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vel 2 assassin wants revenge RAW novel - Chapter 382
382화 조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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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담하게 경고한 라프만이 멀어지려고 하자, 카인은 서둘러 팔을 뻗었다. 하지만 그 그림자조차 잡지 못했다.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뒷모습을 망연자실하게 쳐다본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구태여 지금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곧 만나게 될 테니.
* * *
토벌대는 예정보다 빠르게 칼라만티아 협곡 깊은 곳까지 진격했다. 전체적으로 역피라미드 모양인지라, 가면 갈수록 지대가 낮아졌다. 일상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지형. 당연하게도 속도는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주위는 고요했다, 도리어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들리는 건 바람 소리가 전부였다.
이런 상황이 되면 누구나 예측하리라.
무언가 터질 것만 같다고.
원하든 원하지 않든 머릿속에서 튀어나오는 상상. 그건 이성 깊숙한 곳에 내재된 본능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선두에서 걸어가던 병사 한 명이 돌연 터져 나갔다. 육편이 비산할 때까지 반응한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마소의 유동이 없었기 때문이다.
‘신기!’
병사들을 헤치고 나아간 카인의 눈에 비친 건 참혹한 현장이었다. 하늘을 날지 못하는 이상, 육로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조직이 노린 건 바로 그 점.
‘지뢰인가.’
탐지 도구가 없으니 마땅한 대책이 있을 리 없었다. 더구나 토벌대가 서 있는 곳은 허허벌판. 수색해야 할 지역이 너무나 넓었다.
아차 하는 사이에 희생자가 늘어나는 건 덤.
“전군, 제자리에서 대기! 진군을 멈춘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게 레디샤를 번쩍 든 세라가 그리 고하자 토벌대는 한 몸이라도 된 듯 동시에 발걸음을 멈췄다. 하지만 온 지대에 설치된 지뢰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모래를 헤집고 일어난 녀석들은 세 발 다리로 기민하게 움직이더니, 가장 가까운 병사에게 뛰어올랐다.
콰앙!
미진한 대처는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듯 곳곳에서 사상자가 속출했다.
절벽 위에서는 기다란 포대가 그 모습을 드러내 토벌대를 빙 둘러쌌다. 시야에 보이는 모든 곳에 문명 이기가 있었다. 완벽한 방비.
협곡 전체가 개미지옥이라 할 수 있었다.
토벌대가 공격 범위에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거였다.
진작에 예견했던 일.
몸 밖으로 드러난 일곱 개의 고리를 빠르게 순환시킨 호른은 방금 전부터 읊조리고 있던 주문을 완성했다.
아군에게는 강화 마법을, 적군에게는 약화 마법을.
7계위에 다다른 경지는 고속 사고와 맞물려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수백, 수천에 달하는 마법이 한 번에 발현되었다.
그것은 전장의 형세마저 뒤바꿀 수 있는 비의.
[일곱 번째 별]지뢰의 움직임은 눈에 띄게 느려진 한편, 그를 상대하는 토벌대의 속도는 빨라졌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강화 마법이 그들과 함께했다.
저 멀리에서 토벌대를 노리고 포격이 쏘아졌지만, 다가오는 족족 떨어졌다.
“모두 활을 들어라!”
나이아를 위시한 알브들이 재빠르게 대응한 결과.
초장거리 사격이 장기인 나이아에게 있어 원거리전은 그녀의 재량이 한껏 드러날 수 있는 주 무대였다. 물 만난 고기처럼 지평선 너머에 있는 포대를 노리는 건 당연지사.
나이아가 나선 덕에 토벌대는 한 박자 빠르게 진열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지뢰에 이어 포격의 대상이 되어 산산이 조각날 수도 있었던 것이다.
물론 두드러진 활약을 보인 건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혼란스러운 전장 속에서 카인은 보란 듯이 내달리며 토벌대의 방패막이 되었다. 정련된 육신에는 흠집도 나지 않았지만, 그 수에는 질겁할 수밖에 없었다.
‘하룻밤 사이에 준비한 건 아니야.’
사방이 지뢰밭이고, 온통 위험 지대였다. 조직은 오래전에 대륙 전체와 싸울 준비를 마쳐 둔 듯싶었다. 이 정도 규모라면 누가 오든 회군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자신감의 근원.
