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vel 2 assassin wants revenge RAW novel - Chapter 164
164화 암월 2
* * *
“잠깐, 그 이름을 어떻게?”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틈이 있나?
허리를 최대한 수그린 카인은 경악하는 자넷을 무시한 채, 질주했다.
전력을 다해 지그재그로 이동하는 그의 등 뒤로 잔상이 아로새겨졌다.
자넷이 서둘러 팔을 휘둘렀다. 동시에 검집을 떠난 검이 가속하며 벼락같은 일격을 쏟아냈다. 하나, 회심의 한 수는 허공을 때리고 사그라질 뿐이었다.
암월이 제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그걸 사용하는 건 불완전한 인간이었다. 탄환은 그저 쏘아질 뿐이었다. 목표물에 적중시키는 건 어디까지나 방아쇠를 당긴 사람의 몫.
자넷이 납검하는 순간, 빠르게 간격을 좁힌 카인이 쌍검을 내질렀다.
그러나 그 찰나마저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뒤따라 암월이 쏘아졌다.
기기긱. 톱니처럼 들쭉날쭉한 검이 이마를 긁고 지나간다.
암월은 분명 위력적이지만 파괴적인 개념은 아니었다. 오로지 선과 점만으로 이루어진 기술이었으니까. 요인 암살에나 압도적이지 시설 파괴 같은 일엔 부족한 면모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궤적의 흐름만 잘 타면 베이고도 죽지 않을 수 있었다.
“흡!”
보이지 않는 암월을 걷어 내는 것도 그와 비슷한 요령. 한번 펼쳐진 암월은 속도가 워낙 빠른 탓에 허초로도 활용할 수 없었다.
노골적으로 말해 방향 전환이 어려웠다.
암성이 암월진천이라는 초유의 성절을 가지고도 고작 제6위에 머물게 된 건, 그런 결정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 또한 카인이 알아낸 건 아니었다. 그저 타나가 미래에 나불거린 말을 적당히 활용하고 있는 것에 불과했다.
‘덕분에 약점을 찌르는 건 식은 죽 먹기지만…….’
막는 건 또 별개의 문제였다.
방금 전까지의 공방을 되새긴 자넷이 금세 스타일을 바꿨기 때문이다. 그는 집요하게 머리와 가슴만 노렸다.
두 부위는 어떻게든 사수해야 한다는 일념하에, 카인은 쌍검을 수레바퀴처럼 돌리며 암월을 맞받아쳤다. 우여곡절 끝에 고비를 넘겼으나, 그 외의 신체 부위는 무리하게 막은 만큼 커다란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포를 뜬 것처럼 길쭉하고 깊은 상처들이 몸 위에 즐비했지만, 카인은 웃어넘겼다.
극한의 상황에 내몰려, 낭떠러지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정신이 또렷해졌다.
컵에 물이 차면 넘쳐흐르듯이, 차곡차곡 쌓인 성취는 자연스럽게 바깥으로 표출되었다. 별도의 깨달음 같은 건 없어도 되었다. 기반은 오래전부터 준비되어 있었으니까. 단단한 몸이 더 단단해질 뿐이었다.
쿠궁.
막을 수 없는 폭력에 노출된 육신이 맥동했다.
피부, 뼈, 근육, 혈관, 장기.
신체를 이루는 구성 요소가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하나의 덩어리가 되기 위해 밀도를 높였다. 이내, 빈틈 하나 없이 꽉 채워진 육신은 방패가 되었다.
피할 수 없다면 맞는 걸 전제로 변하면 되는 법.
궤도에 오른 정심이 특별한 효용―발파―을 보여 주었듯이, 경지에 오른 정련 또한 새로운 효용을 보여 주었다.
‘일통.’
자신이 내지른 검격이 변변찮은 상처만 남긴 채 튕겨져 나오자 자넷은 두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카인은 그에게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몰아붙였다. 누군가 말해 주지 않아도 때가 되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더 이상 암월은 위협적이지 않았다. 유효타는 될 수 있어도 치명타는 되지 못했다.
괴리와 수축을 활용한 공격, 발파.
경직과 팽창을 이용한 방어, 일통.
한층 더 진화한 정련정심을 등에 업은 채, 카인은 원 아워를 펼쳤다.
기본 교육을 무사히 수료하기 위해 발버둥질했던 시절이 저절로 떠오른다. 둔해 빠진 몸뚱이로 부던히도 노력했기 때문인지 그때 새겨진 기억은 아직까지도 건재했다.
검은 무겁게, 몸은 가볍게.
개념 없이 형태만 가져왔기에 효과는 미비했지만, 일평생 원 아워만 바라보고 산 이들이 이 자리에 있었다.
눈이 있다면 보지 못할 리 없었다. 향상심이 있다면 느끼지 못할 리 없었다.
