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3
3화
언어는 못 알아들어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저 상자 속의 사람들이 배우라는 걸.
그렇다면 이 집도 꽤나 잘 사는 집이라는 소린가?
-이를 어쩐다? 이미 기일이 지났는데.
-······이렇게 나오시겠다? 내가 지금까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이봐, 사업에 사적인 감정 끌어들일 거야? 아마추어처럼?
1572년, 엘리자베스 여왕이 영국의 배우들을 엘리자베스 칙령에 의거해 법률적 직업으로 인정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거리의 부랑아 취급을 받던 배우들은 그때부터 서서히 귀족들의 후원을 받으며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이후 지체 높은 귀족 가문에서는 연극배우들을 후원하는 것이 일종의 문화처럼 자리 잡았다.
유행의 선두주자였던 우리 바텐베르크 공작 부인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덕분에 바텐베르크 성은 항상 연극배우들이 드나들며 최신 연극을 선보였다.
물론, 내가 항상 그 연극을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매일 이토록 많은 이들을 초대하실 수 있단 말인가.’
솔직히 이렇게 좁고 낡은 집을 보자면 매치가 안 되긴 했다.
그럼에도 이쪽 문화권은 조금 특별한 주거 생활을 가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 본다면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었다.
저 배우들이 대체 어디에서 연기 중인 건가.
눈앞에 있다기에는 조금 작은 것 같은데.
거울이든 뭐든 사용한 기행을 벌인 것 같다만, 일단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배우가 존재하고, 극이 존재한다.
그 사실만이 내 가슴을 요동치게 만들고 있다.
-양자택일하시지. 당장 대금을 가져오든가, 아니면······ 뭐라도 내놓아야 하지 않겠어?
-이게 아까부터 듣자 듣자 하니까···!
그리고 놀라운 사실.
지금이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시대가 그런 것인지, 아니면 이곳 문화권이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여자 배우가 꽤나 많았다.
‘그렇지, 이거지! 이게 맞는 거지!’
나도 모르게 고사리 같은 손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내가 오스카 극단에서 활동했던 시절, 여자 배우들은 무대에 설 수조차 없었다.
대부분 여자 배역은 아직 변성기가 오지 않은 어린 남자 배우들에게 돌아갔다.
그런데 이곳은 여자 배역은 모두 진짜 여자들이 맡아서 연기하는 게 아닌가!
‘이곳이 어딘지는 몰라도 아주 정신이 제대로 박혀 있군.’
크게 고개를 주억이며 나는 오늘도 작은 상자 속 배우들의 연기에 집중했다.
-짜악!
-어디서 겁도 없이 나한테 손을 대!
그렇지!
통쾌하다.
시원시원한 배우의 액션에 나는 손뼉을 짝짝 쳤다.
대사는 알아들을 수 없지만, 충분히 고양감이 차오른다.
무성극이라 생각하면 그만이다.
“꺄우! 우!”
“시우야, 지금 저 대사를 다 알아듣는 거니?”
옆에서 과일을 먹던 아버지가 놀라서 묻는다.
알아들을 수 있을 리가.
“우아?”
“하하, 하···. 그렇지. 그럴 리가 없지.”
힘없이 중얼거린 아버지는 과일을 집어 먹었다.
나는 아버지가 조용해진 것에 만족스러워하면서 즐겁게 다음 공연에 집중할 수 있었다.
***
“마마, 리모꼰!”
“으응? 시우야 TV 또 보게?”
“아까 밥 다 머꼬. 나 이제 바도 대.”
어머니, 아까 밥 먹고 나서 다시 봐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하고서 척 작은 상자, 텔레비전이라는 물건을 가리켰다.
격식을 차린 나의 말에 어머니는 웃으면서 리모컨을 건네주셨다.
내 새로운 이름은 한시우.
이제 막 2살이 된 나는 이제 한국어라는 부모님의 모국어를 대충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어쩐지.
아무리 머릿속을 뒤져도 알 수 없는 언어라고 했다.
동양의 나라일 줄이야.
