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291
94화 그가 돌아왔어 (5) >
어두운 방안에서 눈을 안대로 가리고 있는 한 중년의 사내가 양옆으로 시종들의 부축을 받고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복장을 보면 그가 의원임을 알 수 있었다.
문이 닫히자 시종들이 의원의 앞을 가리고 있던 안대를 풀어주었다.
“후우.”
그때 문 앞으로 의원은 두 배나 될 것 같은 거구의 신장을 가진 누군가가 다가왔다.
어찌나 크고 근육질인지 절로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상태는 호전될 기미가 없나?”
“…….송구하지만 피가 멎질 않습니다.”
“그럼 그치게 해야 할 것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상처 부위에서 피가 멎지 않는 현상은 제 의원 30년 길에 처음 봅니다. 이 기세라면 며칠을 못 넘길 겁니다.”
-쾅!
거구의 누군가가 화를 참지 못하고 진각을 밟았다.
돌로 만들어진 바닥에 균열이 일어났다.
“히익!”
의원이 그 광경에 겁을 먹고서 사색이 되고 말았다.
“그만하시오. 해 형. 의원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겁을 주는 게요?”
그런 거구의 사내를 누군가가 만류했다.
등에 커다란 장도를 매고 있는 노인이었다.
거구에 근육질의 사내는 바로 혈교의 네 존자 중 한 사람인 삼존 해악천이었고, 그를 만류한 노인은 이존 난마도제 서갈마였다.
서갈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해악천이 의원의 멱살을 잡아들어 올리며 말했다.
“네놈도 의원이라면 사람을 살려야 할 것 아니냐?”
“제, 제 능력으로는 무리입니다. 차라리 만사신의를 찾으십쇼.”
“그 개새끼가 없으니 너 같은 놈이라도….”
-팍!
서갈마가 해악천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안타깝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의원을 다그쳐봐야 별 수 없다는 것을 눈빛으로 말했다.
이에 해악천이 거칠게 그를 팽개쳤다.
-팍!
“어이쿠.”
엉덩방아를 찍은 의원에게 해악천이 다그쳤다.
“당장 꺼져라. 반 시진 내로 본교 내에서 눈에 띈다면 네놈을 찢어 죽이고 말테다.”
하얗게 질린 의원이 황급히 뛰쳐나갔다.
그렇게 도망치는 의원을 바라보며 서갈마가 어딘가로 향해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바닥으로 그림자가 움직이며 의원이 있던 곳으로 향했다.
방금 전까지 분노로 차있던 해악천이 그런 얼굴을 지우고서 못마땅하다는 듯이 서갈마에게 말했다.
“흥! 감정조절 못하는 머저리 역할은 내 몫이군.”
“해 형이 제 격이지 않소.”
“웃기는 소리.”
“아무튼 들어가 봅시다.”
해악천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서 닫힌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그가 문을 열고서 서갈마와 함께 들어갔다.
어두웠던 방 안에는 등불이 켜져 있었고, 침상 위로 얇은 경장을 입고서 한쪽 다리만 양반 다리를 하고 앉아 있는 붉은 머리카락의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바로 백혜향이었다.
“이런.”
안으로 들어왔던 두 사람이 급히 고개를 돌렸다.
경장을 풀고 있는 백혜향이 가슴 부위로 붕대를 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자로서 수치스러울 수도 있는데 전혀 개의치 않는 그녀였다.
“사람을 붙였겠지?”
고개를 돌린 두 존자들에게 백혜향이 그것부터 물었다.
이에 서갈마가 답했다.
“붙였습니다. 아마 저 자도 무림 연맹의 끄나풀이겠지요.”
이미 그들은 지금 도망치듯이 나간 의원이 첩자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무림 연맹에서 자연스럽게 첩자를 들여보낼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었으니 말이다.
“내가 당연히 며칠 사이에 죽을 거라 확신하겠군.”
“…….아마도 그럴 겁니다.”
서갈마가 씁쓸하게 답변했다.
그런 그를 보며 백혜향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이존은 내가 당장에라도 죽을 것 같이 쳐다보는군.”
