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290
94화 그가 돌아왔어 (4) >
호북성 무한시 무림 연맹 본단 건물.
4층에 자리하고 있는 부맹주 집무실로 누군가 문을 두드리지도 않고서 다급히 들어갔다.
“조부님!”
그는 열왕패도 진균의 손자인 진용이었다.
집무실에는 이미 누군가가 부맹주인 진균과 독대를 하고 있었다.
그를 발견한 진용이 인상을 쓰며 신경질적인 투로 말했다.
“이정겸 네가 왜 여기에?”
“오랜만이네요.”
귀찮다는 듯이 흐느적거리며 손을 흔드는 청년.
그는 바로 이정겸이었다.
“오랜만은 무슨!”
“말 조심 하거라. 금일부로 무한검협 이정겸은 청룡당의 당주로 복귀하였다.”
그런 진용의 말을 열왕패도 진균이 끊었다.
이에 진용이 황당하다는 투로 조부인 진균에게 따졌다.
“아니. 조부님. 이정겸은 전 맹주와 함께 본맹에서 퇴출되지 않았습니까?”
그의 말대로였다.
혈교 교주의 무공인 혈천대라공을 익혔다는 혐의로 퇴출당한 전 무림 맹주 무한제일검 백향묵.
그의 제자인 이정겸 역시도 같이 무림 연맹에서 퇴출되었다.
그런데 그가 무림 연맹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더 따지고 드려는 진용을 보며 진균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조부님!”
“여기가 어디라고 조부라고 하느냐?”
무거워진 진균의 목소리에 진용이 침을 꿀꺽 삼키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바꿨다.
“…..부맹주님.”
그런 그를 보며 이정겸이 피식 웃었다.
‘저놈이!’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조부인 진균의 분노가 더 무서웠던 진용은 이를 겨우 삭혔다.
진균이 그에게 물었다.
“맹호 단주. 무슨 일로 절차를 무시하고 멋대로 집무실로 들어온 게야?”
이 물음에 진용이 아차 싶었는지 말했다.
“부맹주님 들으셨습니까? 혈마가 소림사로 나타나 백팔나한진을 꺾고서 월악검을 데리고 나갔다고 합니다!”
“알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혈교의 두 초인들 중 한 사람인 일존이 죽고 혈마가 부상 당했다고 판단하여 맹주니…..정천 맹주가 본맹의 전력을 이끌고 혈교 토벌에 나선 거잖습니까?”
“그래서?”
“그래서라뇨? 당장 그들을 철수시키고 방비해야 합니다. 이건 혈교의 계략입니다.”
이런 진용의 말에 부맹주이자 그의 조부인 진균이 묘하게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 동안 감정에 사로잡혀서 앞뒤 분간을 못한다고 여겼는데, 전세를 어느 정도 읽을 줄 아는 모습에 기특해서였다.
“한데 저보다 부맹주님이 먼저 이 소식을 접하셨을 텐데, 어찌 군사들은 소환치 않고 이녀….아니 청룡 당주를 독대하고 계신지?”
“군사는 어차피 이쪽 사람이 아니니까요. 잘 알고 계실 거라 생각했는데요? 하암.”
이정겸이 기지개를 펴며 말했다.
그런 녀석의 행동에 짜증이 치밀어 오른 진용이 쏘아붙였다.
“복귀는 복귀고 뭔데 계속 끼어….”
“그만!”
이를 진균이 잘랐다.
진균이 자리에서 일어나 뒷짐을 지고서 집무실 벽면에 붙어있는 중원 전도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손으로 각 무림 연맹의 지부들을 짚으며 말했다.
“가까운 지부들로는 이 사태를 알리고 본단으로 집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미 지령을 보내셨군요.”
“하나 이미 남하하고 있는 맹주가 이끄는 전력과 운남, 귀주, 호남, 강서, 복건성 지부들은 혈교와 대치 중이기에 이 정보는 보내지 않는다.”
“네? 어째서?”
진용이 이를 이해할 수 없어했다.
혈마의 부상마저도 신빙할 수 없는 정보가 된 마당에 만약 혈교의 본단이 비어있는 상태라면 오히려 자신들이 뒤통수를 맞는 격이 되어버린다.
굳이 세력을 둘로 나눌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이정겸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다 이유가 있죠.”
“뭐?”
“장로 회의에서 과반수가 넘는 의견을 무시하고 권한으로 토벌을 강행하는 정천 맹주님과 이 사태를 신중하게 지켜보고 대응하는 부맹주님 중 누구의 통솔력이 현 무림 연맹의 방향성에 어울릴지 판가름 날 기회니까요.”
“그걸 네가 어찌?”
“사마 군사님과 부맹주님께서 알려주셨으니까요.”
“…….”
조부인 진균이 계속해서 기회를 엿본 것은 알고 있다.
하나 자신은 가볍다고 하여 중요한 정보를 알려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정작 호적수로 여기는 이정겸에게 이런저런 것을 알려줬다고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가슴이 차가워졌다.
