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sical Genius Who Lives Twice RAW novel - Chapter 129
129화
함재원, 김건하.
두 취한 아재들과의 이야기가 완만하게 끝났다.
결과적으로 모든 게 잘 풀린 듯했다.
수확도 있었고.
[세상이 참 빠르게 변해. 시간 나면 언제 꼭 한번 들리지.]김건하는 목이 회복되거든, 내 방송에 한 번쯤 출연하겠노라고 약속했다.
그게 언제가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목소리가 변하는 걸 감수하고 수술을 받든, 아니면 발성 클리닉으로 극복하든 알아서 하겠지.
‘선택이 쉽지 않겠네.’
한 시대를 풍미한 보컬로써 자부심을 가진 사람이다. 지난 수십 년 이어 왔던 고집을 버릴 수 있을까.
말하는 것만 들어보면 해탈한 눈치였다만, 행동에 옮기기는 쉽지 않은 법이다.
정직을 강조하는 억만장자들이 정작 세금 낼 때가 되면 손발이 덜덜 떨려 뒷구멍을 찾는 것처럼.
하지만 알아서 하겠지.
‘내가 그쪽 매니저도 아니고.’
여기서부터는 그쪽 알아서 할 일이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나도 그의 모습을 보고 느낀 게 있었다.
‘주위 사람을 돌봐야 한다고 했나.’
김건하가 술에 취해 몇 번이고 반복해서 한 말이었다.
혼자 잘난 맛에 굴러다니면 끝내 남는 사람이 없다고 했지.
하기야, 딱 봐도 친구 없을 것 같은 성격이기는 했다.
하지만 나라고 크게 다를까.
물론, 다르다.
지금부터 더 달라져 볼 생각이었다.
‘일은 좋아. 하지만 내가 일을 하는 이상 식구들도 못 쉬겠지.’
나도 내 위치를 새롭게 재고해 봤다.
원래는 방송도 끝났겠다, 직후 또 다른 일을 시작하려고 했지. 하지만 지금의 나는 혼자 사는 몸이 아니다.
[싱어송라이터 김한영]이라는 가족을 이끄는 가장과도 같았다.그런 내가 일을 한다는 건, 곧 식구들에게 은연중에 눈치를 주는 것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새로운 계획을 꾸려 보았다.
“여행을 가자고?”
“네.”
나는 조은솔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동안 너무 일만 했잖아요. 한 번쯤은 풀어 줘야죠. 이러다가 학교 다니는 내내 일만 하다가 졸업하게 생겼어요.”
휴가였다.
지난 1년간 쉬지 않고 달려왔으니 잠깐 숨 좀 돌린들 문제 될 것 없겠지.
“방학을 충실하게 보낸 건 좋은데, 이대로 학기까지 일만 하면서 보내는 건 아무래도 조금 그렇잖아요.”
매일 일만 했으니까 가끔은 쉬어 줘야지.
나라고 기계는 아니다.
음악은 재밌다. 하지만 재밌다고 해서 이것만 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건 아니다.
작곡이라는 건 마음의 양식을 소진하는 일.
그간 재고를 털며 달려온 만큼, 새로운 양식을 쌓을 필요가 있었다.
‘슬슬 쌓아 둔 게 동이 나고 있어.’
TV 방송에 나간다고 이래저래 무리한 반동이었다.
하여, 이번에는 나도 본격적으로 쉬며 나 자신을 재정비해 볼 생각이었다.
열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랄까.
“그렇게 됐어요. 이제 돈도 많이 벌었겠다. 엄청 호화롭게 다녀올 생각이니까 그렇게 알아주세요.”
진심을 전부 말한 순간이었다.
조은솔이 미심쩍은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사선으로 꺾으며 입을 열었다.
“한영아, 나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네.”
선뜻 고개를 끄덕인 순간이었다.
“이번에는 진짜 여행 다녀오는 거 맞지? 일이 아니라? 진짜로?”