‘봐라.’
원 아워가 완성된 순간을.
암월을 걷어 낸 카인은 쌍검을 내리쳤다. 나무를 베는 나무꾼이 되어 몇 번이고, 자넷이 넘어갈 때까지 계속.
“점점 얼굴이 굳어지는데 더 보여 줄 건 없나 보지?”
“정신 나간 새끼.”
“칭찬인가?”
크크, 하고 웃는 카인을 보며 자넷이 느낀 건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압도적인 실력을 지닌 강자에 대한 경외심이 아니었다. 그건 뜻하지 않는 곳에서 벌레를 만났을 때 느낄 수 있는 감정, 즉 혐오감이었다.
바퀴벌레처럼 밟아도 밟아도 떨어지지 않는 생명력을 보고 있노라면 기가 찰 지경이었다.
마치 사방이 꽉 막힌 방에서 벽만 다가오는 듯했다. 나가야 한다는 걸 알지만, 마땅한 출구가 없었다.
검집에서 불쾌한 파열음이 날 때까지 암월을 퍼부어도 변하는 건 없었다. 살이 터지고, 피가 흘러도 카인은 무엇이 그리도 기쁜 건지 방긋 웃을 뿐이었다.
“미친놈. 어찌 돼도 난 몰라. 알아서 피해.”
순간, 자넷의 기세가 급변하며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보다 선명하게 일어난 정전기가 장내를 가득 메웠다. 지직, 하고 거친 소음을 내며 터진 스파크가 담장을 허물었다.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여의치 않은 상황.
마지막 암월을 펼치기 위한 준비라는 걸 카인이 모를 리 없었다.
“그래, 그래야지.”
쿵.
바닥에 깊은 족적을 남기며 질주한다. 살갗을 때리고 지나가는 정전기가 그렇게 경쾌할 수가 없었다.
카인이 쌍검을 고집한 건 바로 이때를 위해서였다.
지금 그의 손에 들린 건 매튜가 지녔던 마검 클로젯과 라일이 가지고 있던 처형인.
보구를 두 개나 착용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치러야 하는 대가가 급증하기 때문이다.
카인도 모르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건 걱정할 거리도 되지 못했다. 애당초 길게 끌 생각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의념을 사용하는 건 단 한 번이면 되었다.
클로젯을 휘둘러 자넷의 팔을 베는 순간, 그의 움직임이 멎었다. 베인 물체의 속도를 극감시키는 의념, 동결에 의한 효과.
자넷이 정신을 차리고 암월을 펼치기 전에 카인은 처형인을 휘둘렀다. 가슴, 팔과 다리, 등에 이르기까지 검이 닿는 곳이라면 전부.
하지만 암성의 제자라는 칭호는 허명이 아니었는지 자넷은 그 순간까지도 발악했다. 기어코 검집에서 검을 빼낸 것이다. 하나, 그것도 잠시뿐.
반쯤 기어나온 검은 도중에 멈췄다.
베인 상처를 배로 불리는 의념, 심화가 터진 것이다. 수많은 상처가 일시에 만개하는데, 버틸 재간이 있을 리 없었다.
자넷이 쓰러지자 카인은 보란 듯이 불끈 쥔 주먹을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주입식 교육의 승리였다.
* * *
“내가 뭘 본 거지?”
세버트는 두 눈을 꿈뻑였다. 비장의 패, 브라운이 속절없이 쓰러졌기에 그런 게 아니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건 흥미롭지만, 그건 드문 일이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 세버트의 머리속을 가득 채운 건 조금 전 카인이 사용한 기술이었다. 예상이 틀리지 않다면 그건 분명 원 아워였다.
물론 형태만 따라 했기에 이견의 여지가 있지만, 그 안에 카바나가와 포다얀가가 지향하는 바가 모두 담겨 있다는 건 확실해 보였다. 비록 적으로 만났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 했다.
아휀이 카인을 추천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두 가문의 합치점을 찾아 원 아워의 형(形)을 완성한 인물이었다.
유유상종이라고, 아마 아휀도 카인이 지닌 재능을 진작에 깨달았을 터.
지금이라도 당장 내려가 묻고 싶었다.
대체 어떻게 엮은 건지, 혹시나 가르쳐 줄 수 있는지.
“어떻게……?”
마리반도 세버트와 같은 심정인 건 마찬가지였다. 그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재능이 출중하다고 해도 카바날류를 견식한 적이 없을 텐데요. 설마 어디에선가 훔쳐 배운 건 아니겠죠?”
“진 경과 얀 경이 대련했지 않나. 아마 그걸 보고 익힌 걸 테지. 그리고 우리도 전부 깨우치지 못한 걸 어디에서 훔쳐 배우겠는가.”
