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294
95화 혈마의 위용 (3) >
‘아!’
죽음을 직면한 인간은 깨달음을 얻는다고 했던가.
다시 정신을 차린 백혜향은 나나 혈마검이 도움을 줄 필요가 없이 스스로 체내의 기를 순환하여 막혔던 경맥들을 전부 뚫어나갔다.
점차 상승하는 그녀의 기운에 모두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해 형 이건…..”
“벽을 뚫고 있어.”
생과 사의 경계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원기마저 소실했던 백혜향의 정신에서 붉은 아지랑이가 뿜어져 나오며 기의 회오리를 일으켰다.
혈천대라공이 8성에 이르면서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놀라는 것도 잠시,
이윽고 치솟던 혈천대라공의 기운이 갈무리가 되며 그녀의 기운이 안정적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안정화되자 얼마 있지 않아 그녀가 감았던 눈을 떴다.
창백했던 얼굴은 다시 생기를 되찾았다.
“경하드립니다! 부교주!”
“경하드립니다!”
이존 난마도제 서갈마의 축하에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복창했다.
참 사람 일은 모르는 법이다.
죽어가던 그녀가 이렇게 되살아나 무림의 최고수들만 이룬다는 초인의 영역에 발을 들였으니 말이다.
백혜향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특유의 이죽거리는 목소리로 장난스럽게 말했다.
“이제 좀 쉬려고 했는데 억지로 붙잡는군.”
“아직 갈 길이 먼데 쉬게 할 수 있나.”
나 역시 농을 섞어 응수했다.
그런 나의 말에 백혜향이 입 꼬리를 올렸다.
기사회생한 그녀의 모습에 모두가 기뻤는지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스승님인 해악천이 웃으며 말했다.
“클클, 오늘만큼 경사스러운 날도 없군.”
“해 형의 말이 맞소이다. 허허허. 이 늙은이는 더 이상 여한이 없소.”
두 존자의 말에 백혜향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아직 멀었어. 무림 연맹을 본교의 발 아래 꿇리게 할 때까지 두 사람은 은퇴할 생각은 꿈도 꾸지마.”
“서 형은 그럴지 모르겠지만 이 늙은이는 교주, 부교주 두 분의 아기씨가 장성할 때까지 자리를 지킬 터이니 걱정마십쇼. 클클.”
“삼존…….”
스승님 해악천의 그 말에 나는 난처함을 금치 못했다.
뜬금없이 아기씨라니 무슨 말인가.
백혜향에게 끌리기는 했으나 나에게는 정혼자인 사마영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나에게 얽매이는 것보다 이렇게 대업을 이뤄가는 모습이 더 어울렸다.
여장부라는 말이 누구보다 어울리는 그녀였다.
“부교주는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그런 이야기는 농으로라도 하지….”
“운휘.”
이런 나의 말을 그녀가 끊었다.
교주가 아니라 이름으로 부르다니.
의아해하자 그녀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죽기 전에 뭐가 제일 아쉬웠는 줄 알아?”
“그걸…..”
그때 백혜향이 기습적으로 내 목을 감싸더니 입술에 입을 맞추려고 했다.
아까는 죽기 일보직전이라 마음이 약해져서 당해줬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는 전광석화처럼 그녀의 입술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우읍!”
“보는 눈이 많은데 부끄러운 게 없나보지?”
그런 나의 말에 백혜향이 내 손을 거칠게 뿌리치며 혀를 날름거리며 말했다.
“수줍어 하기는.”
‘하!’
정신 차렸더니 원래대로 돌아왔다.
제 멋대로에 자기 주관이 뚜렷한 그녀였다.
다른 사람의 시선 따위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
존성들이 지켜보는데도 말이다.
“클클. 젊음이 좋구만.”
스승님 웃고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만.
하긴 애초에 백가의 피를 짙게 하기 위해 내가 백혜향이나 백련하 자매와 맺어지길 바랐던 스승님이었다.
다만 월악검 사마착의 여식인 사마영과 연결되고 나서 입을 다물었을 뿐이었다.
혀를 날름거리던 백혜향이 내게 말했다.