지독하리만치 의심이 묻은 목소리였다. 그 눈빛이 잔인하도록 순진무구했다.
대체 사람을 어떻게 보고 있기에 저런 말을 하는가.
“당연하죠.”
“막 24시간 무수면 연습 그런 컨텐츠 찍으러 가는 거 아니라?”
“휴가 가자고 한 다음 일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너요. 너. 한영이, 너.”
“저 안 그러는데.”
“웃기시네.”
갑자기 홍윤서가 끼어들더니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야, 너는 선배가 원숭이로 보이냐? 속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인류에게는 학습 능력이라는 게 있어요.”
“제가 형을 언제 속였다고 그러세요.”
“매일 밥 먹자고 작업실에 불러서 가 보면 밤샘시켰잖아.”
“그건 다 형 잘되라고.”
“노래방 가자고 해서 갔더니 노래방에서 기타 치더라.”
“딱 그 타이밍에 삘을 받아서.”
“쇼핑하러 가자 해서 갔더니 낙원 상가에 장비 보러 갔었지?”
“흠.”
반박하기 어렵군.
내가 그렇게까지 했나.
호박넝쿨처럼 말이 나오는 걸 듣고 있으려니 내가 조금 너무했다 싶기는 하다.
“인정할게요. 하지만 단언컨대, 이번에는 아니에요.”
일단은 후퇴다.
식구들의 시선에 상처 입은 짐승처럼 트라우마가 가득한 게 뻔히 보였다.
‘이야기를 길게 끌어서 좋을 건 없겠군.’
나는 짧게 헛기침을 뱉은 뒤 입을 열었다.
“다들 그동안 방학 내내 일만 한다고 고생 많았잖아요. 희범이 몰골 좀 봐요. 저게 사람 꼴인가.”
“내가 뭐 어때서.”
고희범이 초췌한 얼굴로 목을 삐그덕 돌리며 말했다.
영락없는 공포 영화 속 크리쳐 같은 모습에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는 말했다.
“보셨죠? 저게 다 휴식이 부족하니까 사람이 까칠해진 거예요.”
“네가 준 병이니까 약도 좀 줘라.”
“마그네슘 주문해 놨으니까 챙겨 먹어라.”
“충성, 충성.”
“이제 사람 부리는 게 아주 익숙하다?”
조은솔은 헛것이라도 봤다는 듯 웃더니 말했다.
“그래서 휴가를 가는 건 간다 치고, 어디로 갈 건데?”
기대했던 순간이 왔다.
나는 책상 위로 손을 얹으며 말했다.
“기왕 떠나는 휴가니까 아예 외국으로 가 보는 게 어떨까 싶어요.”
그 순간이었다.
“외국?”
식구들의 표정이 일제히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일본에 가 보려고요. 그것도 아주 초호화 코스로.”
일본.
모처럼 해외여행이나 한번 다녀올 생각이다.
그런데 조은솔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물었다.
“다 좋은데 왜 하필 일본으로?”
“가깝잖아요. 치안도 좋고.”
사실 이건 그냥 둘러대는 말이고, 일본을 여행지로 선택한 데는 몇 가지 큰 이유가 있었다.
그중 첫 번째가 바로.
“한국에서는 슬슬 어디 편하게 못 다니겠어요.”
인지도 문제였다.
지난 방송이 조금 과하게 떠 버린 탓일까.
어디를 가든 알아보는 사람이 한 명은 튀어나오는데, 잠깐이야 좋아도 계속되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국내 여행도 생각은 해 봤는데, 완전 산골로 가는 게 아닌 이상 편하게 쉬질 못하겠더라고요.”
“으음, 그건 그렇지.”
김예담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요즘 어디 가면 한예원 궁녀라고 막 달려들더라.”
한예원 궁녀.
네티즌들이 그녀에게 붙여 준 별명이었다.
“해금이랑 궁녀가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어. 관심이 싫은 건 아닌데 조금.”
“저도요.”
성민아가 눈을 찌푸리고 부르르 떨더니 말했다.
