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vel 2 assassin wants revenge RAW novel - Chapter 359
359화 처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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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은 조금도 빗나가지 않았다. 귀환하는 도중에 머무른 벨렌체 왕국에서 그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왕자, 케빈은 집요하게 이어지는 추궁에 진실을 실토했다.
“사실, 감사하게도 삼황자 저하께서 먼저 동맹 제안을 해 주셨어요.”
그렇게 서두를 연 소년은 제가 들은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늘어놓았다.
하나도 빠짐없이 경청한 카인의 입에선 한숨이 새어 나왔다. 조건만 보면 나무랄 데 없었다. 물론 그 이면은 참혹하리만치 잔혹했다.
경제적으로 귀속하겠다는 의지가 명백하게 담겨져 있었다. 일반적인 왕족이라면 쳐다도 보지 않을 굴욕적인 협약. 하지만 이제 막 세상과 마주 보기 시작한 케빈이 그러한 내막을 알 리 없었다.
“그리고 이 제안은 비밀로 해 달라고 하셨어요.”
“왜지?”
“아무래도 우리 왕국에만 이런 특혜를 베푸는 건 대륙적으로 물의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요.”
입 발린 소리에 넘어간 케빈은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는 듯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단단히 코가 꿰인 듯했다.
옆에서 조언해 줄 인재가 없는 지금을 노려 이런 협약을 맺은 게 틀림없었다.
실제로 성사되느냐 되지 않느냐는 중요치 않았다. 이런 식으로라도 물꼬를 텄다는 게 중요했다.
케빈과 헤어진 카인은 곧장 하이렌과 만나려고 했지만, 털컥 나타난 알펜타리온 때문에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가 봤자 네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어차피 약조는 받아 놓은 상태니까.”
“너도 알고 있었군.”
하긴 베리타 제국의 노장이 모르는 게 더 이상한 처사였다. 더구나 그는 하이렌이 직접 데려온 인사. 아마도 가장 선두에 서서 이 일을 처리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무리 대승을 거뒀다고는 하나, 사람의 목숨이 오고 가는 동안 다른 왕국을 발아래 둘 생각을 하다니. 과연 제국답다고 해야 하나. 어처구니가 없군.”
하이렌이라면 정도를 지킬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순전히 카인의 기대일 뿐이었다.
“엔지니어의 침입을 받은 왕국은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엉망이 되었다. 제국의 도움을 받는 게 차라리 인도적이라 할 수 있을 텐데?”
“모두가 전장에 나설 때 제게 이득이 되는 방법부터 고심하는 이가 과실을 취하는 게 정녕 옳다고 생각하나?”
“왕국이 혼란에 빠지는 것보다는 나을 텐데?”
“어찌 됐든 왕을 추대하는 건 왕국민이 되어야 한다. 베리타 제국이 아니라.”
설전이 오고 가도 명확한 결론은 나지 않았다.
카인은 알페타리온을 무시한 채, 등을 돌렸다. 어차피 그는 사냥개. 잘잘못을 따지려면 그 주인에게 물어야 했다.
* * *
토벌대의 한쪽.
아스테리스크의 주요 인사들이 모인 천막에 들어간 카인은 기묘한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내부에서는 한창 논공행상이 진행 중이었다.
카인을 쳐다본 하이렌이 살갑게 웃은 건 그때.
“오, 슈발체베인 공작. 마침 잘 왔다. 그렇지 않아도 그대에게 내릴 상에 대해 논의 중이었다.”
주도권은 자신에게 있다는 걸까. 하이렌의 어투는 숫제 윗사람의 그것이었다.
“그것보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습니다.”
“그게 뭐지?”
“삼황자 저하께서 타국의 왕실에 개입한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나더군요.”
순간, 장내에 정적이 맴돌았다. 방금 전까지 하나라도 더 받아 가고자 소리를 지르던 인사들도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하이렌은 별거 아니라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난 또 뭐라고. 그건 호의에서 비롯된 결단이다. 나야 별로 남는 게 없지만 지금은 뭉쳐야 할 때이지 않나. 분열하기 전에 구심점을 마련해 준 것뿐이다.”
제 얼굴에 공치사하는 솜씨가 제법이었다. 놀리는 혀 또한 꿀이라도 바른 듯 매끄럽기 그지없었다.