“죽기 전에 딱 하나 아쉬웠던 것이 있었거든. 진운휘 너를 가지지 못한 거.”
순간 뭐라 말이 나오지 않는다.
대놓고 나에 대한 감정을 드러내니 말이다.
나 역시도 그녀에게 끌리기는 했으나, 이미 나는 사마영과 함께 하기로 결심했기에 우리는 여기까지다.
“기대에 어긋나게 해서 미안하지만 우리는….”
“거기까지.”
“…….정말 교주한테 못하는 소리가 없군.”
교주가 되어도 나한테 이렇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은 백혜향뿐이다.
백혜향이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정혼이니 월악검이니 그딴 핑계는 집어치우고 이것만 이야기 해.”
“뭐?”
“나한테 끌리나?”
그녀의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말문이 막혔다.
평소에는 생각도 하지 않고 곧바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나였다.
그냥 아니라고 답변할 수도 있는데, 그녀의 눈과 마주하고 있으니 쉽게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
-사기꾼에 거짓말쟁이가 웬 일이래.
소담검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러게.
뭔가 거짓말을 하는 것도 웃기다.
백혜향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때 가슴이 찢어질 만큼 쓰라렸었다.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무쌍성에서 같이 겪었던 고초들과 여러 가지 일들이 떠올랐었다.
그때 확연하게 알았다.
사마영 못지않게 이 여자에게도 많이 끌리고 있음을 말이다.
“속일 생각하지마. 네 눈만 봐도 알 수 있어.”
“………”
정말 만사가 직진인 여자다.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나는 숨을 길게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끌린다. 하지만…..”
“됐어. 그 대답이면 충분해.”
“뭐?”
뒷말이 더 중요한데 뭐가 충분하다는 거지?
백혜향이 입술을 실룩거릴 만큼 들뜬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반으로 쪼개서 가지든 같이 침상에서 공유하든 그건 그 아이와 나의 문제니까 너는 빠져 있어.”
‘!?’
지금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거지?
반으로 쪼갠다고?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리려고 한다.
당혹스러워하는데 스승님인 해악천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뭐가 즐거운지 호쾌하게 웃어댔다.
“크하하하하핫.”
……..본인 일이 아니라 이건가.
어쨌거나 이제 백혜향이 살아났으니 남은 무림 연맹 지부의 정파인들을 처리해야 겠다.
본교의 성역이라 할 수 있는 령산으로 진입한 이상 이들만큼은 확실히 응징해야 한다.
이쪽 산맥으로 올라온 자들 이외에도 반대쪽 산맥에서도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존성 급의 고수들이 없으니 이곳보단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것이다.
“존성들은 맞은 편 산맥으로 가서 본교의 교도들을 지원하라.”
그런 나의 말에 스승님이 누런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저쪽 편은 걱정하실 필요 없소. 교주.”
“그게 무슨 말입니까?”
“좌수에 익숙하지 않기는 하지만 그곳에는 본교의 최고수였던 그가 있으니 말이오.”
‘!!!’
설마?
순간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조성원에게 소식을 듣고서 ‘그’가 당연히 죽었다고 여겼었다.
-스릉!
나는 반대편 산맥을 향해 소담검을 뽑아서 던졌다.
직접 가기보다 소담검의 시야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날아간지 얼마 되지 않아, 머릿속으로 소담검이 보고 있는 시야가 공유되었다.
그곳에 전혀 예상치 못한 존재가 좌수로 검을 휘두르며 교도들을 이끌고 정파인들과 싸우고 있었다.
‘아아아!’
살아있는 그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뜨거워졌다.
* * *
광서성 북쪽.
영복현과 양산현의 사이로 팔천의 무림 연맹의 본군이 남하하고 있었다.
후발대인 그들은 서둘러 선발대와 합류하기 위해 이틀 동안 쉬지 않고 내려온 끝에 이곳에 이르렀다.
이제 사흘 정도만 서두르면 령산에 이른다.
한데 선두에서 이들을 이끌고 있는 삼군사 백위향을 비롯한 여러 장로들의 얼굴은 기대감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자신들이 도착할 때쯤이면 전쟁이 거의 끝나갈 거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선발대에는 무림 맹주 무상도 정천이 있었다.
