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92)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92)
하지만 레너드는 그 말에 실소해버렸다.
‘말은 네 걸음이라고 했지만, 마지막에 내딛어야하는 걸음이 앞의 세 걸음보다 백 배는 난해하겠군.’
외력경 10단까지는 어떻게든 돌파할 수밖에 없다.
이대로 〈균열〉을 봉합해나가는 것만 반복하더라도, 소소한 깨달음만 쌓아가더라도 얼마든지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허나 초월경은 아니다.
전생에 한 번 조화경의 벽을 넘어봤다지만, 그 당시의 검제 연무혁과 지금의 레너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초월경과 조화경의 차이를 더 거론할 것까지도 없이, 새로운 길을 다시 개척해야할 필요성이 있었다.
검제 연무혁의 일생은 결국 천하제이인(天下第二人)이면서, 조화경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끝을 맞이했었다.
그 길을 답습해봤자 현경이나 오를 수 있을까 말까이며,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갈 수 있을지도 불분명했다.
레너드가 새로운 길을 찾아내려는 이유도 그와 동일했다.
‘일필휘지(一筆揮之)로 끝나야할 삶에 두 번째 기회를 얻고, 전생보다 더 뛰어난 몸과 환경까지 얻었다. 고작 현경 따위로 만족하기엔 내가 지나쳐온 세월이 너무 아깝구나!’
초월경의 벽조차 넘지 못한 상태에서 〈오색강기〉를, 특수한 조건으로 인해서라도 한 번 재현하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이 상태로 초월경을 돌파하고, 반신경을 돌파하고 난 후에는 어떻겠는가? 그 누구도 레너드의 경지를 헤아릴 수 없는 수준에 다다르게 될 터였다.
신화경(神化境).
시조 카르데나스만이 성취했다는 경지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뭐, 그보다도 먼저 넘어서야할 놈이 하나 있지만.”
아득히 먼 산으로부터 눈을 돌린 레너드가 자신의 심상에서 키득거리고 있는 심마를 들여다보았다. 천마 단목진의 형상과 강함을 모방하고 있는, 현경에 한없이 근접해있는 괴물.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이 몸으로 초월경을 돌파하려면, 저 단목진의 심마를 제대로 타도해야만 할 것이라고.
‘오랜만에 한 번 해볼까.’
외력경 7단을 돌파하면서 몸 안에 휘몰아치던 기운도 거의 다 가라앉은 상태였다. 금강불괴에 가까운 육체강도, 드래곤의 심장을 닮아가고 있는 〈오행진룡환〉의 존재가 경지 돌파에서 비롯된 후유증이나 부작용을 전부 없애준 덕분이었다.
레너드는 몇 차례의 소주천으로 기를 완전히 진정시킨 후에 제 의식을 침잠시켰다.
표층의식의 밑바닥을 뚫고, 그 아래로 내려간다.
심상에 입문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무의식의 영역을 침범한 것만으로도 주화입마(走火入魔)가 올 수도 있었다. 무의식으로 내려갈 수 있다는 것은, 무의식에 웅크린 심마가 올라오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러나 레너드에게는 따로 해당사항이 없었다.
“——음.”
십만대산(十萬大山)의 이름 모를 봉우리, 단목진에게 패배한 장소에서 그의 의식이 형상화되었다.
언제나처럼 그 봉우리에 머무르던 심마가 말을 걸어왔다.
왠지 모르게 질렸다는 표정을 한 상태였다.
“몇 번째냐, 이게?”
레너드가 제 허리춤에 구현한 검을 뽑아들면서 대답했다.
“헤아려보지 않았다.”
“그럼 내 입으로 말해주마. 89회다. 네가 나한테 찢겨죽고, 터져죽고, 맞아죽은 횟수가 여든여덟 번이었다는 뜻이지.”
“그렇군.”
“…미친놈이. 널 보고 있으면 내가 네 심마인지, 네놈이 내 심마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구나.”
