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275
90화 방장의 조건 (1) >
“양강의 내공을 익히다니?”
장인어른인 월악검 사마착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양강의 내공을 익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체내에 자리하고 있는 음양의 균형을 흐트러뜨리기 때문이다.
음양의 균형이 무너진다는 것은 체내의 불균형을 초래하게 되고 결국 단명의 지름길이 된다.
그 대표적인 체질이 바로 구음절맥(九陰絶脈)과 태양절맥(太陽絶脈)이다.
수만 명의 한 명 꼴로 나타나는 이런 체질의 소유자들은 음양의 불균형으로 단명을 하는데, 이것을 극복한 기인들이 있다.
기인들은 음양의 불균형을 극복하기 위해 무공을 창시하였고 그 중 하나가 바로 구양진경이다.
하나 내가 익힌 설음화양선무는 다르다.
처음부터 음양의 균형을 맞춰가며 그 기운을 키웠기에 음양 어느 하나에만 치우친 무공에 비해 훨씬 안정적이라 할 수 있었다.
“……도가 계열의 운기법이구나.”
기운만으로 운기 계통을 단번에 알아맞히는 장인어른이다.
만박자와 더불어 무림에서 가장 박식하다고 불릴 만 했다.
“대체 어디서 이런 고명한….”
“집중하셔야 할 테니, 말씀을 삼가 해주십시오.”
-고오오오오!
화양선권의 양강의 기운이 장인어른의 경맥들로 스며들었다.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한기가 있다면 몰아내기 위해서였다.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만큼 남겨놨군.’
구양진경으로 한기를 몰아낸 고수가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세밀할 정도로 공력을 다루는데 능한 자였다.
소림이 괜히 정종의 근원이라 불리는 게 아니었다.
골수까지 미친 한기를 완전히 몰아내자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였다.
-꿈틀!
장인어른의 여러 경맥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요동을 쳤다.
‘과연.’
역시 장인어른이었다.
기문이 봉해지고 한기가 골수에 미쳤는데, 조금씩 기운을 갈무리하고 있었다.
한기를 몰아내게 된다면 돌아온다고 했던 말이 허언이 아니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했던가.
모여진 기운들을 장인어른이 한 점에 집중하자,
-팍!
장인어른의 기문에 박혀 있던 금경침 중 하나가 뽑혀져 나왔다.
기문 하나가 열리자 기운의 흐름이 완만해졌다.
그러자 장인어른은 기다렸다는 듯이 기운을 나누어 기문을 막고 있는 금경침들에 보냈다.
-파파파파파팍!
동시에 여섯 개의 침이 뽑혀져 나왔다.
정말 대단했다.
칠대 기문을 막아둔 것을 이리 쉽게 풀어내다니.
박혔던 금경침을 풀어낸 장인어른이 내공을 주천시키며 운기를 통해 기운을 회복해갔다.
“공자님!”
사마영이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불렀다.
이대로 또 다시 아버지를 두고서 떠나야 하나 불안해했던 그녀였다.
“지켜보자.”
장인어른이 곧바로 운기에 들어간 것은 빠르게 내공을 회복하기 위함이다.
아마도 우리와 함께 탈출하기 위해선 전력을 서둘러 회복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거다.
나는 동굴의 입구 쪽을 쳐다보았다.
“왜 그러세요?”
“역시 소림이군.”
“네?”
벌써 수많은 인영이 몰려들고 있었다.
아마도 근방에 있는 무승들을 부른 것 같다.
장인어른이 내공을 회복할 시간을 벌어야 할 터이니, 호법을 위해서 나가봐야 겠다.
“장인어른을 지키고 있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은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뭉클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고마워요.”
“당연한 일을.”
가족이 될 장인어른을 지키는 일이다.
어찌 고마움을 바라겠는가.
그들을 남겨두고서 나는 동굴 바깥으로 걸어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오십여 명에 이르는 무승들이 몰려와 회금동 앞에 진을 치고 있었다.