쇠락했다 해도 조직은 조직이었다. 수천 년 동안 헤브니아의 뒷면에서 암약해 온 단체다웠다.
그 흔적은 대륙 곳곳에 남아 오늘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다. 훈련소를 폭파하고, 퍼스널 네임을 쥐 잡듯이 처리하지 않았다면 이것보다 더한 위용으로 토벌대를 압박했을 터.
이제 후퇴할 수도 없었다. 수십 킬로미터에 걸쳐 포위망이 형성되었으니까.
우유부단하게 행동하다간 이곳이 무덤이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일까.
상황을 가늠한 토벌대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사력을 다해 전선을 밀어냈다.
대륙에서도 손에 꼽히는 전력이 한 곳에 뭉친바 일방적인 공세는 계속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긴장을 늦추자마자 이변이 일어났다. 안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한 귀신들이 하나둘씩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 수만 해도 대략 수천.
대대적인 증원인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무서운 건 그들의 기세였다. 죽음을 도외시한 채 돌진하는 귀신들의 눈동자에는 이지가 없었다.
눈에 보이는 건 닥치는 대로 물어뜯고, 할퀴었다.
마치 짐승이라도 된 듯한 작태에 카인은 두 눈을 부릅떴다. 그는 저 현상을 알고 있었다.
‘부스트 드러그.’
잔존 병력 전부 복용한 게 틀림없었다. 인자를 활용하는 수준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짜기라도 한듯 그들 모두 과적응자였다.
“조심……!”
카인의 말은 멀리 가지 못하고 전장의 함성에 파묻혔다. 애당초 내뱉은 뒤에는 이미 늦었다. 귀신들이 날뛰어 전열을 흐트러뜨렸으니까.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군인지조차 불분명했다. 한시라도 빨리 진형을 이루어 피아를 구분해야 했다.
곁에 다가온 아리아가 입을 연 건 그때.
“공작님, 약속을 어겨도 되겠습니까?”
“설마 그걸 쓸 거야?”
“네. 이게 제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니까요.”
“무리만 하지 마.”
“감사합니다.”
달려나간 아리아가 귀신들 사이에 파고들었다. 그리고 한 명씩 툭 치고 지나갔다. 아무것도 아닌 행동처럼 보이지만 그건 그녀가 지닌 능력을 모르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말.
치유의 손길.
아리아에게는 조직의 족쇄마저 부수는 힘이 깃들어 있었다.
갑자기 해방된 귀신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평생 그들을 옭아맨 저주가 눈 녹듯이 사라진 것이다.
더 이상 조직의 명에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몇몇 귀신들은 즉시 전장에서 이탈했다. 하지만 긍정적인 효과만 있는 건 아니었다. 세뇌와 강압 속에서 살아온 이들은 관성처럼 튀어나와 대적하길 선택했으니까.
“역시 이래야 처리하는 맛이 있지.”
“집중하십시오,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괴성과 이브는 등을 맞대고, 하전 입자포를 발사해 부나방처럼 달려드는 이들을 전부 전소시켰다. 하지만 그 빈자리를 채우듯 하늘에서 전투기가 날아와 미사일을 떨어트렸다.
십좌전 혈사의 재현.
“한 번은 당해도 두 번은 당하지 않아!”
멀리뛰기라도 하듯 두 발을 크게 놀리며 뛰어간 톨토드가 창을 내던졌다. 허공에 짙은 궤적을 새기며 날아간 창은 그대로 전투기를 관통했다.
쿠쾅!
불꽃에 휘말린 창이 지면에 닿기 직전, 득달같이 달려간 데미안은 주먹을 휘둘러 다시 한 번 창을 하늘로 올려보냈다.
순간, 방금 전에 터졌던 폭발음과 비슷한 굉음이 전장을 강타했다.
톨토드와 데미안, 두 사람은 창을 공깃돌 삼아 이리 던지고 저리 던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행대대는 이렇다 할 활약도 하지 못한 채 고철 더미가 되었다.
십좌에 오른 초인들의 협공은 상식을 아득히 뛰어넘는 법.
