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1
절대 검감(絶對 劍感)
글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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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첩자의 끝은 죽음이다.
매캐한 먼지들로 가득한 어두운 밀실.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았다는 증거다.
“켁.”
입과 코로 들어간 먼지로 기침이 나왔다.
그런데도 나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제발 여기이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등을 비춰가며 밀실을 조심스럽게 뒤지던 나는 이윽고 낡은 목함 하나를 발견했다.
조심스럽게 먼지로 뒤덮인 목함으로 다가갔는데,
-쉭!
그때 공기가 빠지는 듯 한 소리와 함께 무언가 튀어나왔다.
“헉!”
놀란 나는 다급히 뒤로 물러났다.
가까이에서 거리가 벌려지자 보인 것은 다름 아닌 뱀이었다.
-쉭쉭!
그런데 특이하게도 뱀은 설원을 담은 것처럼 새하얀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 새하얀 눈을 쳐다보니 모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이었다.
여태껏 동굴 안에 쥐새끼 한 마리도 없던 것은 이놈이 먹어치워서 였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뱀이 쉭쉭 소리와 함께 혀를 날름거리며 나를 위협했다.
마치 목함에 다가가는 것은 막으려는 것처럼 말이다.
“에라이!”
뱀을 향해 나는 공격할 것처럼 횃불을 휘저었다.
횃불의 뜨거운 열기와 주황빛 불똥이 튀자 뱀의 새하얀 눈동자가 일렁였다.
-화륵화륵!
그런데 이렇게 횃불을 휘젓는데도 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새하얀 눈동자는 나의 눈을 응시하고 있었다.
무슨 뱀이 불꽃을 겁내지 않지?
결국 나의 손이 허리춤에 있는 검병으로 향했다.
-쉭쉭!
그때 뱀이 위협하듯이 들어 올렸던 기다린 몸을 숙였다.
그리고는 싱겁게도 빠른 속도로 바닥을 헤엄치듯이 스멀거리며 어딘가로 사라졌다.
“하아.”
내 입에서 안도의 숨이 흘러나왔다.
사실 뱀을 잡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 오묘한 백색의 눈동자 때문에 왠지 모를 불안함을 느꼈었다.
혹시나 뱀이 다시 돌아올까 싶어 얼른 목함을 열었다.
“아!”
목함 안에 무언가 들어있었다.
그것은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만 같은 누렇게 변색된 종이였다.
계산해보면 근 600년은 되었을 터인데, 특수한 약품 처리라도 한 건지 색이 바랬어도 아직까지 글씨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종이에는 수많은 문구들이 적혀 있었다.
“검선비록.”
600년 전 검(劍)의 일인자라 불리던 검선이 남겼다는 보물이 내 손에 들어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이것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
그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나는 어릴 때 주화입마로 인해 단전이 손상되어 내공을 익힐 수 없는 삼류 무인의 신세였다.
두 번째 내가 처해진 상황 때문이다.
-슥!
내가 만지고 있는 이 가슴 쪽에는 혈고(血蠱)가 있다.
혈고는 혈교(血敎)에서 만든 독벌레이다.
그들이 원하는 즉시 이 망할 독벌레를 폭주시켜 숙주를 죽일 수 있다.
이딴 게 왜 내 가슴 속에 있냐고 묻는다면 내 정체가 혈교의 첩자이기 때문이다.
-으득!
이가 갈렸다.
그때 납치만 당하지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꽉!
검선비록을 잡고 있는 내 손에 힘이 들어갔다.
종이가 꾸겨지는 것에 놀란 난 심장이 오그라들어 얼른 손에 힘을 뺐다.
무림인들, 아니 검을 갈고닦는 검객에 있어 천고의 보물이라 불리는 검선비록은 나를 혈교의 주구에서 벗어나게 해줄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흠.”
그런데 이게 정말 검선비록이 맞나 모르겠다.
내용이 뭔가 괴이하기 짝이 없다.
검심을 알기 위해 칠성의 북두성의 현기를 주저리주저리……
이게 정말 비급인가?
게다가 약간 소름이 돋는 게 무슨 좌도방문의 술법마냥 붉은 먹으로 종이 군데군데 이상한 문양들을 그려져 놓은 것이 왠지 께름칙했다.
알게 뭐람.
어차피 내 목적은 가슴 속에 있는 혈고를 제거하고 첩자가 아닌 다시 정파 명문가의 자식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가문에서 쓰레기 취급을 받아도 시시각각 가슴 졸이고 사는 첩자보다는 나았다.
다른 곳을 뒤지고 있을 백위향 장로와 황룡 당주 모용수를 부르면 된다.
그 전에 할 일이 있다.
