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20-second songwriting genius, a 200,000-second monster RAW novel - Chapter 81
20초 작곡천재, 200,000초 괴물 되다 81화
거대하고 웅장한 미러전(1)
흐릿한 어렸을 적 기억이 하나 난다.
나는 준비물 살 돈을 삥땅 쳐 문방구에서 아폴로를 자주 사 먹었었는데,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쥰내 달고, 오래 즐길 수 있으니까.
뭐 오래 즐길 수 있다는 요소는 개인적인 집안 사정 때문이기는 하지만서도.
중요한 건 전자다.
쥰내 달다는 점이다.
어릴 적에는 그냥 설탕을 많이 넣었나 보다 싶었는데, 커서 찾아보니 이게 포도당으로 만들어졌더라.
모든 당류의 끝판 왕이자 우리 몸이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그거 말이다.
실수로 흘리기라도 하는 날에는 개미가 군단을 이루어 꼬이는 절경을 구경할 수 있다.
그건 아마, 당연히 ‘생물’로서 좋아할 수밖에 없었던 맛이었던 게 아닐까.
그리고 아마, 내가 ‘20초 장인’ 계정에 올린 짤막한 멜로디 또한, ‘곡’을 만드는 생물 입장에서는 포도당 같은 게 아니었을까.
그리 생각해 보면 개미가 꼬이는 건 당연한 이치 같다.
9월 30일.
나는 추석을 지내자마자 곧바로 EL엔터로 향했다.
다른 사람들은 연휴니 뭐니 나름 알찬 휴일을 즐기고 있던데.
여기는 추석임에도 출근한 직원이 썩 많아 보이긴 하더라.
잡쁠라넷 같은 데서 찾아보니까 연봉은 꽤 높긴 하던데.
역시 엔터 회사는 근무환경은 헬인 거 같다.
물론,
지금 내 머릿속보다 헬인 사람은 없겠지만.
“X벌X벌.”
욕짓거리가 입에서 터져 나왔다.
만나는 사람마다 슬쩍슬쩍 뒤돌아 보긴 하던데, 사실 지금 그런 사소한 요소를 신경 쓸 겨를 따위 없었다.
내 곡을 누가 베껴갔고,
그게 지금 일론 차트 1위를 먹고 있는 상태니까.
‘X벌X벌X벌’
수많은 욕 난사와 함께 도착한 곳은 회사 건물의 최상층.
개중에서도 2중문으로 보안이 좀 철저해 보이는 귀빈용 접객실.
기다리고 있는 것은 당연히 최 이사였다
“추석 잘 보내셨습니까.”
“보내주신 소고기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것참 다행입니다.”
참고로 내가 회귀 전에 다녔던 회사에서는 비닐 봉다리에 런천미트랑 콩기름 넣어주더라.
아니, 뭐,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어떻게 된 건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간단합니다. ST에서 업계 관행을 저질렀고, 그게 저희에게 피해가 가는 경로로 돌아온 것이죠.”
“…업계 관행.”
“저희는 악행이라고 보고 최대한 지양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이 더 많은 게 사실이죠. 참 곤란하게 됐습니다. 큰 공을 들인 칼미아가 1위에서 내려오다니….”
…그렇다고 한다.
뭐, 따로 설명을 안 해도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인터넷은 도적놈들이 넘치니까.’
비단 사운드 클라이머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비단 ‘음악’ 업계의 문제도 아니다.
디자인이든 일러스트든 음악이든 간에, 좋은 퀄리티에 ‘하꼬’라는 조건을 가지고 있다면, 우선 가져다 써보는 놈들이 부지기수다.
안 걸리면 럭키.
그러다가 걸리면?
잘 몰랐다고 오리발 내밀기, 혹은 그제서야 사용료 지불하기.
회사를 끼고 있으면 아무래도 후자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일단 마음을 놓고 있기는 했는데….
이번에는 그게 안 됐다.
“그렇군요. 빠르네요.”
“예.”
이유는 간단하다.
‘빨랐기’ 때문.
20초 장인 계정을 만든 지 2달이 안 된 거 같은데.
그사이에 멜로디를 쌔벼가서 후다닥 곡 만들고 뮤직비디오도 찍고 결국 앨범 발표까지 마쳤더라.
“표절을 눈치챈 건 나흘 전이었습니다. 준호라고 아시지요. 예전에 작곡가님 초빙할 때 같이 있었던….”
“아, 엔지니어님이요.”
“예. 준호… 아니, 준호 씨 옆 스튜디오에 믹싱 요청이 들어왔는데, 멜로디가 재밌다고 저한테 알려주더군요. 살짝 들어봤는데, 작곡가님이 올려두신 거랑 너무 비슷합니다.”