먼 바다 건너라고 생각해서 별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나쁘지 않은 문화권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그러지 마라, 초희야. 너는 나한테 이러면 안 돼! 알아들어?
-왜! 왜 안 되는데!
-···내가 네 애비다.
-뭐, 뭐라고······? 이, 이 천하의 나쁜 놈아!
실로 충격적인 전개다.
“아쁘 놈!(나쁜 놈!)”
순간적으로 소중한 리모컨을 집어 던질 뻔했다.
후, 진정해야지.
바텐베르크 공자가 이런 사사로운 일에 감정이 격해지면 안 되니까.
하여튼, 이 한국이라는 나라가 보여주는 공연의 전개는 실로 충격적이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이야기 전개.
이런 식으로 모두를 감쪽같이 속인 반전의 반전.
셰익스피어조차 지금 이 작품을 본다면 눈을 반짝일 것이 분명했다.
“시우야, 또 이렇게 침 흘리면서 보고 있어. 드라마가 그렇게 재밌어?”
“아니야!”
“응? 재미없다고?”
아이참, 그게 아닙니다 어머니.
어떻게 이 작품이 재미가 없을 수가 있겠습니까.
영 맥을 짚지 못하는 어머니의 모습에 붕붕 고개를 크게 저었다.
“띰! 아니야!”
“으응? 아, 침 안 흘렸다고?”
“으웅!”
그래, 그겁니다! 어머니!
아무리 몸이 어려졌다고 해도 수많은 예절 교육을 섭렵한 제가 그런 추태를 보일 리가 없지 않습니까?
“아, 알았어. 우리 시우 다 컸다 이제. 그치?”
“으웅!”
척, 당당하게 양손을 허리에 짚고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제 발로 설 수 있으니 다 됐습니다.
다 큰 성인인 제가 앞으로 어머니 손 탈 일 하나도 없게 만들어 드리죠.
찰칵.
그때였다.
“아, 마마!”
“아니 시우 네가 너무 귀엽길래. 일하고 계신 아빠한테도 보내드리자.”
“씨이······.”
저건 핸드폰.
내가 금방 외운 단어 중 하나다.
요즘 들어 가끔 어머니가 자꾸 나를 그 핸드폰으로 찍어대서 아주 골치였다.
사진이라고 하나?
어머니가 요새 푹 빠진 취미 중 하나였다.
휴, 어쩔 수 없지.
생글거리며 핸드폰을 이리저리 누르고 있는 어머니의 어깨를 톡톡 쳤다.
“머, 한 번 바바.”
“시우도 보여줄까?”
핸드폰에는 늠름한 자태로 거실 한복판에 서 있는 내가 찍혀있었다.
아, 이 문화권에서는 이런 곳을 응접실이 아니라 거실이라고 부른단다.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라야 하는 법.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바로 그 단어도 외워주었다.
일단 사진은 뭐, 봐줄 만하네.
“괘차나.”
“맘에 들어?”
“아니.”
봐줄만 한 거지, 만족스러운 정도는 아니다.
사진인지 뭔지 귀찮아 죽겠다.
원래 내 빼어났던 미모를 생각하면 아직 새 발의 피 정도인데 말이다.
“마마.”
“응?”
“이로케?”
그러니까 마음에 들 때까지 제대로 한 번 찍혀줄 생각이었다.
“우리 시우, 아빠한테 더 이쁜 사진 보내주자고? 자, 여기 보세요. 하나, 둘!”
찰칵.
***
“이거 어디에 둘까요?”
“이 박스들은요?”
“전부 저 작은 방에 몰아넣어 주시면 돼요.”
화창한 아침.
시간이 흘러 올해로 다섯 살이 된 나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나는 졸린 눈을 비비고서 거실 소파에 몸을 앉혔다.
그런데 웬걸, 리모컨을 채 잡기도 전에 얼른 세수부터 하라고 화장실로 쫓겨났다.
여기까지는 그러려니 했다.
몸과 마음을 경건히 하고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게 예의에 맞는 일이니까.
이제는 저 텔레비전이라는 것이 진짜 배우들이 들어 있는 게 아니란 것을 알고 있다.