“다짜고짜 카메라부터 들이민다니까요. 인터넷에 찍힌 기억도 없는 제 사진이 돌아다니는데 소름 끼쳐 죽겠어요.”
스마트폰이 문제였다.
내가 대중의 힘을 잘못 판단했다.
옛날에는 기껏 해 봐야 알아보는 사람이 많은 정도이니 일부 기자만 잘 피하면 됐는데, 이제 전 국민이 기자가 되었다.
인터넷에 행적이 일거수일투족 퍼지는 건 기본.
그걸 또 기사로 팔아먹는 사람까지 나왔다.
‘그나마 선을 넘는 건 테슬라가 빠르게 대응해 줘서 망정이지.’
나야 이런 일이 익숙하니까 괜찮다.
하지만 식구들까지 보자면 이래서야 휴식다운 휴식이 되긴 어렵지 않을까.
“맘 편히 돌아다니면서 쉬려면 외국이 나을 것 같아요.”
“일단 그건 그렇다 치고, 굳이 일본으로 가는 이유는 또?”
조은솔은 어딘가 즐거운 듯한 목소리였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음악으로 유명하잖아요.”
이게 두 번째 이유였다.
“한국은 발라드랑 댄스 음악 중심으로 발달했는데, 그쪽은 히키가타리라고 해서 여전히 통기타 중심이 많다고 해요. 기회도 생긴 김에 가서 공연이나 실컷 보고 와요.”
히키가타리.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른다는 말인데, 일본에서는 이쪽 장르가 유독 크게 발전되어 있었다.
“안 그래도 공연하는 목록도 좀 뽑아 왔거든요. 맘만 먹으면 여행 일정 내내 공연만 볼 수도 있을걸요?”
“다 알아보고 왔네. 너도 많이 신났지?”
“들켰네요. 아무튼, 이번 휴가만큼은 연주자가 아니라 관객 입장으로 가는 거예요. 너무 고민하지 말고 적당히 놀다 와요.”
진지하게 말한 참인데, 정의선이 눈을 좁게 뜨더니 말했다.
“야, 가서 또 삘 받았다고 공연하고 오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
“…….”
이야, 독하다 독해.
끝까지 의심을 안 지우네. 좀 믿어 주면 어디 덧나나.
나는 의심의 끈을 끊어 버리듯 말했다.
“우리 할아버지의 명예에 걸고 그런 거 안 해.”
물론, 나는 할아버지의 이름은커녕 얼굴도 모른다.
“여행지라고 라이브 방송 켠다거나.”
“안 해.”
“우연히 찾아간 공연장이 관객 참여형 공연장이었다거나.”
“그런 게 존재하기는 하냐.”
“확실해?”
“나 못 믿어?”
“어.”
누구를 일만 하는 기계로 아나.
아무튼, 이들이 뭐라 하든 나는 내 생각을 강요할 생각이다.
정 안 되면 나 혼자라도 다녀오면 그만이지. 그동안 알아서 잘 쉬고 있으라고 말하려는 순간이었다.
“어허, 우리 사장님께 무슨 배은망덕한 말씀을.”
누군가가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홍윤서였다.
‘아.’
이 형, 서브컬쳐 중독이었지.
* * *
팅이 모처럼 동아리 분위기로 돌아왔다.
그간 일에 쭉 빠져 있다 보니까 동아리라기보다는 회사 분위기가 짙었는데, 모처럼 초심을 되찾은 것.
공항에 도착한 아침.
“언니, 옷이 좀 가볍지 않아요?”
“일본은 겨울에도 따뜻하다더라.”
식구들의 들뜬 목소리에 나까지 옮을 듯했다.
조은솔이 고개를 젓더니 말했다.
“그건 그렇고, 몇백은 나갈 텐데 괜찮겠어?”
“어차피 이번 여행은 전부 제가 부담하는 거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그 말대로다.
이번 여행 예산은 전체적으로 내가 담당하기로 했다.
