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280)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280)
아르카디아.
국제적인 정세에 아주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이름을 모르는 것은 불가능했다. 대륙의 반 이상을 차지한 강대국이면서 군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수십 년은 더 발전하고 진보했다는 국가였다.
천재지변은커녕 흉작도 한 번 찾아오지 않는 축복의 땅에서 1000년 가까이 번영해온 나라.
제국민이 되고 싶어서 국경선까지 찾아오는 인파가 무려 수 킬로미터나 늘어설 정도지만, 아르카디아의 주민이 되는 것은 군소왕국의 귀족이 되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마저 돌아다닌다. 아르카디아의 평민들은 실제로 타국의 준남작보다 더 잘 사는 경우가 많아서, 아예 틀리다고 할 수도 없었다.
따라서 그 아르카디아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자들은 다 비슷비슷한 생각을 공유하고 있었다.
크루지스처럼 제국의 부강함을 시기하고 훔쳐내려는 자들도 있었고, 제후국으로서 복속되는 것으로 그 성세를 공유하고자 한 자들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르카디아의 진면목이 어느 정도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한 곳은 없었다.
“뭣이?! 아르카디아에서 로벨린 백작을 데려갔다고!?”
“백작만이 아니라 식솔들까지 전부 데려갔습니다!”
“어떻게, 어찌, 어?어으윽!”
“폐, 폐하!”
하룻밤만에 자국의 소드마스터를 징집당한 왕국은 뒤집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러니까, 무국적지대에 거주하고 있었던 용병단들이 다 흩어졌다고? 실력자는 한 명도 빠짐없이 실종되었고?”
“예, 용병왕 바스타드도 그 처자식과 함께 사라졌답니다.”
“갑작스럽군. 다른 나라에서 놈들을 다 포섭하거나 한 것도 아닐테니, 범인은 역시 아르카디아인가? 실력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설마 용병들까지 다 끌고 갈 줄이야.”
중부대륙에서 용병들에게 대리전을 맡기고 있었던 왕국들은 그 전력공백에 당황스러워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적국이 고용했던 용병들도 죄다 끌려간 상황이었기에, 암묵적인 불가침상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특정 국가의 용병들만 끌려갔다면, 곧바로 그 틈을 찔렸으리라.
아르카디아가 만들어낸 대혼란은 곧 남부대륙까지 번졌다.
“Gwak!”
밀림지대를 장악하고 있는 야만족, 그중에서도 역대 최강의 족장으로 불렸던 야만전사가 피를 토하면서 나가떨어졌다.
문명인과 달리 생명력이 풍부한 밀림에서 살아남아온 자들, 그 신체능력과 전투력은 과연 남부의 기사들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에 도달해있었다. 본인들이 밀림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남부대륙은 야만족의 손에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뭐, 그럭저럭이군. 좋지도, 나쁘지도 않아.”
인류의 기준으로 평가하기엔 그 잠재능력부터 너무 뛰어난, 카르데나스의 혈족에겐 대단할 것도 없었다.
초월경을 돌파했다지만 무(武)의 기술이 원시적이고, 심상을 구현하기는커녕 오러를 더 크고 강렬하게 방출하는데 힘을 다 써버리는 모습은 한숨마저 나올 지경이었다.
부족 대표라고 할 수 있는 놈들도 이 정도라면, 3년 내외로 전력화시키는 일은 좀 어려울지도 모른다.
유목민들의 경우에도 그리 큰 차이는 없었다.
“주술사와 전사를 차출하겠다니? 제국이라고 해도 우리들의 자긍심을 이런 식으로 짓밟겠다면…!”
“호오, 뽑았군. 기억하게. 그쪽이 먼저 뽑았다는걸.”
전투력으로 서열을 결정하고, 그 상하관계에 철저히 따르는 야만족과 달리 유목민들의 사회는 더 복잡했다.
유목민이라고 하면 좀 가난해보이고, 정처없이 떠도는 자로 생각되겠지만. 캐러밴(Caravan)을 이용한 무역으로 큰 풍요를 독점하는 집단이기도 했다. 왕후장상도 부럽지 않게 살아가던 자들이 징집령을 순순히 받아들일 리 없었다.
초월경의 전사, 7위계급의 주술사라면 더 그러했다.
신분질서가 철저한 국가에서도 그 정도 강자에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신분제는커녕 왕도, 귀족도 존재하지 않는 곳의 마스터들은 이미 왕이나 다름없는 위치에 올라가있었다.
하지만.
“커헉! 마, 말도 안 되는…?!”
“미숙하군. 약자를 상대하는 법밖에 모르는 건가? 초월경의 벽을 넘었다고 해서 다 끝나는 게 아니다. 아니, 초월경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지.”
왕처럼 군림하는 것에 익숙해졌던 사막의 강자들은 그 힘을 과신했으며, 동급 강자와의 싸움을 기피하거나 비겁한 수법에 의존하는 것을 당연시해왔다.
초월경이나 7위계의 대마법사를 일상처럼 마주하고, 반신급 강자들의 등을 쫓아온 기사들과 비교하자면 힘의 격차가 너무 막대하게 벌어져있었다.
