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20-second songwriting genius, a 200,000-second monster RAW novel - Chapter 65
20초 작곡천재, 200,000초 괴물 되다 65화
오디션의 무법자(5)
어제까지만 해도 텅텅 비어 있었던 등촌동 다목적 홀은, 단 하루 만에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추었다.
반짝반짝 푸른색 계열로 빛나는 무대조명, Top Singer라 적힌 섬세한 네온사인, pass 버튼이 붙어 있는, 순백색의 화려한 심사위원용 테이블 등등.
‘…첫 방송에는 이 정도까지 본격적이진 않았지.’
긴가민가하는 목소리가 대다수. 성공을 확신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기에 첫 방송은 꽤나 조잡했는데 애초에 이 다목적 홀은 고사하고 SBC 본건물의 촬영장 하나를 빌리는 데에도 애를 먹었었다.
그렇지만 뭐.
보다시피.
지금은 성공했지 않은가?
누가 뭐래도 방송의 성공은 연출 감독 박성균의 덕이 컸다.
바로 ‘실시간 반응’이라는 시스템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니까.
“시작 10분 전입니다!”
구석 어딘가 막내 피디의 샤우팅과 함께, 카메라가 켜졌다.
아직 TV에 송출되는 시각은 멀었지만, 인터넷은 아니다.
그렇다.
‘탑 싱어’는 실시간으로 인터넷으로 송출되어 채팅창이 올라오고, 그 채팅창이 다시 본 방송국에 송출되는 형식을 가지고 있다.
2단 버퍼라고나 할까.
‘…내가 처음으로 고안한 건 아니지만….’
외국에서도 몇몇 프로그램에서 비슷한 시도를 하기는 했었다.
다만, 이것을 음악 서바이벌에 도입한 것은 자신이 처음이었다.
결과는 대성공.
일방적인 ‘방영’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재미를 느끼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엄청난 인력이 필요했지만….
그렇기에 ‘적자’를 면하는 시청률 기준이 더욱 높아지기는 했지만….
18.5%.
저번 시즌 탑 싱어의 시청률.
뭐, 이 정도면 다 설명이 되지 않겠는가?
오래 우려먹을 플랫폼은 아니다. 다만 아직 그 화제성은 건재했다.
그것은,
“와… 진짜 이거 생방인 거지?”
“개긴장된다….”
웅성거리는 방청객들의 표정과,
익명 : ㅎㅇㅎㅇㅎㅇ
익명 : 오 쳐진다 ㅋㅋㅋㅋ
익명 : 엄마 나 티비 나가는 거야…?
인터넷 송출을 시작하자마자 무지막지하게 올라오는 채팅을 보면서 확신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라인업도 훌륭하고.’
본인 스스로가 ‘데뷔를 걸렀다’고 주장하는 우튜브 가수 전대현, 노래 커버 시장을 주름잡던 코코릴리, 결혼으로 잠시 활동을 접었던 가수 손범 등등.
특히 전대현과 코코릴리는 이미 예선 편 6회 방영을 시작하며 꽤 많은 주목을 모아둔 상태.
이번 첫 방영의 고비를 넘기기만 한다면 종영까지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10초 뒤에 스탠바이합니다! 10… 9!”
박성균은 꿀꺽, 침을 삼켰다.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최고의 가수를 뽑는다! 모든 것을 배제하고, 천상의 목소리를 가진 단 한 명 사람만을 모아, 이곳에 세운다!
-탑 싱어의 본선! 지금부터 빠르게, 단 1초의 낭비도 없이 여러분께 생생한 중계를 약속드립니다!
한껏 끌어올린 사회자의 텐션, 그리고 우레와 같이 퍼지는 박수 소리.
마구 흩뿌려지는 조명과 함께, 심사위원들이 하나둘 걸어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모두가, 이미 업계에서 한가닥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중견 가수들이었다.
탑 싱어의 세 번째 시즌이, 드디어 시작된 것이다.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해주실 1번 참가자! 아, 벌써 나와계시는군요!”
1화당 방영 시간은 약 70분.
생방송인 것치고 빡빡한 일정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넉넉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아주 당연하게도….
“이 세상에~”
노래가 전부 이어지기 전에 ‘완곡’이 되기도 전에 탈락하는 이들이 속출했다.
익명 : 와 진짜 개얄짤 없네 ㅋㅋㅋ
익명 : 이번 시즌 최단기 컷 ㅋㅋㅋ
익명 : ㅠㅠㅠ
인터넷 송출본에 채팅이 올라오고, 그중에서 수위가 심하지 않은 것들이 수동으로 걸러져 TV로 송출됐다.
“가사 전달력이 좋지 않군요. 감정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발음의 문제라고나 할까요….”
심사위원들의 혹평이 이어지며 긴장감을 자아냈으며, 조금 ‘길게’ 부르는 참가자가 나오는 순간 채팅창은 거의 불타오르듯이 치솟았다.
“12퍼센트 넘겼다고 합니다.”
“좋아요. 좋아.”
