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vel 2 assassin wants revenge RAW novel - Chapter 381
381화 조직 1
* * *
블루워드가 바라마지 않는 상황이었다. 정면 승부는 마력으로 그 판도가 정해졌다. 그리고 그는 지금껏 마력으로 져 본 적이 없었다. ‘그 타나’에게조차.
전신에 새겨진 성문이 의지에 반응하며, 빛을 발한다.
한 개인이 세대를 거듭해 전해져 내려온 힘에 대항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카인이 불리하다는 걸 알지만 블루워드는 봐줄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사자는 토끼를 사냥할 때도 전력을 다하는 법.
‘미안하지만 승리는 내가 가져가겠소.’
블루워드의 어깨 위로 유형화된 마력이 넘실거렸다. 대기를 짙게 물들여 시야를 가득 채울 수준.
하지만 그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더욱더 많은 양의 마력을 발출하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철광호포.
그것은 마력의 수준에 따라 한없이 강해질 수 있는 절기.
수천 년의 역사가 깃든 성문과 함께 불패의 신화를 이룩한 동반자였다.
별도로 수련하지 않아도 십좌에 오를 수 있는 이 힘은 그간 수인족을 지키는 창이 되어 주었다.
이번에도 다를 건 없었다.
블루워드가 어금니를 꽉 깨문 것과 동시에 그의 몸이 부풀어 올랐다. 봇물처럼 터져 나온 마력은 하늘에 닿을 정도로 높이 치솟았다.
경맥이 허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순간, 그는 일격을 내질렀다. 지금 자신이 발할 수 있는 최고, 최후의 일격을.
[철광호포 ― 괴력난신]태산을 허물고, 산맥도 개간하는 일권.
그 앞에서 카인은 활짝 웃었다.
블루워드는 제가 날뛸 수 있는 환경이라 여기고 덥석 물었겠지만, 그건 단순히 그만의 착각이었다.
때로는 한 사람이 수천 년의 역사를 짓뭉갤 수도 있었다.
두 오의가 허공에서 맞부딪친 순간, 굉음이 울려 퍼졌다. 충돌의 여파로 지면이 가라앉고 구름에 구멍이 뚫렸지만, 두 사람 모두 물러나지 않았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접전. 서로를 노려보는 시선이 강렬해질수록 이어지는 후폭풍 또한 격렬해졌다.
휘몰아치는 마력의 격류에 수인들은 범위 밖으로 밀려난 지 오래. 카인과 함께 온 제네갈 또한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쾅!
영원히 계속될 것 같던 뇌성벽력이 끊긴 건 그때.
먼지구름이 걷히고, 두 사람의 실루엣이 서서히 드러났다. 이내, 누구의 것인지 모를 탄성이 터져 나왔다.
서 있는 건 카인이요, 쓰러진 건 블루워드였다.
단번에 결정 난 승패만큼이나 대비된 모습에 수인들과 제네갈의 만감이 교차했다.
“여기에서 멈출 수는 없소, 나는 일족을 대표해서 은혜를 갚아야만…….”
“알았으니 이제 그만 쉬어라.”
카인은 정신을 잃은 블루워드를 안아들었다.
외골수에 융통성이 없는 게 흠이지만, 존경받아 마땅한 무인이었다. 적어도 여기에서 죽어도 되는 인재는 아니었다.
수인들에게 블루워드를 건넨 카인이 나지막이 선언했다.
“수인족의 대표인 블루워드가 제 몫을 해냈다. 이제 너희들이 조직에게 갚아야 할 빚은 없다.”
* * *
“잠시 소란이 있었다고?”
“사소한 의견 차이였습니다.”
“흐응~.”
타나가 다 알고 있다는 듯 눈을 흘기자 카인은 헛기침을 내뱉었다. 아니라고 잡아뗄 수도 없었다. 싸움의 여파로 뒷산이 통째로 날아갔으니까. 무엇보다 블루워드가 병상에 누워 끙끙 앓고 있었다.
“그것보다 토벌대는 순조롭게 모였습니까?”
“보는 대로.”
타나가 고갯짓했다.
그녀의 시선 끝에는 세라가 레디샤를 들고 서 있었다.
나이도 어리고, 그만큼 경험도 일천하다 해도 세라는 엄연히 아스테리스크의 수장이었다.