ST엔터의 간판 아이돌인 퍼플 밤의 신곡, 네온사인.
솔직히 말하자.
코드 진행은 베껴가면서도 서스 세븐을 넣으며 아주 약간 뒤틀고.
3마디마다 끝의 음을 미묘하게 바꾸고.
아예 통째로 가져다 썼으면, 너무 좋았나 보구나 싶어 봐줄 의향이 있는데.
이건 진짜 악의가 찐득하게 묻어나오는 수준이다.
아무리 내가 도적질을 많이 당해봤다고 하더라도, 개인적인 ‘선’이란 게 있는 법.
그리고 이건 선을 한참 넘었다.
분노가 가슴속에 스멀스멀 깔리는 것은 아주 당연했다.
“이렇게 곡이 빨리 완성될 줄이야….”
“이미 전부 다 준비를 해두었던 모양입니다. 참… 복잡하게 됐군요. 한두 사람이 피해 보는 게 아니게 되니.”
발매 전 표절 사실을 알았다면 재빠르게 대처가 가능하겠지.
딱 한 사람만 조지면 되니까.
다만, 발매 후에는 다르다.
곡을 만든 놈만 피해를 보는 게 아니라 부르는 사람, 판 사람, 사용한 사람.
모두가 다 같이 조져지는 것이다.
“…우선 회사 이름으로 항의서한을 보내두었습니다. 현재 칼미아의 채은 씨가 블루 밤 멤버랑 자리를 같이하고 있고요.”
“채은 씨는 왜죠?”
“데뷔 시기가 겹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약간 친분이 있으시거든요.”
…매우 배려 넘치는 행동이기는 했다.
블루 밤의 멤버들이 곡과 정말 아예 관련이 없다고 한다면, 그야말로 표절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일 테니까.
미리 알려줘서 마음의 준비를 시켜주려나 보다.
다만,
‘뭔가 싸하단 말이지.’
그저께 동생 친구들과 같이 보았던 ‘예지’의 첫인상은 썩 좋지가 않았다.
뭔가 나를 깔보는 듯한 뉘앙스였다고나 할까.
피해의식 같기도 하지만.
“저쪽에서 표절을 순순히 인정한다면, 작곡가 개인에게만 제재를 가할 생각입니다만….”
“그게 좋겠죠.”
“예. 생각이 일치해서 다행입니다.”
그렇게 흘러가면 다행이다.
애먼 사람들에게까지 폭탄을 떠넘기는 수는 악수니까.
적은 최대로 적게 만들고 사는 게 인생 개꿀팁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다만….
‘만약 그렇게 안 흘러간다면.’
순순히 인정하지 않고, 오리발을 내밀게 된다면.
작곡가뿐만 아니라 회사 전체가 오리발을 내밀고, 법정 싸움으로 질질 끌고, ‘표절 의혹’ 자체를 화젯거리로 삼으려 한다면.
일이 존나 복잡하게 흘러갈 것이다.
‘대가리 아프네.’
과한 걱정은 정신건강을 좀먹지만, 상황이 상황이었다.
“너무 걱정 마시고요…. 설령 법정 싸움이 된다 하더라도 저희가 손 놓고 있지는 않습니다. 회사 소속 피아니스트시니까….”
최 이사는 다리를 덜덜 떠는 나를 진정시키려는 듯한 말을 내뱉었지만, 솔직히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내게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니니까.
해결이 필요한 거니까.
‘올려둔 게 짤막한 것도 문제네. 제대로 된 곡이었으면 적극적인 주장이 가능했을 텐데.’
‘곡’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더라면 조금 더 표절을 어필하기가 쉬울 것이다.
하지만 내가 올린 것은 그저 25초짜리 멜로디 가락.
완성본이 아니었다.
‘다 만들어둘 걸 그랬나?’
뭐랄까.
의미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회귀 전과는 달리, 한 번 ‘폐기’해 버린 멜로디란 걸 알면서도.
회귀 전과 같은 후회가 들었다.
그리고,
“…?”
머릿속에,
번개가 들이쳤다.
‘…그냥 지금 곡을 끝까지 만들면 되는 거 아닌가?’
“칼미아 곡 안 필요하대요?”
“네?”
“그냥 저 멜로디로 새 곡 써서 미러전 건다면?”
…명쾌한 해답이, 튀어나와 버렸다.
* * *
모든 것에는 수명이 있다고 한다.
사람은 물론, 동물, 식물, 기계장치, 별, 하다못해 우주까지도.
사람들은 ‘영원히’라는 말을 자주 쓰기는 하지만, 사실 그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개념이란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많이 무서웠다.