물론 카인이 듣고 싶은 건 흔해빠진 변명이 아니었다. 명분 같은 건 코에 붙일 수도, 귀에 붙일 수도 있었다. 역사는 승자의 것이었으니까.
“그렇게 이타주의적인 분인 줄 몰랐습니다만.”
“이제부터 알아 가면 되겠군.”
뻔뻔하기 짝이 없는 얼굴에 카인은 그동안 수집한 서류를 내던졌다. 리벨리온이 나선 것이기에 오류는 있을 수 없었다.
“그 선의와는 별개로 내정에 간섭하려는 흔적이 역력하더군요. 이건 어떻게 설명하실 겁니까.”
하이렌은 제 치졸한 행적을 보았을 텐데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호오, 그사이에 이런 것까지 모았나. 하지만 헛수고를 했군. 여기에 모인 이들도 대부분 인정한 사안이니까.”
“아스테리스크는 이런 일에 쓰이기 위해 결성된 게 아닙니다.”
“쓰임새야 때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는 법이지. 이렇게 융통성이 없어서야 대업을 같이 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그대에게 득이 되면 득이 되었지 해가 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톡, 톡.
카인은 검지로 탁자를 두드렸다.
사실 하이렌에게 부수장 자리를 주었을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예상 밖인 건 그 시기가 생각 이상으로 빠르게 앞당겨졌다는 것. 회귀 전과 다르게 엔지니어가 크게 활동한 게 주효한 듯싶었다. 어쩌면 매물로 나온 네 왕국이 먹음직스러웠을수도 있었다.
‘퍼즐이 한 조각 어긋나니, 순차적으로 어그러지는군.’
우군이라 여겼던 하이렌이 암덩이가 되려고 했다. 그의 조급함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황태자 자리가 비었으니, 제 위치를 각인시켜두기 위해서라도 그에 걸맞는 공이 필요했던 거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이러한 수작질은 적어도 조직이 쓰러진 뒤에나 해야 했다.
심상찮은 기색을 느낀 하이렌이 짐짓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
“왜 그러지? 설마 내게 징벌을 내리기라도 할 셈인가?”
대체 그대가 무슨 권리로? 그렇게 묻는듯한 표정이었다.
“삼황자 저하, 그쯤하시지요. 공작의 말대로 아스테리스크는 선을 넘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제 위치를 찾는 게 어떻습니까?”
참다못한 세라가 한 소리했지만―
“그대에게는 아직 이른 이야기였군. 모든 게 정의와 대의대로 흘러가면 얼마나 좋겠나. 하지만 커다란 조직이 돌아가려면 그만한 보상이 필요한 법.”
하이렌은 요지부동이었다.
머리에 피가 몰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자 아스테리스크를 결성한 게 아니었다. 조직에 대항하기 위해 설립한 수사 협력 기구가 베리타 제국의 수족이 되다니, 아니될 말이었다.
톡.
마침내 생각을 마친 카인이 순순히 인정했다.
“맞습니다. 제가 잘못했군요.”
“이제라도 알았으니…….”
“금수들에게 인간 대접을 했으니 이리 날뛰는 거겠지요.”
그 말에 여태껏 입을 다물고 있던 이들이 요동쳤다. 수근거리는 소리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지만, 하이렌이 손을 들어 제지하자 금방 수그러들었다.
수장은 세라인데, 그 역할은 그가 하고 있었다.
대체 이 꼴이 뭔지 카인은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욕심은 이치와 법도를 뛰어넘는 건가.’
하긴 위정자들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만 내린다면 전쟁이 왜 있고, 기아가 왜 있겠는가.
턱을 괸 카인이 하이렌을 향해 고갯짓했다.
“하이렌.”
“뭐?”
제아무리 정치질에 잔뼈가 굵은 하이렌이라 해도 갑작스러운 반말에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내가 누구지?”
“난데없는 물음이군.”
“닥치고. 내가 누구냐고 물었다.”
“레서 왕국의 슈발체베인 공작이지 않나.”