더구나 부수장인 타나가 인정한 인재.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번에 편성된 토벌대도 마찬가지였다. 각국의 정예들이 모였지만, 그들은 세라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조직의 저력을 잘 알고 있는 카인이기에 그 모습에도 좀처럼 안심할 수 없었다. 증원을 부른 건 당연지사.
토벌대 곁으로 가면을 착용한 무리가 다가오자 타나가 두 눈을 부릅떴다.
“리벨리온?”
카인은 최대한 침착하게 그들을 소개했다.
“엠도 대업에 참가해 주기로 했습니다. 본인은 오지 않았지만요.”
“수완이 장난이 아니구나.”
“아직 놀라기엔 이릅니다.”
카인이 부른 건 리벨리온뿐만이 아니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 뇌리에 번쩍 떠오른 이에게도 연락을 넣었다. 당연히 돌아온 대답은 긍정적이었다.
“톨토드, 너도 온 거냐.”
“나야 돈만 주면 어디든지 가지.”
용병들을 이끌고 등장한 창성, 톨토드가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더구나 이번 물주는 슈발체베인 공작이잖아. 누님의 이명을 빼앗은 사람의 제안인데, 허투루 대할 리 없지.”
“처음에 봤을 때는 가만히 두네, 안 두네 으름장을 놓던 녀석이 하는 말이라 신뢰가 가지 않는구나.”
“크흠, 누님. 모처럼 모였는데 얼굴 붉히는 일은 없도록 하자고.”
톨토드에 뒤질세라 토벌대에 합류한 건 로이나였다. 그녀가 이끄는 판토마 상단의 역할은 보급.
그들의 물류 소화 능력은 대륙 제일이라 정평이 나 있는바, 두말할 것도 없이 최고의 인선이었다.
“우리는 짐꾼도 아니고, 보따리 상인도 아니에요. 간다고 하면 다 되는 줄 아시나요?”
“그래서 안 되는 건가?”
“그런 건 아니지만, 너무 갑작스러웠다는 것만 알려드릴게요.”
로이나의 잔소리가 끝나기가 무섭게 저 멀리에서 한 사람이 우다다 달려와 안겼다. 알브, 소녀 나이아였다.
“카인!”
“몸만 컸지, 아직 애네.”
“반가워서 그런 것이니라, 반가워서!”
곧이어 미미르에서 지원군이 도착했다. 전대 암성인 자베론이 용병단, 모리아티를 데리고 온 건 그때 즈음. 일부지만 사선 여단도 참전했다.
“400만 골드의 빚을 갚기 위해 왔습니다.”
갤포드가 루드니아가의 기사단을―
“조직은 이단으로 지정된 단체. 결코 좌시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 누구보다 앞에 서서 맞서겠습니다.”
성황교에서는 제로원의 명을 받아 이단심판관들이 대거 참석했다. 레티시아와 비에나가 그 사이에 끼어있는 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드디어 메인 이벤트인가. 엔딩 각이네.”
카르비나가 찾아온 괴성이 여느 때처럼 제 상상에 푹 빠진 채 그러한 감상을 내뱉었고, 슈발체베인 성에서 끌려온 권성 데미안은 곧 죽을 듯한 표정을 지었다.
공공의 적에 맞서기 위해 모인 이들 하나하나가 대륙에서 내로라하는 강자였다.
그야말로 사상 최대 전력.
방향을 돌린다면 베리타 제국도 삽시간에 전복시킬 수 있었다.
카인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2급 살귀에서 그쳤던 삶. 밑바닥에서부터 기어올라 드디어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이게 그가 동원할 수 있는 최종 전력이었다. 과연 조직이 더 강할지, 토벌대가 더 강할지 그건 오직 하늘만이 알 터.
“자, 그러면 이제부터 총력전이다.”
* * *
칼라만티아 협곡은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는 크기를 자랑하는 미개척지였다. 워낙 황량한 탓에 동식물도 살지 않을뿐더러, 있는 거라고는 바윗덩어리밖에 없었다.
구태여 개발할 이유가 없는 장소.
다만, 역피라미드 모양으로 가라앉은 계곡은 주시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 중앙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구멍이 하나 자리 잡고 있었는데, 어디를 어떻게 보아도 수상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조직이 숨어있을 곳은 저기밖에 없습니다.”
