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RAW novel - Chapter 126
126. 가장 유명한 신입생 (5)
“벌써 일주일이 지났네.”
한국예술대학교의 몇몇 교수들에겐 유독 시간이 빠르게 느껴지는 일주일이었다.
첫 주야 앞으로의 수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질문을 받거나 짧게 끝내는 오리엔테이션 느낌이었다면.
개강 2주 차, 이제부턴 본격적인 수업을 시작해야 했다.
수년간 학생들을 가르쳐왔는데, 뭐가 그리 문제겠냐마는 이번엔 정말 문제 아닌 문제가 있었다.
바로, 학생 중에 한서호가 있다는 것.
그건 학생들에게도 신기하고, 흥미로우며, 신경 쓰이는 일이겠지만, 교수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몇몇 기사에선 ‘고작 국내에서 누가 누굴 가르치냐.’ 같은 비아냥이 뜨문뜨문 섞여 있었고, 교수들이 이런 대중의 반응을 모를 리 없었다.
물론 한서호는 작곡과였지만, 그렇다고 상황이 달라지지도 않는다. 한서호의 커리어에 ‘연주’만 대단한 게 아니었으니.
자작곡 앨범으로 전 세계에 50만 장을 팔아치운 하프 밀리언셀러이자, 사운드클라우디에서 총합 억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한 ‘브리너’가 그였다.
게다가 최근엔 더 큰 사건으로 세계 곳곳에 이름을 다시 한번 알리기도 했지.
“지난번 수업 때 조용했죠?”
“그랬던 것 같아요. 뭐 커리큘럼 설명 정도니까 뭐······.”
그러니 교수들도 사람인지라, 눈치를 보는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그들 또한 결코 배움이 얕지 않았지만, 상대를 잘못 만난 느낌이랄까. 적당히 부담스러운 게 당연했다.
물론, 모든 교수가 그런 건 아니었다.
“이종범 교수는 아주 기대하는 눈치던데요. 양세종 학장님도 올해가 기다려진다고 하셨었고.”
동그란 금테 안경을 쓴 파마머리, 주인호 교수가 믹스커피를 홀짝이며 말했다.
그는 한서호의 실기와 면접을 담당했던 교수였다. 그리고 그가 언급한 이종범 교수와 양세종 교수도 마찬가지.
“양세종 학장님이야 줄리어드에서도 탐냈던 분이신데. 게다가 예전(-예술의 전당) 윤석호 교수님과 더불어 국내 음대 교육의 쌍두마차 시잖나.”
“오히려 이종범 교수가 의외네. 젊어서 그런가······.”
“그렇다기엔 다른 젊은 강사들은 뭘 가르치냐며 고민이 많아 보이던데요.”
“아무래도, 유학파란 점도 무시 못 하겠지. 연주자로서의 활동도 괜찮았고.”
“아니면, 한서호랑 친분이 있는 게 아닐까요? 이종범 교수도 윤석호 교수 제자잖아요.”
“흐음, 실기 때 안면이 있어 보이진 않았는데······.”
안경을 잠시 빼고 콧등을 손수건으로 슥슥 닦아낸 주인호 교수가 시간을 확인하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아무튼 전 가봅니다.”
성대에 가뭄이라도 찾아왔는지 목소리가 푸석푸석했다.
교수들 중에서도 2주 차 수업을 처음으로 하게 된 그였다.
“지적당하지 말고.”
“최 교수님. 남 일 아닌 거 아시죠?”
농담을 던진 최 교수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를 뒤로하고 강의실로 향하는 주인호 교수.
차라리 실기 때 한서호가 연주하는 베토벤 소나타 30번을 듣지 않았더라면 조금은 나았을지도.
그런 생각을 하는 그였다. 그도 그럴 게, 그가 가르치는 과목이 ‘연주와 비평’이었으니.
“다들 두 번째로 보는 거죠?”
강의실에 들어선 그가 순식간에 조용해진 학생들에게 서두를 뗐다.