“아니, 나는 십좌의 일각인 무신이다. 네가 판토마가에서 만났던 그 반푼이가 아니라는 거지. 날 설득하려면 적어도 이런 희극이 아니라 더 그럴 듯한 성의를 보여야 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카인이 하이렌에게 다가가려고 하자, 어느샌가 나타난 알펜타리온이 그 앞을 막아섰다.
“그 이상 접근하지 마라, 슈발체베인 공작. 이건 권유가 아니라 경고다.”
진득한 핏물이 주위를 배회했다. 방심하면 그 기세 그대로 목덜미를 물어뜯을 듯했다.
일촉즉발의 상황.
주위를 둘러본 카인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나를 무서워하지 않아.’
하이렌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헛웃음만 나오는 일이었다. 아무리 권력이 있다고는 하나, 그는 삼황자라는 직위만 빼면 입만 산 소시오패스에 불과했다.
반면에, 카인에게는 왕국을 초토화시킬 수 있는 무력이 있었다.
그 무엇보다 실질적인 힘.
두려워해야 마땅하나, 그 누구 하나 그걸 실천에 옮긴 이는 없었다.
무의식 속에 박혀 있는 거다.
그때 그 시절의 반푼이라는 인식이, 아무리 날뛰어도 마지막 선은 넘지 않을 거라는 안일한 생각이.
하긴 그들은 카인이란 인간의 밑바닥을 아직 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내릴 수 있는 판단은 하나뿐.
어깨를 으쓱인 카인이 고개를 조아렸다.
“잠깐 정신이 나갔던 것 같군요. 정식으로 사과드립니다, 삼황자 저하.”
“아, 아니다. 그럴 수도 있지.”
“그러면 머리 좀 식히고 오겠습니다.”
천막을 나선 카인은 제 뒤를 급하게 뒤따라오는 이를 볼 수 있었다. 방금 전부터 그를 두둔해 준 여인, 바로 세라였다.
“공작, 그리 실망하지 말거라. 원한다면 나도 끝까지 투쟁할 생각이니까.”
“아, 괜찮습니다. 내일이면 전부 해결될 테니까요.”
카인이 밝게 웃자 세라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까지 역정을 내던 이가 태도를 바꾼 것이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아리송한 상황.
그런 그녀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카인의 미소는 짙어질 뿐이었다.
* * *
‘너무 복잡하게 생각했어.’
애당초 대화로 풀어가고자 한 게 패착이었다.
눈에 눈, 이에는 이.
말이 통하지 않는 족속은 행동으로 보여주면 되었다. 변절되면 어떻게 되는지를.
이로 인해 아스테리스크의 세가 꺾인다 해도 상관없었다. 카인에게 필요한 건 용맹한 아군이지 욕심 많은 떼쟁이가 아니었다.
새하얀 가면을 착용한 카인은 뒤이어 검은색 코트를 걸쳤다. 오랜만에 엠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밖으로 나와 그림자에 스며든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일체감이 전신을 훑고 지나간다. 마치 고향에 돌아온 듯했다. 일신의 무위는 극에 달했으나, 그 시작은 어둠에 있었다.
‘아무래도 천성은 버릴 수 없나 보군.’
야음을 틈타 알펜타리온이 머무는 천막에 도착한 카인은 상대방이 기척을 느낄 수 있게 일부러 발소리를 높였다. 안으로 들어가니 검을 든 알펜타리온이 보였다.
“안녕하신가, 흡혈수라 양반.”
“네 녀석은 누구지?”
“엠.”
그 말에 알펜타리온은 정신이 번뜩 들었다. 엠이라면 그도 들어온 적 있었다.
“왜 나를 찾아온 거지?”
“의뢰를 받았거든.”
돌연 떠오르는 얼굴이 하나 있었다.
‘카인 슈발체베인.’
말하다 말고 갑자기 입장을 바꾸질 않나, 나갔다 들어와서 연신 웃질 않나. 어디를 어떻게 보든 수상쩍은 거동을 보여주었다.
‘고작 이런 수작을 부리려고 고개를 숙인 거였나.’
맥이 빠질 지경이었다.
알펜타리온은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밤손님을 쳐다보았다. 순순히 답하는 걸 보면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대는 아니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일.
“두 배.”
“뭐?”
“다 들었으면서 순진한 척하지 마라. 얼마를 받았든 두 배로 주겠다는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