“현지인들은 지옥으로 가는 문이라 한다지?”
타나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맥시모스 공작령에 있는 절벽, 지옥의 항구에 한 번 떨어져 본 적 있는 그녀였다. 무저갱이 주는 본연의 공포를 알고 있기에 절로 거부 반응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이리 조용한데 정말 있을까 싶구나.”
“내일이면 모든 게 명확해지겠죠.”
토벌대는 순조롭게 칼라만티아 협곡에 진입했다. 초입을 넘어섰음에도 별다른 전조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늘은 푸르고, 바람은 선선하게 불어 소풍이라도 나온 듯했다.
헛다리를 짚은 게 아니냐는 소리가 은연중에 나올 정도.
하지만 카인은 자신이 제대로 찍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심상치 않은 기류가 느껴졌던 것이다. 폭풍전야라고 해야 할까. 여태까지의 평온은 그 뒤에 몰아칠 투쟁을 위해 준비된 만찬인 게 틀림없었다.
‘방심하길 기대하는 건가.’
얕은 수작을 부린다는 건, 조직의 전력이 상상 이상으로 깎여 나갔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세력이 건재했다면 들어오지도 못하게 견제했을 테니까.
오메가의 대처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는 보란 듯이 정문을 활짝 열고 토벌대가 기어들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슬슬 밤도 깊어졌으니, 이만 나는 들어가도록 하겠다.”
“살펴 가십시오.”
그렇게 타나와 헤어진 카인은 잠자리에 들기 위해 야영지로 향했다.
억제된 인기척이 느껴진 건 그때.
‘올빼미.’
용의 인자로 강화된 청각이 불청객의 존재를 감지했다.
세라에게 배정된 천막 쪽에서 나기에 마냥 무시할 수만도 없었다. 경계를 서는 병사라면 몰라도 누군가 야음을 틈타 들어온 거라면 큰일이었다.
세라가 있는 곳까지 날아가듯이 뛰어간 카인은 절벽 위에서 예상 밖의 인물과 조우할 수 있었다. 무늬 하나 없는 가면과 이렇다 할 장식도 없는 단출한 검 한 자루.
아무리 평범한 물건으로 정체를 감췄다고 한들 몰라볼 리 없었다.
“아버지?”
“…….”
“설마 세라를 보러 온 겁니까?”
라프만은 말을 아꼈다. 그가 이곳에 온 건 먼발치에서 장성한 딸을 보려고 한 것도 있지만, 의문을 풀기 위함도 있었다.
대상은 바로 눈앞에 있었다.
카인 슈발체베인.
갑작스레 생긴 제자였지만 보면 볼수록 익숙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마치 몇 년은 본 것 같군.’
돌연 머리가 지끈거렸다.
기억에 공백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 대해 떠올리려고 하면 할수록 정신이 흐려졌다.
그 상태로 자고 일어나면 무엇을 떠올리려고 한 건지도 잊어버렸다. 어쩌면 이 일도 까맣게 잊은 채 내일을 맞이할지도 몰랐다.
오메가와 손을 잡은 뒤로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겨났다. 속 시원하게 풀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일단 고맙다고 해 두지. 세라가 여왕이 된 것엔 네 덕도 적지 않은 것 같으니.”
“그렇습니까.”
“하지만 착각하지 마라. 그게 널 살려 줄 이유는 되지 못하니까.”
냉막하기 그지없는 말에 카인은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정말 저를 잊은 겁니까?”
난데없는 질문에 라프만은 침음을 흘렸다.
또 저 표정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가슴에 납덩이라도 얹은 듯이 무거워졌다.
‘……그래도 지지 마라, 네가 내 아들라면.’
‘너만의 방식을 찾아라. 이것만 잘 헤쳐나갈 수 있다면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을 터. 그때가 되면 내가 없더라도 무서울 게 없을 거다.’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자신이 내뱉은 말이 분명할진대, 꼭 타인에게서 들은 것만 같았다.
좋지 않다.
조직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가면을 매만진 라프만은 서둘러 등을 돌렸다. 어차피 웃으면서 대화하기엔 늦었다. 칼라만티아 협곡까지 들어왔다는 건 모든 정황을 파악하고 있다는 뜻일 테니.
“미리 경고하겠다만, 설령 내 제자라고 한들 내 목적을 방해하면 벨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