“…….무리하지 마십시오. 해 형의 진혈금체 운기법이 혈액의 움직임을 통제한다고 해도 피가 멎지 않는 것을 막지 못하지 않습니까?”
서갈마의 말에 백혜향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욱씬!
새로 붕대를 갈았는데 벌써 등 쪽이 조금씩 축축해지고 있었다.
계속 진혈금체를 개량하여 운기하고 있지만 출혈은 조금씩 이뤄졌다.
“망할 겁살검.”
이 모든 것이 겁살검 때문이었다.
살흉 절심이 가지고 있던 겁살검에 그녀는 등이 베였다.
한데 겁살검에 베였던 부위에서 출혈이 멈추지 않는다.
‘……한 번 베이면 한 달을 버티지 못하고 두 번 베이면 일주일, 세 번 베이면 하루를 못넘긴다.’
그게 요검 겁살검의 전설이었다.
단 한 번 등을 베였는데, 정말로 피가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근 한 달이 넘게 버텼다.
진혈금체의 운기법이 아니었다면 정말로 출혈을 버티지 못해 죽었을 지도 모른다.
“만사신의는 찾았나?”
“…….아직입니다.”
장강 이북 쪽으로는 정보가 차단된 상태라 하오문까지 동원하여 의뢰했지만 아직 아무 소식이 없었다.
그녀는 점차 쇠약해지고 있었다.
창백한 얼굴만 보더라도 그리 오래 버티기 힘들다는 사실을 모두가 인지할 수 있었다.
어두운 얼굴의 해악천에게 백혜향이 말했다.
“사존, 아니 삼존. 내일 있을 매복 작전에 예정대로 나도 간다.”
“안 됩니다!”
해악천이 인상을 쓰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녀의 몸 상태로는 진혈금체를 운기하여 버티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괜히 무리했다가 출혈이 심해진다면 최악의 결과가 일어난다.
이존 서갈마도 완곡히 만류했다.
“안 됩니다. 교주께서도 사라지신 마당에 부교주께서 잘못되기라도 하면….”
차마 뒷말을 잇지 못했다.
지금 혈교는 위기의 상황이었다.
그럴 때일수록 중심이 되어줄 존재가 무사해야했다.
“빌어먹을!”
해악천이 분노를 참지 못했다.
살흉 절심이 갑작스레 끼어들지만 않았어도 이 정도의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거다.
오히려 무당의 태극검제 종선 진인을 죽이는 것을 기점으로 장강 이남 지역을 완전히 수복했을 것이다.
그런 두 존자에게 백혜향이 말했다.
“만약 선발대인 무림 연맹 5개 지부에 맹주인 무상도가 있다면?”
“그건……”
그녀의 말에 두 사람이 입을 다물었다.
만약으로 가정한 사실이지만 선발대로 무상도 혼자 합류하는 것을 상정한 상태다.
그리 된다면 선발대의 전력은 배로 증강되는 현상이 벌어질 거다.
무위로도 그렇겠지만 사기로도 굉장할 것이다.
“이건 정사 대전이다. 녀석도 없어진 마당에 내가 나가지 않는다면 본교의 사기는 누가 끌어올릴 거지? 이존인가? 아니면 삼존인가?”
“……..”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붕대를 꽉 동여 맨 백혜향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어차피 놈들은 내가 위독하다고 여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아군의 사기를 높일 수 있고 놈들의 사기를 저하시킬 수 있겠지.”
“부교주……”
-슉! 팍!
백혜향이 손을 뻗어 허공섭물로 모조 혈마검을 빨아들인 후 결의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 나도 참전한다.”
* * *
결전의 날 이른 새벽.
엎드려 있던 백혜향이 몸을 돌려 누웠다.
출혈 때문에 누워있는 것을 기피했지만 심장이 격하게 뛰어서 엎드려 있기 힘들었다.
아무리 당찬 그녀라지만 극도의 긴장은 어쩔 수가 없었다.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감이 너무 컸다.
‘……빌어먹을.’
절로 욕이 나왔다.
내일 전장이 무덤이 될 수 있다.
솔직히 말하면 죽는 것은 전혀 두렵지 않다.
-죽어! 너 같은 건 아무 짝에도 쓸모없어! 죽어버리란 말이야!
