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209
209화
우리의 레드카펫 순번은 공승조 감독 팀 다음 차례였다.
“나 잘하고 올게!”
턱시도를 앙증맞게 차려입은 남연수가 내게 와서 파이팅을 건네고 갔다.
그 사이 귀신같이 남연수에게 같이 입장하는 건 나라며 약 올리는 김선우를 말려야 했지만.
레드카펫 입구에 서서 잠시 대기 중인 우리는 온몸으로 공승조 감독의 위상을 실감 중이었다.
팀이 입장하기 전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배우들이 우르르 들어갔었다.
그런데 공승조 감독은 앞선 유명 배우들, 할리우드 감독들보다 더한 관심을 받았다.
주연 배우들보다 뒤늦게 들어간 공승조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환호 소리에 여유롭게 인사도 해주며 포토존으로 올라갔다.
그들이 포토존 앞에서 플래시 세례를 맞을 때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다.
“자, 잘하자!”
“감독님이 제일 걱정이네요.”
“정 안 되겠다 싶으면 그냥 저희를 쳐다보세요.”
임수호를 제외한 우리는 웃으면서 속닥이며 레드카펫에 올랐다.
그런 우리를 향해 검은 정장을 입은 기자들이 하나같이 플래시를 터뜨렸다.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다른 영화제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국제 영화제의 레드 카펫 행사 정도가 되니 공식 석상이라 차려입고 오는 기자들이 많기는 했다.
다만, 밀라노 국제 영화제는 처음부터 참석하는 모든 이들이 정장을 갖춰 입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여배우들은 이브닝 드레스와 구두가 필수로 여겨질 정도로 엄격한 룰이었다.
복장이 주는 특별함이 있는 것일까.
이번에는 세계적인 영화제를 초청받아 온 것이라 심정이 다른 걸까.
매번 받았던 것인데도 터지는 플래시가 참 기분이 좋았다.
“형.”
나는 김선우를 불러서 한쪽 손을 구부려 반쪽 하트를 만들었다.
내 모습을 보고 김선우도 금세 내가 하고자 하는 걸 알아채고 한쪽 손을 구부려 한시우에게 갖다 붙여주었다.
구부정하게 내게 허리를 굽혀준 김선우는 카메라를 바라보며 활짝 웃고 있었다.
그런 우리 둘의 모습에 셔터 소리가 더욱 빗발쳤다.
역시 척하면 척이다.
김선우도 이런 관심을 즐기는 스타일이니 이런 걸 좋아할 줄 알았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며 나는 마저 레드카펫을 가로질렀다.
“이번에는 손 하트?”
“좋지.”
우리 두 사람은 그 뒤로도 능숙하게 레드카펫에서 포즈를 취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척척 포즈를 취하는 우리 두 사람이 흥미로웠는지 우리를 잘 모를 것이 분명한 외신 기자들도 우리에게 아낌없이 플래시를 터트려 주었다.
레드카펫은 이래야지.
아직 우리에게 관심이 없다면 관심을 갖게 만들어주면 그만이었다.
“후, 하. 후, 하.”
그 와중에 혼자 양손으로 하트를 하고 있는 로봇 같은 임수호의 모습이 보였다.
우리 둘은 임수호를 보고 웃음 참기 위해 상당히 노력해야 했다.
기자들은 들을 수 없겠지만, 상당히 가쁜 숨을 몰아쉬는 게 고장 난 로봇 같았다.
***
밀라노 국제 영화제 개막식이 끝난 후, 호텔에서 한바탕 씻고 숨을 돌렸다.
그러자 룸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어, 시우야! 다 씻었어? 내 방으로 건너와!
내 룸번호를 알려줬더니 남연수가 전화를 해온 것이다.
아까 개막식 행사가 끝나고 만나기로 했었기에 나는 알았다며 머리를 마저 말렸다.
“삼촌! 나 연수 형 방에 다녀올게.”
“어, 그래라.”
밀라노에서 나는 삼촌과 함께 큰 방에서 묵기로 했다.
아직 어머니가 나 혼자 방을 쓰는 건 걱정된다고 하셨기에 선택한 방법이었다.
덕분에 큰 룸이라 욕조도 붙어 있어서 내가 먼저 씻고 난 뒤, 삼촌은 반신욕을 하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형. 나야.”
내가 문을 두드리자 남연수가 벌컥 문을 열었다.
“얼른 들어와!”
