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ility from Parallel Dimensions RAW novel - Chapter 159
159. 맛보기
이선화와 강서준은 영화 레드 타이거의 남녀 주인공이다. 권경철은 그다음으로 비중이 높은 조연이다.
권경철 다음으로 중요한 역할이 하나 더 있지만, 그건 아직 누구에게 맡길지 결정되지 않았다.
서정우는 겉으로는 그 영화에 몇 마디 조언하기 위해 이 회사에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루머를 덮기 위해 AKX 픽처스에서 그렇게 발표했다.
그런 이유로 온 사람이 회의 시작 전에 돌아가 버리면 그림이 이상해진다.
그래서 그는 회의를 잠깐만 구경하기로 했다.
감독 장현성은 화이트보드에 선을 그려가면서 배우들이 해야 할 액션이 어떤 것인지 설명했다. 그가 이 회의를 배우들과 하는 이유는, 그 액션을 여기 있는 사람들이 대역 없이 직접 해야 하기 때문이다.
강서준은 물론이고 권경철도 질린 표정을 지었다.
“와. 저걸 우리가 하는 건가요?”
“그러게. 미치겠네.”
이선화는 한숨을 푹 쉬었다.
“하아아.”
‘저걸 소화하려면 훈련 더 해야겠는데?’
서정우는 구경만 할 마음으로 이선화의 옆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듣다 보니 간섭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저대로 하면 이선화가 다친다.
그가 슬쩍 끼어들었다.
“감독님. 일반인이 벽을 그렇게 밟고 뛰면 발목을 다칠 확률이 너무 높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런데 이건 서 형사님이 호텔에서 산업스파이 조직과 싸웠을 때의 동선을 참고한 겁니다만?”
“다칩니다.”
“그래도 이 장면은 꼭 필요한데…. 다른 방법이 있을까요?”
서정우가 화이트보드의 앞으로 걸어갔다.
“실전에서는 이 부분에서 벽을 밟는 것보다는.”
일반인이 서정우를 따라 하면 다칠 위험이 너무 크다.
그가 이동 경로를 수정했다.
“여기서 적의 시선을 저쪽으로 유도하면서, 정작 배우는 이쪽으로 파고들어서 적의 팔 관절을 먼저 제압하고, 곧바로 뒤를 잡는 게 훨씬 낫습니다.”
그가 지금 설명한 건 이족보행 몬스터와 싸울 때 쓰는 기본 기술이다.
몬스터와 그 정도로 근접하면 죽을 확률이 급격히 높아지지만, 전투에서 몬스터가 바짝 접근하는 상황은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건 그럴 때 쓰는 기술이다.
“호오. 이것도 괜찮군요.”
“일반인도 훈련만 받으면 쓸 수 있는 기술이니까요.”
서정우는 처음에는 장현성의 이야기에 끼어들 생각이 없었다. 여기서 잠깐 구경이나 하다 가려고 했다.
그런데 전투 장면의 동선에 관해 몇 마디 했더니 장현성의 호응이 굉장히 좋았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하다 보니 할 말은 점점 더 많아졌다.
장현성이 원래 생각한 건 보기엔 그럴듯하지만, 실전에서 쓰면 허점이 너무 많이 드러난다.
서정우는 그걸 실제 전투 경험을 기반으로 수정해주었다. 그의 수준에 맞춰 수정하면 연기하는 배우가 크게 다칠 수 있다. 그래서 일반인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수준을 한참 낮췄다.
이렇게 남에게 싸우는 방법을 가르치는 건 각성자 특수부대에 있을 때 많이 해봤다.
사병인 그가 가르친다고 해서 불만을 품는 간부는 없었다. 그러기에는 그가 그곳에서 이룬 업적이 너무 많았다.
목숨이 걸린 전투를 자주 하는 각성자 특수부대원들은 생존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는 기술이라면 그게 뭐든 최선을 다해 배웠다.
장현성은 액션 장면에 대한 다른 구상들도 줄줄이 꺼냈다. 서정우는 옛날 생각이 나서 나름 설명하는 재미가 있었다. 감독의 호응이 좋으니 말이 더 술술 나왔다.
그는 그렇게 삼십 분 동안 실전 기술 위주로 이것저것 수정해주었다.
이선화는 그 모습을 구경했다. 그런 그녀를 권경철이 슬쩍 가리키며 강서준에게 속삭였다.
“야. 저거 지금 표정 좀 봐라.”
