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ility from Parallel Dimensions RAW novel - Chapter 99
99. 거짓말
서정우는 편의점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서소라는 소파에 누워서 손만 내밀었다.
서정우가 그 손에 콘 아이스크림을 얹어주었다.
“옛다.”
“왜 이건데! 뚜껑 열고 퍼먹는 아이스크림 사와야지! 있는 놈이 더하다더니, 경찰 월급도 따로 받는 스타 작곡가가 너무하네!”
그녀가 투덜대면서 아이스크림의 포장지를 벗기다가 다시 불평했다.
“아! 다 녹았잖아!”
서정우가 말했다.
“와. 같은 세상에 사는데 어떻게 팔자가 이렇게 다르냐.”
“뭐가?”
“이 늦은 시간에 편의점에서 힘들게 아르바이트를 하는 고삼 학생에게 미안하지도 않냐?”
“왜 그렇게 대상이 구체적인데? 뭘 보고 온 거야?”
“있다. 그런 게. 아. 오 사장님한테 내일 저녁때 걔가 찾아가면 밥이라도 맛있는 거 먹여서 보내라고 해라. 노래 좀 못해도 너무 뭐라 하지 말라고 하고.”
“걔가 누군데? 편의점?”
“너와는 다르게 되게 열심히 사는 애 있어.”
“왜 가만히 있는 날 디스하는데!”
서정우는 그날 밤에 잠이 오지 않아 뒤척였다.
“시차를 좀 조정해야겠다.”
그가 저쪽 세계와 이쪽 세계를 오갈 때, 양쪽의 시계가 항상 같은 시간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이쪽은 밤인데 저쪽은 낮일 때도 있고, 반대로 이쪽이 낮일 때 넘어갔는데 저쪽은 밤일 때도 있다. 시간대가 엇갈리면 낮이 굉장히 길어질 때도 있고, 반대로 밤을 두 번 겹쳐서 보낼 때도 있다.
그래서 그는 가능하면 양쪽 시간대를 맞추려고 한다. 그런데 사건이 생겨서 급히 왔다 갔다 하다 보면 겨우 맞춰놓은 시간이 쉽게 어긋난다.
지금은 잠이 오지 않았다. 그는 한참을 뒤척이다가, 아까 정현수가 편의점 앞에서 먹던 라면을 생각해냈다.
그는 집 밖으로 나갔다.
“밤이 깊을수록 라면은 더 맛있어지지.”
편의점에서는 남수정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일하고 있었다.
“어. 수정이는요?”
“오늘 저녁때 몇 시간만 일하기로 한 거라서 좀 전에 갔습니다. 수정이를 아시나 봅니다?”
“아. 예. 조금. 그래도 너무 늦기 전에 갔으니 다행이네요.”
서정우는 그곳에서 컵라면을 하나 먹고 나왔다.
이대로 집에 돌아간다고 해서 잠이 올 것 같지는 않았다. 저쪽 세계로 넘어갈 시간도 아니다.
그는 산책 삼아 동네를 돌아다녔다.
“이쪽 세계는 겉보기엔 참 평화로운데.”
남수정이 처한 상황을 생각하면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목적지 없이 동네를 그냥 걷던 그의 감각에 뭔가 잡혔다.
“어?”
살기였다.
“강도?”
강도가 살인을 저지르기 직전이라면, 몬스터와 비슷한 종류의 살기가 감지된다. 그런데 그의 스킬에 잡힌 살기는 약간 달랐다. 몬스터가 아니라, 그놈들과 싸우는 아군에게서 느껴지던 것과 비슷했다.
“어째서?”
서정우가 그 방향으로 뛰었다. 감지된 살기는 굉장히 강했다. 거리가 꽤 떨어져 있는데도 방향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쪽 세계에 몬스터가 나타났나? 설마!’
갑자기 새로운 살기가 잡혔다. 방향은 조금 전에 감지된 곳과 같았다. 이번에는 몬스터나 살인자에게서 느껴지는 것과 비슷한 종류였다.
‘뭔가 잘못됐다!’
* * *
남수정은 등을 방문에 기댄 채 앉아있었다.