“이게 다 뭐야……?”
남연수도 막 씻었는지 발갛게 물든 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창문 바로 앞 테이블에 뭔가가 잔뜩 차려져 있었다.
“우리 저녁 제대로 못 먹었잖아. 룸서비스 시켰어.”
“와…… 많이도 시켰다.”
“에헤헤. 우리 둘이 먹을 거잖아.”
남연수는 망설임 없이 오자마자 룸서비스를 주문해놨다며 웃었다.
이른 나이부터 활동을 해서 그런가.
아니면 호텔에서 이런 걸 많이 시켜본 건가.
나는 그래도 나가서 먹을 생각을 하는데 남연수는 룸서비스가 더 편하단다.
이미 시켜놓은 거, 나는 사양하지 않고 맛있게 먹었다.
샌드위치와 간단한 스프와 샐러드였지만 하나같이 신선하고 따뜻해서 잔뜩 먹어버렸다.
“와, 너무 배불러.”
“거봐. 우리 둘이면 이거 다 먹는다고 했지?”
아까 들어와서 봤을 때는 양이 상당하다고 생각했는데.
남연수가 장담한 것처럼 둘이 먹으니 뚝딱 해치울 수 있었다.
우리는 착즙 주스를 들고 테라스에 나갔다.
시원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난간 밖으로 보이는 두오모 대성당 야경을 바라보았다.
늦은 밤 시원한 밤공기에 젖어 밖을 보던 남연수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 이러고 있으니까 찍을 때 같다. 그때 시우랑 영국에 가보고 나서, 꼭 다시 너랑 해외여행 오고 싶었다?”
“그래?”
“응! 그래서 사실…… 공승조 감독님 영화 오디션부터 기대했어. 어쩌면 영화제에 오게 되지 않을까… 하고. 근데 진짜 오게 될 줄이야. 그것도 너랑 함께. 내 소원 두 개가 동시에 이루어졌어!”
“나도 설마 임 감독님 영화로 여기 올 줄은 몰랐어.”
“그건 그렇지.”
어찌 보면 세계적인 영화제를 포기하겠다는 마음으로 도전한 영화였는데, 결국에는 오게 되었다.
새삼 다시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긴 하다.
“이 정도면 운명 아니야?”
남연수는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오늘따라 낯간지러운 말도 잘한다고 생각하며 주스를 마셨다.
오랜만에 이렇게 낯선 곳에 와서 여행을 하더니 많이 들뜬 모양이구나 싶었다.
그러다 조금 우물쭈물거리던 남연수가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있잖아, 시우야…….”
“응?”
또 무슨 소리를 하려고 이러나 싶어서 무심하게 대꾸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무거운 내용이 튀어나왔다.
“나 사실, 시우 너랑 조금 멀어지는 건 아닐까 걱정했어.”
“……뭐? 왜?”
나는 정말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크게 눈을 뜨고 되물었다.
한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지.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지금 남연수의 말이 딱 내게 그런 소리였다.
“네가 계속 해외에 왔다 갔다 하지, 나는 계속 국내 활동만 하지. 시차가 다르니까 전화도 못 하고. 조금씩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거든. 나는 정체되어 있는 게 아닐까. 너만 계속 올라가는 것 같아서 불안했어.”
“…….”
“그런데 이렇게 같이 초청받아서 오게 되니까 되게 좋은 거 있지?”
몰랐다.
하지만 남연수의 심정을 얼핏 알 것 같았다.
내가 앞서가는 것이 질투에 대한 불안감이 아니리라.
그저 함께 나란히 서고 싶은 애정으로부터 비롯된 마음일 것이다.
“공승조 감독님 영화에 출연하면, 조금 더 시우 너랑 걸맞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했는데…… 조금은 성공한 것 같아서 다행이야. 오디션 진짜 열심히 하길 잘했어.”
“뭐야. 형은 지금 그대로도 멋,”
지다고 말하려는데, 남연수가 급하게 나를 끌어당겼다.
“억, 켁.”
“봐, 시우야! 별똥별이야!”
남연수의 외침에 가리키는 곳을 보면 진짜 별똥별이 떨어지고 있었다.
“빠, 빨리! 빠르게 소원을 빌어야 해. 알았지? 소원은 한 문장이어야 해!”
남연수는 급하게 외친 후 눈을 감고 두 손을 꼭 모았다.
옆에서 남연수의 조용한 중얼거림이 들렸다.
