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turn RAW novel - Chapter (98)
자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마불은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일단 회유하기 위해서 한 말이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라는 말을. 하지만 검무양은 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뭡니까? 진짜로 주겠다는 겁니까?’ 마불은 자신도 모르게 지그시 어금니를 깨물었다. 사람이 어금니를 꽉 깨무는 모습, 상대를 자세히 살피면 알 수 있다. 더구나 검무양 같은 고수가 어찌 모르겠는가? 한데도 검무양은 못 본 척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온갖 생각이 마불의 머릿속을 스쳤다. 실수일까? 아니면 무신경해서? 그것도 아니면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어쩌면 이번에 운남쌍괴를 끌어들인 일을 벌주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도 이런 비슷한 일들이 있었다. 이런 순간에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검무양이 누구보다 총명하고 똑똑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단지 실수가 아니라 어떤 의도가 담긴 행동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항상 마불은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최악인 점은 바로 이것이다. 이런 감정을 말하지 못한다는 것. 다른 사람이었다면 벌써 직설적으로 물었을 것이다. 왜 그러냐고? 날 무시하는 거냐고? 이러지 말라고. 하지만 검무양에게는 그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관계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운 탓일까? 아니면 검무양이 의도한 어떤 보이지 않는 벽이 그와 자신 사이에 세워져 있는 것일까? 검무양과 자신의 관계는 자신 혼자서만 끙끙 앓는 관계다. 차라리 안 친한 것보다 더 나쁜 관계……. 결국 마불은 언제나처럼 이렇게 정리했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아직 젊으니.’ 어른인 자신이 참아야 한다고. 자신이 덤벼든 이 일은 혈기 왕성한 젊은이를 천마로 만드는 일이었으니까. “우리 쪽 사람들도 챙기셔야 합니다. 그들도 모두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런 수많은 상념 후에 나온 말임을 너는 좀 알아야 한다! 그러한 마불의 속마음을 읽은 것일까? “다른 마존들에게는 별로 정이 가지 않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어르신이나 도마께서는 떳떳이 나서서 자기가 누굴 지지한다고 밝히지 않습니까? 한데 나머지 마존들은 그저 눈치만 보고 있지요. 나중에 유리한 쪽에 붙겠다? 참 얄팍합니다.” 그 말에서 혈천도마만 빠졌어도 정말 좋았을 텐데. 아니다, 정말 자신을 기만하려 했으면 의도적으로 뺐겠지. 이렇게 솔직히 말해주는 것이 자신을 존중하는 것이리라. “그래도 그들이 꼭 필요합니다.” “저는 어르신만 믿고 갑니다.” 마불과 검무양이 서로를 마주 보며 웃었다. 마불은 어느 정도 기분이 풀렸지만, 마음속 응어리는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제일마존은 누굴 주겠다는 겁니까?’ 하지만 끝내 검무양도 마불도 그에 대해서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 * * 혈천도마는 새삼 놀란 얼굴로 나를 찾아왔다. “자네 말이 맞았네. 정말 대공자가 날 찾아왔더군. 대체 어떻게 안 건가?” “이건 비밀인데…… 전 미래를 볼 줄 아는 능력이 있습니다.” “여전히 미친놈인 걸 보니 누가 섭혼술로 자네 정신을 빼앗아 가진 않았군.” 혈천도마의 농담에 난 웃으며 말했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형은 원래 그런 성격이라고.” “이번에 새삼 크게 느낀 바가 있네.” 혈천도마는 하려던 말을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어차피 하려고 꺼낸 말이었다. 과연 그의 성격상 망설일만한 말이었다. “자네가 내게 어떤 사람인지 새삼 느꼈네.” “!” 나는 긴장했다. 