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writer who lives again RAW novel - chapter 15
단 한 편의 소설로 이렇게까지 날 파악하다니.
“필명은 왜 그렇게 정했지?”
평범하게 대답하자.
“별 이유 있나요. 존경해서죠.”
“그래서 그의 스타일을 따라하는 건가?”
아, 이건 좀 억울한데.
“스타일의 방향을 지향하는 것뿐입니다. 또, 세상에 같은 스타일이란 없으니까요.”
나는 언제나 새로운 것, 앞서 나가는 것을 추구했다.
1930년대에서 앞서 나가는 것과,
2020년에서 앞서 나가는 것은 같을 수가 없다.
아무리 영혼이 같은 ‘이상’이라 하더라도,
혜경의 기억이 스며든 ‘이상’은 다른 사람이다.
조인창이 빙그레 웃었다.
웃으니, 순호를 좀 닮은 것 같기도 했다.
“맞아. 나도 같다고 생각하진 않네.”
“그럼 왜 그런 말씀을…”
“자신에 대한 자네의 생각이 궁금해서.”
“….”
“내가 보기엔…자네는 이상 그 이상이거든.”
말장난 같은 말이었다.
하지만 난 그 말에, 머리를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불세출의 천재.
그 말을 들었을 때와 비슷한 고양감이 밀려왔다.
“수십 년 동안 이상 문학을 연구했지. 이상의 문학은 몇 가지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어. 권태, 체념, 무욕, 무기력 등등…자네의 소설도 같은 결에서 써졌어. 하지만 자네는 거기에 기묘한 열정을 더해놨더군.”
정확했다.
권태, 체념, 무욕, 무기력.
그것은 1930년대 나의 삶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에 와서 삶의 새로운 열정을 얻었다.
그 마음가짐이 나의 글에도 반영된 걸까.
“…이상 연구를,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내가 겨우 질문을 던졌을 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부인이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향 좋은 차 두 잔과, 양갱이 작은 접시에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이상 선생님이 양갱을 사왔어요. 곁들여 드세요.”
부인은 차와 양갱을 두고 나갔다.
조인창 교수는 양갱을 물끄러미 보았다.
“양갱은 우리 아버지가 좋아하셨지.”
그리고 포크로 아주 조금 맛을 보았다.
“난 아파서 많이 못 먹으니, 자네가 많이 먹어줘야겠군.”
아니.
먹을 정신이 없었다.
방금 전 그의 말을 똑똑히 들었기 때문이다.
“이상 연구를 왜 시작했냐고? 그것도 사실 아버지 때문이지. 아버지가 이상의 친구였거든. 교편을 잡으셨던 세월보다…이상과 우정을 나눈 이 년의 시간이 평생의 자랑이셨어. 어려서부터 어찌나 내게 그의 책을 읽히던지. 하지만 난 아버지를 닮아 창작엔 재능이 없어. 대신 연구자의 길로 들어섰지.”
“…성함이…?”
“조 순자 호자.”
맞구나.
온 몸에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내가 죽기 사 년 전, 순호가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그 아이가 지금 내 앞에 앉은 이 노인이라니.
어질 인에 창성할 창 자를 쓰라고 했던 내 말대로,
그는 정말로 그런 사람으로 평생을 살아온 것 같았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
그러자 조인창 교수도 나를 가만히 보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부탁이 하나 있네.”
조인창 교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부탁이요?”
“그래. 그것 때문에 자네를 여기까지 불렀어.”
“뭐, 뭐지요?”
“나는 한국대에 작년까지 계속 특강을 나갔지. 한국대엔 문창과가 없잖나. 그럼에도 작가가 되고 싶은 학생들을 위해서 문학 특강을 해왔어. 하지만 올해 암 수술을 받고 나서는 그러질 못했어.”
그가 위암 선고를 받은 건 삼 년 전이었다.
긴 투병 기간에도 그는 학교 특강을 빠지지 않는 열정으로 존경을 받았다.
“이 꼴로는 앞으로도 못 나가겠지.”
“아…아닙니다. 쾌차하실 겁니다.”
조인창 교수가 말없이 웃었다.
“난 이제 곧 죽을 거네. 항암도 포기하고 집에 들어앉아 있는 걸 보면 모르나?”