“다음에는 시우랑 같은 작품으로 오게 해주세요…….”
항상 하는 말이라 이제 놀랍지도 않았다.
나도 남연수를 따라,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한 문장이면…… 소원 하나인 거겠지.
남연수가 당부한 말을 떠올린 나는 속으로 소원을 읊기 시작했다.
빨리하라고 했으니까 마치 랩을 하듯이.
‘가족 다 만수무강하게 해주시고, 희희치킨 프랜차이즈가 번창하게 해주시고, 노백찬 할아버지 건강이 좋아지게 해주시고, 올해는 키가 더 많이 커서 액션 영화도 한번 찍게 해주시고…….’
그렇게 열심히 소원을 비는데 나는 절대 눈을 뜨지 않았다.
“시우야, 다 빌…….”
먼저 눈을 뜬 남연수는 내가 소원을 다 빌 때까지 기다려줬다.
그런데 내가 언제까지고 눈을 안 뜨니까 어이없다는 듯이 물었다.
“언제까지 비는 거야……?”
그러나 나는 대답 없이 두 손을 여전히 꼭 모으고 있을 뿐이었다.
가만 좀 있어 봐.
내년에 연수 네가 좀 더 성장했으면 하는 소원도 빌어야 한단 말이다.
내가 죽어라고 눈을 안 뜨자 남연수가 아련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시우야…… 도대체 소원을 얼마나 비는 거야…….”
남연수의 중얼거림에도 꿈쩍도 하지 않고 두 손을 모았다.
아직 안 끝났으니 건드리지 말아라.
난 속으로 숨도 안 쉬고 한 문장을 완성해나갔다.
***
밀라노 국제 영화제에서의 ‘몽블랑을 올라블랑’ 첫 상영회를 하는 날.
밀라노 영화제 극장 안에는 수많은 영화인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은 아직 세계적으로 이름이 없는 감독들과 배우들의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다.
밀라노에 초청됐다고 하나, 임수호가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졌을 리 없었다.
국내 활동만 한 김선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에서 나만이 다이너마이트와 블루 플레임에서의 파격적인 인터뷰로 이름값 있었다.
내심 첫 상영회인데 관객이 적으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웬걸, 역시 세계 3대 영화제라는 이름값에 걸맞게 모든 객석이 꽉 차 있었다.
유명하고 이름난 작품들도 많지만, 밀라노 영화제까지 온 것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니까.
이름나지 않은 작품들에 대한 흥미도 잃지 않는 이들은 진정한 영화의 팬들이었다.
그만큼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 의식과 흥미가 넘쳐나는 곳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차 거세졌다.
영화에 출연한 우리는 맨 앞자리에 앉아 상영시간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이미 한번 본 건데 되게 떨린다.”
“형도 그래? 나는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딱, 딱딱…….
옆에는 딱따구리가 앉아 있는 것처럼 임수호가 벌벌 떨고 있었다.
영화가 끝나기 전까지 덜덜 떠느라 부딪히는 그의 이빨이 무사할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너무 재밌는 제목이네.”
“판타지 영화라는데?”
“밀라노에서 즐기는 판타지 영화라 어떤 내용일까?”
관객석이 가득 차면 찰수록 자리를 채운 사람들의 수다 소리가 전해졌다.
하나같이 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는 말들이었다.
나는 소곤소곤 임수호에게 그런 그들의 말을 다 통역해주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임수호는 딱딱 소리도 못 낼 정도로 긴장해서 굳어만 갔다.
“하하, 시우야. 이제 그만해. 감독님 기절하겠다.”
“아니, 나는 궁금할까 봐 그랬지.”
나는 임수호를 괴롭히는 걸 그만두고 자리를 고쳐 앉았다.
나 역시 긴장되는 마음에 장난을 치는 중이었다.
지금 느끼는 긴장감은 불안한 긴장이 아닌 설렘과 긴장이었다.
여기의 사람들은 이것을 어떻게 볼까.
처음으로 외부로 유출하는 영화인만큼 그만큼 설렘이 크다.
우리 뒤에 앉아 있는 이들의 표정은 어떨까.
슬쩍 뒤를 돌아보자 진중한 표정의 관객들이 눈에 들어왔다.
“시, 시작한다!”
나와 김선우, 임수호도 함께 눈을 맞추고 서로 응원하듯 눈빛을 주고받았다.
곧 극장의 불이 꺼지고 상영회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