심마는 그 스스로도 기가 막히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고행(苦行)으로 몸과 마음을 단련한다는 땡중들도 안 하는 짓거리를 거듭하는군. 심마를 걷어내지 않고 제 심상에 품는 것도 모자라, 그걸 상대로 수십 번 죽어가면서 비무를 해? 너 같은 미치광이는 역사상 한 명도 없었을 거다.”
본래대로라면 제 안에 심마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상단전에서 발휘되는 ‘염’으로 그 뿌리를 뽑아내는 게 올바른 대응방식이었다.
그런데 레너드는 놈을 살려서 훈련상대로 쓰고 있었다.
“내가 경험해본 수준에 한해서라지만, 현경급의 강적과 몇 번이고 치고받을 수 있는 기회다. 날려버리는 쪽이 아깝지.”
“실제로 죽는 것은 아니라지만 그 고통이 혼에 새겨질텐데? 조화경의 영역에 다다른 심혼이라도 무한히 버틸 순 없다.”
“그 정도는 알고 있다.”
심마의 말에 무덤덤하게 수긍한 레너드가 단언했다.
“백팔(百八). 그때까지 널 쓰러트리지 못한다면, 내 패배로 계속 성장하고 있는 너한테 잡아먹히겠지.”
“……설마, 다 알면서도 저지른 거였냐?”
“무지보다 더 두려운 적은 없지.”
그 문답을 마지막으로 레너드의 검이 찬란하기까지 한 오색 검강을 피워올렸다.
그걸 본 심마의 얼굴이 한층 더 멍청해졌다.
극소차원을 검 하나에 담아내는 경지, 〈오색강기〉였다.
현실에서 한 번이라도 경험한 일이라면, 심상에서 재현해낼 수 있다. 조화경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는 만류귀종의 근본이 괜히 심상수련에서 나오는 게 아니었다.
“이봐, 〈오색강기〉는 좀 반칙 아닌가? 특수한 조건 없이는 아직 못 쓰는 거잖아?”
“이 심상도 결국 특수한 조건에 해당하는 셈이잖나.”
심마는 그 말에 납득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로군.”
그와 동시에 백 척 크기의 아수라상이 구현되어, 그 일대를 찍어누르는 압력이 파도처럼 흘러넘친다.
천마신교 최강최고의 무공, 천마신공이 극성을 넘어서고 난 후에 도달하는 경지다. 〈아수라패황무〉는 전신(戰神)으로서의 일면과 정법(正法)을 파괴하는 마귀로서의 일면을 모두 지닌, 파천황의 개념을 구현화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격하의 존재라면 그 앞에 서는 것만으로도 짓뭉개져야한다.
키이이이잉——.
하지만 백 장 크기의 아수라상이 뿜어내는 압력은 오색으로 빛나는 검 앞에서 두 갈래로 쪼개지고 있었다.
〈오색강기〉의 격이 놈에게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증거다.
“호오, 이제부터가 진짜라는 말인가?”
심마가 흥미진진한 기색으로 손을 들었다.
그 동작에 맞춰서 백 척의 아수라상이 여섯 팔을 들어올려, 싸움의 개막을 의미하는 초식을 전개했다.
고대 불교에서는 인간에게 여섯 가지의 감각이 존재하기에, 그 전부를 사용해야만 이 세상을 올바르게 식별할 수 있다고 설법했다.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의 의식을 전오식(前五識), 마지막으로 마음의 의식을 제육식(第六識)이라고 한다.
아수라패황무의 ‘육식제천살’은 그 원리에 기반한 살초였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아수라패황무(阿修羅覇皇舞)
육식제천살(六識際擅殺)
상대방의 회피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정면승부만을 강요해서 아수라상으로 때려죽인다.
천상천하에 이 〈아수라패황무〉를 정면에서 대적할 수 있는 힘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오만하기까지 한 자존감.
그에 맞서서 레너드가 오색으로 빛나는 검을 내리그었다.
———————!
소리라고 형용할 수도 없는, 충격파를 동반한 파동이 한 번 웅장하게 휘몰아쳤다.
육권(六拳)과 일검(一劍).
두 초식이 서로의 힘을 깎아내면서 상쇄된다.
