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writer who lives again RAW novel - chapter 153
내내 못된 소리를 하던 숀조차도, 이 인터뷰에는 할 말을 잃은 듯했다.
“<지팡이>가 대단한 작품인 건 맞는 것 같아.”
파멜라가 입을 열었다.
“세상을 이렇게 놀라게 하잖아. 안 그래?”
“…인정해. 내가 보기엔,”
크리스가 말했다.
“이상은 ‘20세기 한국인’이라는 존재의 범위를 넓힌 거야. 자신의 환경을 비판하거나 무시하는 게 아니라… 저항하는 인간을 만드는 거지. 넓게 보면, 인간의 범위까지 넓힐 수 있을지도.”
두 사람은 물끄러미 숀을 바라보았다.
넌 어떻게 생각해?
라고 묻는 표정들이었다.
숀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얼굴은 조금 벌게진 채로.
그리고 이내.
“화장실 좀.”
하고 사무실을 도망치듯 나가 버렸다.
남은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피식 웃었다.
파멜라가 문득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그 집> 캐스팅 끝났다고 하지 않았나?”
* * *
심 교수로부터 연락이 왔다.
가능하면 연구실로 들려줄 수 있느냐는 거였다.
나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지팡이> 때문에 여러모로 속 시끄러워진 지금.
심 교수와 이야기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한국대학교에 도착한 후.
나는 인문대 건물로 바로 올라갔다.
인문대라 그런지, 간간이 학생들이 날 알아봤다.
신기함과 당혹스러움, 그리고 의문이 섞인 시선들.
<지팡이>와 그에 대한 언론의 질타 때문이겠지.
심 교수의 연구실 앞.
나는 노크를 했다.
들어오란 외침에 문을 열고 들어서니, 심 교수는 이미 소파에 앉아 날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어어, 어서 와요.”
“조교분은 없네요?”
“방학인데 뭘 부르겠어. 일단 앉아요.”
새삼 친절을 보이는 심 교수.
테이블의 차며 과자며, 조교도 없이 교수가 이런 걸 챙기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인데.
<지팡이> 일로 내가 많이 속상해할 거라 생각한 걸까.
“요즘 기분이 어때요?”
그가 물었다.
속을 알 수 없는 미소를 띠며.
“별다를 게 있나요. 집필을 하면 지겹고 지루하지만… 그만큼 재미도 있으니까요.”
“평소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러려고 노력을 해요.”
심 교수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나 역시 그를 따라 차를 들었다.
“그래도 내가 지도교수랍시고, 이상 작가의 작품과 기사들은 모두 챙겨 봐요.”
“…감사합니다.”
“요즘은 속이 좀 상하던데. 내 제자가 필요 이상 욕을 먹는 것 같아서.”
여기서… 내가 할 말은 하나겠지.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뭐, 나한테 죄송할 건 없어요. 내 명예 치켜세우자고 이 작가가 글을 쓰는 건 아니니까.”
“….”
“한 가지 재밌는 점이 있던데요.”
“재밌는 점이요?”
“그래요. 해외에서는 <지팡이>에 대한 반응이 나쁘지 않아요. 이상 작가의 의도와 미학을 거의 다 따라잡았다고 봐도 무방해요. 심지어 일본조차도 <지팡이>의 함의에 주목하죠… 아, 물론 우매한 인간들이 쓸데없는 소리를 하긴 하지만.”
심 교수가 무슨 얘길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며칠 전 일본의 원로 평론가가 인터뷰를 했다.
<지팡이>의 하융이 국민이 아닌 인간이 되길 선택했다는 인터뷰 말이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그는 일본 여론과 우익 단체의 질타를 동시에 받았다.
나는 그가 자신에게 닥칠 일을 충분히 예상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런 소신 있는 인터뷰를 해 준 걸 보면, 어느 나라건 원로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것 같다.
심 교수가 계속 말했다.
“요는 어쨌건, <지팡이>의 해외 반응이 나쁘지 않다는 점이에요. 문제는… 한국의 반응이겠죠. 아시다시피.”
“…교수님 말씀이 맞습니다.”
평론가들이야 의견이 분분하지만, 여론은 확연하게 <지팡이>에 비판적이다.
인터넷에서 내 이름이 거론되기만 하면, 그 페이지는 곧 전쟁터로 변할 정도로.
언론도 마찬가지다.
내가 <지팡이>를 쓴 이유를 여러 각도로 넘겨짚지만, 결국엔 내 역사의식을 걸고넘어지기 마련이었다.
그때, 심 교수가 예상치 못한 질문을 했다.
“한국 독자들이 미운가요?”
“…예?”
“한국 독자들이 밉냐고 했어요. 이상 작가의 작품 세계를 이해해 주지 않잖아요.”