‘…….조부님께서 전 맹주와 손을 잡은 걸까?’
전 맹주 백향묵과 독대한 이후 진균의 행보는 달라졌다.
자신이 알고 있던 그 조부님이 아니라 오랫동안 정치를 해왔던 것처럼 능구렁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진 진용이 다소 의기소침해져서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물러가도록….”
“아니. 마침 잘됐구나. 이참에 당주직을 개편하여 새롭게 바꾸려고 한다.”
“네?”
* * *
성 내에 남아있는 모든 당의 당주와 부당주들이 호출되었다.
이에 막 임무를 끝마치고 복귀한 봉황당의 당주인 남궁가희와 부당주 소영영 또한 대회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정말 쉴 틈을 안 주네. 영매.”
“그렇네요. 요즘처럼 계속 부려먹으면 휴가를 내고 싶어지네요.”
“그나저나 왜 모든 당을 호출하는 거지? 설마 본 맹의 남은 전력도 혈교 토벌에 징집되는 건가?”
“그건……”
“하긴 그럴 일은 없겠지?”
그런 남궁가희의 말에 소영영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렇지 않아도 사문인 형산파도 혈교 토벌에 참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난처하던 차였다.
혈교의 교주는 자신의 오라버니인 소운휘였다.
오라버니가 이끄는 혈교와 자신의 사문이 부딪친다면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할지 모르겠다.
언젠가 이런 상황이 일어날 줄은 짐작했지만 너무 빨랐다.
‘오라버니…..무사한 거야?’
상황이 이렇게 되도록 망할 오라버니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다.
몇 달 전 개방의 신임 방주 조성원이라는 자가 찾아와 자신에게 오라버니의 행방을 물었다.
그로인해 오라버니에게 무슨 문제가 생겼다고 의심하게 된 그녀였다.
소검선으로서의 오라버니의 행방도 묘연해졌으니 그것은 점차 확신으로 바뀌어갔다.
그런 와중에 혈교 교주가 살흉 절심에게 큰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에 너무 걱정되어 몰래 찾아가볼까 싶었는데, 조성원이 그는 진짜 혈마가 아님을 알려줬다.
부교주일 거라 했다.
소영영은 대체 오라버니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그에게 따졌다.
여차하면 그의 정체를 밝힐 거라고 협박까지 하면서 말이다.
이에 조성원이 알려줬다.
일곱 달이 넘게 오라버니가 사라졌다고 말이다.
‘…….치.’
가족이랍시고 이렇게 또 다시 사라지고 나니 너무 보고 싶다.
망할 친부나 얼굴도 몰랐던 양부보다도 소중한 오라버니였다.
그렇게 대로를 따라 대회장으로 걷던 도중 갈래 길에서 누군과와 마주쳤다.
“모용 당주?”
남궁가희의 한 쪽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흰색과 노란색이 어우러진 경장을 입은 다소 매서운 인상의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봉황당과 경쟁하고 있는 또 다른 여자들로만 이루어진 당인 매향당의 당주인 모용혜였다.
황룡당의 당주인 모용수의 누이동생이기도 했다.
모용혜도 그들을 발견했는지 새침한 얼굴로 다가왔다.
“임무가 끝났나보군요.”
“네. 매향당에서 실패했다고 해서 괜히 긴장하고 갔는데 그리 어려운 임무가 아니더군요.”
능청스러운 남궁가희의 말에 모용혜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워낙 자주 부딪치는 두 당이다보니 이런 식의 신경전은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한 방 먹은 것이 분했는지 입술을 파르르 떨던 모용혜가 목표를 바꾸었다.
소영영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봉황 부당주. 아쉽네요.”
“네?”
“지금 왜 모든 당을 호출하는지 아시나요?”
“이번 기회로 당을 효율적으로 개편하고 젊은 무림인들을 이끌 대당주를 뽑는다고 하더군요.”
“그게 뭐가 아쉽다는 거죠?”
이 이야기는 여러번 거론되어서 알고 있던 부분이다.
새로운 맹주와 부맹주가 선출되고 나서 그럴 수도 있다고 알고는 있었다.
이에 모용혜가 간드러지게 웃으며 말했다.
“부당주의 오라버니인 소검선이 무사하시다면 날아간 부맹주 직 대신 대당주라도 되실 텐데 그럴 일이 없잖아요.”
“너!”
그 말에 소영영이 순간 분노를 참지 못했다.
그렇지 않아도 부맹주 직으로 권유를 받았다던 오라버니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서 괴이한 소문들이 퍼졌던 차였다.
그 소문의 진원지가 매향당이라 확신하던 소영영이었다.
“영매 참아!”
남궁가희가 그녀를 만류했다.
당주나 부당주끼리 맹 내에서 싸우게 되면 먼저 손을 쓴 쪽이 징계를 받게 된다.
그걸 알기에 일부러 유도하는 모용혜였다.
‘재수 없어.’
권력에 빌붙는 오라버니인 모용수나 그녀나 둘 다 똑같은 족속들이었다.
남궁가희의 만류에 정신 차린 소영영이 겨우 화를 가라앉혔다.