“꺼지라고.”
남수정은 등을 방문에 기댄 채 앉아있었다.
“꺼지라고.”
소리라도 크게 지르고 싶었는데, 배에 칼을 맞은 상태라 목소리가 크게 나오지 않았다. 그녀가 왼손으로 상처를 눌렀다. 피가 멎지 않았다. 오른손으로도 상처를 누르고 싶지만 식칼을 쥐고 있어서 그럴 수가 없었다.
조폭 세 놈은 당황했다. 방금 그중 한 놈이 남수정을 찔렀다. 그녀의 피가 묻은 칼이 여전히 그 조폭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그 조폭은 남수정을 탓했다.
“그러게 왜 반항은 해서. 방안에 꼬맹이만 넘겨줬으면 너도 안 다치고 다 잘 끝났는데.”
“꺼져.”
“계약 다 해놓고 딴소리를 하니까 오빠들이 화가 나지 안 나겠냐?”
“너희들하고 계약 한 적 없어.”
“윈드 기획이 널 우리한테 팔았으니까 넌 이제 우리 거야.”
“21세기에 그런 게 어디 있어. 꺼져.”
피 묻은 칼을 쥔 조폭이 그녀의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식칼이 닿지 않는 거리였다.
“아직도 현실을 모르는구나? 윈드 기획이 너한테 가수가 되게 해준다고 했지? 물론 그랬겠지. 그런데 왜 하필 너를 골랐을까?”
“나 노래 잘해.”
“그럴지도 모르지. 그런데 최 사장은 처음부터 네 노래는 관심도 없었어.”
조폭이 히죽 웃으며 설명했다.
“넌 동생이랑 단둘이 산다며. 돈도 없고, 빽도 없고. 그래서 뽑았지.”
남수정이 얼굴을 더 찡그렸다. 칼에 맞은 곳이 너무 아팠다.
조폭은 남수정을 좌절시키려고 계속 설명했다.
“일부러 아무것도 없는 사람을 고른 거야. 그래야 높은 분 상대로 이리저리 굴려도 반항 못 하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조폭이 그녀가 막고 있는 방문을 가리켰다.
“저 방에 있는 네 동생 말이야. 너 동생 치료비 벌려고 일하는 거라며? 넌 저런 좋은 인질도 있고 얼굴도 예쁘니까 정말 최고의 조건이지. 그래서 널 콕 집어서 계약하자고 한 거야. 최 사장이.”
“나 아는 경찰 아저씨 있어.”
“우리도 아는 경찰 있다. 우리가 아는 경찰은 간부야. 간부. 그런데 이쯤 설명하면 보통 포기하는데, 이년은 왜 독기가 그대로지?”
다른 조폭이 물었다.
“형님. 상품에 기스가 났는데 이걸 어쩌죠? 배에 칼빵 맞은 자국은 성형수술로 안 지워질 것 같은데.”
“이 새끼가! 그럼 내가 칼 맞았어야 했냐? 이년이 먼저 찌르는 거 못 봤어?”
“아, 아닙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 목적은 이년이 아니잖아!”
그들은 도부장파 조폭이다. 그 셋은 그중에서도 채홍사라고 불리는 특별한 팀이다.
도부장파는 남수정을 데려가려고 온 게 아니다.
“최 사장 그 새끼가 그렇게 시끄럽게 잡히지만 않았어도.”
최선명이 잡힐 때 도부장파 조폭 몇 명도 같이 체포됐다. 그 사건이 뉴스에 크게 나는 바람에 도부장파는 지금 바짝 엎드려 있는 상태였다.
“꼬투리 하나만 잡히면 줄줄이 끌려갈 텐데.”
미성년자 여고생 남수정이 바로 그 꼬투리다.
도부장파 두목은 경찰이 최선명을 조사하다가 남수정에 대한 것을 알아낼까 봐 걱정했다. 그래서 채홍사 셋을 그녀에게 보냈다.