한번은 끝내주는 연기를 펼치는 한 배우에 감탄을 금치 못한 적이 있었다.
극이 끝난 뒤 얼른 달려가, 사라진 그 배우를 큰 소리로 부른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배우가 내 말을 무시한 건지 다시 안 나타나는 게 아닌가!
“으아아아앙!!”
이 바텐베르크 공자의 말을 무시하다니.
한국이라는 나라는 정말 무지몽매한 곳이라는 생각에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서러운 마음에 작은 상자를 쾅쾅 치며 울고 있자니 어머니가 달려오셨다.
그리고 듣게 된 충격적인 사실.
이 안에는 실제 배우들이 들어 있지 않단다.
무슨 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공연된 작품을 볼 수 있는 매개체 정도인 듯했다.
···절대 내가 전파니, 신호니, 하는 이상한 말을 못 알아들은 것이 아니다.
아니, 지금이 2006년이라는데.
내가 죽은 뒤로 거의 400년이 지났으니 뭐가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기는 했다.
“어푸, 어푸!”
다시 어린 나이로 돌아갔다고 해서 이런 걸 소홀히 하면 안 되지 암.
겨우 세수를 하고서 앞섶이 다 젖은 잠옷 티셔츠를 어머니가 갈아 입혀주고 있었을 때였다.
띵동-
손님인가?
저 소리가 낯선 이들이 들이닥칠 때 나는 소리란 걸 이제는 알았다.
나 한시우.
이제 이쪽 문화권에 꽤나 익숙해졌다고.
“지동욱 씨 댁 맞습니까?”
“아, 네네. 일찍 오셨네요. 이 집 맞습니다.”
“관계가······?”
“아, 친누나예요. 동욱이는 이따가 올 거고요.”
“아아, 예. 그럼 이삿짐 들여놓겠습니다.”
알 수 없는 말이 어머니와 낯선 남자 사이에 오고 갔다.
그리고 그 뒤는 정말 전쟁통이 따로 없었다.
“어이! 거기 조심 좀 해!”
“얼른얼른 끝내고 다음 집 가십시다!”
뭔 놈의 소리를 그렇게 고래고래 지르는지, 이 좁은 집 어디를 가서도 저 낯선 놈들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어머니는 심기가 불편해진 내 상태를 눈치챘는지 조심스럽게 내 곁에 앉아 나를 달랬다.
“시우야, 조금만 참아. 아저씨들 곧 가실 거야. 응?”
“너무 씨끄러어.”
“그치. TV 소리도 제대로 안 들리고. 대신 엄마가 내일 하루종일 TV 볼 수 있게 해줄게.”
“진짜?”
“그럼. 엄마가 언제 거짓말하는 거 본 적 있니?”
아뇨. 어머니.
우리 다정하고 자애로우신 어머니는 저에게 한 말은 항상 지키셨죠.
금세 신이 난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요새 내가 TV 앞에만 앉아 있어서 어머니가 리모컨을 가져가기 일쑤였다.
그런데 하루종일이라니?
벌써부터 내일이 기대되어 나는 심각한 소음 속에서도 방글거리며 앉아 있을 수 있었다.
“와, 시우라고? 엄청 많이 컸는데?”
이건 또 웬 놈인가.
“너 시우 완전 어릴 때만 몇 번 오고 말았잖아. 당연히 이만큼 컸지.”
“그런가? 애들은 진짜 빨리 크네. 시우야! 삼촌이야. 외삼촌. 시우 어릴 적에 몇 번 봤는데, 기억나?”
날 리가 있나.
그때 내 침대 위로 불쑥불쑥 고개를 내민 사람들 중에 기억나는 사람은 선물을 싸 들고 온 성희 이모 정도였다.
어머니의 제일 친한 친구라고 했나.
그런데 성의 표시도 없는 놈을 내가 기억할 리가.
“흥.”
콧방귀를 낀 나를 보고 귀엽다는 듯이 웃음 지은 어머니의 막냇동생, 지동욱이 나를 향해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우리 조카! 삼촌이 한번 안아보자.”