나는 바로 답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모국에서 이렇게까지 욕을 먹는 작가는 흔치 않다는 것.
“…잘 모르겠어요. 미운 건 아니지만, 내심 서운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이해되기도 하고요.”
말을 뱉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는 독자들의 마음을 진지하게 생각했을까?
‘설득’한다고 했지만… 과연 어떻게?
좋은 작품으로 설득을 한다는 건… 어떻게 보면 추상적이기만 한 목표였다.
심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난 한국 독자들이 유난히 더 화를 내는 이유를 알 것 같은데요.”
150회
“난 한국 독자들이 유난히 더 화를 내는 이유를 알 것 같은데요.”
심 교수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한국의 역사적 특수성 때문인가요?”
“비슷한 답이긴 하지만… 관점이 좀 달라요.”
나는 가만히 그의 말에 집중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는 완벽한 ‘지도 교수’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국의 독자들은 작가에게 세계의 다른 독자들이 바라지 않는 걸 바랍니다.”
“….”
“윤리의식이라고 하죠.”
심 교수가 조곤조곤 말했다.
윤리의식.
윤리는 도덕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도덕은 행동적 규범에 가깝다면, 윤리는 행동을 이끌어 내는 정신적 영역이다.
가령.
‘분리수거를 해야 한다’는 도덕에 가깝지만.
‘환경은 후손의 것’이라는 마음은 윤리에 가깝다.
“한국의 많은 독자들은 작가가 윤리적이길 바랍니다. 이상하죠? 음악가나 미술가들은 특별히 윤리적이지 않아도 그 작품을 누리면서… 작가들이 윤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면 그 작품마저 꺼려 해요.”
나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내가 친일행위를 하는 주인공을 그린 것은, 독자의 윤리 기준에서 용납할 수 없는 행위다.
그 안의 미학이 어떻든, 메시지가 어떻든.
‘친일’이라는 요소 그 자체를 작품에서 완전히 들어내지 않고는 절대 용서할 수 없다는 마음들.
<지팡이>의 댓글란에서 수없이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맞는 것 같습니다, 교수님.”
“유독 한국 독자들의 성격이 고약해서 그런 걸까요?”
“아닙니다. 그건….”
“….”
“선배 작가들의 영향이겠죠.”
‘문학은 단순한 예술품이 아니다. 삶의 바른길을 밝히는 등불이다.’
한국의 작가들은 이런 정신으로 오랫동안 글을 써 왔다.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예술가’라기보단, 독자들을 이끄는 ‘지식인’의 역할을 해 온 것이다.
굴곡이 잦은 근현대 한국의 상황에선 더더욱 저런 정신이 빛났겠지.
이제 알 것 같았다.
그들이 내게 어떤 기대를 했던 것인지.
“제가 윤리적인 모델이 되어주길 바란 거군요. 작품을 통해서.”
심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작가에 대한 로망이죠. 독자는 작가의 길을 뒤쫓고 싶어 해요. 작가가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고 싶어 하고, 느끼는 대로 느끼고 싶어 하죠.”
“….”
“작가가 독자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고, 무의식중에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것참, 부담스러운 말이었다.
물론 글재주야 작가가 독자보다 낫겠지만… 더 나은 사람이라니.
정작 나만 해도, ‘좋은 사람’과는 거리가 멀지 않은가.
이 무심하고, 가끔은 독단적인 기질을 보라.
나보다 훌륭한 사람은 세상에 차고 많다.
“…놀랍군요.”
“그러니 로망이란 겁니다. 허상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그 독자들의 로망까지도 작가가 메고 갈 숙명이라는 겁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의 작가라면, 한국의 독자를 이해해야 했다.
그들은 세계 그 어떤 민족보다도 예민한 독자다.
그러니 이 ‘비윤리적인 인물’에 대한 반발이 심하겠지.
“그렇다 해서 소설의 내용을 바꾸라 하진 않겠어요. 나도 하융의 선택이 정말 좋았거든.”
그는 후후 하고 웃었다.
어딘지 장난기 어린 웃음이었다.
“하지만 독자의 마음을 알고 쓰는 것과 모르고 쓰는 건 천지 차이니까. 가능하면 약간의 방어를 해가면서 이야기를 전개해 봐요.”
나는 비로소 심 교수가 날 부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독자들의 마음을 알게 하는 건… 앞으로의 전개를 더 유려하게 하는 방안이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지도 교수’가 ‘지도 학생’을 지키는 방법일 테고.
“저는….”
나는 입을 열었다.
“예술은… 윤리와 그리 가깝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예술은 미학을 보여주는 장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소설은 여러 가지 삶의 모습과 인간성에서 미학을 찾는 예술이고요. 물론 그 인간성 안에 윤리의식이 포함될 수 있겠죠. 하지만 그건 인간성의 수많은 면 중 단 하나에 불과합니다. 그게 소설의 전부가 될 순 없어요.”