임시 과대표에게 미리 노트북을 전달했기에 화면엔 자신이 준비한 것들이 띄워져 있었다.
수업은 곧바로 시작되었다.
“연주와 비평이 어떤 수업인지, 가진 의미가 뭔지, 왜 해야 하는지는 지난 시간에 쭉 얘길 했었고. 오늘부턴 본격적으로 수업에 들어갈 건데. 왜 실기실이 아닌, 강의실에서 모였느냐.”
노트북을 조작한 주인호 교수가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자연스레 시선 중앙에 흥미로운 듯 눈을 반짝이는 한서호도 보였다.
묘하네······.
“먼저 어떻게 수업에 참여해야 하는가를 살펴봅시다. 지금 보여줄 영상은 선배들의 연주 영상인데, 실제로 작년 혹은 재작년에 연주와 비평 수업시간에 했던 내용이에요. 먼저 영상을 보고, 선배들은 각각의 연주에 대해 어떤 비평을 했는지 확인해보도록 하죠.”
화면에서 영상이 틀어졌다.
한 연주자가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를 시작한다.
이를 돌아본 주인호 교수가 웃으며 말했다.
“어, 희진이네. 이 친구 같은 경우엔 연주가 조금 가볍다는 비평을 받았어요. 자, 터치. 즉 손은 가벼워도 되죠. 오히려 그렇게 권장하는 교수님들도 많고. 하지만 그렇다고 소리까지 가벼워선 안 되죠. 여러분들이 듣기에도 그렇습니까?”
주인호 교수가 학생들에게 물었다. 그의 시선에 여전히 한서호가 걸려있다. ‘네’라고 대답하는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끄덕이는 한서호.
역시, 묘하다.
슥. 손수건을 꺼내어 이마를 훔친 주인호 교수가 다시 말을 이어간다.
“그래요. 자, 다음은······ 하하, 이 친구는 아마 자주 보일 겁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걸 좋아해서. 요즘 말로 인싸라고 하죠? 자, 3학년 강준서. 바이올린 전공생인데······”
화면 속에서 이번엔 바이올린 연주가 시작되었다.
#
“이 친구는 굉장히 평범하다, 무난하다 등의 비평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게 과연 비평 받아야 할 내용일까요?”
보통 이런 질문엔 함정이 숨어있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고개를 젓는 학생들이 많았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맞지.’
잠시 강단에 선 주인호 교수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하는 듯했지만, 이내 다른 학생들에게로 넘어갔다.
“난 적합한 비평이라고 봅니다.”
그 말에 학생들은 의문을 품었다.
그리고 주인호 교수는 이에 대해 풀어내기 시작한다.
“연주곡이 뭐였죠?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13번이었어요. 13번은 굉장히 강렬한 곡입니다. ‘악마의 미소’라고 불릴 정도로. 작곡가가 그렇게 작정하고 만들었죠. 심지어 독주곡. 여기서의 연주는 악마의 웃음소리처럼 더 강렬해야 했어요. 하지만 상황을 바꿔봅시다. 만약에 이 연주가 앙상블이었고, 심지어 제1 바이올린이 따로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그땐 이전 같은 비평은 어울리지 않겠죠. 평범함이 칭찬이 될 테니까.”
결국,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비평이 달라져야 한다는 얘기였다.
“연주와 비평 수업에서 당연히 연주도 중요하겠지만, 여러분들 성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게 될 요소는 바로 이 비평이 될 겁니다. 자, 그러면 어떻게 좋은 비평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주인호 교수의 이어지는 설명을 들으며, 나는 입꼬릴 올렸다.
나 혼자 인터넷에 올라온 동영상을 보면서 12살 때부터 해오던 것을 이젠 교수, 학생들과 함께 하는 거다.
앞으로 내 눈앞에서 다양한 연주를 보게 될 거고.
여러 생각들을 들을 수 있겠지.
재밌다.
일주일 동안 수업을 기다리고 기대했던 게, 전혀 실망스럽지 않을 정도로.