“시러.”
어딜.
나는 고개를 팩 돌리며 대답했다.
“······어?”
“어쩌냐, 시우가 원래 잘 안 안기기는 하는데. 너는 진짜 싫은가 보다.”
“아니, 왜······?”
다행히 어머니는 빙그레 미소를 지은 채 설명해주었다.
“시우 시끄러운 거 딱 질색이거든. 근데 네가 오늘 우리 집에 얹혀살겠다고 이삿짐 들여서 우리 시우가 엄청 스트레스 받았어.”
“아······.”
그건 어머니가 내일 하루종일 TV를 보게 해준다고 해서 풀리긴 했다.
쪼금, 앙심이 남았을 뿐이지.
“그러니까 얼른 자리 잡고 나가라?”
“아, 알았다니까. 금방이야, 금방.”
“금방? 이번에 뭐 맡은 거라도 있어?”
“…당연하지”
“목소리 보아하니 이번에도 전단지? 아니면 걸레질?”
“원래 이 바닥이 다 그런 겁니다, 누님.”
어깨를 흔들며 말하는 삼촌의 능청에 어머니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저놈이 어머니의 심기를 더 건들기 전에 얼른 어머니의 바지춤을 잡았다.
“엄마, 나 카모마일.”
“응? 아 우리 시우 차 마실 시간이구나?”
“차······?”
어머니가 시계를 확인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후 네 시.
딱 애프터눈 티를 먹을 시간이지.
얼마 전, 익숙한 언어가 들려 나는 홀린 듯이 TV 앞에 다가가 앉았다.
나의 모국이었던 영국이 TV 속에 있었다.
그곳에는 예전 18세기의 영국의 문화를 알려주고 있었다.
거기서 말하길, 영국의 귀족들은 하루에 몇 번이고 차를 마셨다는 것이 아닌가?!
내가 죽고 난 뒤에 저런 문화가 유행했다니.
공자 출신으로서 이런 걸 또 좌시하고 넘어갈 수는 없지.
나는 바로 어머니에게 정중하게 부탁드렸다.
다행히 카페인이 들어가지 않은 티는 허락하셔서 카모마일 티를 부탁드리고 있다.
“아, 시우가 매일 세 번 차를 타 달라고 하거든. 무슨 영화를 보고 따라 한 거긴 한데, 심신 안정에 좋다나?”
“······시우 다섯 살 아니야?”
“맞는데?”
어머니는 명쾌하게 대답하며 주방으로 사라지셨다.
나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삼촌을 무시한 채, 작은 방으로 향했다.
뒷짐을 지고서 작은 방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먼지가 가득하던 창고는 여전히 먼지가 가득했다.
단지, 예전보다 더욱 많은 짐이 쌓여 있었다.
가운데 덜렁 놓인 얇은 매트리스를 통통 튕겨본 나는 그 자리에 풀썩 누웠다.
‘이놈이··· 앞으로 여기서 같이 산다고?’
생각만 해도 피곤했다.
부모님의 사정이 있을 테니 불만을 가지지 말자고 생각하며 빙글 몸을 돌렸다.
응······?
그러자 눈에 선명하게 보이는 책이 하나 있었다.
“요건······?”
나는 덥석 그 책을 빼 들었다.
원래 우리 집에 없던 책.
삼촌의 짐에서 나온 것 같았다.
‘William······.’
너무나도 그리운 그 이름.
“William Shakespeare!”
그리움에 사무친 나는 큰 소리로 그 이름을 울부짖었다.
“뭐야, 뭐야? 시, 시우야. 너 방금, 뭐라고······.”
큰 소리에 거실에서 달려온 삼촌이 뭐라고 말을 붙였지만, 들리지 않았다.
영어로 쓰인 낡은 책을 아무렇게나 펼쳐 들여다보았다.
‘진짜, 진짜다. 그의 문체야.’
“누나! 누나! 이리로 좀 와봐. 시우 발음이!”
쿠당탕.
등 뒤에서 황급히 삼촌이 달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리운 이의 흔적에 흠뻑 빠져들어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