사신수를 불러내고도 두 개의 주먹이 남아서, 황룡식마저도 소모했던 때와는 전혀 다른 흐름이었다. 그 결과가 의미하는 바를 깨달은 심마와 레너드의 얼굴이 무표정해졌다.
우열관계의 절대성이 무너졌음을 알게 된 탓이었다.
일원오행검결(一元五行劍訣)
오상류(五象流)
청룡(靑龍)의 기(技)
레너드가 내뻗은 검극으로부터 오색의 번개가 쏘아진다.
오행을 기반으로 한 벼락.
세계법칙이 담겨있는 번개의 검은, 더 이상 손가락 하나로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아수라패황무(阿修羅覇皇舞)
심마의 앞을 가로막은 아수라상이 정권을 내지른다.
파황살선(破皇殺仙)
천자를 때려부수고, 신선을 쳐죽인다.
투명하기까지 한 살의의 일권.
벼락처럼 내질러진 주먹은 과연 ‘청룡의 기’의 날카로움마저 때려부쉈으나, 그 반작용으로 팔꿈치 부근까지 쩍 갈라지면서 팔뚝의 형상이 잘게 바스라졌다.
몇 초만에 바스라졌던 팔이 다시 생성되었지만, 아수라상도 파괴될 수 있다는 증명이나 다름없었다.
“—이해했다.”
여태껏 두 팔을 늘어트린 채로 일관하던 심마가 위협적으로 기수식을 취했다.
자연체(自然體)는 동급의 고수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
현경의 고수, 단목진을 모방했음에도 심마는 그를 동급으로 인정한 것이다. 정확히는 〈오색강기〉의 잠재력이 현경급이라 판단한 셈이었지만 말이다.
“지금부터는 최대한 빨리 죽이겠다. 앞으로 스무 번, 네놈이 그 전에 나를 뛰어넘을 수 있을 것 같으냐?”
“글쎄.”
레너드가 연하게 미소지었다.
“어제보다 오늘의, 오늘보다 내일의 내가 더 강하다. 그때의 나라면 널 이길 수도 있겠지.”
“……흥!”
그 호언에 코웃음을 친 심마가 본격적으로 힘을 운용했다.
아수라상의 존재감이 몇 배로 부풀어오른다.
‘육식제천살’이나 ‘파황살선’ 따위는 〈아수라패황무〉에서는 기본기에 지나지 않는다. 제대로 된 오의는 아직 사용한 적도 없었다. 그걸 모르지 않는 레너드가 숨을 죽이고, 곧 맞이하게 될 죽음을 향해서 달려들었다.
89회차의 심상전투를 진행한 결과.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치열해진 싸움의 끝에, 아수라상의 수도(手刀)가 레너드의 상체와 하체를 분리하면서 〈오색강기〉로 빛나는 검을 분쇄했다.
정확히 357초째였다.
* * *
아쿠아마린은 그렇게 사흘간의 휴식 아닌 휴식을 누리면서, 단원 개개인의 정비활동에 집중했다.
〈씨오크 소굴〉에서 밀도 높은 전투를 반복해온 3인은 거의 날마다 훈련실에서 살아야했고, 그들의 업적으로 자극을 받은 마리안과 비비안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훈련에 동참했다.
이미 육체의 단련이나 기술의 반복훈련으로 깨달을 게 없는 레너드만이 나머지 단원들을 가르쳐주고, 제 나름의 깨달음을 명상으로 계속 정리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프란시스는 제 예상과 너무 달라져버린 항해일정과 앞으로의 계획을 수정하느라 매우 바빠졌다.
마지막으로 그 누구보다 한가해야할 러셀은,
“다음번에 갈 〈균열〉부터는 나도 동행하지. 레너드 자네의 지시대로 움직일테니, 단원들의 훈련에 방해되거나 할 경우는 없을 거라고 생각해도 좋다네.”
충격적인 선언으로 모두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들었다.
프란시스는 그나마 예상하고 있던 일인지 별 표정변화가 안 보였지만, 에스더를 비롯한 단원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엑? 그게 뭔 소리예요, 스승님?”
