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irt spoon's way to escape debt RAW novel - Chapter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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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째 만남(6)
주황의 기운.
미쳐 날뛰는 듯한 그 기운들.
스치기만 하더라도 베일 것만 같은 매섭게 다져진 그 기운들.
마치 잘 벼려진 송곳 같이 날카로운 예기들로 가득 둘러쌓인 채 예기를 뽐내는 만병들.
이 전장에서 따스함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든 짓밟아 버리겠다는 되레 조금의 빈 틈이라도 보인다면 바로 물어 뜯어버리려는 그것들.
허공을 수놓은 만병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그 기운들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빠르게 움직이며 새파란 섬광으로 둘러쌓인 채 빠르게 움직이는 기운을 추격하고 있었다.
챙-
막아낸다.
챙-
또 막아낸다.
챙-
그리고 다시 한 번.
체스의 대검과 페릴턴의 만병들이 부딪히며 불꽃 튀기는 마찰음이 비어 있는 소리의 공간을 한 군데씩 채워나간다.
물고 물리는 그리고 쫓고 쫓기는 둘 사이의 추격전은 한 공간 내에서 계속해서 이어졌다.
체스는 여전히 원을 그리며 달려감과 동시에 점점 페릴턴과의 거리를 좁혀가는 중이다.
그의 얼굴은 지금껏 본 것 중에 제일 환하게 빛이 나고 있었다.
‘이런 느낌이었던가?’
몹시도 새롭게만 느껴지는 감각.
아예 자신의 몸만 전혀 다른 세상에 있는 듯하다.
게다가 자신의 몸뚱아리 깊은 곳.
그 안의 모든 것이 열려버린 듯한 느낌.
한 걸음 한 걸음 빠르게 내딛을 때마다 주변의 모든 게 빠른 속도로 자신의 곁을 지나쳐 간다.
허나 실상은 체스가 느끼는 것과는 조금 달랐다.
이것은 상대적이긴 하겠지만 체스의 몸이 빨리 움직인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였다.
가장 큰 원인은 키린의 기운과 같은 색의 푸르른 기운.
그의 몸 안에는 키린이 살려줄 때 넘겨 주었던 그의 기운이 완전히 융해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어찌어찌하여 알게는 되었지만 제대로 인식을 하지는 못했던 그 기운.
그 기운들이 움직임에 따라 주변의 공기를 얼어붙게 만들며 상대적으로 체스의 몸을 더욱 빨라진 것처럼 보이게 만든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 만이라면 이렇게까지 움직이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현재 체스가 뿜어내는 그 기운을 더욱 강하게 하는 것.
그것은 바로 관여자로서의 각성 때문이었다.
하지만 체스가 그 까닭까지 알 리는 만무한 노릇.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그저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열심히 발을 놀리는 그였다.
잔머리는 잘 굴리면서 또 이런 곳에서는 얼마나 저돌적인지 원.
그나저나 빨리 처리를 해야 한다.
널부러져 있는 헬캣의 상태가 영 심상치 않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헬캣 저도라면 못 일어날 리가 없을 터인데 아직까지 못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저렇게 혀까지 빼어물고 말이다.
칫.
하지만 우선 순위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은 이 녀석을 정리를 해야 한다.
슈욱- 슈욱-
잠시 다른 생각에 빠진 체스였지만 그런 와중에도 그는 드디어 페릴턴에게 대검이 닿을 거리까지 접근했다.
‘왔다.’
피이잉-
클링어를 발사함과 동시에 대검을 힘껏 베어가는 체스.
시간차를 두고 발사된 클링어는 그대로 페릴턴의 팔에 칭칭 감겼다.
좋아.
기가 막힌 한 수다.
순전히 체스 혼자만의 생각이긴 하지만 지금이라면 필승이었다.
체스의 몸에서 흘러 나오는 푸르른 기운이 더욱 짙어진다.
그 기운은 체스의 기운과 섞여가며 더욱 강도를 더해가더니 인정사정 없이 페릴턴을 베어갔다.
****
꽤나 애를 쓰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래봤자 애송이는 애송이.