동굴에서 나오는 내 모습에 무승들이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정말 혈마야.”
“혈마가 본사에 침입하다니.”
“어찌 이런 일이…..”
“아미타불.”
사파의 수장 격이라 할 수 있는 자리가 바로 혈교의 교주다.
그런 내가 불가의 중심이자 정파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소림사의 한복판에 나타난 것은 저들에게 있어서 최악의 사태나 다름없었다.
무승들 중에 연배가 있어 보이는 중년의 무승이 앞으로 나섰다.
“아미타불. 이곳은 불가의 성지이자 정종의 중심이요. 정식으로 출입을 요청해도 들어올 수 있을까 말까 한 곳에 어찌 이리 함부로 침입한 것이오!”
노기를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나는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소림에서 본 교주의 장인어른을 금옥에 가둬두고 있는데, 이를 어찌 내버려둔단 말인가.”
“장인어른?”
“설마 월악검?”
그런 나의 말에 무승들이 웅성거리며 난리가 났다.
회금동에서 경을 외우던 승려들에게 자세한 사정을 듣지 못한 모양이다.
하긴 그들은 내가 소림에 침입한 것에 더욱 초점이 맞춰져 있을 거다.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지만 이내 중년의 무승이 소리쳤다.
“설사 그렇다고 하여도 모든 일에는 절차란 것이 있소이다. 한 단체의 수장이라는 분이 어찌 이런 경거망동을 저지를 수 있단 말이오!”
절로 코웃음이 나온다.
소림은 속세와 연을 끊었다.
그렇기에 어떠한 단체들보다도 폐쇄적이다.
그들은 외압에조차도 소신을 굽히지 않기로 유명한데, 자신들과 대립 관계라 할 수 있는 혈교의 수장인 내가 요청한다고 듣기나 하겠는가.
“이 일은 일개 무승들과 나눌 사안이 아닌 것 같군. 하니 소림의 방장 대사께서 오기를 기다리겠다.”
그런 나의 말에 무승들이 공분하여 소리쳤다.
“어이 이런 오만무도한 자를 보았나!”
“방장 대사께서 사마외도를 걷는 자와 말을 섞는다는 게 가당키나 한 것 같소.”
“썩 물러나지 않는다면 경을 치르게 될 것이오!”
그래도 스님들이라 그런지 항의하는 말조차 격조가 있다.
하나 여기서 물러날 것이라면 오지도 않았지.
나는 앞으로 나서며 검결지를 들었다.
한 발자국 걸어 나왔을 뿐인데, 일부 무승들이 움찔하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촥!
가볍게 검결지를 긋자 날카로운 예기에 의해 바닥에 선이 생겨났다.
대뜸 선을 긋자 무승들이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에 소리 높여 말했다.
“경고하겠다. 방장 대사가 오기 전까지 이 선을 넘는 자가 있다면 응당 부처님의 곁으로 가고 싶다는 것으로 알아듣겠다.”
“아니 이 자가 정녕!”
-팟!
중년의 무승이 분개했는지 내게 신형을 날렸다.
아무리 속세와 연을 끊었다고 해도 오대악인이라 불릴 정도면 어느 정도 무위를 지녔는지는 짐작할 수 있을 터인데 용기가 가상하다.
중년의 무승이 마치 용과 같은 기상으로 권초를 펼쳐왔다.
이게 소림사의 유명한 권법 중 하나인 용왕유권(龍王柔拳)인가 보다.
“하압!”
권세가 패도적이고 훌륭하나 상대가 나빴다.
나는 뒷짐을 진 상태로 선을 넘으려고 하는 중년의 무승을 향해 바닥에 있던 돌멩이를 가볍게 걷어찼다.
-퍽!
“으헉!”
포탄처럼 날아간 돌멩이에 가슴을 맞은 중년의 무승이 비명과 함께 뒤로 튕겨나갔다.
그렇게 튕겨나간 무승은 바닥을 몇 번 뒹굴더니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
그 광경에 무승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손도 대지 않고 돌멩이를 날려 쓰러뜨릴 줄 몰랐나 보다.
