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RAW novel - Chapter 292
292. 완벽한 음악
-오늘 호프만 쇼 시청률 역대급 찍을 듯. 기존 호프만 쇼 팬에 한서호 팬에 클래식 애호가들까지. 어마어마할 것 같지 않음?
-댄 호프만 팬이라서 챙겨보긴 할 건데, 솔직히 클래식은 재미없어서 걱정되는데.
-난 엄청 기대되는데. 항상 대본 신경 안 쓰고 자기 마음대로 질문하는 댄이 완전히 말렸다면서 자기가 호스트가 맞는지 의문이었다잖아. 그것만으로 기대해볼 이유는 충분할 듯.
-하긴, 그 마초 같은 댄이 얌전해 보이는 청년한테 휘둘리면 진짜 웃기긴 할 것 같아.
미국 커뮤니티 사이트에도 쉴 새 없이 글이 올라오고 있었다.
호프만 쇼야 원래 항상 이곳에서 핫한 주제였지만, 그럼에도 오늘은 유독 더 뜨거웠다.
새로운 클래식의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받는 천재 음악가, 한서호가 출연했기 때문.
게다가 평소 호들갑이란 걸 떠는 성격이 전혀 아닌 댄 호프만이 예고편에서 기대감을 잔뜩 높여놓은 덕에 사람들의 관심은 최고조에 달해있는 상황.
-지금 러스트 트위터 봤어? 몇 년만에 게시물이 올라왔어!
방송을 30여 분 남겨두고 누군가 발 빠르게 소식 하나를 물어왔다.
그것도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소식을.
-진짜네? 러스트 멤버 다 모였잖아?
곧바로 누군가 캡쳐해서 해당 게시물을 올렸다.
댄 호프만을 포함한 전설적인 러스트 멤버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그들은 맥주잔을 들어 올린 채로 사진을 찍었고, 그 밑에 호프만 쇼를 기다린다는 글과 함께 이렇게 모일 수 있게 해준 한서호에게 고맙다는 인사까지 덧붙였다.
-다시 모여주나? 음반 내주나? 제발···.
-근데 한서호가 러스트를 다시 모일 수 있게 줬다는 얘긴 무슨 소리지? 방송 보려고 모여서 그런 건가?
-모르겠음. 그것도 방송 보면 나오려나?
-와 벌써 기사도 떴네.
누군가 해당 기사도 캡쳐해 커뮤니티에 올렸다.
-올라온 지 5분도 안 됐는데 벌써 백만 뷰를 넘겼다고?
-화제성만큼은 역대급이네.
함께 감탄하는 사람들.
그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가며 기대감에 장작을 끊임없이 넣었다.
그리고 마침내.
-시작한다!
모든 기대감이 충족될지, 뚜껑을 열어볼 시간이었다.
#
—잼(Jam)으로 도와주실 수 있나요?
한서호에 물음에 대신 답하는 댄.
—안타깝게도 저 친구들은 클래식 전공이 아니라서요.
—저도 오늘 클래식을 연주할 건 아니라서요.
그리고 편집점이 잡히며 연주가 시작되는 장면으로 넘어갔다.
클래식 기타를 튕기며 단숨에 빅밴드와 호흡을 맞추는 한서호.
멤버들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을 보며 댄은 맥주잔을 들이켰다.
장기가 얼어붙을 듯 시원해지는 것을 느끼며 그가 웃음을 흘렸다.
한편, 멤버들은 시선을 완전히 빼앗겨 맥주잔조차 더듬더듬 집으며 잼을 바라보았다. 입이 쩍 벌어지고 그것을 뒤늦게 깨닫고는 헛웃음을 지으며 혀를 내둘렀다.
“클래식과 재즈는 말이라는 것만 같을 뿐 언어가 다른 거나 마찬가지인데 저 정도 수준으로 연주한다고? 심지어 피아노도 아닌 기타를?”
“바이올린 연주하는 거 보면서 감탄했던 게 몇 년 전인데, 대체 어떻게 되먹은 천재인 거야?”
“당연히 사전에 얘기가 된 내용이겠지만 연주자들과 합주 연습은 몇 번 못했을 텐데······.”
그들의 감탄에 오류가 있었다. 댄은 얼른 그것을 수정해주었다.
“연습 안 했어. 그냥 단순한 즉흥 잼이었지.”
절레절레 흔들리던 고개들이 단숨에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눈을 큼직하게 뜨며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들.
“저게······예정된 게 아니라고?”
“그렇다니까. 갑자기 와서 코드만 알려주고 바로.”
차라리 음악에 대해 잘 모르거나, 어느 정도만 아는 이들이었다면 그러려니 했을 거다. 저게 어제 작곡한 거라고? 곡 좋네. 하고 말았을 테지.