혈천도마가 이런 식으로 나에 대해 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으니까. “무슨 뜻입니까?” “대공자가 어떤 유혹을 해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네. 자네 말처럼 파격적인 제안을 하더군. 하지만 전혀 동하지 않았네.” 내 귓가에 그의 마음의 문이 조금 더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혈천도마가 고마웠다. 그 사실을 이렇게 말해주는 것이 너무나 고마웠다. 그래, 이렇게 말해줘야 안다. 다들 다 아는 것처럼 굴지만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나는 곧장 흑마검을 뽑아서 바닥에 선을 쭉 그었다. 그리고 일전에 혈천도마가 그었던 선보다 좀 더 오른쪽에 선을 그었다. “저를 아끼는 마음이 이제 여기쯤 왔습니까?” 혈천도마는 부정하지 않았지만, 경고도 잊지 않았다. “그렇다고 기고만장했다간 어떻게 될지 알지?” “어떻게 됩니까?” “혹독한 대가를 치를 거다. 대가가 따르는 상품 중에서도 제일 앞에 진열된 것이 기고만장이다.”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지 혈천도마는 가끔 그와는 어울리지 않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나는 그의 이런 면을 참 좋아한다. “명심하겠습니다.” “자네 말대로라면 대공자가 풍천교주도 찾아갈 텐데. 그대로 둬도 되나?” “둬야죠.” “과연 그 사람이 나만큼 굳건할까?” “대신에 그쪽은 두 사람이지 않습니까?” “두 사람? 누구? 고월?” “풍천교주는 그 일을 반드시 고월과 의논할 겁니다.” “고월을 믿나?” “네.” “사람을 그리 쉽게 믿어선 안 되네.” 나는 혈천도마의 경계심에 약간의 질투가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굳이 그 질투심을 이용해서 혈천도마의 마음을 잡을 생각은 없으니, 나는 순순히 그의 말에 따랐다. “네, 항상 경계하는 마음을 가지겠습니다. 어르신께서도 잘 살펴주십시오.” “그러지. 그나저나 대공자가 이렇게 휘젓고 다니는데 자네는 그냥 있을 작정인가?” “오랜만에 돌아왔으니 한 번 정도는 선수(先手)를 양보해야죠. 형이 어떻게 나오는지 한 번 보죠.” 나는 차라리 잘된 일이라 생각했다. 형은 우리 모두를 시험대에 올릴 것이고. “비 온 뒤에 땅이 굳는지, 벌거벗은 채 진흙탕에서 뒹굴게 될지 한 번 보죠.” 제91회 정말 표나냐? 풍천교주는 창가에 앉아서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당에서는 섭혼마존 청선이 무공수련을 하고 있었다. 정식으로 섭혼마존이 되고 나서 수련 시간이 줄었지만, 그럼에도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늘고 있었다. 그녀는 확실히 섭혼술에 재능이 있었다. 만년한철 비수를 만지작거리며 청선의 수련을 지켜보던 풍천교주가 습관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신물이 놓여 있던 빈 장식장들이 있었다. 풍천교주가 한숨을 내쉬었다. 비수를 받으면서 신물로 삼아도 괜찮겠다고 했지만 이제 자신의 방에 신물은 손에 든 만년한철 비수뿐이었다. 어떤 의미에선 그 모든 신물을 이 비수 한 자루와 바꾼 셈이다. ‘아니다. 더는 뒤돌아보는 인생 살지 말자.’ 허전함을 후련함으로 바꿔야 한다. 예전이라면 신물이 신경 쓰여 어디 차라도 한잔 마시러 나갈 수가 있었나? 하지만 이제는 이 비수 하나 옆구리에 차고 어디든 떠날 수 있다. 비워야 자유로워진다더니, 정말 그 말이 딱 맞았다. 그래, 이렇게 생각하는 거다. 그러는 사이 청선이 수련을 마쳤다. “사부님, 그럼 오늘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수고했다.” 돌아서려던 청선이 다시 와서 망설였던 말을 꺼냈다. “사부님.” “왜 그러느냐?” “언제쯤 사부님의 진짜 비기를 전수해주실 겁니까?” 아직 풍천교주는 자신의 비기를 전수하지 않고 있었다. “청선아.” “네, 사부님.” “왜 그리 급하냐?” “약해서 그렇습니다. 약하니 절로 마음이 급해집니다.” 사형을 죽이고 마존 자리에 오른 그녀다. 처음에는 모든 서환진의 귀술사들이 그녀에게 열광했지만, 이제 그 인기가 슬슬 식고 있음을 느꼈다. 뭔가 압도적인 무공을 귀술사들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요즘이었다. 게다가 틈만 나면 자신을 만나려 하는 사우종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좋던 그였는데 마존의 자리에 오르자 거짓말처럼 싫어졌다. 행동 하나하나가 다 거슬렸다. 