조은솔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무리하는 거 아니지?”
“신경 쓰지 마세요. 휴가비는 원래 회사에서 지출하는 거잖아요.”
몇 달 동안 열심히 굴렸으니 한 번쯤은 통 크게 써도 나쁘지 않겠지.
‘어차피 다 회수할 돈이고.’
식구들한테 쓰는 돈은 소비가 아니라 투자다.
그만큼 우리 방송을 사랑해 주고, 더 좋은 컨텐츠를 만들어 준다면 그걸로 족하다.
……인데, 조은솔의 생각은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와, 진짜 너는 마인드가 말도 안 나온다.”
“제 마인드가 어때서요.”
“욕하는 게 아니라, 어디 가족 같은 회사들은 여행비도 사원들한테 각출하게 만든다잖아. 왜, 회사 사장 생일이니까 얼마씩 분담하라고 시키거나.”
그런 회사가 다 있나.
“거 참 이상한 회사네.”
“내가 보기엔 우리가 이상한 것 같아.”
그녀는 머릿속이 상념으로 가득 찬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다 좋은데, 요한 씨는 왜 안 불렀어?”
“디마요?”
“응.”
“넌지시 불러는 봤는데 오기 싫대요. 관광은 지도 거리뷰랑 미튜브로 하면 되는데 왜 가녜요.”
“……존중해야겠지?”
“아뇨.”
이쯤에 공항 스피커에서 안내 멘트가 흘러나왔다.
[JC 항공에서 탑승 안내 말씀드리겠습니다. 3시 15분 출발하는 JC 항공 일본 도쿄행 JC12편 손님께서는 11번 탑승구로 탑승해 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안내 말씀드리겠습니다.]본격적으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사실, 식구들에게 말을 안 한 게 하나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말을 못 했다고 말함이 옳으리라.
‘여전히 잘 남아 있을까.’
이번 여행은 휴식 여행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만의 추억 여행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아주 먼 옛날, 일본에 들를 일이 있으면 꼭 방문했던 장소가 있었다.
갈 때마다 뭔가 하나씩은 얻어 왔던 그런 곳.
기왕 들리는 겸, 신곡 아이디어 하나쯤은 뽑아 올 생각이었다.
귀국하는 즉시 작업에 착수할 수 있게끔 말이다.
‘또 어떤 새로운 걸 얻어올 수 있을까.’
그렇게 모처럼 두근거리는 마음을 품은 한편, 모처럼 쉴 생각에 비행기 시트에 몸을 기댄 순간이었다.
“헛.”
저 멀리 복도에 선 사람이 나를 보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기, 김한영 아냐?”
“김한영?”
“어디?”
……아무래도 도착하기 전까지는 마음을 못 놓을 듯하다.
* * *
도쿄 시부야의 어느 가게.
바를 겸하는 라이브 하우스에서 한 사람이 턱을 괴던 중 중얼거렸다.
“사장님, 지금 스피커에서 나오는 노래 제목이 뭐예요? 되게 괜찮네. 한국 노래인가?”
이곳은 일본이다.
그러니 노래를 틀어 놓더라도 일본어 노래가 보통이며, 한국어 노래를 틀어 놓는다면 아이돌 음악 정도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지금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음악은 양쪽 다 아니었다.
한국어 가사이며, 또한 노래가 훨씬 담백했다.
“요즘 유행하는 곡인가 봐요?”
손님의 질문에 가게 주인이 눈길조차 돌리지 않으며 답했다.
“유행은 무슨. 몇십 년도 더 전에 나온 곡인데.”
“그래요? 그런데 왜 이 노래를 틀어 놓으셨대. 선곡이 조금 낡은 거 아니요? 영구결번인가? 아, 노래가 나쁘다는 건 아닌데.”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말투에 가게 주인이 피식 웃더니 쉰 목소리로 말했다.
“저 노래 부른 사람이 옛날에 여기 왔었거든. 아주 먼 옛날에.”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