언젠가는 엄마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게 말이다.
물론 나이를 조금씩 먹으며 어느새인가 공포심이 좀 무뎌지기는 했지만,
요즘 들어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꿈만 같은 4년이었어.’
서채은은 최근 멤버들과 자주 얘기를 나누었다.
자신들이 더 이상 아이돌이 아니게 되었을 때를.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지 않고, 집 앞의 편의점에도 마음대로 갈 수 있고, 공항에서 수많은 카메라들이 기다리고 있지 않은 삶을.
…너무 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무섭기도 했다.
사랑받는 게 당연한 나날들이었는데. 그것이 없어진다니.
그런 날이 절대로 오지 않았으면 했다.
다만,
‘…곧 오겠지.’
아이돌의 평균 수명은 5년이라고 한다.
물론 수명이라고 해봤자 진짜 몸 어디가 고장 나서 죽거나 하는 게 아니다.
그저 직업의 지속시간이라는 의미.
물론 모든 아이돌이 5년이 되자마자 귀신같이 딱 망하는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마음의 준비는 해둬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4년이 지났으니까.
‘최근에 떠오르는 애들도 있고.’
사람들의 관심은 무한하지 않다.
그런 시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떠오르는 아이돌이 있다면, 잊혀지는 아이돌도 있는 법.
자신들도 처음에는 원래 있던 선배들을 밀어내며 올라왔고,
시간이 지난 지금, 밀릴 차례가 된 것이다.
당연하게도, 내리막을 타고 사람들에게 잊혀질 날은 올 것이다.
필연이었다.
다만….
‘끝까지 불태울 거야.’
받고 있는 사랑이 차갑게 식을 날이 다가오고 있더라도.
칼미아는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를 것이다.
그 누구보다도 열정적이게, 한국의 ‘정상’을 거닐던 그룹의 명성에 걸맞도록.
최선을 다해서, 1위를 지킬 것이다.
아이돌은 사람들에게 꿈을 꿀 수 있게 해주는 직업 아니던가.
동경의 대상이 되는 직업 아니던가.
기죽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추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무대 위에 서는 자의 자세가 아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1위를 빼앗기며 내리막을 걷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오랜만이야 예지야.”
“하이하이!”
서채은은, 굳이 찾아왔다.
경쟁사 근처의 주차장에,
예전에 연습생 생활을 같이한, 예지를 만나러.
“먹을 것 좀 사 왔어.”
“신곡 나온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축하해 주러 온 거야? 고마워!”
서로가 아이돌인 만큼, 어디 분위기 좋은 카페 같은 데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누구를 만날 때는 언제나 밴 안이었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곡 진짜 잘 들었어.”
“그치? 잘 뽑혔지? 이번에 일본에서 합동콘서트 크게 열잖아. 거기서 부르면 대박이겠지?”
생글생글한 미소를 지으며 후다닥, 가방에서 음료수를 꺼내는 예지.
예지와는 2년 정도, ST에서 같은 연습생 시절을 보낸 적이 있었다.
자신은 데뷔 실패로 EL로 넘어왔고, 예지는 그대로 남았긴 했지만,
같이 땀을 흘린 동료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가만히 보고 있을 수는 없어.’
경쟁자이면서도, 동업자이다.
자신들이 열심히 준비한 곡이 표절곡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면.
그때 몰려올 절망감이란, 도저히 예측할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그렇기에….
“예지야.”
말을 해주어야 했다.
1위라는 달콤한 과실을 오랫동안 맛보기 전에.
더 큰 절망이 찾아오기 전에.
“사실은….”
서채은은 조근조근,
침착한 어조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너희의 신곡은 EL과 관련 있는 사람의 곡과 많이 비슷하다고.
협의가 되어 있지 않아서 표절 이슈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고.
‘마음이 무거워.’
예지는 연습생 시절에도 유난히 승부욕이 크고 야망이 넘쳤었다.
그러므로, 아마 울겠지.
펑펑 울 것이다.
해왔던 노력, 쏟아부었던 시간이 통째로 부정당하는 꼴이 될 테니까.
천근의 무게가 마음을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자신이 느끼는 감정은 예지가 느끼는 아픔의 반도 안 될 것이다.
…그럴 터인데,
“….”
소식을 전해 들은, 예지가, 눈을 끔뻑거렸다.
너무 놀라서 말이 안 나오는 걸까,
굳어버린 걸까 싶었지만,
“…근데?”
아니었다.
“비슷한 게 왜? 어쩌라고?”
그녀는,
“너 1등 빼앗겼다고 지금 나 질투하는 거야? ‘비슷’한 게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
그저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냐는 듯,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