할 말이 없었다.
그에게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를 어떻게 모른척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럼…부탁이라는 것은…”
“나 대신 강의에 좀 나가줘야겠네.”
“네? 강의라 하시면…”
“한국대 특강 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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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는 천재 작가 – (14)
다시 사는 천재 작가 14
“나 대신 강의에 좀 나가줘야겠네.”
“네? 강의라 하시면…”
“한국대 ‘문학창작 특강’ 말이네.”
당황스러운 제안이었다.
갑자기 강의라니.
게다가 한국대학교 문학창작 특강은 조인창 교수가 수십 년간 이어온 명강의로 유명하다.
1930년대에는 교수나 선생이 작가가 되고 싶어 했다.
그러나 2021년에는 작가들이 교수가 되고 싶어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안정적으로 창작을 하고 싶으니까.
안정적 기반이 있어야 오래 창작을 할 수 있으니까.
그러다보니 불쾌한 주객전도가 생긴다.
교수가 되기 위해서 글을 쓰는 작가들이 등장한다.
이를테면, 김한 같은.
그래서 김한은 경력을 쌓기 위해 글쓰기보다 대학 강의에 더 많은 시간을 썼다.
내가 김혜경의 몸에 들어와 이러한 정보를 받아들였을 때,
나는 다짐했다.
절대로 교수를 목표로 글을 쓰지 않겠다고.
글을 쓸 시간을 강의로 낭비하지 않겠다고.
“음…저는 강단에 설 능력이 안 됩니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나는 돌려서 거절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갓 등단한 신인 작가가 한국대 특강을 맡는다는 것도,
신인 작가 주제에 그런 엄청난 자리를 거절한단 것도.
“자네가 그렇게 말할 줄 알았네.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겠지.”
“….”
“그러니 부탁한다고 하지 않았나.”
“하지만…”
“말 잘하는 사람들은 차고 넘치게 많아. 하지만 자네처럼 글을 쓰는 사람은 찾기 힘들지.”
“….”
“올라가서 아무 말도 안 해도 상관없네. 자네를 보는 것만으로도 수강생들에겐 영광일 테니.”
“하지만 저는 박사과정 중의 학생에 불과한데요. 또…한국대 학생도 아니고요.”
“알아. 한국대 국문과 교수들도 내켜하지 않을 거야. 그들도 다 강의가 고픈 제자와 후배들을 줄줄이 달고 있겠지. 하지만 내 강의의 후임자는 내가 정하네. 자네에게 조인창의 추천이라는 힘을 실어주지. 그걸로 부족하겠나?”
…솔직히 말하면 흔들린다.
한국대.
그곳 공대의 전신이 바로 내가 나온 경성보통고등학교다.
말할 것도 없이 한국 최고의 대학.
한국 최고의 대학의 문학청년들의 얼굴이…궁금했다.
또,
조인창 교수의 부탁이라면 들어주고 싶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순호의 아들이 아닌가.
“어떤가?”
“…좋습니다. 해 보죠.”
“잘 됐군. 강의는 돌아오는 학기부터 시작이야. 1주일에 1회, 2시간씩이지. 커리큘럼은 자네가 알아서 해. 특강이니 점수를 줄 필요도 없어.”
“네, 교수님.”
“자네 덕에 한 짐 덜었군. 슬슬 내 신변을 정리하는 중이라서 말이야.”
조인창 교수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곧 사라졌다.
“후우….”
그가 얕게 떨리는 숨을 내뱉었다.
“교수님?”
“며느리를 좀 불러주게.”
조인창 교수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몸이 좋지 않은 게 분명했다.
“아, 네. 저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나가는 길에 며느님을 불러드리겠습니다. 부디…쾌차하십시오.”
얼른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때, 하얗고 주름진 손이 내 손을 잡았다.
“…교수님?”
“자네 같은 작가가 세상에 나와서 다행이야.”
조인창 교수는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
조인창 교수와의 만남.
그것은 그 자체로 마술과도 같았다.
그는 1933년에 태어나 2021년에 죽어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탄생과 죽음의 시절에 함께했다.
언제나 젊은 20대의 이상으로서.
이 사실은 내게 충격적인 영감으로 다가왔다.