심 교수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계속 말했다.
“윤리적인 인간을 소설에 그려 낼 수는 있겠죠.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도… 인간의 삶입니다.”
“….”
“저는 제가 이해한 인간의 삶을 그려 내고 싶어요.”
반골과 외로움.
윤리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개념들.
이런 것들을 가지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런 분란은 예견된 걸지도 몰랐다.
“하지만 교수님의 말씀을 듣길 잘한 것 같습니다. 말씀하셨던 것처럼, 독자의 마음을 알고 쓴다면… 그들에게 조금 덜 상처를 주는 방향으로 소설을 쓸 순 있겠죠.”
“조금 덜 상처를 준다고요?”
“네. 제 눈에 저를 비판하는 독자들은… 조금은 상처를 받은 것 같았거든요.”
내게 기대를 걸었던 이들은, 아마 내 작품을 사랑해 왔을 것이다.
나아가 ‘이상’이라는 작가를.
작가는 줏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독자를 무시하는 독선을 부려선 안 된다.
적어도 그들이 상처를 받진 않도록, 할 수 있는 한의 마음을 써야겠지.
심 교수가 마지막으로 내게 말했다.
“내가 생각하는 작가의 윤리란… 그 어떤 경우에도 계속 글을 쓰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 윤리 하나만 잘 지켜 줘요.”
* * *
심 교수의 연구실에 다녀 온 후.
나는 마음이 훨씬 편안해졌다.
단순히 내가 ‘과하다’고 느꼈던 독자 반응.
그 반응의 속마음을 안 것 같달까.
작가는 독자의 로망을 견뎌야 한다는 그의 말.
<지팡이>의 남은 긴 여정에 적잖은 힘이 될 것 같다.
그렇게 심기일전을 하고 집필을 하던 중,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똑똑.
노크를 하고 방으로 들어온 지훈이 말했다.
“형, 조나단 감독이 줌으로 회의할 수 있냐고 하는데요?”
“어? 조나단 감독이?”
“네. 내일이요. <그 집> 영화 캐스팅이 다 끝났으니, 보고를 해 주고 싶다나요.”
제작사를 구했다는 소식은 꽤 오래전에 들었는데.
벌써 일이 그렇게까지 진행됐구나.
“그래, 하자. 금홍 샘한테 와 주실 수 있느냐고 물어보고.”
“네.”
그리고 다음 날 정오.
금홍은 기꺼이 우리 집을 찾아 줬다.
“벌써 캐스팅이 다 끝났대요?”
금홍도 왠지 설레하는 듯했다.
하긴, 영화나 드라마를 몇 번 참여해 본 나도,
이렇게 제작사를 찾고 스태프가 모이고 캐스팅이 되는 걸 볼 때마다 신기하니까.
지훈은 날 위해 줌 프로그램과 배경을 설정해 줬다.
칠판을 달기 위해서 작업실 구조를 좀 바꿨는데, 컴퓨터 위치상 카메라가 칠판을 비추는 구조였다.
<지팡이> 기획을 그대로 노출할 순 없는 노릇.
급한 대로 커튼을 떼서 칠판에 걸었다.
그렇게 해 놓으니….
“으하하하… 형, 되게 고상한 곳에 있는 것 같은데요?”
화면 속 나는 예쁜 커튼 앞에 앉은 모습이 된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칠판을 떼버릴걸….”
내 구시렁거림에 금홍이 킥킥 웃었다.
“왜요? 예쁘고 좋은데요.”
그런 난리통 속에서 시작한 줌 회의.
화면에는 조나단 감독이 나타나 손을 흔들었다.
― 작가님! 오랜만입니다! 금홍 씨도요!
언제나 흥이 넘치는 조나단 감독이었다.
금홍과 나도 손을 흔들었다.
“잘 지내셨어요, 감독님? 캐스팅이 다 끝났단 소식을 들었어요.”
― 원하는 배우를 꼬드기느라 시간이 좀 걸렸죠. 그 배우, 다른 스케줄과 겹치는 바람에 시간을 조정하느라 애를 좀 먹었습니다. 다행히 그 배우도 <그 집>을 재밌게 읽어서 꼭 하고 싶다고 했죠.
“궁금하네요. 알려 주실 수 있으십니까?”
― 화면을 보시죠.
어떻게 한 건지 모르지만, 파워포인트 프로그램이 열리고 사진들이 지나갔다.
사실 외국 배우 쪽은 문외한이었다.
아주 유명하지 않은 이상 내 눈엔 다 비슷비슷하다.
그래도 난 집중해서 사진들을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