-계집인 네게 큰 기대 따윈 없구나.
머릿속을 울리는 죽은 망령들이 지껄이는 말들이 거슬렸다.
평생을 자신을 옥죄여온 말들이다.
‘닥쳐.’
수많은 교인들을 희생해가며 조금이라도 목숨을 부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면 결국 자신이 증명하고자 했던 것들 모두가 무산이 될 것이다.
이를 악물며 달려왔던 그 세월들.
그것이 무의미해진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죽는 것이 더 수치스러워.’
자신의 목을 졸랐던 그 년에게도.
자신을 자식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그 놈에게도.
그런 수치를 받고 싶지 않다.
천장을 쳐다보며 백혜향은 손을 뻗었다.
‘침상은 내 무덤이 아니야.’
주먹을 꽉 쥐었다.
등의 상처가 욱씬거렸지만 그딴 건 상관없었다.
잘못되면 죽기 밖에 더하겠는가.
마음을 다 잡은 마당에 누군가의 모습이 스치듯이 떠올랐다.
‘망할 새끼.’
기껏 자리마저 양보했더니 사라져서 자신을 짜증나게 만들었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다.
누군가가 보고 싶다는 감정.
이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겠지만.
‘죽어서 볼 수 있으면 손해는 아니겠네.’
백혜향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 * *
횡현을 지나 칠천 명에 이르는 무림 연맹 5개 지부 전력이 진군해오고 있다.
혈교의 본단은 영산으로 수많은 산맥에 의해 천연의 요새나 다름없다.
그런 산맥을 수많은 정파 무림인들이 가로지르고 있었다.
인원이 많아 산로의 아래 쪽으로 이동하게 되면 더욱 쉽게 갈 수 있지만, 매복이 숨어있으면 기습을 당할 수 있기에 무리한 길을 선택한 것이었다.
이런 그들의 앞을 선봉에 서서 이끄는 자가 바로 현 무림 맹주인 무상도 정천이었다.
무림인들은 사기가 충만해져 있는 상태였다.
혈교의 교주의 목숨은 위태로웠고, 최고수라 불리던 일존 파혈검제 단위강마저 죽었다.
반면 자신들은 열세 초인들 중 다섯 손가락에 꼽힌다고 불리는 무상도가 이끌고 있다.
승리는 정파의 것이었다.
“흠.”
흡사 관운장을 연상하듯 긴 턱수염을 기른 무상도 정천.
그가 안개로 뒤덮인 산맥을 바라보았다.
다른 곳은 억지로 넘었다고 하지만 곧 지나야 할 산맥은 양쪽이 가파르고 드높아 무공이 약한 이들이 오르기 힘들어보였다.
‘저곳이겠군.’
무상도 정천은 확신했다.
저곳에서 혈교의 전력이 매복해있다고 말이다.
멈춰선 정천이 손을 들어 명했다.
“방패를 들어라. 궁병들은 반격을 준비해라.”
무림인들이라고 해도 직접 부딪치기 전까지는 군의 전쟁과 양상이 비슷했다.
정천의 명에 정파 무림인들이 조용히 방패를 위로 들었다.
그리고 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방패를 가진 자들의 곁으로 붙었다.
“그대로 천천히 진격한다.”
이들이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자, 무상도 정천이 왼쪽 산맥 쪽으로 신형을 날렸다.
적어도 한 쪽만큼은 자신의 손으로 기습을 막기 위함이었다.
‘역시구나.’
가까워지자 수많은 기척이 느껴졌다.
이곳이 바로 이십여 년 만에 벌어지는 제 2차 정사 대전의 시작지였다.
그리고 그는 이를 기점으로 전쟁의 종지부를 찍을 작정이었다.
-파파파파파!
산맥을 올라타던 그가 허공을 밟았다.
그것은 경공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허공답보(許空踏步)였다.
허공을 밟고 올라가 전혀 예상치 못한 곳까지 뛰어오른 무상도 정천의 눈에 매복해 있는 수많은 혈교도들이 보였다.
“하압!”
적을 발견했으니 망설일 필요가 있는가.
