’
사람마다 목소리의 톤이라는 게 있다.
그리고 그건, 바꾸기가 매우 힘들다.
유명 가수가 다른 장르의 곡을 불러 호응을 얻는 것은 그냥 그때 뿐의 ‘신선함’덕.
장르의 제약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러므로 내가 내린 처방은, 인스투루멘탈 자체의 재구성.
“이걸로 함 불러봐라.”
“오케이.”
강렬한 디스토션 기타가 앞으로 나온 것을 최대한 억제하고, 그 안에 스트링과 관악기를 집어넣는다.
리얼 드럼 또한 일부러 전자 느낌이 나는 가상 악기로 대체했다.
솔직히 말하자.
원래부터 목이 메탈, 락 스타일에 어울리는 인간이 이 인스트를 쓴다면 오히려 손해다.
원곡이 진짜 잘 만들어졌으니까.
그곳에 들어간 수많은 고뇌와 노력을 무시한다면 큰코다칠 수밖에 없다.
다만 호식이 만큼은….
“이거…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는데… 뭔가 딱 맞는 옷을 입은 듯한 느낌이 들어.”
“그치?”
“…쩐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연신 지을 뿐이었다.
“근데 왜 쉬즈곤이냐?”
“…그 새끼가 중학교 축제에서 불렀거든.”
“딱이네.”
“그치?”
“실력으로 누르고, 위에 올라가서 나락도 보내고.”
“…하아. 진짜 그러고 싶어. 그 새끼 나한테 X랄할 때 증거를 안 남겨서 처벌도 제대로 안 받았거든.”
…뭐 으레 있는 일이었다.
요즘 애들은 참 약았으니까.
다만,
“지금은?”
“증거 찾아뒀지. 담배 피우고 오토바이 훔친 기록이 있어. 나한테 돈 빌려 간 것도 나중에 친구 증언 녹음 따놨고.”
“양념만 좀 치면 되겠네.”
…순간적인 머리는 굴러가도 미래를 보지는 못하나 보다.
과거를 두려워할 지능이 있었으면 탑 싱어에 나올 생각조차 못 했겠지.
원래부터 나락 갈 운명인 인간인 건 맞았다.
다만, 불특정 다수에 의해 나락을 가는 것과 단 한 명이 총대 메고 나락을 보내는 건 느낌이 다르잖아.
후자가 훨씬 시원할 거잖아.
호식이의 표정이 밝아졌다.
“자신감이야 자신감.”
“그래… 자신감!”
1순위로 처리할 일은 대충 해결되었다.
두 번째 고민을 해결할 차례였다.
“아니.”
“이건 대체….”
다음 날 밤, 회사의 연습실에서 장비들을 공개했다.
“이걸 멘다고요?”
“….”
다들 미처 말을 다 잇지 못하더라.
그저 멍하게 넋이 나가 있더라.
하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피아노를 짊어진 채로 당당히 연습실을 걸었다.
끼익-! 끼이이익!
움직일 때마다 마룻바닥이 비명을 지르는 거 같은데.
뭐 내 몸무게까지 합치면 300킬로 정도 될 텐데.
미국에서는 사람 두 명분의 무게일 뿐 아닌가?
“…괜찮으세요?”
“착용감은 좀 불편하네요.”
“아 착용감이요.”
끄덕.
블랙 벨트 멤버들은 딱히 태클을 걸지는 않았다.
그저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일 뿐.
“저희도 더 분발해야겠어요.”
…진심이 가득 묻어나오더라.
그렇기에 좀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다.
뭐, 당장의 준비는 이걸로 끝이었다.
‘…블랙 벨트는 원래 잘했으니.’
EL에서 아무 준비도 안 시키고 나한테만 맡길 리가 없지.
박민수의 노래 실력은 진짜다.
다만 호식이의 가창력과는 궤가 다른 종류랄까.
최성민 이사의 트레이닝을 받으며 원래부터 갖고 있던 특색이 훨씬 강해졌더라.
그러므로 저 셋이 첫 방송 따위에서 떨어질 리가 없었다.
“생방 시작부터 결승까지 4회 방송이니까… 우선 첫 번째 방송은 셀프 각자도생입니다.”
