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ility from Parallel Dimensions RAW novel - Chapter 257
258. 블랙 코브라
아시아 태평양 나노 제약한국 지사의 비서실장 곽훈영이 변명했다.
“설마 서정우가 구민호의 상황을 눈치채고 구하러 갈 줄은 몰랐습니다.”
지사장 정지원이 화를 냈다.
“전부터 둘이 접촉이 있었으니까 그 정도는 예상했어야지!”
“하지만 이번 일은 도저히 예상이 불가능….”
지금 지사장실에는 두 사람 외에도 연구소장이 있다.
연구소장 박상만이 오른손을 들었다.
“자. 너무 흥분들 하지 마시고.”
그가 지사장 정지원에게 물었다.
“사장님. 이번엔 일이 좀 커지긴 했지만, 평소처럼 수습하면 되잖습니까?”
“박 소장님은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릅니까? 창고를 다 태워버렸는데도 단서가 남았습니다. 그 사냥개 새끼가 약을 빼돌려 맞은 것 때문에, 주사기 파편이 남아서 국과수로 넘어갔다고요!”
박상만은 여유가 있었다.
“어차피 파편 조금입니다. 국과수 공무원들이 분석해봤자 나오는 게 별로 없을 겁니다.”
“물론 그렇긴 하지만….”
비서실장 곽훈영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제가 회의 들어오기 전에 인맥을 통해 확인한 게 있습니다. 국과수에서 그 약이 신체 반응속도를 높이는지 조사 중이라고 합니다.”
지사장 정지원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뭐? 그걸 어떻게 성분만 보고 눈치챘단 거냐!”
“서정우가 창고지기와 싸울 때, 창고지기의 움직임이 너무 빨랐다고, 그쪽을 의심해보라는 조언을 했다고 합니다.”
“제기랄! 또 서정우냐!”
연구소장 박상만이 이번에는 두 손을 다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자자. 국과수가 주사기 파편에 약 품이 조금 묻은 걸 조사하면 성분 몇 개는 추출할 수는 있겠지요. 그런데 그걸로는 그 약을 도로 합성해 내진 못합니다.”
“확실합니까?”
“제가 바로 연구소장입니다. 합성이 끝난 부스트팩을 아무리 분석해 봤자 똑같은 걸 만들진 못합니다. 충분한 양을 만들지 못하면 실험도 못하고, 그러면 그 약의 가치도 못 알아냅니다. 경찰도 아는 게 없으니까 그게 신종 마약이라고 발표한 거지요.”
“오늘 처음으로 좋은 소식을 하나 듣는군요.”
“그러니까 이번 건은 평소처럼 덮으면 됩니다.”
“이미 평소와 다른데 어떻게요?”
“저는 그쪽이 전문이 아니지만, 창고는 없앴으니 꼬리는 잘랐잖습니까? 창고지기는 어차피 우리가 누군 지도 모르고요.”
“창고지기가 문제가 아니라, 브로커가 잡혔어요. 브로커는 곽 실장을 압니다.”
“그래요? 그럼 이걸 어쩐다….”
비서실장 곽훈영이 바짝 긴장했다.
“전 언제나 사장님께 충성을 바치고 있습니다! 소장님 일도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정지원이 잠시 궁리하다가 물었다.
“곽 실장이 브로커와 만난 게 기록으로 남아 있지는 않겠지?”
“물론입니다. 공식적으로는 서로 모르는 사이입니다.”
“그럼 브로커가 사기꾼이라서 아무 말이나 막 던진다는 여론을 만들어. 네 알리바이도 좀 더 추가해놔.”
“예!”
“국회든 검경이든 언론이든 우리 돈 먹은 놈이 많으니까, 뭐가 더 터지지만 않고 운도 좀 따라주면 급한 불은 끌 수 있겠지.”
“휴우. 다행입니다.”
“문제는 서정우야. 서정우가 불이 꺼지는 걸 구경만 할까?”
“그게….”
연구소장 박상만이 말했다.
“그놈이 아무리 유명해도 결국 말단 형사잖습니까?”