보도 무일도를 들어 십성 공력으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공기가 일렁일 만큼 형상화된 예기를 날리려 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클클! 무상도!”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나타난 예기로 감싸진 도를 내려치려 하는 그에게 누군가 쇄도해왔다.
호피를 입은 거구의 사내는 다름 아닌 해악천이었다.
온몸이 붉게 물들어 전신에서 수증기를 내뿜고 있는 그의 모습은 흡사 지옥에서 올라온 악귀와도 같았다.
“기기괴괴?”
일순간 무상도 정천이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이 알고 있던 기기괴괴는 초절정의 고수였는데, 지금 쇄도해오는 기세를 보았을 때는 분명 벽을 넘어서 초인의 영역에 이르렀다.
‘전력을 숨겼군.’
숨겨둔 패가 있을 거라고는 어느 정도 예측했었다.
하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갓 벽을 넘어선 그와 자신의 격차는 하늘과 땅이라고 자부했다.
“한 번 겨뤄보자꾸나!”
‘웃기는군. 단번에 가른다! 무상패도!’
그가 자신의 절초인 무상패도를 펼치려던 찰나였다.
기기괴괴 해악천 이외에도 누군가 자신을 향해 좌측에서 쇄도해오고 있었다.
악귀 가면에 붉게 물든 검.
‘혈마?’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첩자들에 의하면 분명 혈마는 목숨이 경각에 이를 만큼 좋지 않다고 하였다.
그런데 예상을 깨고서 나타난 것이었다.
해악천을 공격하려 했던 무상도 정천이 도의 방향을 틀어 몸을 회전했다.
-휘리리릭!
허공이었기에 둘을 동시에 상대할 방법은 이뿐이었다.
-채채채채채챙!
세 고수가 산맥의 허공에서 맞붙었다.
그들의 절초가 부딪치며 사방으로 강렬한 파공음이 퍼져나갔다.
진혈금체의 비기인 적혈금신으로 전신이 금강불괴의 상태가 된 해악천이지만, 무상도 정천의 도가 닿을 때마다 피부가 달아올랐다.
‘날카롭다.’
현 무림에서 최고의 도객이라 불리는 자다웠다.
도식 하나 하나에 실린 그 날카로움은 가히 명불허전이었다.
-파파파팍! 차창!
순식간에 허공에서 열 초식 가량을 겨뤘던 그들이 산맥의 꼭대기로 착지했다.
체공 시간이 보통 고수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혈교도들이 원으로 자리를 비우며 여차하면 언제라도 합공을 가할 수 있게 세 고수를 에워쌌다.
이를 보며 무상도 정천이 여유롭게 웃었다.
“나름 준비를 하셨나보오? 혈교주.”
그런 그에게 악귀 가면을 쓰고 있는 백혜향이 피식 웃으며 변조한 목소리로 답했다.
“겁도 없군. 혼자서 먼저 적진으로 돌진하다니.”
“이 정도는 본 맹주 혼자서도 충분하오.”
오만한 말투.
그럼에도 누구 하나 이를 가볍게 듣지 않았다.
열세 초인들 중 다섯 손가락에 들고 도로써 최고의 경지에 이른 그였다.
그가 내뿜고 있는 위압감에 오히려 무공이 약한 교도들은 심장이 떨릴 정도였다.
무상도 정천이 백혜향에게 도를 겨냥하며 말했다.
“혈교주. 무리하시는구려.”
“무리?”
“본 맹주는 이미 그대가 여자인 것도 알고 있고, 살흉에게 당한 상처가 낫지 않았음을 알고 있소이다.”
“흥!”
그런 그의 말에 백혜향이 코웃음을 쳤다.
어차피 가짜 정보를 흘렸지만 진맥을 했으니 여자임이 드러난 것 정도는 예상했었다.
교주가 여자이고 남자이고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기에 상관없었다.
백혜향이 악귀 가면을 벗어던졌다.
흩날리는 붉은 머리카락과 함께 그녀의 얼굴이 드러났다.
“…….놀랍구려. 이리 젊은 여인이었다니.”
무상도 정천이 작게 탄성을 흘렸다.
성별이나 얼굴이 감춰져 있던 혈교의 교주가 이렇게 젊고 아름다운 여인일 줄은 몰랐다.