“아.”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무서운 일이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마른침을 삼킨 두 사람은 그들이 싸우고 있는 중이라는 것도 잊은 채, 의견을 나누었다.
한편, 두 사람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승리를 쟁취한 카인은 시원하게 흘린 피를 닦았다.
“어, 어떻게 된 겁니까?”
“뭐가?”
“그건…….”
아휀이 그답지 않게 말끝을 흐리자 카인은 여상스럽게 미소 지었다. 밑도 끝도 없이 추궁하는 걸 보니 어지간히도 동요한 듯싶었다.
이걸로 아휀이 주목받을 일은 없어졌다. 한 번은 놀랍지만, 두 번은 식상하기 마련이었으니까. 지금 나서 봤자 아류라는 소리밖에 듣지 못할 터.
카인은 금방에라도 날아갈 듯한 속마음을 숨긴 채 입을 열었다.
“썩 기뻐하는 표정은 아니군. 설마 져야 했던 싸움이었나?”
“그럴 리가요. 제가 상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이겨서 놀라웠을 뿐입니다.”
“그동안 얻은 깨달음이 많아서 말이야.”
“그렇습니까. 저번에 보았을 때, 당신에게 그런 재능은 보이지 않았는데 말이죠.”
의심스럽다는 듯한 기색이 역력했다. 후비적, 하고 귀를 판 카인은 어디에서 개가 짖느냐는 듯한 어투로 대응했다.
“그나저나 곧 다음 차례인데 너는 안 가나?”
“갈 겁니다.”
시야에서 사라지기 직전, 카인은 아휀이 입술을 깨무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었다.
* * *
그렇게 대리전은 카바나가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첫 번째 대결에서 패배했지만, 그 뒤로 연달아 3승을 챙긴 것이다.
좋게 말하면 비등한, 나쁘게 말하면 고만한 이들이 겨루는데 변수가 생길 리 없었다.
흐름을 바꾸고, 변수를 억누른 건 아휀이었다. 그의 승리는 참으로 값진 것이라 할 수 있었다. 포다얀가의 기사단장을 일격에 쓰러뜨렸으니까.
흠결 하나 없는 완벽한 검격에 카바나가의 기사들이 고취된 건 두말할 것도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아휀은 대적할 자가 거의 없는 천재 중의 천재였다.
카인도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물 흐르듯 매끄러운 자세 전환은 그렇다 치더라도―
‘보이지 않았어.’
너무나 빨라 눈으로 좇을 수 없는 암월과는 또 달랐다. 베일에 가려진 듯 궤적이 흐릿했으니까.
‘낮도깨비인가.’
맞추고자 하는 건 반드시 맞추고야 마는 일격 필중의 개념을 살린 오의.
어렸을 적, 아휀이 펼친 기술이기에 어렴풋이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그때와 비교하는 게 부끄러울 정도로 아휀은 장성한 상태였지만.
솔직히 얼마나 성장했는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 해서 몸소 알고 싶은 건 아니었다. 지금 짊어진 고민을 해결하는 것도 벅찬 마당이었다.
눈앞에 서 있는 중년인도 매한가지.
연무장에서 완전한 원 아워를 견식한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카인을 물고 늘어졌다.
“포다얀가에 머물면서 원 아워에 대해 논의해 보는 게 어떻겠나? 자네를 귀빈으로 초청하겠네.”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중요한 용건이 있어서 안 될 것 같군요.”
카인이 세버트의 제안을 거절하자, 옆에 서 있던 아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가 남아서 가르쳐드리는 건 어떻겠습니까? 카인만큼은 아니지만 저도 원 아워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으니까요. 마침 이번 대리전을 통해 깨달은 바도 적지 않습니다.”
강렬한 인상은 남기지 못했으니, 꼬리표라도 달려는 심산이리라. 사람이란 한 번의 호의보다 한 번의 거절을 더 잘 기억하는 동물이니까.
뻔히 보이는 수작이었다.
“그러면…….”
세버트가 무어라 말하기 직전, 카인은 품 안에서 한 서적을 꺼냈다.
“원 아워에 대해 정리해 놓은 책입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이걸 보고 익히면 될 겁니다.”
극한의 이기주의자인 아휀이 이런 기회를 놓칠 리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중간에 치고 들어올 거라는 것도.
대비책이 없을 리 없었다. 잠시 멈칫한 건 의표를 찌르기 위함이었다.
순간, 아휀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주 자그마한 변화였지만 원체 하얀 피부였기에 그 변화가 극명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카인은 그러거나 말거나 남은 책을 꺼내 마리반에게 건넸다.
“이건 마리반 영식의 것입니다.”
“이걸 이렇게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군요.”
“원래 카바날류의 것이 아닙니까.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은 건 오히려 저입니다. 덕분에 좋은 공부가 되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