나는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특수 처리가 된 손가락 마디 두 개 정도 되는 원통이었다.
“젠장.”
순간 짜증이 났다.
원통에 살짝 금이 가 있었다.
아무래도 절벽을 내려올 때 앞으로 고꾸라져서 그런 모양이다.
그나마 깨지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나는 검선비록의 종이를 조심스럽게 접고 또 접어서 원통에 집어넣었다.
“후…..”
이거 삼킬 수 있을라나 모르겠다.
이럴 줄 알았다면 물이라도 준비할 걸.
입을 벌리고서 원통을 넣고 꾸역꾸역 억지로 삼켰다.
토할 것 같았지만 별 수 없었다.
“끄엑.”
썩은 고목나무 뿌리를 말려서 먹는 느낌이다.
이걸 이렇게 삼키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 나름의 대비책이다.
아무리 나를 도와준다고 했다지만 저들도 무인인 이상 검선비록을 탐낼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드르륵!
밀실의 돌문을 열고 나간 내가 동굴 중앙에 있는 공동으로가 벽을 두드렸다.
-똑! 똑! 똑똑똑! 똑똑! 똑!
무림연맹의 암호였다.
작게 두드려서 안 들릴 수도 있지만, 무림연맹에서 서열 5위라 불리는 백위향 장로나 후기지수들 중에서 쌍룡의 일인인 모용수의 내공 수위라면 이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후에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찾았나?”
어깨가 쩍 벌어진 성골에 멋들어지게 수염을 기른 중년인.
그는 무림연맹의 4장로인 백위향이었다.
그 옆에 누가 봐도 눈매가 날카롭고 콧날이 높게 서있는 청년은 명문가로 정평이 난 모용세가의 장남인 모용수였다.
호흡을 가다듬은 내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네. 장로님.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 말에 두 사람의 얼굴이 활짝 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천고의 보물이라 불리는 검선비록을 찾아냈으니, 그 기분을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알 법 했다.
황룡당주 모용수가 내게 조용히 물었다.
“어디에 있나? 검선비록은?”
“그 전에 약조하신 것을 지켜주십시오.”
그 약조는 혈고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백위향 장로의 심후한 내공이라면 체내의 혈고를 진기로 태울 수 있다고 들었다.
나를 믿어준 두 사람에게는 미안했지만 첩자로 온갖 고생을 한 나로서는 확실한 보장이 필요했다.
백위향 장로가 웃으며 말했다.
“허허허, 그렇군. 자네의 말이 맞네. 계산은 확실히 해야 하지.”
그리고는 황룡당주인 모용수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스릉!
황룡 당주 모용수가 허리춤에 있던 검집에서 서슬 퍼런 예기의 보검을 뽑았다.
모용세가의 명검이라 불리는 예단검(譽端劍)이었다.
갑자기 검을 뽑자 당황한 내가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무슨 짓입니까?”
“죽기 싫으면 내놓아라.”
모용수가 검 끝으로 나를 겨냥하며 말했다.
검선비록을 내놓지 않으면 당장에라도 나를 찌를 기세였다.
날카로운 살기에 심장이 벌렁거렸지만 늘 혈고의 불안함에 사로잡혀 살아왔던 내가 이런 협박에 순순히 예 드리겠습니다 라고 하겠는가.
“……드리면 혈고를 제거해주실 겁니까?”
“글쎄. 자네를 살려둘 필요가 있을까?”
아아 미치겠다.
혹시나 했는데 들어맞았다.
검선비록에 저 두 사람은 눈이 멀었다.
보물을 얻은 뒤에 곧바로 살인멸구를 할 기세였다.
“무림 연맹의 임무에 사적인 감정이나 탐욕을 부리면 안 된다는 율령을 어기실 겁니까?”
내 말에 백위향 장로가 비웃음을 담아 말했다.
“누구도 모를 터인데 율령이 무슨 소용인가?”
“제가 죽으면…”
“혈교의 첩자 하나 죽었다고 문제 될 게 무언가. 오히려 첩자를 찾아낸 우리의 공로를 맹주께서 치하하시겠지.”
빌어먹을!
이래서 믿을 놈이 없다는 것이다.
이들을 마지막 희망 삼아 강제로 첩자가 된 것을 밝혔는데 이런 식으로 이용한다.
“제가 끝까지 입을 다물면 어쩌시려고요? 우리뿐만이 아니라 혈교에서도 이곳에 고수들을 파견한 건 잊으셨습니까? 촌각을 다투는 상황이신 것.”
그들이 절벽 근방을 수색하고 있었다.
시간을 끌게 된다면 검선의 보물이 있는 동굴이 절벽 아래에 있다는 사실을 곧 알아차릴 것이다.