“옙.”
탑 싱어는 일반인이 top32에 뽑히는 예선 장면을 사전 촬영 후 송출하고, 결정적인 ‘본선’부터는 생방송으로 내보내는 식으로 진행된다.
일반인은 본선에 진출하는 것 자체가 어렵지만, 대형 기획사를 끼고 있는 인간들은 본선 생방부터 참가할 수 있다.
불평등.
다만, 꼭 필요한 불평등이었다.
예선부터 현업가수를 참가시키면 그냥 압살하는 그림이 나올 테니까.
그러면 너무 시시할 테니까.
밸런스가 맞춰지는 것은 이제부터다.
노래 한가닥 하는 프로와 일반인이 뒤섞여 꽥꽥거리는 모습이 우선 TV에 나간다.
그리고 나와 블랙 벨트는 첫 방영에는 두각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었다.
아마, 첫 방영의 주인공은… 호식이가 되지 않을까.
“연습합시다.”
“그게 답이죠.”
“갑시다!”
우리는 각기 다른 악기에 손을 올렸다.
사실 블랙 벨트 멤버들이랑 합주를 한 적은 거의 없다.
그마저도 내가 박민수 대신 장난 삼아 기타를 몇 번 든 것뿐이고.
‘피아노’를 내가 추가한다는 생각 자체는 안 해봤는데.
근데….
“…응?”
“잠깐만요.”
“…이거 왜 좋아?”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
“자, 잠깐만 다른 곡.”
여러 곡을 돌려가며 확인을 거듭해 본다.
그리고 깨달은 한가지의 사실.
‘내가 만든 asphalt dream은 세 명이서 치는 게 더 나아. 근데….’
원래 황민수가 만들어서 부르고 있던 곡, ‘페이퍼 더 락’의 경우 내가 있는 편이 더 낫다.
확실히 그렇다.
“원래는 연주 방해 안 되게 그냥 코드만 좀 추가하려고 했는데… 좀 더 적극적으로 침입해도 되겠는데요?”
“…그러게요?”
…이렇게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내 침입이 더욱 적극적으로 허용된다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다.
예를 들어 새로운 스토리를 추가한다든가.
마치 ‘프로레슬링’처럼 무대에서 연출을 구성할 수만 있다면….
“흐음….”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 * *
9월 8일 금요일.
등촌동에 위치한 SBC 다목적 홀에는, 엄청나게 많은 인파가 몰리고 있는 상태였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거의 최정상급의 인기를 달리고 있는 ‘탑 싱어’.
그 방송의 첫 촬영을 위해 수많은 스태프들이 동원됐고, 동시에 방청객 또한 상당수 찾아왔다.
얼핏 보기엔 실시간 음방이랑 뭔 차이인가 싶을 풍경.
사실 뭐 중간중간 심사와 함께 라이브 편집이 들어가는 것 외에는 별 차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기도 한데.
입사 5년 차.
처음부터 ‘탑 싱어’와 함께 PD 생활을 보낸 용주환은 둘 사이에 큰 벽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무대에 서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달라.’
왜, 음방 무대에 오르는 가수들은 팬이 적으나 많으나 ‘자신감’이라는 게 있잖아.
휘어잡고, 압박하고, 특유의 박력이라는 것이 있잖아.
하지만 오디션은 다르다.
평가받는 입장.
노래를 부르는 이가 심사위원과 관객들에게 반응을 평가받는 입장.
당연하게도 엄청난 긴장감이 뒤따라 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긴장감을 최대한 재밌는 방향으로 살리는 것이, PD로서 자신의 역할 중 하나였다.
덜컥-!
평소 연예인들이나 발에 들이던 다목적 홀의 대기실 문을 열자, 잔뜩 긴장한 듯한 표정이 얼굴들 수십이 자신을 맞아주었다.
본선 참가자들이었다.
“PD님…!”
“안녕하십니까!”
꾸벅꾸벅. 인사와 함께 고개를 숙이는 이들.
뭐, 대충 본선까지 왔으면 이제는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구면이었다.