“박 소장님. 그 말단 형사가 그동안 한 일을 보세요.”
“그래도 위에서 압력을 가하면….”
“오히려 누가 압력을 가하는지 거꾸로 조사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그냥 이번 일만 덮으면, 누가 덮었는지 다시 파고들 테고요.”
지사장 정지원이 얼굴을 계속 구겼다.
“지금까지 서정우가 본격적으로 달려들어서 해결 못한 사건은 없습니다. 그놈이 본격적으로 파다가 우리 부스트팩 프로젝트까지 들통나면….”
셋 중에 그나마 여유가 있던 박상만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었다.
“우린 끝장이지요.”
“그렇다고 이걸 안 덮을 수도 없고….”
세 사람은 입을 다물고 심각한 얼굴로 고민했다.
연구소장 박상만이 말했다.
“서정우만 없으면 다 해결되는데….”
갑자기 정지원의 눈빛이 독해졌다.
“그럼 제거합시다.”
비서실장 곽훈영이 얼른 물었다.
“서정우를 죽이잔 말이십니까?”
“이젠 그 방법밖에 없어.”
“서정우가 죽으면 나라 전체가 난리가 날 겁니다. 그건 절대로 못 덮습니다.”
“부스트팩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우리가 무슨 일을 했는지 들통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연구소장 박상만이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마약 밀수, 납치, 인체 실험….”
“그땐 아무리 전관예우 변호사를 써도 최소한 십 년 안에는 감옥에서 못 나와.”
박상만은 화들짝 놀랐다.
“허억. 십 년이나….”
“박 소장님. 회사에서 잘리는 건 괜찮습니다. 우리가 월급 몇 푼 받으려고 여기다닌 건 아니잖습니까? 감옥에만 안 가면, 그동안 벌어놓은 게 많으니까 인생 즐기면서 살 수 있습니다.”
세 사람 모두 연봉을 받은 것보다 연구용 마약 거래 과정에서 챙긴 돈이 훨씬 더 많다.
정지원이 말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감옥에 십 년 넘게 처박히면, 아니, 영원히 못 나오면, 그 많은 돈이 다 무슨 소용입니까?”
세 사람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모두 같은 눈빛이었다.
연구소장 박상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우리는 살아야지요.”
비서실장 곽훈영이 조언했다.
“서정우는 워낙 강해서, 청부업자 몇 놈 보내서는 못 잡습니다.”
정지원이 비웃었다.
“서정우를 상대로 칼 따위나 쓰니까 그렇지.”
“창고지기와 브로커는 권총이 있었지만 통하지 않았습니다. 이전 테러리스트들도….”
“더 멀리, 아주 멀리서 쏘면 돼.”
“저격… 말씀이십니까?”
“그래. 멀리서 쏴야만 서정우를 죽일 수 있어.”
셋 중에서 제일 궁지에 몰린 건 브로커와 직접 접촉한 곽훈영이다. 그가 주먹을 꽉 쥐며 큰소리쳤다.
“제가 저격 전문 킬러를 섭외하겠습니다.”
“돈이 얼마가 들든 최고를 골라.”
곽훈영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국내가 아닌 외국 출신의, 경험많은 킬러가 있습니다.”
* * *
안드레이 박은 러시아인이지만 외모만 보면 한국 사람과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의 증조할아버지가 일제 강점기 시절에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러시아 특수부대의 저격수 출신으로, 주로 활동하는 곳은 동아시아다. 그중에서도 경찰과 범죄조직 간의 전투가 곧잘 벌어지는 나라를 선호한다.
비서실장 곽영훈이 설명했다.
“이 킬러의 진짜 이름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들 블랙 코브라라고 부릅니다. 코브라처럼 치명적인 저격을 한다고 해서 붙은 별명입니다. 의뢰비는 비싸지만, 서정우를 확실히 처리하기 위해서는 블랙 코브라가 최선입니다.”
지사장 정지원이 물었다.
“우린 시간이 없어. 그 뱀새끼가 언제 국내에 들어와서 서정우를 제거할 수 있다는 거야?”