하지만 한때는 음악만이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그들이었기에, 그리고 합주(合奏)라는 게 얼마나 난이도 높은 연주의 종류인지 뼈저리게 느껴왔던 그들이기에 방금 보여준 연주의 대단함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저게 심지어 연습조차 한 번 안 한 첫 합주라고?
“그런··· 무슨 잼이 저렇게 완벽하냐.”
“그러면 빅밴드가 엄청 대단하네. 한서호가 작곡해 온 곡이라며. 음악적으로 단순하지도 않던데 그걸 한큐에 제대로 합주한 거 아냐.”
“실력 있는 친구들이니까.”
툭 대답한 댄이 의미심장한 미소로 덧붙였다.
“그래서 끝나고 대단했다고 칭찬했더니 얼떨떨한 표정으로 놀라더라. 멱살 잡혀서 끌려가는 기분이었다고. 자기들이 기타로 지휘를 당한 것 같다고.”
“······.”
더는 생각나는 감탄사도 없는지 맥주잔을 기울이며 다시 방송에 집중하는 멤버들.
안주로 나온 케밥을 한 움큼 베어 물며 댄도 한서호의 인터뷰에 집중했다.
쇼가 이어질수록, 멤버들 사이에도 침묵이 이어졌다.
가끔 맥주잔을 들어 꿀꺽꿀꺽 넘기고, 탁 내려놓는 소리만 들릴 뿐. 모두가 인터뷰에 집중하고 있었다.
많은 생각들이 들어찬 얼굴들이었다.
가득 채워진 맥주잔을 들이키며 미소지었다.
그렇게 쇼도 막바지에 다다랐다.
그 속에서 댄이 물었다.
—오늘은 제가 호스트가 맞는지 잘 모르겠네요. 오히려 내 얘기를 많이 한 것 같아요. 그것도 과거 러스트였던 나에 대해서까지.
빙긋 웃는 한서호을 보며 댄이 큐카드를 들어 올렸다.
—이 질문은 원래 식상해서 빼는 편인데, 안 할 수가 없네요.
탁, 하고 큐카드를 덮은 그가 물었다.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합니다.
질문이 있어서 질문하는 것이 아닌.
정말 음악가 한서호에 대해 궁금해서.
그가 앞으로 무엇을 하려고 할지 궁금해 미치겠어서.
—당분간은······옛날 생각 좀 해보려고요.
—옛날 생각이요?
대단한 대답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
대단한 이의 대답은 그것만으로 대단할 테니.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김빠지는 답변이었다.
—초심을 되찾겠다 뭐 이런 건가요?
나름의 해석을 끼얹었다.
한편으론 자신 또한 매번 방송국 앞 케밥 집에서 옛날 생각을 하곤 하잖나.
그러나 한서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창한 건 아니고요. 음···체코 필하모닉의 지휘자이신 데이빗 마에스트로가 저와 함께 브리너 백작의 헌정곡을 찾은 것에 대해서 책을 내셨었거든요.
—알아요. 노인과 바다 비슷한 거였는데······.
—청년과 노인들이요.
—그래요, 그거.
—제가 그걸 읽고 신기해서 물어본 적이 있어요. 악보만 보면서 살았는데, 어떻게 글을 이렇게 잘 쓰셨냐고. 막힘 없이 술술 읽힌다고. 그랬더니 그러시더라고요. 쓰는 입장에선 매번 막힌다고.
—음악하고도 비슷하네요. 우리는 수 개월 동안 엎기도 하고 뜯어고치기도 하면서 오랫동안 만든 곡이지만, 듣는 사람에겐 3분, 4분, 길어야 수십 분. 딱 그 정도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또 궁금해졌어요. 막힐 때 어떻게 그걸 뚫고 나가는지.
댄은 바라보고 있다. 화면 속 자신의 표정을.
‘밀도 있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얼굴에 많은 생각들이 차곡차곡 쌓이는 게 보였다. 마치 지금 그의 옆에서 술을 마시는 멤버들이 그러한 것처럼.
—뭐라고 하시던가요?
—돌아가서 읽는다고 하셨어요.
—돌아가서 읽는다······.
—뭔가 막히는 게 있으면 처음으로 돌아가서 쭉 읽어보신대요. 그러면, 다음에 뭘 써야 하는지 알게 된다고.
더욱 밀도 있어진 댄의 표정을 바라보며 한서호가 말을 이었다.
—저도 그래 보려고요. 악장이 끝나버려서, 혹은 갑작스러운 도돌이표로 첫 마디까지 되돌아가 버려서. 그래서 멈췄던 길을······.
댄은 저 화면 속 순간을 선명히 기억한다.
대체 그 길이 얼마나 길었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던.
그 깊은 눈을 추억한다.