그에 질세라, 제네갈과 갤포드는 이인 일조가 되어 전장을 휩쓸었다. 본디 십좌의 성절을 이어받은 이들. 그 파급력은 병사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점차 조직으로 가는 길이 선명하게 보이자 카인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했다.
회귀 전에는 조직이 존재하는 것조차 모르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모두 한마음 한뜻이 되어서 조직을 저지하려 했다.
바라마지 않았던 일.
운명의 분기점이 갈렸다.
남은 건 그 끝에 방점을 찍는 것뿐.
화력이란 화력은 전부 토벌대에 쏟아붓고 있는 것만 봐도 조직이 얼마나 조급해졌는지 알 수 있었다. 효과가 없는 건 아니었다. 토벌대 태반이 발목이 잡혀 제자리에서 지지부진한 난전을 이어 나갔으니까.
하지만 핵심 전력이라 부를 수 있는 이들은 칼라만티아 협곡의 중심에 다다른 후였다.
“여기인가.”
빛도 빨아들일 듯한 무저갱이 눈앞에 있었다. 맥시모스 공작령에서 보았던 지옥의 항구가 이러할까. 얼마나 깊은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그러면 어서 빨리 진입을…….”
오리올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입을 열자마자 구덩이 안에서 거체가 올라온 것이다.
기신은 아니었다. 고작해야 거신일까. 만듦새가 조악하다는 건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관절 사이사이에서 파열음이 터져 나오는 건 물론이고, 장갑끼리 연결한 부위가 훤히 보였다.
녀석은 움직이는 것조차 버거워하고 있었다.
대체 무엇을 위해 저렇게 크게 제작했는가.
카인의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에 답하듯 놈은 잿빛 액체를 하염없이 토해냈다.
화들짝 놀라 오리올을 걷어찬 카인은 검지를 내밀었다.
[정련정심 – 극진]동시에 나노 마테리얼이 증발했다. 평상시에는 유용한 물질이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저 세상을 집어삼키기 위한 첨병일 뿐. 닿는다면 목숨은 보장할 수 없었다.
“끝이 없군요.”
비에나가 질렸다는 듯이 거신을 올려다보았다. 놈은 하나가 아니었다. 번호표라도 받은 것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꾸물꾸물 올라오고 있었다.
“정공법으로는 이기지 못할 것 같으니 우물에 독을 푼 건가. 과연 조직다운 판단이구나.”
쓰게 웃은 타나가 맨손으로 거신을 잡아 뜯었다. 눈 깜빡할 사이에 해체된 녀석은 작동을 멈췄으나, 그 안에 있는 나노 마테리얼은 당연하다는 듯 스멀스멀 기어 나와 하천을 이루었다.
“어림도 없느니라!”
불길을 일으킨 타나가 나노 마테리얼을 증발시켰으나, 조족지혈에 불과했다. 그사이에 올라온 다른 거신이 연신 나노 마테리얼을 토해 냈던 것이다.
치솟듯이 뛰어오른 타나가 걷어차자 거신 여럿이 도미노처럼 쓰러졌다. 하지만 물량 공세를 저지하기엔 여전히 모자랐다.
녀석들이 쏟아낸 나노 마테리얼은 아차 하는 사이에 범람했다. 이 자리에서 막지 않으면 토벌대 전체가 전멸할 수도 있었다.
십좌들은 성녀들의 신성 마법에 힘입어 겨우 전선을 유지했다.
일촉즉발의 상황.
수문장이 버티고 서 있는 이상, 그 너머에 도달할 수 있는 이는 정해져 있었다.
모두 한 사람을 쳐다보았다.
“카인, 가거라.”
카인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과 동시에 앞으로 튀어나갔다.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걸고 열어 준 기회였다.
이다음은 없었다.
* * *
칼라만티아 협곡의 무저갱, 지옥으로 가는 문에 발을 디딘 카인은 그대로 질주했다. 내부에는 온갖 기계 장치가 들어차 있었다.
신의 무덤에서 보았던 신기는 모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레이저 커터와 레일건, 무장 드론. 혹은 초음파 절단기나 반역장 필드. 간간이 단분자 커터까지 나왔으나 무용.
마스터 코드도 필요치 않았다.
카인은 모든 역경을 맨몸으로 뚫고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