그리고 앞으로가 더 기대될 정도로.
#
······수군거리는 소릴 들으며 카페 구석에 자릴 잡았다.
다행히 며칠 전처럼 팬인 척 다가와 인터뷰를 하는 기자는 없었다.
아메리카노를 옆에 두고 묵직한 가방에서 두툼한 파일을 꺼낸다. 주문하느라 잠시 빼놓고 있던 이어폰도 다시 꽂았다. 빨대도 입에 꽂는다. 카페인이 쭉 하고 들어온다.
백색소음처럼 흘러드는 소음.
‘그래, 이게 대학생의 일상이었지.’
브리너의 기억에 비하면 그리 오래되었다고 말할 수도 없는 과거를 떠올리며, 파일 속에 있던 오선지 뭉치를 꺼냈다.
과제는 아니었다. 물론, 과제도 해야겠지만 지금은 하던 작업이 있었다.
오선지 뭉치 사이에서 ‘클래식 연도표’라고 적힌 종이가 딸려 나온다.
교과서의 한 장이었다.
고등학교 음악 수업 때, 유명한 음악가들만 나열되어 있던. 그래서 내가 기억하는 이들로 채워 넣었던.
내가 빽빽이 적어놓은 이름 중, 이번에 헌정곡이 발견된 이들의 이름 밑에는 줄이 그어져 있었다.
뽁, 하고 형광펜 뚜껑을 빼내어 또 다른 이름들에 밑줄을 긋기 시작한다.
연주자라 자작곡이 없는 이들을 제외하고.
악보가 하나라도 남아있는 이들의 이름 밑에 줄을 그었다.
슥—.
이쯤 되니 남은 이름은 몇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이름을 보며 혀끝이 씁쓰름해지는 걸 느꼈다.
현대에 와선 악보조차 남지 않은 이들.
이제부턴 브리너의 기억에 기대는 수밖에.
오선지를 옆에 두고 연필을 쥔다.
마치 잉크를 짜내듯 기억을 짜낸다.
다행히, 한 번이라도 들었던 곡은 떠올릴 수 있었다. 각 악기의 세세한 부분까지도.
하지만.
“······흐음.”
한 번도 듣지 못한 곡은 방법이 없다.
내가 음악을 듣고 감명을 받아 후원한 이들도 있지만.
아버지에 대한 생각에 무작정 후원한 이들이 훨씬 많았기에, 나는 그들의 음악은커녕 얼굴조차 몰랐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필체가 전부.
안타까운 마음을 누르며, 어쩔 수 없이 기억나는 것들만 오선지에 채워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악보들을 감싼 파일에 한 단어를 적었다.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며 목소리가 들려온 것도 그때였다.
“과거?”
고개를 들었다. 물론 그러기 전부터 목소리로 강준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오셨어요?”
“흐, 내 수업이 조금 일찍 끝났어. 곧 다들 올 거야. 흣짜. 대학 생활은 좀 어때?”
내 앞자리에 털썩 앉은 그가 물어왔다.
“오늘 형 영상 나왔어요.”
“아, 그거? 어때, 유익했어?”
“네. 그리고 누가 훈남이라고도 하던데요?”
“아유, 그래? 이것 참. 그새 좀 늙었는데.”
“에이, 똑같던데요.”
“그르냐? 하하하.”
“오히려 연주가 많이 달라졌죠.”
기분 좋게 웃던 강준서가 멈칫했다.
여전히 입가엔 특유의 미소가 가득하지만, 눈빛만큼은 확 진지해져 나도 조금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이젠 형만의 색을 내고, 그걸로 주선율의 부족함까지 채워주잖아요.”
솔직하게 말했다.
강준서의 음색은 평범하다. 무난하다. 하지만 단단하다. 아니, 그랬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4인조라 불리는 네 명 모두가 크게 성장을 했는데, 그중에서 가장 돋보였던 건 예상외로 신수아가 아닌 강준서였다.