“되게 뿌듯해하네요.”
서정우는 그들의 잡담 덕분에 정신을 차렸다.
“아. 저는 그냥 조언 몇 마디만 하는 거였지요. 그럼 전 여기까지만.”
감독 장현성은 당황했다.
“예? 아니, 그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SNS에 해명한 수준의 조언은 충분히 했으니까요. 이제 가서 밥 먹어야죠.”
“서 형사님! 이렇게 맛만 보여주고 가시면 우린 어쩌라고….”
서정우는 붙잡는 감독 장현성을 뿌리치고 AKX 픽처스를 빠져나왔다.
사장 김성준이 따라 나오며 물었다.
“실전에선 저렇게 움직여야 하는군요.”
“일반인 기준으로는요. 안 그러면 배우가 다치니까요.”
“서 형사님이라면 다르게 하시겠지요?”
“저야. 뭐.”
그냥 쏴버리는 걸 선호한다.
김성준이 웃었다.
“하하하.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아. 오신 김에 식사라도 같이하시죠.”
“오늘 같은 상황에서 사장님과 식사를 하면 아까 해명한 게 다 소용없어질 겁니다. 그리고 전 권세창 씨 살인 사건을 좀 더 조사하러 가야 해서요.”
“아. 그 친구….”
김성준이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하십시오.”
“혹시 언론플레이가 필요해지면, 그때 말씀드리겠습니다.”
“소문을 내는 건 우리 회사의 전문분야지요.”
“그럼 전 이만.”
서정우가 엘리베이터에 탔다. 그런데 이선화가 달려왔다.
“같이 가요!”
그녀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전에 안으로 쏙 들어왔다. 그녀가 타자마자 문이 완전히 닫혔다.
서정우가 물었다.
“회의는 어쩌고요?”
“회의 캔슬됐어요.”
“방금까지 잘했는데?”
“그러게요. 누가 너무너무 잘하다 가버려서 이후 일정이 사라졌죠.”
“난 SNS에 공개한대로 조언만 조금 한 것뿐입니다만?”
“감독님이 원래 하셨던 액션 구상을 다 갈아엎겠대요. 정우 씨가 설명해준 완전 실전 액션으로 간대요. 그러려면 대본도 수정 들어가야 해요. 이야기의 큰 줄기는 그대로지만요.”
“뭐. 알아서 하시겠지.”
“아직 공석인 에이전트 김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대요. 비중이 경철 오빠 배역만큼 커질 거래요. 아. 이제 김이 아니구나. 감독님이 에이전트 서로 바꾸겠다고 하셨으니까.”
“그 서가 내가 생각하는 서는 아니겠지요?”
“서정우의 서일걸요?”
“꿈도 꾸지 마시라고 해요.”
“사실 에이전트 서라고 한 거는 혹시나 해서 하는 말씀 같았어요. 그런데 실전 액션을 자문해달라는 건 진심 같던데.”
“그만하면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방향은 잡아줬으니까, 우리는 훈련이나 하러 갑시다.”
“네? 우리 밥 먹으러 가는 거 아녔어요?”
“놀면 뭐합니까? 갑시다. 훈련하러.”
“우이씨! 밥은 먹이고 시켜요!”
서정우가 슬쩍 웃었다.
“농담입니다. 맛있는 거 먹으러 갑시다.”
서정우는 이선화와 밥을 먹은 후에, 평행차원을 넘어갔다.
그는 몬스터 사체 처리 업체를 찾아갔다.
잡으면 돈이 되는 몬스터는 꽤 많다.
적성 게이트처럼 곤충형 몬스터가 나오는 곳은 돈은 별로 안 되고 위험하기만 하다. 거기서도 가끔 레드 포션용 희귀 성분이 추출되는 놈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다.
반면에 짐승형 몬스터가 나오는 곳은 돈이 꽤 쏠쏠하게 된다. 짐승형 몬스터를 잡으면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고기가 생기기 때문이다.
대규모 축산업은 이미 전멸했다. 지금 구할 수 있는 진짜 고기는 소규모로 키우는 것이나 산에서 사냥한 것뿐이다. 지금은 고라니도 없어서 못 먹는다.
이쪽 세계의 권세창은 멀쩡히 살아있다.
그는 몬스터 고기를 가공하는 공장에 다녔다.
몬스터 고기는 맛만 없는 게 아니다. 독 같은 위험물질에 오염되어 있는 것도 종종 나온다.