“배짱도 없네.”
말리고 있는 남궁가희의 뒤편에서 모용혜가 일부러 약을 올렸다.
이에 소영영이 조용히 검지 손가락으로 그녀를 가리키더니 엄지 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
절대 당하고는 못 사는 소영영이었다.
그런 소영영의 손동작에 이번에는 모용혜가 얼굴이 붉으락 해졌다.
“쬐끄만한 게 어디서!”
“눈 꼬리가 올라간 여우같은 년이 누구더러 쪼끄맣대!”
“여우? 이 기집 애가!”
바로 그때 누군가 나타나서 그들을 다그쳤다.
“혈마가 소림사로 나타난 이 시국에 힘을 합쳐도 모자랄 당주 급 후기지수들이 이게 무슨 추태인가?”
그는 화산파의 매화백검 호양 진인이었다.
무림 연맹의 제 2장로인 그는 당두들을 관리하는 직책을 맡고 있었다.
그런 그의 등장에 남궁가희를 비롯한 모용혜가 당혹스러워하며 예를 갖췄다.
“장로님을 뵙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예를 갖추지 않는 이가 있었다.
그녀는 바로 소영영이었다.
예를 갖추지 않는 그녀에게 호양 진인이 의아한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그러자 소영영이 다급히 물었다.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장로님.”
“뭐라고 하다니? 혈마가 소림사로 나타났다고 하였다.”
“그게 정말인가요?”
막 임무에 복귀한 그녀나 남궁가희는 이 소식을 듣지 못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서 모용혜가 비웃음을 담아서 말했다.
“소림사로 혈마가 나타나 백팔나한진을 무너뜨리고 오대 악인의 일인인 월악검을 탈취했다는데, 그것도 모르고 있었다니 봉황당은 참 무신경……뭐에요? 지금 웃어요?”
모용혜가 어처구니가 없어했다.
약을 올리려고 한 말인데 소영영이 얼굴이 상기되어서 웃고 있었다.
“영 매?”
모두가 의아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를 개의치 않는지 소영영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망할 오라버니. 살아 있으면 살아있다고 먼저 전했어야 할 거 아냐!’
* * *
정보를 끊으라고 명이 내려온 것과 달리 맹주 무상도 정천이 이끄는 무림연맹의 전력으로 개방의 전서구가 급히 날아들었다.
“이런…..그럼 양동책이란 말인가?”
이를 가장 먼저 확인한 무림 연맹의 제 6장로인 하북팽가의 가주 팽사용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은 벌써 형산을 떠나 형양을 넘은 차였다.
서두르면 나흘 내로 광서성의 경계면에 진을 치고 있는 5개 지부의 전력과 합류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이건 서둘러 회의를 해서 결정할 문제였다.
만약 혈교 교주의 부상이 거짓이고 이게 양동이라면 무림 연맹의 본단이 위험하다.
“큰일입니다. 맹주!”
급히 본진 막사로 들어간 장로 팽사용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맹주는 어디 계시오?”
“왜 그러는가? 팽 장로.”
맹주가 있어야 할 상석에 무림 연맹의 제 3군사인 백위향이 앉아 있었다.
그러고 보니 형산에서부터 남하하는 동안 맹주의 무상도 정천의 모습이 보이지 않던 차였다.
“맹주께서도 아셔야 하오.”
“급한 사안이면 일단 내게 먼저 알려주시게.”
결국 장로 팽사용은 그에게 전서구의 상황을 알렸다.
이에 군사 백위향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뭐가 그럴 리가요? 이건 회군을 논의해야 할 만큼 시급한 문제요. 빨리 맹주가 어디 있는지 말씀해주시오.”
“맹주는 이곳에 없소.”
“이곳에 없다니? 대체 그게 무슨 소리요?”
장로 팽사용이 어처구니가 없어했다.
이 대규모의 무림 군단을 이끄는 맹주가 자리를 비우다니 무슨 소린가.
당혹스러워하는 그에게 백위향이 막사 탁자에 올려진 중원 전도를 손으로 가리켰다.
이를 본 팽사용이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아니? 지금 5개 지부의 전력이 광서성 내로 들어간 것이었소? 이건 사전에 아무런 얘기가 되어 있지…..”
“당연히 얘기가 되어 있지 않소. 본단이나 외부에도 알리지 않기 위함이니.”
“그게 무슨?”
그런 그의 물음에 군사 백위향이 무의현 근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맹주는 이미 무의현까지 남하한 5개 지부의 전력과 합류하였소.”
장로 팽사용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혈교 측에서도 예상 못할 일이었다.
“성공한다면 큰 타격을 주겠지만, 군사…….만약 알맹이라 할 수 있는 혈마와 혈교의 전력이 령산에 없으면 대체 어쩌려고 그러시오?”
“그럴 리가 없소.”
“아니 왜 그렇게 확신하시오?”
답답해하는 장로 팽우진을 바라보며 군사 백위향이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혈마는 확실히 겁살검에 죽어가고 있소.”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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