그들은 남수정이 아니라 그녀의 동생을 데려가 인질로 삼고, 그녀에게 형사들이 찾아오면 계약 자체를 한 적이 없다고 말하게 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남수정이 동생을 지키기 위해 결사적으로 저항했다. 억지로 방문을 열려는 놈들을 막으려고 부엌칼도 잡았다. 그러다 조폭의 칼에 찔렸다.
다른 조폭이 말했다.
“형님. 그런데요. 우리 헛다리 짚은 거 아닙니까? 이년 이거 계약 내용을 전혀 모르는 것 같은데요?”
“씨발. 최 사장 그 새끼 탓이야. 일도 마무리 안 지어놓고 다 됐다고 구라나 치고. 우린 이년도 어느 정도는 아는 줄 알았는데.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미 이 지경이 됐는데.”
갑자기 남수정의 손에서 식칼이 툭 떨어졌다.
조장의 얼굴이 펴졌다.
“오. 포기한 거야? 잘 생각했다. 말만 잘 들으면 네 상처도 치료해주고, 동생도 우리가 아는 병원에 입원시켜 줄 수도 있….”
그녀의 입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꺼져. 깡패 말 안 믿어.”
다른 조폭이 그 피를 보고 놀라서 물었다.
“혀, 형님. 혹시 너무 깊게 찌르신 거 아닙니까?”
조장도 당황했다.
“그, 그런가?”
“배 찔리고 입에서 피 토하면 보통 죽던데.”
“씨발. 놀라서 그랬다. 칼을 휘두르니까 나도 놀라서 그랬다고!”
“어쩌죠?”
조폭이 짜증을 내며 일어났다.
“어쩌긴 새끼야. 119라도 부르게? 지금 우리 상황 몰라? 고딩, 그것도 여자애를 찌른 거 걸리면 어떻게 될 거 같아? 전부 다 끝장이야.”
남수정이 떨어뜨린 식칼을 잡으려고 손으로 바닥을 더듬거렸다. 그러다 기침을 했다. 입에서 피가 다시 왈칵 흘러나왔다.
조폭이 짜증을 냈다.
“이년 진짜 죽겠는데? 뱃속에서 어딜 찔린 거야? 어차피 이거 못 살린다.”
“그럼….”
“데려가. 묻자. 방에 있는 애새끼도 같이….”
갑자기 반지하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조폭 셋이 뒤로 휙 돌아섰다.
“어떤 새끼….”
서정우는 집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남수정을 발견했다. 그는 이곳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여기가 남수정의 집인 것도 몰랐다.
‘수정이?’
그녀의 배에서 대량의 출혈이 일어났다. 입에서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는 상황을 깨닫자마자 가장 가까이 있는 조폭의 얼굴에 주먹을 콱 꽂았다.
“케엑!”
그놈은 코뼈와 이빨이 부러지며 부엌 구석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몇 개 없는 그릇이 박살 났다.
두 번째 조폭은 권투를 배웠다. 그는 반사적으로 두 팔을 들어 얼굴부터 보호했다.
서정우가 다리를 걷어찼다. 좁은 공간이라 피할 곳은 없었다. 적의 정강이가 뚝 부러졌다.
“으아악!”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지는 적의 얼굴에 서정우가 무릎을 박았다. 그 조폭은 얼굴이 박살 나며 뒤로 날아갔다.
가장 안쪽에 있던 조장은 손에 칼을 쥐고 있다. 그놈이 소리를 질렀다.
“어, 어디서 온 놈이냐!”
‘짭새의 방식은 아니야.’
조장은 그렇게 확신했다.
서정우가 조장을 향해 성큼 걸어갔다. 부엌을 겸한 입구가 워낙 좁아서 한 걸음이면 충분했다.
조장이 칼을 내질렀다. 칼날의 움직임이 날카로웠다.
“죽어!”
그 칼이 반쯤 날아왔을 때, 서정우가 그놈의 손목을 잡았다.
“어?”
서정우는 어떻게 된 일인지 묻지 않았다.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적의 손목을 뚝 부러뜨렸다.
“으아악!”
서정우가 비명을 지르는 적의 목을 손으로 콱 쥐었다.
“케켁!”