이 공장에서는 그런 물질이 있는지 검사하고, 몬스터를 도축하고, 사람이 먹을 수는 있게 소금에 절이거나 합성 향료 등을 첨가하는 일을 한다.
서정우는 퇴근하는 권세창에게 다가갔다.
“권세창 씨?”
“누구….”
“몇 가지 여쭤볼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경찰이십니까?”
“음….”
“아니면 탐정?”
저쪽 세계는 탐정법이 논의만 되고 있지 통과되지는 않았다. 반면에 이쪽 세계에서는 오래전부터 탐정이나 무장 경호원 등이 합법적으로 활동했다.
“비슷합니다.”
권세창은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그러시죠. 멀리는 못 갑니다만.”
“공장 바로 앞에 저 카페로 가시죠.”
서정우는 카페에서 질문했다.
“배를 타는 걸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차만 타도 멀미가 심해서 옛날부터 배는 탈 생각을 안 했습니다. 요즘 세상에는 배를 탈 일도 없지만.”
해양 몬스터 때문에, 먼 바다로 나가는 배는 반드시 군함이 호위해야 한다. 그렇게 해도 침몰하는 배가 곧잘 나왔다.
저쪽 세계의 권세창은 배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이쪽 권세창의 말대로라면 저쪽에서 그 배를 탄 건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싫은데도 타야만 할 이유가 있었겠지. 이건 저쪽 가족의 말과 같네.’
어차피 이건 사실대로 말하는지 확인만 하려고 물은 것이다. 그가 본론을 꺼냈다.
“이연석이라고 압니까?”
“아니요.”
서정우도 그럴 줄 알았다.
‘여기서는 역시 이연석을 안 만나서 살아있는 거네. 그놈을 만나면 죽을 운명. 안 만나면 살 운명.’
그는 몇 가지를 더 물어본 후에, 권세창을 직접 만난 또 다른 이유를 꺼냈다.
“혹시 영화나 드라마 시나리오도 쓰십니까?”
권세창은 살짝 놀랐다.
“그걸 어떻게…. 제 뒷조사를 하신 겁니까?”
“아는 사람에게 들었습니다. 김성준 씨라고.”
“아아. 성준이 형. 연락 끊긴 지 너무 오래됐네요.”
“그래서, 쓰십니까?”
권세창이 의심을 버리고 머리를 긁었다.
“이것저것 써보고는 있습니다만…. 요즘 영화 추세와 제 스타일이 많이 달라서요.”
“시나리오 하나 맡기면, 우리 세상에서 통하게 각색해줄 수 있습니까?”
“예? 그게….”
“읽어보시고 취향에 안 맞으면 안 하셔도 됩니다만.”
권세창은 몬스터 사체 가공 공장 일을 재미있어서 하는 게 아니다. 먹고 살기 위해 한다.
이미 포기한 영화의 꿈이 다시 조금 살아났다. 시나리오 각색이라도 해보고 싶었다.
“보고 결정하겠습니다.”
“물론 그러셔야죠.”
서정우가 일어났다.
“아직 저쪽 일이 다 안 끝나서 나중에 드려야 하지만, 분명히 마음에 드실 겁니다.”
‘저쪽 세계 권세창이 썼으니까.’
서정우는 집으로 돌아왔다.
이선화가 말했다.
“장 감독님 영화 촬영 조만간 시작해. 알지? 스케줄 비워놓을 거지?”
“촬영 기간은 얼마나 되냐?”
“일주일? 그중에 오빠는 이틀 정도만 나오면 돼.”
“번갯불에 콩을 구워 먹는구나.”
“우리 제작 환경이 그런 거 오빠도 알잖아.”
영화는 영화관에 걸리지 않는다. 20세기에 지어진 영화관은 대부분 파괴되어서 남아 있는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대신에 영화도 드라마처럼 TV로 방송된다.
저예산으로 영화를 만들려면 제작 기간을 길게 잡을 수 없다.
“몬스터와 싸우는 장면은, 이틀 동안 최대한 많이 찍은 후에 그걸 이리저리 편집해서 쓸 거야. 장 감독님이 그런 거 진짜 잘하셔.”
그날 밤에는 각성자 특수부대 윤현식 중령이 찾아왔다.
서정우가 물었다.
“형이 여긴 어쩐 일로?”
“전화로 하기는 좀 그런 이야기라서. 벽에도 귀가 있을지 모르잖아.”
