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RAW novel - Chapter 54
054. 베이노프 심포니 (1)
······장 오슬로는 한서호의 지난 무대를 기억한다. 그것도 아주 생생하게.
그가 지닌 음악적 재능의 한 부분이었다.
며칠 전의 무대이든, 몇 년 전의 연주든 아주 자세히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명확히 단정 지을 수 있었다. 그 사이, 저 아이의 실력이 한보 나아갔다는 걸.
불과 며칠 사이에 체감될 정도로 실력이 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랬다면 누구도 연습을 지루해하지 않았겠지.
역시, 대단한 재능.
“······.”
하지만 그가 주목하는 건 한낱 재능이 아니다. 자신도, 그리고 제자도 저 정도 재능은 있으니까.
재능을 뛰어넘는··· 아니, 재능과 궤를 달리하는 것에 흥미로워하고 있다.
자신조차도 결국 내지 못했던 스승의 정취. 그것보다도 더욱 짙은 감성을 마주한다.
분명 스승은 그것마저 욕심내는 자신에게 말했다.
사람은 각자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시대가 다르다고. 그렇기에 결코 따라 할 수 없는 감성도 존재하는 거라고.
결국, 장은 스승을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지만, 스승이 가진 그 고유의 정취만은 넘을 수 없었다.
스윽-.
흘러내리는 머리칼을 쓸어 넘긴다.
어느새 손끝에 느껴지는 물기가 헛웃음을 짓게 했다. 결코, 따라 할 수 없었던 감성을 보란 듯이 자아내는 저 소년의 연주가.
-.
그가 보기에 바이올린에 몸을 맡긴 한서호는 분명, 뒤를 돌아보고 있다.
실제로 그렇다는 게 아니라 음악적으로 그래 보였다.
자신의 스승. 그보다 더 오래된 감성을 그려내고 있었다.
‘대체 무엇을 떠올리며 연주하는 거냐.’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연주자는 그저 과거를 바라보는데,
음악은 끊임없이 나아가고 있으니.
#
갈라쇼마저 끝나며, 차이코프스키 콩쿠르는 완전히 막을 내렸다.
내게 남은 건 트로피 두 개와 상금 4600만 원 (- 우승 2600만 원 + 준우승 2000만 원), 그리고 수많은 영감과 내가 영감을 주었다는 뿌듯함까지······.
‘생각보다 엄청 많잖아?’
푸스스 웃으며 머릴 긁적였다.
콩쿠르를 나가기 싫어했던 게 조금 민망할 정도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데, 앞서가던 일행에게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튀어나왔다.
“즐거웠다.”
그가 끌고 가는 호피 무늬 캐리어가 시선을 잡아끈다.
SJ 문화재단 양가호 대표.
불과 반년 전까지만 해도 도둑놈 보는 듯하던 눈빛이 이젠 온화하다.
“뭐 더 필요한 건 없고?”
고갤 저었다.
“호텔 스위트 룸을 끊어주셨는데, 뭘 더 바라면 진짜 도둑놈이죠.”
“넌 원래 도둑놈이었잖냐. 아직도 네게 보낸 스타인웨이 자리가 텅 비어있다.”
“얼른 다른 거로 채우셔야겠네요. 새로운 모델 나왔다던데.”
“안 그래도 회장님 꼬시는 중이다.”
능글맞게 웃던 양 대표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간다.
“그래도 네 덕분에 느낀 바가 많아. 악기는 연주될 때 진짜 빛난다는 말. 듣기론 수없이 들었지만, 실제로 와 닿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어. 과르네리가 네 품에서 빛나더라.”
말을 맺은 양 대표가 짙은 미소를 유지하며 고갤 돌렸다.
“······잘 들으셨죠?”
“네?”
지켜보던 최성령 기자가 갑작스러운 말에 벙벙하니 물었다.
“지금 이 장면을 기사에 슬쩍 넣어주시면 아주 좋을 것 같은데.”
“아······.”
잠자코 지켜보던 내가 헛웃음을 흘리자, 제 발 저린 그가 덧붙인다.
“아니, 뭐. 나 SJ 문화재단 대표잖냐. 틈틈이 홍보에 힘써야지. 아, 물론 얘기한 건 모두 진심이었다.”
급정색하며 진심이라고 말하기에 알겠다며 웃었다.
그 사이, 우리는 출국 게이트에 도착했다.
“아무튼, 간다. 여기까지 나와줘서 고맙다. 한국에서 또 보자.”
“네, 한국에서 뵈어요.”
손을 휘적이며 직원과 함께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는 그.
인파에 완전히 가려지자 최성령 기자가 슬쩍 말했다.
“······신기한 분이시네.”
“제 주변에 좀 그런 분들이 많아요.”
···전생과 마찬가지로.
돌아서며 최성령 기자가 묻는다.
“으아, 나도 곧 회사로 출근이구나~. 넌? 이제 며칠 쉬고 이제 대망의 베이노프 심포니 합류인 거야?”
“쉴 수 있을까요? 아버지 통해서 인터뷰 요청이 엄청 들어오던데요.”