“무슨 소리긴. 방금 전에 한 말 그대로지. 〈균열〉의 탐사에 나도 따라가겠다는 소리다.”
아무도 모르게 레너드를 한 번 흘끔거린 그가 말했다.
“너 혼자만 〈균열〉의 매개체를 본 것도 배알이 꼴리고, 이 배에 탄 이유부터가 마탑에서 경험할 수 없는 〈균열〉 내부의 환경이나 현상 따위를 조사하려는 목적이었지. 계획보다 조금 더 빠르게 나선 것뿐이다.”
“어라, 레너드의 재능을 노리고 온 거 아니었어요?”
“에스더 네 사전에는 겸사겸사라는 말이 없느냐? 한 마디로 이해하면 될 것을, 언제나 두 번 설명하게 만드는구나.”
잭 러셀이 눈치없이 나서는 제자의 입을 다물게 하자, 그걸 기다렸다는 듯이 프란시스가 몸을 일으켰다.
그 몸짓 하나로 회의실의 인원 전부를 집중시킨 그녀가 세 개의 손가락을 펼쳐들었다.
“안 그래도 다음번에 탐사하게 될 곳은 〈악귀문어의 나락〉, 러셀의 동행을 부탁드릴 참이었어요. 잘 됐네요!”
“〈악귀문어의 나락〉이라면…심해에 있는 종탑이었던가.”
갈라노의 중얼거림이 그 정보를 떠올리게 한다.
―심해에 존재하는 정체불명의 종탑, 그 안에서만 활동하는 것이 가능한 이계종족의 근거지. 체계를 알 수 없는 이세계의 마법을 사용하며, 문어의 형상을 한 머리를 달고 있음. 강력한 충격파를 연사할 수 있는데다가 날붙이와 둔기 전부에 내성을 지님. 문어머리에 달려있는 촉수로 붙잡히면 외력경이라도 그 뼈가 부러질 수 있음.
니니안도 말했다.
“공간 규모와 난이도가 B등급인데, 위험도는 A-등급이었지. 환경적인 조건이 안 좋아서인가?”
“아니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추가설명을 할게요.”
음, 하고 수긍한 그녀와 단원들이 프란시스를 주목했다.
프란시스는 제 손에 잡혀있는 종이를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앞서 〈버뮤다〉에서 송신된 정보에는 ‘충격파를 연사할 수 있다’고 적혀있지만, 실제로는 조금 달라요. 악귀문어가 쏘는 파동은 물리적인 충격파가 아니라 정신파거든요.”
충격파와 정신파.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게 뭔 차이냐고 의아해하겠지만, 잘 아는 사람들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물리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충격파와 다르게 정신파는 그걸 막아낼 수 있는 아티팩트나 방어수단을 소지하고 있지 않으면 대응방법이 존재하지 않았다. 정신력으로 버티거나, 정신파가 날아오기 전에 해치워버리는 게 최선이었다.
갈라노와 니니안, 마리안처럼 순수한 무인들은 특히 무방비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청명심법〉으로 정신력을 다룰 수 있게 된 에스더도 아직 정신공격을 막아낼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악귀문어의 나락〉을 탐사할 수 있는 인원은 잭 러셀, 비비안, 레너드로 한정됩니다. 대마법사와 상급 정령사 수준이면 악귀문어의 정신파도 안 통할테니까요.”
“잠깐, 대장은 괜찮다는 건가?”
당연하기까지 한 의문이었지만, 갈라노는 다른 사람들이 뭔 소리를 하냐고 바라보는 시선에 움츠러들었다.
프란시스도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레너드한테 정신파가 통할 것 같아요?”
다시 생각해보니 갈라노도 할 말이 없었다.
일격으로 혼마경급의 괴물을 반죽음에 몰아넣고, 단신으로 〈균열수호자〉를 박살낸 소년에게 무슨 상식이 통하겠는가?
그렇게 아쿠아마린 모험단에서 두 번째 〈균열〉을 탐사하게 될 인원이 결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