“이미 국내에 들어와 있습니다.”
“어? 왜?”
“누굴 노리고 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관광하러 왔을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그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정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서정우만 죽일 수 있으면 돼.”
“그런데 저격 대상이 서정우라고 했더니, 십억을 요구했습니다.”
“총알 한 발이 뭐가 그렇게 비싸?”
“동아시아 킬러 중에서는 최고 수준의 저격수입니다. 게다가 서정우의 이름값이 워낙 높으니까….”
“끄응. 준다고 해.”
“선금은 오억….”
“준다고!”
* * *
안드레이 박이 건물 옥상에서 저격 소총을 조립했다. 분해하면 가방에 넣을 수 있는 그 저격소총은 미국에서 만들어진 무기다.
그가 러시아가 아니라 미국산 무기를 쓰는 이유는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다.
그는 조립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큼지막한 소음기를 총구에 달았다. 그런 후에 옆에 놓인 다목적 망원경으로 경찰서 입구를 확인하며 혼잣말을 했다.
“거리 500. 매일 일정한 시간에 출근하는 형사라…. 이지 타깃이지.”
그는 서정우가 집에서나을 때가 아니라 경찰서에 들어갈 때를 노렸다. 이쪽이 장거리 사격 각도가 잘 나오기 때문이다.
“사무실 자리가 창문에서 보이는 위치면 더 좋은데, 그게 살짝 아쉬워.”
서정우의 자리는 창문에서 떨어져 있다. 창가에 자리가 있으면 기자들의 카메라가 그를 찍기 때문이다. 안드레이가 16배율 조준경에 눈을 댄 채 말했다.
“총알 한 발에 돈도 벌고, 명성도 높이고. 개꿀이군.”
서정우는 평소처럼 아침을 2인분 차려서 혼자 다 먹고 경찰서로 걸어 갔다.
“오늘도 이쪽 세상은 참 평온하구나. 좋다.”
그는 경찰서로 들어서다가 영화제작사 이사이자 BH 테크 회장의 딸인 이수현을 발견했다.
“음?”
이수현은 현관에서 인상을 살짝 쓰면서 서 있다가, 서정우를 발견하고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걸어왔다.
“정우 씨. 출근 시간에 딱 맞춰 오시네요?”
“집이 가까워서요. 이수현 씨가 여긴 어쩐 일입니까?”
“우리 영화에 문제가 생겨서요.”
“그 우리에 저도 포함된 겁니까?”
“조금은요. 현민호를 서 형사님이 뽑으셨잖아요.”
현민호는 인기 없는 아이돌그룹 소속의 가수 겸 배우다. 그동안 단역만 몇 번 맡다가, 이번에 이선화 주연 영화에서 주연급 조연 배역을 받았다.
서정우가 현민호를 떠올렸다.
‘여기서는 이름없는 아이돌 가수에 배우지만, 저쪽 세계에서는 인기 스타. 선화가 착한 녀석이라고 했는데.’
“그 친구가 왜요?”
“살인 혐의로 체포됐어요.”
서정우는 살짝 당황했다.
“살인이라니요?”
“그것도 치정 문제에 의한 살인이에요. 이미 제작 발표회까지 했는데 큰일 난 거죠. 이거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 영화 엎어져요.”
“곤란하게 됐군요.”
* * *
안드레이가 16배율 조준경의 한 가운데에 서정우의 가슴을 올려놓았다.
‘타깃이 대화하는 여자가 굉장한 미인인데? 그럼 당연히 미녀와의 대화에 집중하겠지. 이러면 내 총알이 빗나갈 수가 없단 말이야.’
그가 방아쇠에 손가락을 슬쩍 올려 놓았다.
‘잘 가라. 서정우.’
* * *
서정우의 감지는 패시브 스킬이라서 24시간 내내 몬스터가 흘리는 살기를 감지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스킬은 사람이 사람을 죽이기 직전에 흘리는 지독한 살기도 감지한다.
서정우의 감지 스킬에 살기가 걸렸다.