그에게 나는 어떤 존재일까.
변하지 않는 존재.
늙지 않는 존재.
시간을 거스른 존재…
생각의 끝에, 한 가지 제목이 떠올랐다.
<부활>
올드한 단어다.
하지만 본질적이며, 강렬하다.
나는 다짐했다.
다음 소설의 제목은 <부활>이다.
그리고 조인창 교수와 나의 만남을 은유적으로 담을 것이다.
***
교학팀 사무실에서 곰곰이 소설 구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지훈이 내 자리로 찾아왔다.
“형, 홈페이지 ‘잡문’ 메뉴엔 결제 시스템 안 해요?”
“거기는 무료야. 한 장도 안 되는 쪽 글들인데.”
“그래도요. 이름도 좀 바꿉시다. 잡문이 뭐예요. 멋없게. ‘에세이’로 바꾸는 게 어때요?”
“잡문이란 단어 좋잖아, 유머러스하고 부담 없고. 보는 입장에서 부담되지 않는 게 진입장벽도 낮추고 좋아.”
“그래도 조회수가 어마어마한데. 요즘 평론들, 형 홈페이지 글에서 인용 잔뜩 해가는 거 알아요?”
모를 리가.
요즘 나오는 문학잡지에서 내 이름 안 찾는 게 더 어렵다.
그게 비난이건 칭찬이건.
“어제 잡문에 올린 짧은 글, 번역도 해서 주세요. SNS에 올리게.”
“아, 그거 안 줬나? 미안해. 지금 해줄게.”
“뭐 재밌는 거 하나 봐요?”
가만히 듣고 있던 금홍이가 슬쩍 물었다.
지훈이가 이러쿵저러쿵 홈페이지에 대해 설명을 했다.
그러자 금홍이도 슬쩍 아는 척을 했다.
“저도 홈페이지 들어가 봤어요. 일본어로 된 거, 혜경샘이 번역한 거였어요?”
“네, 뭐…해줄 사람이 없다 보니까요.”
“지금 영어 번역자 구하는 중이에요. 금홍 샘 영어 잘 해요?”
지훈이가 물었다.
금홍이는 선뜻 대답을 못 했다.
하긴, 금홍이도 문창과니까 영어는 약하려나.
“못…하진 않아요. 번역 정도는 할 수 있는데. 영문과 복전했거든요.”
…뭐라고?
당장 합시다.
“그럼-”
“혜경 선생님!”
누군가 뒤에서 날 불렀다.
장선미였다.
“홈페이지 얘기 하고 계셨어요? 저 거기 팬인데.”
“아, 네. 무슨 일이세요?”
“이현강 교수님께서 연구계획서 폼 달라고 하셔가지고요.”
“찾아서 메일로 보내드릴게요.”
일 다 봤으면 좀 가라.
금홍이와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었단 말이다.
“그런데 아까…영어 번역자 구하시는 것 같던데.”
“어? 선미 너 영어 잘 해?”
송지훈. 오늘따라 눈치가 없구나.
“오빠, 저 유학 갔다왔잖아요. 혜경 선생님, 저 쓰세요. 저 잘 해요.”
”고맙지만 괜찮아요.”
나는 딱 잘라 말했다.
“금홍 선생님께서 해주실 거예요.”
금홍이가 장선미의 눈치를 살짝 본다.
흠, 그러고보니 장선미가 금홍이의 선배였지?
장선미가 한 마디 더 했다.
“선배, 저는 무급으로 해드릴 수 있는데…”
아니, 돈은 상관없다.
내가 돈을 줘서라도 금홍이가 해줬으면 하니까.
금홍이가 거절한다 해도 장선미에게 내 글을 맡길 생각은 없다.
장선미는 방금 우리의 대화를 들었다.
금홍이가 번역을 할 의사가 있다는 걸 눈치 채고도 그 자리를 뺏으려 하다니.
하지만 우리의 금홍인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럼 제가 하죠. 물론 저는 돈 받을 거예요.”
“좋네요. 그럼 장선미 조교님, 연구계획서 외에 또 준비해드릴 게 있나요?”
“…아뇨. 그거면 돼요. 감사해요, 선배님.”
장선미는 어색하게 웃더니 얼른 사무실을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