가능성은 충분히 있어 보이지만 그것도 10년 정도 뒤의 이야기일려나.
지금으로서는 저 덩치만 큰 녀석이 자신을 이길 가능성은 만에 하나도 없다.
아쉽다.
조금 더 어울려 주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시간도 없을 뿐더러 이 녀석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도 못한다.
바로 그때.
칭칭칭-
페릴턴의 팔을 감아오는 체스의 클링어.
순간 페릴턴의 눈가에 이채가 떠올랐다.
덩치와는 다르군.
허나.
고작 이런 잔머리를 굴리다니.
그 사이 빠른 속도로 치고 들어오는 체스의 대검이 자신의 눈앞에 보였다.
대검의 주위.
휘둘러지는 대검을 감싼 주변의 공기에 서리는 살얼음.
그 여파인 탓일까.
미묘하게 느려지는 자신의 움직임.
페릴턴에게는 느껴졌다.
아주 미비하지만 1/100초 정도 자신의 몸을 더디게 만드는 차이가 말이다.
미세혈관의 깊숙한 곳을 힘차게 흐르는 혈류가 조금씩 늦춰진다.
그러나 이 정도는 지극히 쉬운 것.
크어어어어어엉-!!!
페릴턴이 갑자기 고함을 터뜨렸다.
그와 동시에 주변에 낀 살얼음이 쩌저적 갈라져 간다.
동시에 이어지는 움직임.
그는 자신에게 클링어를 감은 채 달려드는 체스를 홱 낚아챘다.
가속도가 붙은 탓에 오히려 생각보다 수월하게 끌려오는 체스.
어…? 어…?
순간적으로 훨씬 빨라진 속도에 당황한 체스의 얼굴이 페릴턴의 두 눈에 똑똑히 비쳤다.
하지만 전혀 기세를 멈추지 않은 페릴턴.
그는 주황빛으로 뒤덮인 자신의 기운을 몽땅 체스에게 쏟아 부었다.
쿠과와와와와왕-!!!!!!!!!
엄청난 격돌음이 터져 나온다.
순간 체스의 주변을 감싼 기운이 퐈아악 흩어져 나가며 일순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버린 그의 몸.
헉-
…조졌…
그리고 뒤따라오는 페릴턴의 대검.
그의 검은 정확하게 체스의 배를 가르며 지나갔다.
스걱-
아주 깔끔한 일검이었다.
어어…
이런 제…엔…자…ㅇ
일련의 동작을 끝낸 페릴턴은 손을 털어 자신의 손에 감긴 클링어를 풀어냄과 동시에 자신의 검을 회수해 갔다.
그의 동작이 끝남과 동시에 땅바닥에 그대로 고꾸라지는 체스의 몸뚱아리.
털썩-
베여나간 체스의 몸에서부터 피가 조금씩 흘러나오며 땅바닥을 적시기 시작했다.
아마 이대로 죽음일 것이다.
페릴턴에게 확실히 느껴진 손맛이었다.
그렇게 널부러진 체스 그리고 헬캣.
“유쾌하지만은 않군.”
촤자작-
탁-
목표를 잃어버린 탓에 공중에 둥둥 떠있던 만병들이 각각의 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한다.
생각보다 각성의 기운을 제대로 못 끌어낸 탓에 자신이 쉽게 이길 수 있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자신의 쾌감을 극대화시켜주는 최고의 전투가 되었겠지.
그렇지 않아서 유감이지만.
널부러진 체스를 내려다보는 페릴턴.
동정심 따위는 없었다.
어차피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약한 자는 도태되고 강한 자 만이 살아남는건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더군다나 관여자가 둘이 될 수가 없는 상황에서 자신이 강하고 이 녀석이 약하다면 응당 당연한 결과였다.
“기다려라. 곧 찾아가겠다.”
그는 알 수 없는 말을 남긴 채 다시 자신이 왔던 방향으로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관여자는 하나.
더 이상 관여자도 없을 뿐더러 자신을 막아설 이조차 없다.
그렇게 사라져간 페릴턴.
그가 떠난 자리에 남은 것은 널부러진 두 구의 미동조차 않는 육체가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