“너무 다 할 필요는 없어.”
“기자님이랑은 하고요?”
“흐, 그럼 너무 좋고~.”
음흉한 웃음에 덩달아 웃고서,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음악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언론하고는 인터뷰를 좀 하려고요. 아버지 회사 사정도 있고, 저도 음악 얘긴 즐거우니까.”
“쩝. 나만 알던 음악가가 이젠 너무 유명해져 버렸어.”
“그게 누구 때문이겠어요.”
“콩쿠르에 참가한 너?”
기사 때문이라고 말하려는데 말문이 막혔다.
최성령 기자가 전광판에 떠오른 자신의 비행기 시간을 체크하며 덧붙였다.
“난, 그냥 재능있는 천재를 알아본 것뿐?”
“유능하셨네요. 잘 숨어 있었는데.”
능글맞게 받아치자 최성령 기자가 크게 웃는다. 그러다 갑자기 입을 벌리며 뭔가 떠오른 듯한 반응을 보였다.
“아, 생각났다.”
“음? 갑자기 뭐가요?”
“지난번에도 이런 비슷한 생각을 한 적 있었거든. 내가 천재를 알아봐서 다행이라고.”
“하하···.”
“그때 생각 안 나던 이름이 있었는데, 방금 떠올랐어.”
“이름이요?”
“응. 슈베르트있지? 마왕을 작곡한. 옛날에 그를 후원했던 후원자 중에 꽤 유명한 백작이 있었거든. 그래 봤자 후원자치고 유명한 거라 넌 잘 모르겠지만.”
“······.”
말없이 기다리자, 최성령 기자가 덧붙인다.
“아마··· 브리너. 브리너 프리드리히였던 것 같아.”
#
[브리너 프리드리히]이름을 검색해놓고 잠시 뜸을 들이다 마우스 휠을 긁어내렸다.
이미 몇 번이고 본 내용이었다.
그런데도 처음 이걸 검색했었을 때처럼 여전히 기분이 묘하다.
볼프강이 음악으로 누군가의 영감이 되어 기억되는 동안, 내 이름은 편지들로 전해지고 있었구나······.
“응? 그 사진···.”
그때 커피를 한 잔 내려 뒤쪽을 지나치던 엄마가 멈춰섰다.
내 화면엔 바덴바덴의 고성이 연관 이미지로 떠올라 있었다.
“우리 갔던데 아니야?”
내가 끄덕였다.
“맞아요.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단 생각이 들어서요.”
“그때 재밌었지. 언제 한번 다시 가 봐. 여행도 같은 곳을 다시 가면 또 다른 게 보이기도 한다더라.”
독일을 무슨 옆집 말하듯 하는 엄마를 보며 피식 웃었다. 하긴, 젊었을 적 엄마는 유럽 여행을 몇 번이나 했을 정도로 여행을 좋아하셨댔지.
그런 분이 결혼하고 12년 만에 해외여행을 갔으니······.
‘아버지가 혼나실 만도 했었네.’
벌써 6년이나 지난 기억이지만, 여전히 생생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여행이었지. 회귀에···전생에···.
그 사이, 엄마가 더욱 신나서 말한다.
“그 바이올린 공동 준우승한 친구랑도 친해졌다며, 간 김에 프랑스도 들리고··· 아예 졸업하면 배낭여행으로 가도 좋겠네.”
나는 그런 엄마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다시 화면 속, 내가 살았던 고성을 바라본다.
“···그러게요. 그럼 좋을 것 같아요.”
#
한편, 파리로 향하는 비행기 안.
레오 뒤보셸은 언뜻 보기엔 편한 표정이었지만, 은근히 옆을 신경 쓰고 있었다.
베일 듯한 콧날을 자랑하며 곧은 자세로 눈을 감고 있는 장 오슬로.
자신의 스승을 힐끔힐끔 바라보던 레오가 이윽고 그가 눈을 슬며시 떴을 때 조심스레 물었다.
“······실망하셨어요?”
그러자 오히려 질문이 되돌아왔다.
“넌 실망했냐.”
레오는 잠시 고민한다. 하지만 이내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아뇨.”
“나도 그래.”
장이 느릿하게 끄덕였다.
그다음엔 조금은 무거운 얘길 꺼내 들었다.
“하지만, 앞으로 네가 프랑스에서 만나게 될 이들은 다를 거다. 준우승만으로 박수를 보내는 이들도 있겠지만, 3대 콩쿠르 우승 어쩌고 하더니 쌤통이란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분명히 있을 거야. 특히 일부 기자들은 보고 싶은 것, 자극적인 것만 보려 하겠지.”
“네···.”
살짝 풀이 죽은 듯한 레오에게 그가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럼에도 주눅 들지 마라. 그럴 이유가 전혀 없어.”
장이 날카로운 얼굴로 부드럽게 웃었다.
“넌 분명히 콩쿠르에서 성장했으니.”