제 위치를 도달점이라고 착각해버린 자와 아득하게 먼 곳을 목표삼아서 달리고 있는 자.
대경계의 수준은 같을지라도, 그 차이는 어마어마했다.
“…폐하께서 급사한 것도 모자라서 왕위계승권을 가진 후보 5명이 모조리 살해당했다고? 그, 그럼 이 나라는?”
아르카디아에 침투공작을 시도해온 국가 한 곳은 왕족이 다 쓸려나가면서 귀족들의 왕위쟁탈전이 시작되었다.
대귀족 한두 명을 중심으로 한 내전이었다면 나라가 반으로 쪼개지고 끝났을지도 모르나, 왕실의 힘이 막강한 국가였기에 귀족들의 세력은 대동소이했다. 누구나 왕이 될 수 있는 상황, 아비규환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도였다.
게다가 초월경급의 강자는 전부 사라져버린 상황이라서, 그 결판이 단기간에 날 리도 없게 되었다.
“어제까지 승마와 사냥을 즐기셨던 후작님께서 갑자기 숨을 거두시다니! 설마 암살인가?!”
“저주나 독은 아니었고, 마법의 흔적도 없었답니다.”
“내가 알기로 소드마스터는 그 정신만을 베어죽이는 공격이 가능하다던데…?”
“그 정도 수준의 암살자를 누가 보내겠습니까? 그게 가능한 국가라고 가정한다면 한 곳밖에 없잖습니까?헙.”
마계정벌과 최종결전에 대비하던 아르카디아의 모습에 먼저 공격하자고 주장하던 자들도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 흉수를 알아차린 자들은 모두 입을 다물어야했다.
제아무리 수준 높은 호위를 고용하더라도, 마법적인 방비를 갖추더라도 그 실력에서 아득한 차이가 벌어져버리면 막을 수 없어진다. 영룡기사단의 최정예들이 동원된 1조. 그들은 삼공 가문의 금지구역이나, 아르카디아 황궁 정도를 제외하면 어느 곳이라도 침투할 수 있는 괴물들이었다.
백주대낮에 왕궁 정문으로 걸어들어가서 국왕의 목을 딸 수 있는 것이다. 천년제국의 영광을 무너트릴 때가 왔다고, 하늘 높은 줄 모르던 주전파들이 살아남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아틀란티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자들의 명단입니다.”
남부대륙에서도 더 아래로 내려가서 해상연합에 방문한 4조 기사들은 >연합의회>의 전폭적인 협조를 받았다.
>버뮤다>는 물론이고, 마탑의 아틀란티스 지부에서도 별 말 없이 인명부를 제공했기에 그 대상 하나하나를 모두 조사하고 검증해야하는 수고가 줄어들었다.
레너드에게 한 번 구원받은 것도 모자라, 제6해역의 안정을 선물받은 입장이다보니 불협화음이 나올 리 없었다.
“모험가들에겐 그 실력과 몸값에 상응하는 보수를 약속하고 고용하도록 하지. 선불이라도 상관없네. 제국의 시민권을 받는 조건이나 카르데나스와 위클라인의 가르침을 제공하는 조건도 있으니, 잘 생각해보라고 적어주게.”
너무나도 파격적인 조건에 그 말을 기록하고 있던 담당자가 남몰래 영룡기사에게 소곤거렸다.
“그, 저기, 그런데 말입니다.”
“으음?”
“저 역시 A등급 모험단에서 활동했었는데, 비슷한 조건으로 고용될 수 있겠습니까? 모험단의 알선을 전부 다 끝마치고 난 다음이라도 괜찮습니다.”
영룡기사는 그 말에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직(前職)이라…? 뭐, 상관없겠지. 부상으로 어쩔 수 없이 물러나거나 한 것은 아닐테고?”
“동료들이 다 은퇴했거든요. 제 나이에 처음부터 다시 팀을 구성하거나, 대체할 곳을 찾아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렇군.”
현장으로부터 멀어져서 감이 좀 떨어졌어도 카르데나스에서 몇 달 구르다보면 현역으로 돌아올 터였다. 서로가 상상하는 훈련강도엔 최소 열 배 이상의 차이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양쪽 다 만족스러운 합의가 이뤄졌다.
무엇보다 A등급 이상의 모험단을 포섭하겠다는 계획이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르카디아가 보상으로서 제시한 것은 그 값어치를 따지기 힘든 수준이었다. 가족을 부양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제국의 시민권을 탐내지 않을 수 없었고, 더 높은 경지를 목표하는 사람이라면 카르데나스나 위클라인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외면하지 못했다.
“““아르카디아는 도대체 뭘 생각하고 있는 것이지?”””
세상사를 조금이라도 통찰할 수 있는 식견의 소유자들은 그 태동(胎動)을 읽어내고, 천문학적인 규모의 ‘힘’이 아르카디아 쪽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장난치듯이 한 번 내리친 주먹으로 세계를 정복하거나 멸할 수 있는 거인이, 전심전력으로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 무시무시한 진상은 현자들로 하여금 제정신을 놓게 할 정도로 부담스러웠다.