그는 이놈의 칼에 묻은 피가 어디서 나온 것인지 안다. 그대로 목을 비틀어버리려다가, 남수정이 그를 올려다보는 것을 보고 옆으로 던졌다.
그놈도 다른 놈들 위에 처박혔다. 이미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서정우가 남수정의 상태부터 확인했다. 전쟁터에서 수많은 부상자를 본 경험 덕분에, 그녀가 어떤 상태인지 바로 깨달았다.
“젠장.”
‘구급차가 올 때까지 못 버텨.’
저쪽 세계라면 응급처치 장비를 써서 시간을 벌 수 있다. 그런데 이곳에는 그 장비가 없다.
남수정이 힘없이 웃었다.
“경찰 아저씨. 진짜 엄청 세네요.”
서정우는 후회했다.
‘내 실수다. 이런 상황을 예상했어야 했어.’
그는 최선명이 계약금으로 이천만 원이나 주려 한다는 소리를 듣고 사기 가능성을 의심했다. 하지만 최선명은 이미 체포됐다. 남수정은 이제 윈드 기획이 아니라 ES 엔터테인먼트와 계약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 문제는 별 탈 없이 지나갔다고 생각했다.
남수정이 물었다.
“아저씨. 표정이 왜 그래요?”
“아니야.”
“저 원래 사기꾼들 되게 조심하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제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실수했나 봐요. 윈드 기획이 유명한 회사라고 들어서 안심했는데. 바보같이 속았어요.”
“네 잘못이 아니야.”
서정우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남수정은 계속 이야기했다.
“동생 상태가 갑자기 많이 나빠졌어요. 의사 선생님이 새로 수입된 약을 쓰면 된다고 했는데, 그게 의료보험이 안 된대요. 되게 비싸대요.”
“약값이 얼마인데?”
“이천만 원이요. 그런데 윈드 기획 사장이 잘 되면 이천만 원 준다잖아요. 그래서 속았죠.”
여기까지는 서정우도 아는 이야기다. 그래도 맞장구를 쳐주었다.
“이천이면 돼?”
“그 약을 쓰면 많이 좋아질 거래요. 완치는 안 돼도, 다시 학교도 갈 수 있대요. 아저씨. 나 부탁 하나만 해도 돼요?”
“해. 뭔데? 가수 되고 싶어? 도와줄까?”
“이천만 원만 빌려주면 안 돼요? 갚지는 못할 것 같지만.”
방문이 열렸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가 문을 잡고 있었다. 아이의 얼굴은 이미 눈물범벅이었다.
“누나. 아프지 마.”
“안에 들어가 있어. 나 별로 안 다쳤어. 괜찮아. 이 아저씨 경찰이야. 다 잘 될 거야. 아저씨. 문 좀 닫아주세요.”
서정우가 방문을 도로 닫았다.
남수정의 피 묻은 손이 힘을 잃고 아래로 미끄러졌다.
“엄마 보고 싶다. 아빠도 보고 싶고.”
그녀의 목소리도 점점 작아졌다.
“엄마 아빠가 나 잘했다고 칭찬해 주실까요? 동생 잘 키웠다고.”
그녀가 뒤를 돌아보려고 했지만, 몸에 힘이 없어서 그러지 못했다.
“아니네. 혼나겠네. 내 동생 아직 아픈데.”
서정우가 말했다.
“너 안 죽어.”
“저놈들이 하는 말 다 들었어요. 저 죽을 거래요.”
“넌 괜찮아. 살아. 내가 그렇게 정했어.”
서정우가 주머니에서 가느다란 금속 원통을 꺼냈다. 그는 단단한 합금으로 만든 원통형 보호 케이스의 뚜껑을 열고 그 안에서 아주 작은 유리병을 꺼냈다. 그 병에는 붉은색 액체가 들어 있었다.
남수정이 물었다.
“빨간약? 그거 바르면 나아요?”
“어. 나아.”
“거짓말. 경찰이… 거짓말한다.”
남수정의 눈이 감겼다. 그녀의 고개가 옆으로 천천히 기울어졌다.
서정우가 그녀를 부드럽게 안아서 바닥에 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