“…거물들 등장하면 더 올라가겠죠. 오늘은 14퍼까지 노릴 수 있겠네요.”
“옙.”
시작은 좋았다.
그리고 이번 방송에서 가장 중요한 라이벌 구도, 전대현과 코코릴리가 등장하는 시청률은 지금보다 치솟을 것이 분명했다.
둘 다 구독자 100만에 달하는 대형 우튜브 채널을 가지고 있는 만큼, 그 노래 실력은 증명된 상황.
아니나 다를까,
마치 엘프를 떠올리게 하는, 청록빛으로 머리칼을 염색한 코코릴리가 무대에 올라 ‘붉은 노을’을 부르자,
익명 : 눈나 ㄷㄷ
익명 : 오코코코코코릴리네
익명 : 갓- 떴다.
익명 : 형 드디어 tv에 나오는구나 많이 컸구나 ㅋㅋ
익명 : 어제까지 귀여워서 고멘네 부르던 사람 맞음 ㄷㄷ?
실시간 채팅창이 올라오는 속도가 가파르게 증가했다.
“반응 진짜 미쳤는데요? 섭외하기 진짜 잘했네.”
“맨날 커버만 부르던 사람이야. 옛날 노래 하나씩 부르면 주목받는 건 순식간이지.”
눈여겨봤던 전대현, 손범, 그 밖의 참가자들이 무대를 이어갔다.
‘첫 방송은 인원을 줄이는 게 목표니까.’
그 소정의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했다고 확신하는바.
근데….
익명 : 오… 밴드도 나옴?
익명 : 블랙 벨트?
익명 : 연주 립싱크 아니야?
익명 : 케이블은 제대로 연결돼 있는 거 같은데?
익명 : 실력 미쳤네 ㄷㄷㄷ 이건 통과 ㅇㅈ이지.
의외의,
정말 의외의 인물들이 관심을 받고 있었다.
거기에,
“안녕하세요오오오!”
예선 때부터 어그로 대장 역할을 맡고 있던 ‘권민석’이 등장하자, 분위기는 식을 줄 모르고 더욱 달아올랐다.
“제가 이번에 들려들 곡은! 지금까지 모든 사람들을 압살할! Believer입니다!”
그는 과하게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꽥꽥 계속해서 소리를 질러댔다.
“곡 이름처럼, 저는 믿습니다! 제가 여기서 1위를 당당하게 차지하는 것을!”
익명 : 어그로 장인 ㅋㅋㅋ
익명 : 아 귀아파
익명 : 목청은 확실하것네.
“캐릭터 좋네.”
실력이 부족하면 떨어지는 걸 피할 수 없겠지만서도.
박성균은 그대로 오래 우려먹을 수 있게, 저 과한 자신감의 소년이 오랫동안 남아주길 바랄 뿐이었다.
* * *
가수로 데뷔해서 노래만 부르고 사는 이들은 없다.
유명세를 얻고, 이름값이 높아지면 자연스레 다른 방송 영역으로 확장해 나가는 사람들이 대다수.
다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정체성을 잃어버리면 안 돼.’
방송에 나오고, 예능에 나오고, 우튜브를 시작하고.
돈과 인기를 얻는 것은 좋은데.
그러다 점점 가수로서의 이미지가 희석된다면?
데뷔 17년 차이자 이제 전 국민에게 이름이 알려진 남도민 같은 경우 그런 상황을 편집증적일 정도로 경계하고 있었다.
모두가 아는 ‘가수’가 되는 것.
그것을 위해 모든 인생을 걸었으니까.
그가 대중들에게 비춰지길 바라는 모습은 노래와 음악에 미친 인간이었다.
그렇기에….
이번으로 시즌3을 맞이하는 탑 싱어의 심사위원의 제안이 왔을 때,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미지를 더더욱 확고히 할 수 있는 기회니까.’
이미지가 소모되는 방송 출연은 일부러 피했다.
다만 이런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심사’역이라면 오히려 이미지에 득이 되면 됐지 절대 손해를 보지 않았다.
그리고 하는 일 또한 쉬웠다.
“…대단한 자신감이네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거죠?”
“하하, 뭐랄까, 재능? 그런 거죠.”
“재능이라….”
피식.
거만한 듯한 웃음.
그리고 아주 약간 굳는, 출연자의 얼굴.
뭐, 이렇다.
이런 식으로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평가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
참가자의 노래는,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으로 평가할 것이다.
그리고 이상하리 자신감이 넘치는 권민석 소년은,
‘나쁘지 않네?’
의외로 괜찮았다.
하긴, 자신감이란 게 생기려면 일말의 실력이라는 게 있어야 하는 법이니까.
영어 발음은 그다지 좋지 않지만, 원곡의 신나는 듯한 멜로디와 잘 융화된다.
그러므로….
둥-!
테이블 앞에 놓인 pass 버튼을 누를 수밖에 없었다.
옆에 앉은 다른 심사위원 셋이 연달아 버튼을 누르는 것 또한 당연한 바였다.