초인들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절세고수가 바로 그였다.
반면 혈교의 최고수라 할 수 있는 일존 파혈검제 단위강은 살흉 절심에게 죽임을 당했고 혈교주도 생사가 불분명한 상태였다.
승리를 단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거 괜히 힘주고 내려갔는데 전쟁이 끝나있는 것 아니오?”
안휘성의 최대 방파라 불리는 부양방의 방주 고진의 말에 다른 문파의 문주들도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어제나 오늘쯤이면 전쟁이 벌어졌을 것이다.
군과 군의 대결도 아닌 무림인들의 전쟁인 만큼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라 생각했다.
“아쉽소이다. 이십여 년 만에 혈교도들의 피를 이 도에 적시나 싶었는데, 잔챙이들만 정리하는 게 아닌가 싶소.”
“뭐 후발대의 피해를 줄이고 좋은 일이 아니오.”
“하하하. 그건 맞는 말이오.”
선발대는 무림 연맹 본단의 전력이었다.
이 전력에 피해를 입지 않고 전쟁을 끝낼 수 있다면 큰 성과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이 전쟁을 반했던 부맹주와 기존의 간부들을 밀어붙일 수 있는 명분마저 가지게 된다.
하지만 모두가 들뜬 것만은 아니었다.
“방심하지 마시오. 상대는 혈교입니다. 어떤 변수가 일어날지 모를 일이오.”
“허어. 조 대협.”
그는 형산파의 대표로 참전한 형산일검 조청운이었다.
후발대이자 무림 연맹 본단 전력의 참전 고수들 중에 세 손가락에 꼽힐 수 있는 무위를 지녔다.
들뜬 분위기를 초치는 그의 말에 몇몇 간부들이 못마땅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에 전력을 이끄는 삼군사 백위향이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 대협의 말이 맞소. 하나 이 백 모와 맹주님이 그리 어수룩하게 전략을 짰겠소이까? 지금쯤이면 승전보를 알리는 전령이 당도할 것이오.”
“백 군사의 말도 일리가 있소. 우리 모두를 속여가며 전략을 짤 정도로 용의주도하지 않았소이까? 이번 토벌전은 맹주와 백 군사를 믿어봅시다.”
무림연맹의 6장로이자 하북팽가의 가주 팽사용이 그 말을 거들었다.
도와주는 그의 말에 삼군사 백위향이 어깨를 으쓱했다.
형산일검 조청운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군사. 만에 하나 혈교의 전력이 령산을 비우고 있으면 어쩔 것이오?”
“그럴 일은 없소이다.”
“하나 개방에서 보낸 전서구를 모두 보지 않았소. 소림의 백팔나한진이 혈마에게 무너졌다고 말이오.”
그런 조청운의 말에 패절문의 문주 우복창이 웃으며 말했다.
“아니. 조 대협은 그 말을 정말 믿는 것이오? 소림의 백팔나한진이 혈마군림보인가 뭔가 하는 진각 한 번에 무너졌다는 말을?”
그런 그의 말을 부양방의 방주 고진이 받았다.
“현 맹주가 나서더라도 불가능한 일이오. 어찌 개방에서 그런 터무니없는 정보를 보낸 것인지 이해가 안 갈 정도요.”
그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소식을 접했을 때 모두가 놀라기보다는 기가 차했다.
현실성이 떨어져도 너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수십 초식을 겨루다 백팔나한진이 무너졌다고 한다면 모를까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정보를 너무 불신하는 것이 아니오?”
진주언가의 가주 언광운이 가만히 듣다 끼어들었다.
그 역시도 개방에서 이번에 보낸 정보가 과장되었다고 여기지만, 그런 전서구를 보낼 정도라면 그에 준하는 무위를 보였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이에 삼군사 백위향이 피식하고 웃으며 말했다.
“혈교의 책략이외다. 지금 상황에서 그들은 전쟁을 벌일 여력이 부족하오. 당연히 우리의 전력을 분산시켜야 할 것이오.”