“뭔데?”
윤현식이 주변을 둘러본 후에 말했다.
“야. 정보 브로커 이주호가 죽었더라?”
“살려둘 가치가 없더라고.”
“백상어 클랜도 전멸했던데?”
“다 죽진 않았지. 살아서 체포된 놈도 꽤 있어.”
윤현식이 서정우를 빤히 쳐다보았다.
“역시 너냐?”
“알고 온 거 아냐?”
“야. 넌 진짜….”
“진짜 뭐?”
윤현식이 눈을 반짝였다.
“진짜 더 강해졌구나! 난 네가 백상어의 팔다리부터 하나씩 자를 줄 알았는데, 그냥 화끈하게 통째로 쓸어버렸네?”
“붙어보니까 만만하더라고.”
“진짜 이 정도로 빠르게 처리할 줄은 몰랐다. 아. 그 와중에 이홍국은 살려둬서 고맙다. 국회 게이트 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이 죽으면 진짜 난리 났을 거다.”
“이홍국 말이야. 형 말이 맞더라고.”
“내 말?”
서정우가 씩 웃었다.
“잡고 싶은 놈을 찾을 때는.”
그는 저쪽 세계에 잡고 싶은 놈들이 있다.
“이홍국을 이용하면 되겠더라고. 그놈은 안 얽힌 데가 없으니까.”
광역수사대 마약계에서 나온 형사는 다선 국회의원이 그가 쫓는 마약조직의 고객이라고 말했다. 이홍국은 4선이다.
‘그 형사의 반응을 보면, 그게 이홍국일 확률이 50퍼센트 이상이지.’
윤현식이 신나서 말했다.
“네가 이렇게 강해졌으니까, 우리가 그 게이트에 다시 갈 때는 널 중심으로 다국적….”
“난 안 간다고. 다음엔 알아서 하라고.”
* * *
서정우는 이튿날 형사로 사는 세계로 돌아왔다.
그는 일단 유물 전문가 윤현중 교수와 약속을 잡았다.
시간이 조금 비었다. 그는 쌍둥이가 다니는 학교의 하교 시간에 맞춰 그곳을 찾아갔다.
쌍둥이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학교를 나섰다.
서정우가 교문 근처에서 쌍둥이를 향해 손을 들었다.
박하연은 깜짝 놀랐다가, 바로 뒤로 돌아서 외쳤다.
“저기를 보아라! 누가 우리를 마중 나왔는가!”
친구들이 외쳤다.
“서정우!”
박다연도 외쳤다.
“내 말을 믿지 않던 자들이여! 죄를 뉘우치고 순순히 우리를 경배하라!”
서정우가 물었다.
“너희들 뭐하냐?”
쌍둥이가 즉시 대답했다.
“쟤들이 저번엔 서 형사님이 지나가다 잠깐 들른 거라고 해서요.”
“또 올 거라고 하자마자 왔으니까, 재들은 앞으로 우리 말은 백퍼 믿을 거예요.”
서정우는 피식 웃었다.
“지나가다 마침 수업 끝날 시간이 돼서 잠깐 들른 거야. 그런데 너네, 요즘도 그 꿈 꾸냐?”
박하연이 물었다.
“아빠 꿈이요? 네. 어젯밤에 꿨어요.”
박다연이 조금 진지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 가족에게 초능력이 생긴 듯.”
“왜?”
“어제는 엄마도 같이 나왔거든요. 셋이 같이 아빠를 만났어요.”
이건 서정우가 기대한 상황 그대로다.
‘일반 등급 성물이라도 차원에 영향을 끼치는구나. 철우 아저씨와 쌍둥이가 이미 꿈으로 연결되어 있으니까, 성물의 성스러운 힘이 그걸 좀 더 강화한 거겠지.’
박하연이 말했다.
“꿈에서 엄마가 아빠 때렸어요. 엄청 때렸어요. 아빠 죽는 줄 알았네.”
“응?”
박다연도 말했다.
“맞으면서도 좋다고 웃었어요. 아빠 변태인 줄.”
* * *
서정우는 유물 전문가 윤현중 교수를 만났다.
윤현중이 물었다.
“그 칼을 누가 샀는지는 알아내셨습니까?”
서정우가 대답했다.
“상황이 좀 더 복잡하게 됐습니다.”
윤현중이 웃으며 농담 삼아 물었다.
“또 살인 사건입니까?”
“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