“와아아아아악!”
울려 퍼지는 비명에 가까운 환호.
그리고,
“…자신감만큼 앞으로 더 좋은 무대를 보여주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입에서 내뱉는 아주 순수하기 그지없는 감상.
권민석은 ‘합격자’들이 있는 무대의 구석으로 당당히 걸어갔다.
“다음은….”
남도민은 테이블에 놓여진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총 참가자 39, 지금까지 떨어진 사람 13, 붙은 사람은 8.
절반이 지나갔고, 절반이 넘는 시간이 남았다.
이번에는 시간을 끌어도 상관없을 것이었다.
아니, 끌 수밖에 없었다.
그야,
“…이호식 씨는 권민석 씨랑 나이가 같으시네요?”
대립 구도가 예쁘게 잘 나올 것 같으니까.
“…예. 같은 나이뿐만 아니라, 중학교 동창입니다.”
-오오오오오오~
관객석에서 밀려드는 함성,
익명 : ㄹㅇ?
익명 : 와 ㅋㅋㅋ 서로 아는 사이인 거임?
익명 : 친군가?
다시금 탄력을 받아 빠르게 올라오기 시작하는 실시간 반응들.
“…친구는 아닙니다. 별로 안 친했어요. 저는 조용했거든요.”
“그렇군요?”
“뭐, 서로 선의의 경쟁을 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이렇게 됐네요. 그리고 미안하네요.”
“…무슨 말씀이시죠?”
“저 녀석… 방금 합격했는데 제 압도적인 가창력이랑 곡의 퀄리티를 듣고서 절망에 빠지면 어떡해요….”
“…!”
익명 : …?
익명 : 응?
아주 약간 얼어붙은, 공기.
다만 아주 빠르게….
익명 : 와 첫방부터 저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익명 : 어그로대전 ㅋㅋㅋ
-와아아아아아아!
뜨겁게 달아오르는 공기!
“…이호식 씨도 자신감이 대단하시군요?”
그건 뭐랄까, 권민석의 종류와는 궤가 달랐다.
권민석이 무차별적으로 어그로를 살포하는 타입이었다면 이호식은 그저 한 명만 노리는 스나이퍼 같다고나 할까.
“제 자신감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거든요.”
“그 말씀은…?”
“준비를 많이 했고요, 곡도 좋고요.”
“…분명히 ‘쉬즈곤’이었지요?”
…가창력을 뽐내기에는 아주 적절한 선곡이기는 했다. 다만, 이걸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이 손에 꼽는다는 게 문제지.
‘…자기 스타일이랑 어울리느냐도 따져봐야 하지만… 일반인이 그것까지 고려하지는 않았을 것 같네.’
“예. 쉬즈곤입니다. 하지만 평범한 쉬즈곤이 아닙니다.”
“…네?”
“제 친구… 요즘 한창 이름 날리는 작곡가 ‘김도일’이 만진 곡이거든요.”
…평범한 인스트가 아니란 말인가?
남도민은 ‘김도일’이라는 이름을 곱씹었다.
분명… 최근에 들어본 적이….
“시작하겠습니다.”
스포트라이트가 이호식 참가자를 내리쬐었다.
새로운 쉬즈곤.
대체 뭘까.
그 완벽한 곡에 어떤 고칠 점이 있었길래 새로 만들었다는 걸까?
궁금증이 들었다.
그리고 그 궁금증은….
“…~”
일렉트릭 기타 대신에 클라리넷 소리가 들려오며,
그 위를, 잔잔한 발라드 스타일의 목소리가 뒤덮자,
단박에 해소되었다.
‘…어울린다.’
마치 딱 맞는 정장을 차려입은 듯한 신사를 보는 듯했다.
이질감이랄 걸 느낄 수 없다고나 할까.
아무래도 원곡의 그 강렬한 날카로움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가 않은데….
저건 딱이다. 그냥 어울린다. 아니, 원래 저런 곡이었다고 착각을 일으키는 것만 같다.
그리고 그 이유를, 남도민은 곧바로 깨달아 버렸다.
‘김도일.’
…그 이름을 들은 적이 있다.
방금 무대에 올라 당당하게 통과를 받은 ‘블랙 벨트’의 곡을 쓴 작곡가다.
그리고….
자신의 절친, ‘홍우진’이 입에 담던 이름이다.
-…대단한 작곡가가 세상에 나온 거 같아. 노래는 접었는데… 그 사람이 쓴 곡이라면 부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또 다른 참가자군.’
분명 이곳에는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이곳에 존재했다.
1차 방송의, 당당한 통과자 ‘두 명’을 만들어낼 정도로,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면서.
“아아아아아아아아~”
인스트와 어우러지는 부드러운 고음이 귀에 박혔다.
그리고 그 반응은,
“느낌 좋은데?”
“저거… 물건이다.”
“…생각지도 못한 강자네요.”
익명 : 동창생을 바로 찢어버리네 ㅋㅋㅋㅋㅋㅋ
진짜 ‘찢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