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irt spoon's way to escape debt RAW novel - Chapter 45
44
출발(8)
체스는 꾹 참았다.
하긴 뭐 참아야지 어쩌겠는가.
대들어서 두들겨 맞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그나저나 얼른 라이손 성에 도착해 할 일이 많은 자신이거늘.
성을 눈앞에 두고 혹 아닌 혹이 붙어 버렸다.
혹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큰 혹.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존재이지.
눈물이 앞을 가렸지만 체스는 단지 속으로 눈물을 삼킬 뿐이었다.
-여하튼 그럼 잘 부탁한다.
“아…네…”
-뭐하냐? 안 가냐? 그리고 존댓말을 쓰니 이제야 좀 예의바른 청년 같군.
“…연장자 대우해 드려야죠.”
체스는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다.
그의 옆에는 헬캣이 걸음을 나란히 했다.
힐끗 옆으로 눈을 돌려보니 헬캣은 꼬리를 곧추세우고 고개를 세운 채 도도하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저…그런데 그 꼴로 성에 들어가실 생각이십니까?”
정신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도대체가 생각이 없다.
이런 녀석을 데리고 돌아다녀야 한다니.
-내 꼴? 내 모습이 뭐가 어때서? 환수 중에 이런 미모를 가진 환수가 얼마나 있는 줄 아냐?
“… 하. 그 말이 아니라요. 지금 모습을 보세요. 인간이 환수인 걸 알게 된다면 시끄러워질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아…
골똘히 생각에 잠긴 헬캣.
두 발로 쪼그려앉아 앞발로 턱을 괸 채였다.
자신도 환수가 아닌가.
게다가 이렇게 불을 달고 다니는 동물이 있을 리가 없지.
멍청한 줄 알았더니 또 완전히 그렇지만은 않군.
확실히 일리가 있는 체스의 말이었다.
-하긴 놀라기도 하겠군.
그러고 보니 지금껏 인간계에서 그렇게나 오래 돌아다니면서도 인간과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은 적이 없던 헬캣이다.
주로 인간이 없는 곳을 돌아다닌 자신이기도 했지만 인간 따위와 관계를 맺을 생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번은 좀 다르다.
해결해야 하는 것이 있으니.
고개를 휙휙 돌려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는 헬캣.
확실히 인간들이 보면 놀랄 수 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꼬리에 불이 나있는 동물은 없으니.
-그건 네 말이 맞군.
체스의 말에 수긍을 한 헬캣은 이내 모습을 바꿨다.
파아앗-
헬캣의 몸에서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온다.
그렇게 뿜어져 나온 빛은 한참을 헬캣의 몸을 감싸더니 은은하게 온 전신에 머물러 있었다.
헬캣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변화의 시작은 커다란 귀부터였다.
차츰 줄어들기 시작한 귀는 몸에 맞추어져 적당한 크기로 변해가고 몸도 좀더 날렵하게 바뀌어 갔다.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맞은 몸이 된 헬캣의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꼬리.
헬캣의 상징이기도 한 꼬리에 붙은 불이 마치 불씨가 사그라들 듯 옅어져 갔다.
잠시 후 체스의 눈앞에는 모든 변화를 마무리한 하얀 털의 곱디고운 생물이 하나 앉아 있었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더니 환수의 이런 변화 또한 당연히 무죄라고 밖에 할 수 없을 정도로 예쁨이 터져 나오는 비주얼이다.
‘앗! 이런 젠장.’
하아…
저래도 되는 거야?
저 영롱하게 빛나는 눈동자하며 햇살에 비쳐 반짝이는 그의 털마저…
진짜 저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당장에 안고 싶을 정도로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는 모습이지 않은가.
‘귀…귀여워…♥’
언제 울상을 지었냐고 할 정도로 체스의 볼은 발그스레한 모습이었다.
눈은 하트로 가득 차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저 모습이 바로 지금 헬캣을 바라보는 체스의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언제나 체스에게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커다란 몸집에 험상궂은 인상을 가진 탓이다.
하지만 원래 그는 이런 귀여운 것에 사족을 못 썼다.
단지 주변에 귀여운 것이 없어서였을 뿐.
여전히 체스의 눈은 헬캣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지금이라도 터져나갈 것만 같은 그의 심장.
스으윽-
두근대는 심장을 주체하지 못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헬캣을 쓰다듬기 위해 손을 내뻗는 체스였다.
-뭐하냐?
****
“헉!!!”
헬캣의 말에 재빨리 손을 거둬들이는 체스.
아무 생각없이 쓰다듬었을 때의 그 후폭풍을 생각하니…
문득 아까 마냥 날카로워보이던 발톱이 떠오르는 건 기분 탓이겠지?
“아… 아닙니다. 뭔가가 털에 좀 붙어있는 것 같아서 그걸 좀 떼드릴까 했습니다.”
고개를 갸우뚱하긴 했지만 그런가보다 하며 넘어가는 헬캣이었다.
좋아.
잘 둘러댄 듯하다.
체스는 내심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심을 했다.
-그러고 보니 네 이름도 모르는군. 이름이 뭐냐?
“체…체스입니다. 아. 저는 뭐라고 부르면 될까요? 마냥 헬캣이라고 부를 순 없으니…”
-이름… 이름이라. 생각해 본 적은 없다만.
자신에게 이름이 있었나 싶다.
늘 헬캣이라 불리던 자신이었는데 막상 이름을 얘기하라니 떠오르는 게 없었다.
“저… 그럼 앵앵이라 부르면 어떨까요?
-앵앵이? 앵앵이라… 부르기는 쉬운 이름일 것 같구나. 그게 좋다면 그걸로 불러라.
진명은 있다.
자신처럼 이렇게 지성과 실력을 모두 겸비한 환수들에게는 모두 진명을 가지고 있었다.
헬캣이라는 명칭은 단지 하나의 종을 일컫는 말일 뿐이다.
지금 자신이 저렇게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진명을 이야기한다는 것.
그것은 환수들에게 있어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자취며 모든 것을 알려준다는 것에 진배없었다.
환수계에서도 자신의 진명을 아는 이들은 손에 꼽힐 정도였으니.
하지만 체스 이 녀석은 단지 이제 갓 만나게 된 사이.
자신의 진명에 대해 알려줄 생각도 없었고 알려줘서도 안되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다고 한들 뭐 이 녀석이 알 리도 없는 것이니.
“네. 그럼 곧 성에 도착하니 사람들과 있을 때에는 말을 하시면 안됩니다.”
체스가 그건 꼭 지켜야 한다며 헬캣에게 몇 번이나 또 신신당부를 했다.
이 녀석이 걱정하는 바는 충분히 알고 있다.
굳이 인간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주지는 말라는 말이겠지.
물론 마을에 가서도 사고를 치지 말라는 것일 것이고.
하지만 체스가 걱정하는 것 만큼 그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눈곱 만큼도 없었다.
자신은 어차피 목표를 달성하기 전까지만 이 녀석과 함께 돌아다닐 생각이었으니.
목표만 달성하면 바로 또 떠날 생각이기도 했고.
-걱정마라. 당연히 하면 안 되는 것 아니겠나.
“흐음… 그건 그렇죠.”
지금껏 말하는 것을 들어봤을 때 헬캣은 인간과 그다지 교류를 맺는 것에 대해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지 않은가.
그렇다면 인간의 문화나 습성에 대해 단편적인 것 밖에 모를 터.
체스는 헬캣에게 주의사항을 하나씩 일러 주었다.
“이건 이렇게 하시구요. 저건 또 저렇게 하시구요.”
블라블라블라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