여전히 무난한 소릴 낼 수 있는 건 당연하다. 게다가 더욱 단단하다. 흔들림 없다. 제2 바이올린으로서 이보다 더 훌륭할 수 있을까 싶다. 그런데.
그 위에 작은 물감 하나가 똑 떨어진 것 같았다.
결코, 신수아처럼 수많은 색을 내거나 화려하진 않지만.
강준서만의 색이 무난한 연주 사이사이에 깔려있다.
제1 바이올린의 주선율이 잠시 느슨해지는 그 사이사이에 옅은 색을 채워 빈공간이 없도록 만든다. 이는 숙명적으로 튈 수밖에 없는 제1 바이올린이 다른 현악기들과 자연스레 섞이게 만드는 역할을 완벽히 해낸다.
아마 루드비히 선생이라면 자신의 오케스트라에 신수아를 뽑았겠지만, 하이든이었다면 무조건 강준서를 선택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끄덕이자, 강준서가 멋쩍은 웃음을 흘리며 시선을 내렸다.
“흠흠. 그나저나 뭐 하고 있던 거야? 새로운 곡 이름이야?”
“아뇨. 앨범 제목이요.”
“아, 이번엔 고전 곡들로 채울 거라고 했었지?”
“네.”
“과거··· 기대된다. 네가 연주하는 모차르트, 베토벤이라니.”
“우리죠.”
툭 뱉어놓고 퍼뜩 정신을 차리니 강준서의 눈이 커진다. 입꼬리가 치켜 올라간다. 텐션 주의보가 머릿속에서 왱왱거렸다.
“그래 맞아—! 우린 한서호 사단—!”
사단이니 뭐니 그거 하지 마···
“해단한다니까요.”
“아직 정식 창단 안 했는데? 없는데 뭘 해단하시게?”
“······.”
그 똑부러지다 못해 냉랭한 신수아도 말로는 못 이기는 강준서다. 그냥 말을 말자.
고개를 흔드는 사이, 카페 유리창에 세 사람이 나타났다. 이소현과 김영태, 그리고 신수아까지.
“흐, 다들 왔네. 가자. 내가 오늘 캠퍼스의 낭만을 알려주도록 하지.”
비장한 눈빛을 뿜어내는 강준서를 따라서, 우리는 그 길로 캠퍼스를 나섰다.
캠퍼스의 낭만을 배우는데, 왜 캠퍼스 밖 술집으로 향하는진 모르겠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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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자신의 연구실로 향하던 이종범 교수가 주인호 교수와 마주쳤다.
서글서글한 주인호 교수의 미소에 이종범 교수가 고갤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마주치길 기다렸다는 듯이 질문을 꺼냈다.
“안 그래도 궁금했는데. 어땠어요, 수업?”
그건 몇몇 교수들처럼 걱정이나 부담이라기보단 기대가 가득한 눈빛이었다.
스승인 윤 교수에게 들은 것들이 있다 보니 자연스레 기대될 수밖에.
“솔직히 속으로 내심 걱정했었는데. 수업 태도도 좋고. 이상하게 다른 학생들 수업 태도도 여느 신입생들하곤 다른 것 같았어요. 그리고······.”
이마를 손수건으로 슥 닦은 주인호 교수가 웃었다.
“묘하더라고요. 아주 묘~해.”
“어떤 게요?”
“내가 틀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요.”
“···?”
이종범 교수가 갸웃거리자 주인호 교수가 풀풀 웃으며 덧붙였다.
“교수 되고서 그런 생각 해본 적 없었거든요. 근데, 그런 생각이 드니까 묘하더라니까.”
그렇게 대답하고서, 가던 길을 떠나는 주인호 교수.
이종범 교수는 그 뒷모습을 보며 여전히 아리송한 눈빛을 보냈다.
불안했다는 대답과는 달리, 주인호 교수의 입가엔 미소가 걸려있었다.
확실히, 올해 음대는.
시작부터 뭔가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