“분명 경고했다. 이 선을 넘지 말라고.”
나는 강렬한 기세를 보이며 그들에게 말했다.
이에 기가 질렸는지 무승들의 안색이 어두워져갔다.
확실하게 무위의 격차를 보이니 섣불리 덤빌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때 우렁찬 함성 소리가 들렸다.
“합!”
함성의 진원지는 무승들이 너머 나한당이 있는 방향이었다.
그곳에서 봉을 들고 있는 백여덟 명의 주황색 승복을 입고 있는 무승들이 오열을 맞춰서 걸어오고 있었다.
“나한 무승들이다!”
“와아아아아아!!!”
그들의 등장에 무승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지금 나타난 무승들의 대부분이 일류고수들이었고 개중에는 절정의 고수들도 있었다.
비율로 치면 8할과 2할인 것 같다.
‘백팔나한무승.’
저들이 그 유명한 백팔나한무승인 듯 하다.
모든 합격진을 통틀어 가장 완벽하다고 불리는 백팔나한진(百八羅漢陣)을 연마한 무승들이다.
알려진 바로 백팔나한진에 갇혀서 무사히 빠져나온 자는 아무도 없다고 할 만큼 그 위력은 그야말로 최고로 일컬어진다.
그런데 몰려온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저게 뭐야? 온몸에 황동칠을 한 것 같은데?
소담검의 말처럼 하의만 입고서 전신이 황동빛으로 된 승려들도 오고 있었다.
감정이 없는 인형처럼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등장에 무승들이 또다시 환호성을 질렀다.
“십팔동인이다!”
십팔동인?
들어본 적이 있다.
금강불괴의 어원은 소림의 금강불형권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금강불형권에 대성한 자는 도검불침의 금강지체에 이른다고 하는데, 이 경지에 이르기 위해선 보름에 한 번씩 특수한 약물에 들어가 찢어지고 탈 것만 같은 고통을 견뎌내는 수련을 10년 이상 해야
한다고 들었다.
그렇게 금강불형권을 대성하게 되면 피부가 저렇게 철처럼 단단해지고 전신이 황동빛을 띈다고 한다.
-오랜만에 보는군.
혈마검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왜 상대한 적 있어?’
-4대 혈마 때 저놈들과 겨룬 적이 있다. 십팔동인진이라고 했던가. 단단한 것도 그렇고 상대하기 정말 까다롭기 짝이 없다.
그런 자들까지 불렀다라.
확실하게 보내줄 생각이 없다는 거다.
그때 전각을 통해 한 무리의 승려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지금까지와 다르게 전부 연배가 되는 중년의 승려들이었는데, 하나 같이 그 기세들이 보통이 아니었다.
열 명은 회색 가사를 입고 있었는데,
‘십계십승.’
저들이 계율원을 담당하는 열 명의 승려들인가 보다.
승려들이 지켜야 할 열 가지 계율인 살계, 투계, 망어계, 기어계, 주계, 악구계, 음계, 진욕계, 탐계, 치계를 관리하는 승려들로 절 안에서 전주 다음으로 높은 위치다.
-저기도 오는데.
남서쪽 전각으로 들어오는 노란 가사를 입은 중년의 여덟 승려들이 있었다.
“아미타불. 팔대호원을 뵙습니다!”
“팔대호원을 뵙습니다!”
그들을 보자 승려들이 이구동성으로 합장하며 인사를 올렸다.
소림의 방장을 호위하는 여덟 승려들이 나타난 걸로 방장도 곧 나타날 것 같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일을 제대로 키웠구나.”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장인어른 월악검 사마착이었다.
좀 더 공력을 회복해도 될 터인데, 생각보다 빨리 나온 그였다.
“괜찮으십니까? 장인어른.”
그런 나의 물음에 장인어른이 그저 콧방귀를 뀌었다.