마음 같아선 확실하게 끊어버리고 싶은데, 혹시나 이상한 소문이라도 내고 다닐까 봐 가끔 만나주고는 있었다. 어쩌면 그를 죽일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마저 들었으니, 이래저래 심란한 그녀였다. “너는 어떤 마존이 되고 싶으냐?” “그런 사치스러운 생각은 할 겨를도 없습니다. 이 실력에 잠이나 오겠습니까?” “야망 있고 재능 있는 네가 한 삼십 년 열심히 수련하면 내가 된다. 어떠냐? 네 미래 모습이.” 순간 청선이 움찔했다. “지금보다 열 배는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청선은 말하고서도 괜한 농담을 했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풍천교주는 껄껄 웃으며 기분 좋게 받아주었다. “한 다섯 배 정도로만 해주지 그랬느냐?” “죄송합니다, 원래는 스무 배라고 하려고 했었습니다.” 내친김에 한 번 더 농담했고, 풍천교주는 더 크게 웃어주었다. 만난 이후 처음으로 농담을 주고받은 그들이었다. 청선은 풍천교주의 새로운 면모를 보았다. 그냥 꽉 막힌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그래, 너도 눈이 있고 듣는 귀가 있으니 내가 어떤 일을 겪었고, 어떤 상황인지는 대충 알 거다.” 그녀에게 직접 말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그녀는 알 만큼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교주 자리를 포기하고 검무극과 손을 잡은 것을. 과연 그녀는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 “네가 속으로는 나를 한심하게 여긴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아닙니다. 저라면 절대 할 수 없는 선택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더 한심하겠지?” “그래서 더 존경스럽습니다.” “내가 이 말을 꺼낸 이유는 무공도 중요하지만 다른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싶어서다.” “그게 뭡니까?” “사람이다. 정확히는 사람을 보는 눈이다.” “네.” “지금 속으로 이런 생각 했지? 사람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아닙니다, 사부님.” “나라도 그랬을 거다. 그러니 괜찮다.” “절대 아닙니다.” 풍천교주가 그녀를 응시하자, 청선은 속마음을 드러냈다. “무공이 약하면 사람도 다 소용없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다 떠나버릴 테니까요. 죄송한 말씀이지만 아직은 무공이 사람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지. 언젠가 너도 내 말을 이해하는 날이 올 거다.” “네! 알겠습니다.” 알긴 뭘 알겠나? 자기도 저랬다. 저 나이 때는 누가 말해줘도 귀에 안 들어왔다. 검무극 같은 자에 홀려서 돌아설 때마다 신물이 사라지고, 족쇄로 목이 칭칭 감겨서 질질 끌려다녀 봐야 아, 그때 우리 사부 말이 다 맞는 말이었구나 싶을 것이다. 사람 죽일 때나 무공이 중요하지, 현실에서는 사람 보는 눈이 백 배는 더 중요하다는 것을 그때서야 깨닫게 될 것이다. “조만간 네 성취를 보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마.” “감사합니다, 사부님.” 청선이 기분 좋게 웃으면서 그곳을 나섰다. 처음 청선을 제자로 삼을 때는 야망 가득한 독한 년이라고만 여겼다. 그때는 다른데 정신이 팔려 이 청선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과연 그녀에게 큰 정을 줄 수 있을까 싶었는데, 막상 가르치다 보니 나름의 정이 생기고 있다. 특히 근래에 똑똑한 것들에게 이리저리 당하다가, 이렇게 잔소리도 좀 하고, 어른 노릇 할 수 있는 상대가 생기니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방문자가 있었다. 바로 대공자 검무양이었다. “교주님을 뵙고 싶어서 찾아뵈었습니다. 미리 기별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괜찮소. 들어오시오.” 검무양이 풍천교주와 마주 앉았다. “그날은 경황이 없어 제대로 인사를 못 드렸습니다.” “나도 마찬가지였으니 개의치 마시오.” “제 아우와 많이 친해지셨다고 들었습니다.” “여러 곡절이 있었소.” “무극이에게 큰 기연이었겠군요.” “실제로는 그렇지도 않았소.” “무슨 말씀이신지요?” “아우분께서 워낙 똑똑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