······비행기에서 내리자 기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VIP 통로로 벗어나는 방법이 있었지만, 장은 숨을 이유가 없다며 레오와 함께 당당히 게이트로 나섰다.
거세게 쏟아지는 질문들에 레오가 정신을 못 차리자, 지켜보던 장 오슬로가 나섰다.
“지금부턴 제가 좀 답해도 될까요?”
기자들은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잘됐다는 듯 민감한 질문을 추가하기 시작했다.
“직접 가서 보신 한서호는 어땠습니까?”
“···훌륭한 연주자였습니다.”
“한서호에게 제2의 모차르트라는 별명이 붙고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모두 잘 다루는 그 아이라면, 잘 어울리는 별명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레오는 제2의 살리에리가 되는 겁니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이전엔 어떤 이력도 없는 참가자와 공동 2등이란 건, 사실상 패배나 마찬가지 아니냐고 물었던 기자.
무례하기 그지없는, 질문이라 보기도 어려운 조롱이었다.
이에 몇몇 기자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아뇨. 레오는······.”
하지만 장은 호수 한가운데의 물결처럼 평온한 얼굴로 답했다.
“제1의 뒤보셸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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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
한국에 도착해 짐을 풀던 김세진에게 다가온 남자가 말했다.
김세진의 아버지이자, 과거 그리 유명하지 못했던 피아니스트.
“다시 재정비해서 열심히 해보자. 괜찮은 거지?”
“네. 저 괜찮아요.”
김세진이 악보들을 정리하며 답했다.
옆에 선 아버지는 그럼에도 말을 이어간다.
“그래. 의기소침할 필요도 없어. 어차피 차이코프스키 콩쿠르는 연습일 뿐이었다.”
“···아버지, 저 괜찮아요.”
“그래! 괜찮아야지. 이제부턴 자잘한 콩쿠르들은 다 생략하고 오로지 쇼팽 콩쿠르만 준비해서··· 거기선 이기면 돼. 그러면 언론의 관심도 다시 네게로 올 거다. 아, 그리고 아무래도 새로운 선생을 구해야겠어. 너랑 잘 안 맞는 것 같다. 그리고 또······.”
독기 어린 눈빛으로 말을 쏟아내는 아버질 보며 김세진이 중얼거렸다.
“······아버지가 안 괜찮으셨네요.”
“뭐?”
“골방에 갇혀 연습하는 건 그만하려고요. 최대한 많은 콩쿠르를 경험할 생각이에요.”
“세상은 이름 있는 콩쿠르만 인정해준다. 어줍잖은 곳 나가서 우승하는 건 아무 의미 없······.”
“의미는 제가 찾을게요.”
김세진이 단호하게 말했다.
아버지의 말을 거역하는 건 처음이었지만, 필요하다고 느꼈다.
연습만이 능사가 아니다.
이젠 나가서 보고 느껴야 한다.
그 모든 과정에서 배우는 게 있을 테니까.
······그게 이번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을 통해 배운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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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로비로 내려가자 손을 휘적이는 임진규가 보였다.
“잘 쉬고 있어?”
“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이세요?”
“혼자 있다길래 밥도 같이 먹을 겸, 해줄 얘기도 있어서. 근데 부모님은 어디 가셨는데?”
“아버지 내일 한국으로 돌아가시거든요. 그래서 어머니랑 데이트하러 가셨어요. 제가 눈치껏 빠져드렸죠.”
“센스 있는 녀석.”
임진규가 피식 웃으며 자신의 차로 향했다.
조수석에 앉자, 그가 천천히 차를 움직이며 물어왔다.
“우승하니까 아버지가 많이 자랑스러워하시지?”
“음······ 아뇨?”
“응?”
의아한 물음에 내가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그런 게 아니어도 늘 자랑스러워하셨거든요.”
우승하기 전부터. 아니, 내가 회귀하기 전부터 아버지는 그랬다.
수능을 보러 들어갈 때도, 대학에 떨어졌을 때도, 합격했을 때도, 취직에 실패했을 때도, 성공했을 때도, 항상 내게 자랑스럽다는 말을 해주셨었지.
그렇기에 잘 알고 있다. 아버지의 자랑스러움은 조건부가 아니었다는 걸.
“역시 멋지시네.”
임진규가 자신도 그런 아버지가 되고 싶다며 웃는다.
그 사이 그가 자주 찾는 식당에 도착했다.
음식을 주문한 그가 물을 홀짝이며 내게 말한다.
“나한테도 널 찾는 연락이 왔어.”
“기자분들한테요?”
“아니, 스타인웨이.”
···응?
너무 의외의 이름이라 자연스레 고개가 기울었다.
“피아노 브랜드요?”
“그래, 그 스타인웨이.”
“거기서 절 왜요?”
임진규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답한다.
“축하 인사하려고?”
“에?”
“하하. 물론 그것만은 아닐 거야. 보통 이렇게 콩쿠르 우승자에게 연락을 하는 경우엔 분명······.”
어느새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운 임진규가 덧붙였다.
“널 ‘스타인웨이 아티스트’로 임명하고 싶은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