얼마 안 남은 미래에 찾아올 ‘무언가’가, 세계의 창생멸사를 결정하게 될 거라고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직, 인가?”
1년이 지나고, 2년이 다 지나가도록 아르카디아는 움직이지 않고 세상은 여전히 평화로웠다.
아르카디아의 ‘대청소’로 인해서 불온분자가 싹 쓸려나가고, 내전이나 권력다툼 따위로 나라 바깥으로 힘을 투사할 여유가 사라져버리니 대규모 전란도 일어나지 않았다.
현자들은 매일같이 해가 떠오르고, 가라앉는 광경을 보면서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종말의 발걸음소리가 들리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 * *
최종결전까지 3년이 남아있었을 때, 아르카디아는 헤아리는 게 힘들 정도의 준비작업을 실행하고 또 조정해왔다.
대륙 단위의 인재흡수는 그 안에서 기초적인 것에 불과했을 정도다. 사실 전 대륙의 인재를 끌어모아봤자, 삼공 중 하나의 1할이나 대체할 수 있으면 다행이었다. 실제로는 그 1할도 안 되는 수준이라고 확실하게 결론이 내려졌으니까.
그렇다면 중요도가 높은 작업은 무엇이었느냐, 라고 한다면 [헬게이트]를 빼놓을 수 없었다.
7번 주둔지.
마계정벌군이 통로로 사용했던 [헬게이트]가 위치한 구역이 바로 그것이었다. 중간계의 총전력이 통과해야하는 상황이니, 지금과 같은 상태로 내버려두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아무래도 문의 유무(有無)에 간섭하진 못하더라도, 개수와 규모를 통제하는 건 가능해보이는군. 아홉 개로 분열되어있는 상태를 통합해버리면 될 것 같다만?
“통로를 그렇게 확장하면, 방어가 어려워지지 않습니까?”
[하데스]의 제안에 반대하는 자가 없는 건 아니었으나, -외신들이 중간계까지 넘어오기 시작한 상황이라면 이미 다 끝장났다는 소리인데, 방어를 염두해야할 필요가 있나?“…그것도 그렇군요.”
납득하지 않을 수 없는 반박에 의해서 논파되었다.
그 다음날부터 [하데스]는 7번 주둔지를 제외한 주둔지들의 [헬게이트]를 폐쇄하고, 중간계와 마계를 연결하고 있는 선을 모조리 7번 [헬게이트]에 집중시켰다.
당연하게도 7번, 아니 유일한 [헬게이트]가 된 차원 통로는 열 배 가까이 넓어지면서 대규모의 군세가 언제든지 넘어다닐 수 있는 상태로 안정되었다.
제아무리 [하데스]가 제 신역의 거주를 허용하더라도, 아직 살아있는 자들은 그 영역에서 오래 머무를 수 없었다. 죽음과 삶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면 언데드로 변이하거나, 수명이 크게 줄어들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지하세계에서 오래 머무르더라도, 별 악영향을 받지 않고 활동가능한 자들이 존재했다.
“크! 선조들의 피가 끓어오르는 기분이구만!”
“누가 아니래나! 드베르그의 후손이라면, 땅속에서 팔팔해질 수밖에 없지!”
상위종족 드베르그의 피를 계승한, 현대의 드워프 제하이어 가문이 바로 그들이었다.
선조 드베르그부터가 지하세계에서 활동한 종족이라는 말이 남아있듯, 제하이어의 혈족들은 몇 년이고 지하세계에 있어도 거부반응이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지하세계에서 오히려 더욱 왕성하게 활동하면서 더 정교한 솜씨를 선보이기까지 했다.
그 덕분에 제하이어의 장인들은 감히 [하데스]의 신역에서, 최종결전에 대비한 전략병기의 공정을 시작할 수 있었다.
최소 반신급에서 진신급의 강적을 상대해야하는 병기.
아르카디아의 국고가 처음으로 바닥을 드러내고, 이기고 난 다음에도 수백 년은 복구할 수 없는 수준의 자금이 1푼조차도 안 남고 사라져버린 프로젝트였다.
-호오.
[하데스]마저 제 턱을 만지작거리면서 감탄했다.난쟁이들이 뭔가 열심히 뚝딱거리고 있다 싶었더니, 신대에 한 번 구경했던 전쟁병기가 재현되어있지 않은가.
옛 시대의 실물과 비교한다면 좀 손색이 있었지만 말이다.
-크레타의 수호자, 탈로스인가?
[헤파이스토스]가 설계도를 내려주었고, 명공 다이달로스가 완성시킨 청동거인의 이름.전장 30미터에 다다르는 청동의 거인상이, 생기 한 점 없는 눈동자로 만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직 기동시키지도 않은 상태임에도 강렬한 위압감이 뿜어져나온다.
기록대로라면 용암보다 뜨거운 피가 순환하고, 산과 언덕을 완력으로 뽑아던질 수 있다는 괴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