조청운이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하면 소림사에 침입한 자가 혈교주가 아닐 거란 것이오?”
“본 군사의 판단은 그렇소. 이미 의원으로 보낸 간자들을 통해 몇 번이나 혈교주가 겁살검에 당한 상처로 위독하다는 사실을 확인했소. 그런 그가 소림에 나타난다? 어불성….”
그러던 찰나였다.
누군가가 앞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군사. 저길 보시오.”
멀리서 누군가 경공을 펼치며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가까워지는 그 자는 등에 작은 수기를 꽂고 있었고 무림 연맹의 복장을 갖추고 있는 것이 전령인 듯 했다.
모두가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군사 백위향이 손을 들어 진군을 멈추게 했다.
“보시오. 본 군사가 말하지 않았소. 곧 승전보가 올 거라고 말이오.”
“하하하. 이거 조 대협의 우려가 무색하게 되었소이다.”
그들은 전령이 승전보를 알리기 위해 당도한 것이라 굳게 믿었다.
그러나 이윽고 당도한 전령의 행색에 모두가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뭐지?’
전령의 복장이 온통 피투성이었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군사 백위향이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냐?”
그 물음에 전령이 호흡을 가다듬고서 말했다.
“군사! 맹주께서 돌아가셨습니다.”
‘!!!’
전혀 예상치 못한 전령의 보고에 모두가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맹주가 돌아가시다니?”
“이게 대체 무슨….”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이 선발대의 승리를 확신했었다.
한데 맹주가 죽었다는 비보가 날아온 것이다.
핏대가 설만큼 흥분한 군사 백위향이 말에서 내려 전령을 향해 다가가 다그쳤다.
“그게 무슨 헛소리야! 누가 맹주를 해할 수 있단 말이느냐!”
“혈마입니다. 혈마에 의해 지부 최고의 고수들과 맹주님이 살해당하셨습니다.”
“말도 안 돼.”
어찌나 충격이었는지 군사 백위향이 다리에 힘이 풀려서 비틀거렸다.
이번 전쟁만큼은 승리를 확신했었다.
전력에서도 압도했고 최고의 고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맹주 무상도 정천이 직접 선발대로 나서지 않았던가.
비틀거리던 군사 백위향이 현실을 부정했다.
“그럴 리가 없다. 하면 혈마의 무위가 맹주를 능가했다는 것인데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이느냐? 네놈이 뭔가 잘못…..”
그때 전령이 등허리에 차고 있던 무언가를 보따리를 꺼냈다.
붉고 축축하게 젖은 보따리였다.
“이게?”
“그렇지 않아도 믿지 못하실 것 같아 들고 왔습니다.”
“뭘 들고 와?”
“맹주 무상도 정천의 수급입니다.”
“뭐?”
전령이 보따리를 풀자 눈을 부릅 뜨고서 혀가 늘어진 잘린 머리통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광경에 선두에 있던 무림 연맹의 모든 문파 간부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눈앞에서 무상도 정천의 수급을 보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매…..맹주……”
군사 백위향은 너무나도 혼란스러웠다.
그런 와중에 그는 의아했다.
‘이놈이 어떻게 맹주의 수급을?’
맹주의 수급에서 고개를 들어 올려 전령을 쳐다보았다.
수라에서 빠져나와 전황을 알리러 온 전령의 얼굴치고 상처 하나 없이 너무도 깨끗했다.
피투성이가 된 복장과 달리 말이다.
-오싹!
그 순간 군사 백위향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놈……지금?’
마치 그의 이런 반응을 즐기듯이 눈매가 웃고 있었다.
-스릉!
생각할 겨를도 없이 군사 백위향은 자신의 판단을 믿고서 검을 뽑아 전령의 목을 겨냥했다.
그런데 검이 목에 닿기도 전에 전령의 검지와 중지 손가락에 잡혔다.
-창!
‘아닛?’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전령따위가 자신의 검을 잡아내다니 말이다.
“네놈……누구냐?”
그런 그의 물음에 전령이 입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이 목을 자른 사람이겠지?”
‘!!!’
끝
ⓒ 한중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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