장인어른은 벽의 벽을 넘어섰기에 기를 완전히 갈무리할 수 있어서 어느 정도까지 회복했는지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안색에 붉은 빛이 감도는 걸로 보아 아까보단 훨씬 나았다.
“공자님…..정말 무슨 수가 있으시죠?”
장인어른의 뒤를 따라 나온 사마영이 내게 물었다.
몰려드는 수많은 승려들의 모습에 우려가 되는가 보다.
그 물음에 답한 것은 내가 아닌 장인어른이었다.
“방안이 없다면 이목을 살 이유가 없을 테지. 외부에 복병을 둔 것이냐?”
“……혼자 왔다고 하던데요.”
사마영의 그 말에 장인어른이 눈살을 찌푸렸다.
장인어른은 내가 뭔가 커다란 계책을 마련했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그게 정말이냐?”
“그렇습니다.”
나의 대답에 장인어른이 머리가 지끈거렸는지 이마에 손을 짚으며 말했다.
“그럼 무슨 배짱으로 소림을 자극한 게야?”
“그건…..”
“설마 정면으로 돌파하여 저들이 쫓아오지 못하도록 전의를 꺾으려고 한 것이냐?”
내 의도를 단번에 알아맞히는 장인어른이었다.
장인어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소림의 저력을 가벼이 보았구나. 소림에는 백팔나한진과 진각 대사만 있는 게 아니다. 정말 무서운 자는 장경각….”
미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몰려들어 포위하고 있던 모든 승려들이 합장을 하며 예를 갖췄다.
인파의 한 가운데가 파도처럼 열리며 승려들의 사이로 붉은 가사에 금색 법구로 보이는 지팡이를 들고 있는 범상치 않은 노승이 나타났다.
“늦었구나.”
장인어른이 노승을 보며 중얼거렸다.
저 자가 바로 소림사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방장 진각 대사였다.
‘…….소문이 사실이었네.’
소림의 진각 대사가 나서면 팔대고수의 판도가 바뀐다는 말이 있었다.
그런데 그게 정말이었다.
진각 대사는 벽을 넘어선 고수였다.
한데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정작 그가 아니었다.
방장 진각 대사의 뒤에 서있는 주홍 가사를 입은 두 노승이 있었는데, 좌측 편에 서있는 자는 벽의 벽을 앞둔 절세고수였다.
즉 방장인 진각 대사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이었다.
장인어른이 내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자가 장경각주인 진종 대사다. 차기 방장으로 소림의 창시 이래 두 번째로 구양진경과 역근경, 세수경을 동시에 대성하여 내공만으로는 나와 필적한다.”
그리 말하지 않아도 느껴진다.
벽의 벽을 넘어서지 않았는데 저런 엄청난 내공을 지니다니.
속세와 연을 끊었다며 무림과 단절된 소림사에 저런 엄청난 괴물이 숨어있으리라고 누가 알았겠는가.
한숨을 내쉬던 장인어른이 내게 말했다.
“……내가 막을 터이니, 어검비행으로 영이를 데리고 이곳을 벗어나거라.”
“아버지!”
“둘이서 감당할 수 있는 전력이 아니다. 두공까지 있었다면 그럭저럭 해 볼만 하겠지만….”
“장인어른.”
“어허.”
“이번 일은 제게 맡겨주십시오.”
그런 나의 말에 장인어른이 다그쳤다.
“그럴 상황이 아니다. 영이를 데리고 당장 가래….”
장인어른이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이었다.
나는 갈무리하고 있던 하단전의 공력을 완전히 개방하였다.
그러자 장인어른이 하던 말을 멈추고서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벽의 벽을 넘어선 게냐?”
이에 나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장인어른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고작 일곱 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게야?”
“…….많은 일들이 있었죠.”
제게는 일곱 달이 아니었으니까요.
나는 놀라하는 장인어른을 뒤로 한 채 앞으로 걸어나가 공력을 실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소림은 들어라!”
“큭!”
“이게 무슨!”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는 사자후에 일반 무승들이 일제히 귀를 틀어막았다.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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