—돌아보려고요. 다음을 위해.
#
-과거 전설적인 음악가들이 만나서 대화를 하면 저런 느낌이었을까?
방송의 여파는 엄청났다.
이번 방송이 호프만 쇼의 최고 시청률을 갈아치웠다는 소식은 너무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다며 호스트와 게스트로서의 인터뷰가 아닌 진정한 음악가들의 대화를 옆에서 지켜본 것 같다는 희열 섞인 극찬이 뒤따랐다.
게다가 방송 마지막에 한서호가 했던 말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한서호는 자신의 다음 행보에 대해 어느 것 하나 정확히 말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엄청난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대체 이번엔 몇 년이나 걸릴까?
유일한 걱정은 그것뿐이었으나.
그마저도 몇 년이 걸리든 기다리겠다는 사람들뿐이었다.
“언제쯤 곡을 쓰실 생각인가요?”
따뜻한 홍차를 마셨다. 피어오르는 김 너머로 백한길 회장의 흐릿한 미소가 보였다. 그도 시청자 중 한 사람이었고, 내 다음 행보를 기다리는 이 중 가장 열렬한 팬이었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제 이야기가 완벽해지길. 제 이야기를 곡으로 쓰기엔 제 자신이 너무 불완전하다고 느꼈거든요. 슬프고 서러운 것들이 많아서.”
“그러셨군요. 그러면 어느 정도 완벽해진 것 같나요?”
그의 물음에 잔을 내려놓으며 답했다.
“꽤. 그리고 전혀.”
“······?”
의아한 표정을 짓는 백한길 회장.
내가 말을 이었다.
“몇 달 전에, 학생 중 한 명이 곡을 써왔더라고요. 심지어 자신에 대한 곡을요.”
“허허, 선수를 빼앗겼네요.”
“그렇죠. 제가 하고 싶었던 건데, 그 친구는 이미 시작했더라고요. 머릿속에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막힘 없이.”
“놀라셨군요.”
“많이 놀랐죠. 의아하기도 했고요. 대체 어떻게 자기 자신이 가장 쉽다고 할 수 있을까. 난 이렇게나 어려운데. 그래서 물어봤어요.”
이 음악의 피날레는 뭐예요?
나는 궁금했다. 내가 나에 대한 곡을 쓴다면, 그건 어디까지여야 할까.
브리너의 고통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어떻게 결말을 맞이해야 곡으로서 완벽할까.
그 질문에 대한 유채봄의 대답은 간단했다.
‘음악을 완성하는 순간의 저겠죠?’
언제 만들든. 언제 완성하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 말을 듣고 생각해 봤어요. 내게 내 자신을 곡으로 만드는데 완벽한 순간이 찾아올까.”
“······.”
“전 슬픔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그리움에서도 벗어날 수 없을 거예요. 그게 제 결말일 거예요. 그래서 제 음악은 결국 행복한 이야기가 될 수 없을 거예요. 지나간 시간들은 결코 돌아오지 않으니까.”
“백작님······.”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어요.”
나는 환하게 웃었다. 백한길 회장의 걱정어린 시선에 대한 화답이 아닌, 바뀐 내 생각에 대한 화답으로.
“평생 옛사람들을 그리워하고, 그 아쉬움을 지금 옆에 있는 사람들한테 풀면서 살 거예요. 그래도 부족하겠죠. 오히려 지금 행복한 게 아실리나 전생의 부모님께 죄스러운 순간도 오겠죠. 그리고 그 감정들이······. 음악이 되어 다른 이들에게도 영감으로 전해지겠죠.”
꼭 음악적 영감이 아니라.
미술이나 시와 같은 예술적인 것도 아니라.
누군가에겐 퇴근 후 가족을 바라보는 눈길에서.
누군가에겐 잠깐 만난 친구와의 대화에서.
그런 영감들이 태도에 녹아 전해질 테니.
“그래서 써보려고요. 그만 망설이고.”
유채봄이 내게 전한 영감이, 나의 태도에 녹아 백한길 회장에게 전해졌다.
그가 천천히, 하지만 어느 때보다 화사하게 웃는다.
“그 곡, 제목은 정하셨나요?”
“아뇨. 하나 정해주실래요? 제가 작명 센스는 좀 없는 것 같아서.”
푸스스 웃음을 흘린 백한길 회장이 말했다.
“제가 마침 방금 전에 하나 떠오른 게 있는데······.”
“오, 뭔데요?”
얼른 자세를 고쳐앉으며 묻자, 백한길 회장이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인다.
잠시 뜸을 들이던 그가 나직하게 말했고.
그의 대답을 들은 나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다시 읊조릴 정도로.
“Da capo al fine.”
처음으로 돌아가······.
피날레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