그 말에 황룡당주 모용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런데 백위향 장로는 아니었다.
“잔머리를 굴리고 싶은 모양인데, 촌각을 다투는 상황인 것은 우리뿐만이 아니라 네놈도 마찬가지지 않나.”
“………”
“네놈이 이런 상황에 수많은 밀실들 중에 한 곳에 보물을 숨겼다고? 잔수작 부리지 말거라. 네놈이 숨길 장소라고 해봐야 그 몸뚱어리 속이겠지.”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머리를 굴린 것이었는데 단번에 맞춰버렸다.
그 이유는 너무도 간단했다.
“네놈의 소지품을 본 장로가 뒤져보지 않았을 것 같나?”
백위향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아아 망했다.
이럴 때 내공이 없는 삼류라는 것이 천추의 한이었다.
누군가 작정하고 방을 뒤져도 그 기척을 감지할 수 있을 만한 내공이 없었다.
물론 백위향 장로와 같은 엄청난 고수가 뒤지면 어쩔 수 없겠지만 그래도 억울하다.
“그럼 놈의 배를 갈라보면 되겠군요. 장로님. 후후후.”
모용수가 여유롭게 웃어보였다.
지금 그의 모습은 정파 후기지수가 아니라 그저 탐욕자에 불과했다.
별 수 없었다.
-털썩!
무릎을 꿇은 내가 손발이 닳도록 빌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평생 입을 다물고 살겠습니다. 저 같이 내공도 익히지 못한 삼류 무인을 죽인다고….”
“읽었지?”
“네?”
“읽었잖느냐. 검선비록.”
할 말이 없었다.
그 종이가 검선비록인지 알려면 안 읽고 무슨 수로 아는가.
억울한 것은 그 안에는 특별히 비급이라고 할 만한 내용은 전혀 없었다.
“그게 네가 죽어야 할 또 다른 이유다.”
“비, 비록에는 특별한…”
-푹!
그 순간 가슴이 화끈거렸다.
모용수의 예단검이 너무도 쉽게 내 가슴을 꿰뚫었다.
애초에 이 녀석들은 나를 살려둘 생각 자체가 전혀 없었다.
“쿨럭.”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나는 실이 끊어진 인형마냥 바닥에 쓰러졌다.
애초에 혈교와 무림연맹 양측에서 이 임무가 하달되는 순간부터 내 운명은 정해져 있던 것이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정신이 혼미해진다.
이렇게 죽는 건가.
“배를 갈라라.”
백위향 장로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이놈은 내가 무슨 식육을 위한 돼지도 아니고 배를 가르라는 말을 저렇게 쉽게 하지?
“알겠습니다.”
모용수가 가슴에서 검을 뽑아서 배에 꽂았다.
-푹!
“끄윽!”
그때 배속에서 뭔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하필 꽂아도 정확하게 뱃속의 원통에 검을 꽂아버린 모용수다.
그도 그것을 느꼈는지, 당황해서 얼른 검을 뽑고서 그 부위를 중심으로 빠르게 배를 가르려고 했다.
혹시나 원통에 위산이나 이물질이 들어가서 종이가 손상될 까봐였다.
바로 그때였다.
-화르르륵!
“엇?”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뱃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일어나더니, 이내 파란 불꽃이 치솟았다.
당황한 모용수가 뒤로 물러났다.
“뭐하는 짓이야! 빨리 배속에서 그걸 꺼내!”
“네, 넵!”
백위향 장로의 외침에 그가 다시 배를 가르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어느새 내 몸 전체가 파란 불꽃의 화마에 집어삼켜졌다.
그런데 이상했다.
몸이 타게 되면 고통스러워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이미 죽어가는 몸이어서 그런가.
“젠장! 불이 왜 안꺼지냐고!”
모용수의 호들갑스러운 목소리가 점점 옅게 들린다.
막상 죽는다고 생각하니, 모든 게 후회된다.
어째서 이런 인생을 살게 된 걸까.
참으로 원통하다.
눈앞이 점차 푸른 불길에 잠식되어가면서 흰빛으로 환해져갔다.
그 순간,
-촥!
무언가 내 몸을 적셨다.
불을 끄기 위해서 물을 끼얹기라도 한 것인가.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으악!”
일어나자마자 정신을 차린 나는 푸른 불꽃에 뒤덮였던 것이 떠올라 내 손과 발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멀쩡하기 그지없었다.
심지어 모용수의 검에 찔렸던 배마저도 멀쩡했다.
대체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키득키득.”
귓가에 들리는 비웃음 소리.
이에 고개를 들어 올렸더니, 15, 16세쯤 될 법한 화려한 비단 옷을 입은 소년 두 명이 비웃음을 흘리며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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