‘이건?’
서정우가 획 돌아섰다.
스킬 덕분에 방향은 정확히 잡았다. 사격 스킬 각성자의 높은 시력으로 그 방향을 노려보았다.
500미터쯤 떨어진 건물 옥상에 저격소총으로 서정우를 조준하는 놈이 보였다.
‘저격수.’
저격수가 있는 건물도 아는 곳이다.
‘수정이가 사는 오피스텔 옥상.’
* * *
안드레이는 멈칫했다. 그가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서정우가 그를 돌아보았다. 조준경을 통해 서정우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조금 놀라긴 했다.
‘날 눈치챈 건가? 저 거리에서? 설마.’
놀라긴 했지만, 총구가 흔들리진 않았다. 게다가 그의 수많은 저격 경험은 지금 이 순간에 목표를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었다.
‘이 기회를 놓치면 나중에 역습당한다.’
그는 고민 없이 손가락을 슬쩍 당겼다. 묵직한 진동이 어깨를 눌렀다. 총알이 발사된 후에 총구가 살짝 튀었다. 조준경도 조금 움직였다.
* * *
500미터 거리를 총알이 날아오려면 약 0.5초의 시간이 필요하다. 서정우에게 그 정도면 충분히 긴 시간이다.
그는 총이 발사된 후가 아니라, 발사하는 순간의 살기 변화를 감지해 움직였다.
총알은 워낙 빨라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게 정상이지만, 정면에서 보면 살짝 보일 때도 있다. 서정우 같은 고레벨 사격 스킬 각성자에게 0.5초면, 총알의 궤적까지 파악하고도 남는 시간이다.
그는 옆으로 움직이면서 총알이 어디에 떨어질지 계산했다. 혹시 빗나간 총알이 그가 피하는 쪽으로 날아 온다면, 자세를 바꿔야 한다. 안드레이의 사격 실력은 훌륭했다. 500미터를 날아온 총알이 그가 0.5 초 전에서 있었던 위치를 정확히 지나 1층 계단에 박혔다.
* * *
안드레이는 살짝 흔들린 총구를 다시 당기며 조준경으로 목표의 상태를 확인했다.
‘감이 왔어. 이건 명중이다. 그것도 확실히 심장을….’
서정우의 시체가 보이지 않았다.
“어?”
그는 재빨리 조준경을 움직여 그 옆을 확인했다. 서정우가 이수현을 안고 옆으로 뛰는 것이 보였다.
“젠장!”
안드레이가 다시 방아쇠를 당기려 했다. 하지만 서정우가 더 빨랐다. 그는 이수현과 함께 경찰 버스 뒤로 사라졌다.
안드레이는 재빨리 옥상에 주저앉았다. 심장이 갑자기 쿵쿵 뛰었다.
“그걸 피했어? 어떻게?”
불가능한 건 아니다.
“총을 쏠 때 보이는 섬광을 보고?”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그걸 실제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
“판단력과 반사신경이 도대체 얼마나 좋은 거야?”
* * *
이수현은 깜짝 놀랐다.
“정우 씨. 지금 이게 무슨….”
서정우는 이수현을 버스 타이어 앞에 내려놓았다.
“저격입니다.”
“네?”
“내가 죽기를 바라는 놈이 있나 봅니다. 전문 저격수의 솜씨인 걸 보니, 킬러겠죠.”
이수현은 덜덜 떨었다.
“그, 그럼 이제 어떻게 해요?”
“어쩌긴요. 저놈부터 잡아야죠.”
“네?”
“저놈을 잡아야 뒤에 있는 놈도 잡을 수 있으니까.”
“저놈은 총이 있잖아요!”
“서울 시내에서 경찰서로 총질하고 나서도 계속 저기 있을 리는 없습니다. 당장 빠져나가려 할 겁니다.”
단순히 짐작이 아니다. 적의 살기가 사라졌다.
“이수현 씨. 여기서 움직이지 말아요. 각도 보니까, 이 버스 타이어 뒤에 있으면 안전합니다.”
“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