‘눈매는 꽤 사나워 보이지만.’
감평은 여기서 끝이었다.
어차피 남자든 여자든 간에 혈교의 교주였다.
이 자리에서 그녀를 죽이게 되면 실질적인 정파의 승리라 할 수 있었다.
‘…..분명 부상은 낫지 않았다.’
확신하는 것은 소문보다는 무공이 약했다.
벽에 턱걸이 수준에 불과한 느낌이다.
그것만으로도 무림에서는 수위에 속하는 고수이지만, 이 정도라면 이대일이더라도 굳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긴 말 할 것 있겠소? 두 분 덤비시오.”
무상도 정천이 여유롭게 한 손으로 오라는 시늉을 했다.
이에 백혜향이 피식하고 웃으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이쪽은 체면을 차릴 상황이 아니라서.”
혈교도들 사이에서 범상치 않은 자들이 걸어 나왔다.
그들은 나머지 존자들과 혈성들이었다.
무림 연맹의 5개 지부에서도 제법 뛰어난 고수들이 있었지만, 그 우두머리이자 최고수인맹주인 무상도 정천만 죽이면 승산이 달라진다.
다가오는 그들을 바라보며 무상도 정천이 중얼거렸다.
“어차피 이쪽도 마찬가지.”
혈교의 교주와 최고 간부들을 죽이면 상황은 종료였다.
그리고 그 첫 번째가 혈교의 우두머리라면 이들 모두의 사기를 단 번에 꺾을 수 있다.
질질 끌 것도 없었다.
‘무천도경!’
그가 자랑하는 무상도법에서 최고의 쾌도라고 자부할 수 있는 절초였다.
-팟!
순식간에 그의 신형이 사라졌다.
누구도 그의 움직이는 모습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미처 반응을 하기 전에 그의 신형과 도가 벌써 백혜향에게로 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일하게 이를 눈치 챈 자는 오직 해악천뿐이었다.
“이놈!!”
해악천이 가까스로 앞으로 도달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나 교묘하게 보법을 밟으며 이를 피해낸 정천이 백혜향의 목을 향해 도를 쇄도해갔다.
“큭!”
해악천 덕분에 아주 잠깐이지만 경로가 비틀리며 백혜향이 그것을 알아차렸다.
이에 혈천대라검 제 3초식 경원무혈(勁原武血)을 펼쳤다.
검 끝에 기운을 집중하여 침투경(浸透勁)을 일으켜 정천의 도를 쳐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차창!
도와 검이 부딪치는 순간.
‘아!’
모조 혈마검이 그대로 부러져버리고 말았다.
모조라고는 하나 보검에 속했는데, 너무도 허무하게 부서졌다.
하지만 놀랄 겨를이 없었다.
모조 혈마검을 박살 낸 정천의 도가 그녀의 목을 향해 그어오고 있었다.
‘피할 수 있어.’
검과 부딪치며 쾌도의 속도가 줄었다.
백혜향이 다급히 몸을 비틀려고 했지만,
‘하윽!’
겁살검에 닿은 등에서 찢겨지는 고통이 느껴졌다.
겨우 조절하고 있었는데, 정천의 도와 부딪치며 파고든 내경에 의해 상처부위가 터지고만 것이었다.
‘끝인가?’
찰나의 순간 시간이 느려지는 것 같다.
죽음을 앞두고 있으니 별별 것들이 떠올랐다.
두렵진 않다.
각오하고 있었던 바였고, 무상도 정천의 무위는 자신의 상상을 초월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뭔가 아쉽다.
과연 죽어서 그놈을 볼 수 있을까?
그러던 차였다.
-채애애애애앵!
그녀의 목으로 날아오던 무상도 정천의 도가 붉게 물든 검에 의해 막혔다.
-촤르르르르르!
정천의 신형이 순식간에 뒤로 다섯 보 가량 밀렸다.
‘!!!’
백혜향의 두 눈동자가 떨렸다.
붉은 동공에 비치고 있는 자신과도 같은 흩날리는 붉은 머리카락.
이를 넋놓고 보던 그녀가 울컥했는지 소리를 버럭 질렀다.
“어디 있다가 이제 쳐 기어와!”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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