“자,자. 다들 긴장하지 마시고, 생방송이니 만큼 욕설 쓰시면 안 되구요. 혹시나 갑작스레 성기 노출 같은 거 하면… 아시죠?”
“하하하. 저희가 그럴 리가 없잖아요.”
“예쁘게 찍어주세요!”
“…실시간 편집 들어가니까 얼굴 같은 건 큰 걱정 마시구요.”
참가자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하나는 딱 보기에도 활달하고, 방송 분량을 잘 뽑아줄 것 같은 부류.
그리고 두 번째는….
“서 계시지 말고 편하게 자리하시고.”
“아… 네에.”
“감사합니다.”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이는, 다만 실력만은 뛰어난 이들.
비율로 따지자면 7:3 정도라고나 할까.
뭐, 솔직히 말해서 기대를 거는 것은 전자였다.
특히 붙임성 있고 말도 잘하는 일반인 참가자는 권민석이라는 소년.
분명 턱에 큰 점이 있었는데….
“에이, 다들 뭘 그렇게 긴장해요? 평소처럼 노래 부르고, 위로 올라간다. 얼마나 간단해.”
때마침 목소리를 높이더라.
역시나,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이 넘쳤다.
“와 말투 대박.”
“실력 있으니까~ 아, 혹시 끝나고 시간 돼요?”
“아 뭐래.”
중간중간 인상을 찌푸리는 이들도 있었지만, 사실 저런 캐릭터는 꼭 필요했다.
방송의 윤활유를 맡아준다는데, 거부할 필요가 있겠는가?
“뭐… 이러나저러나. 여기까지 오신 것만으로도 대단한 겁니다. 아시다시피 첫 방송은 빠르게 인원수를 줄이는 게 목적이니까 곡을 다 못 부르실 수도 있어요. 양해 바라구요.”
전달할 것은 이미 전부 전달해 두었다.
남은 것은 노래를 부르고, 평가를 받는 것뿐.
그리고 그 과정에서 좋은 그림이 잡히길 바라는 것뿐.
‘…끼 있는 참가자는 확실히 올려 뒀으니.’
탑 싱어는 무조건적인 실력 우선주의를 지향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실력이 비슷하다면 당연히 끼 없어 보이는 사람이 떨어진다.
그리고 대결 구도 따위가 있으면 더 좋다.
아직 본선 첫 방송이니만큼 그게 제대로 잡히지는 않았지만….
이건 심사하는 측에서 입을 좀 잘 털어준다면 해결될 일.
근데….
“야, 이호식 넌 왜 아까부터 아무 말이 없냐?”
“….”
“말을 해봐. 저번에 친구랑 있을 때는 자신감 엄청났잖아.”
…뭔가,
싹이 좀 보이는 것 같네.
“두 분 원래 구면이십니까?”
“아예. 중학교 동창이에요.”
“오.”
예선에서 둘이 만난 같이 있던 모습을 본 적은 없었다. 예선 날짜가 엇갈렸던 걸까.
그래도 ‘같은’ 나이의 본선 진출자들이어서 간접적으로 구도를 만들어줄 예정이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 보이네?
“둘 다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죠. 뭐, 결국 무대 위에 서는 건 언제나 저였지만.”
“…그런가요?”
용주환은 입을 다물고 있던, ‘이호식’을 지긋이 쳐다보았다.
예술고등학교의 보컬과라고 하던가.
저 권민석은 예술계 일반고라고 하고.
…완벽했다.
이건 정말, 완벽한 라이벌 구도다…!
문제는 둘의 생각이 일치하느냐인데…
“그때는 그랬었죠.”
물었다.
이호식 쪽에서, 떡밥을 세게 물었다.
아니, 그뿐일까.
“…지금은 별생각이 안 들어요. 얘한테 없는 게 저한테는 있거든요.”
“뭐? 나한테 없는 거?”
“오오.”
뭘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바라던 바였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끝이 아니었다.
“그냥 얘는… 저한테 ‘압살’ 당할 운명이라고나 할까….”
이호식의, 마치 당연한 걸 읊는 듯한 말투와 함께,
“너… 너 이 새ㄲ….”
권민석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