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rb only the power of the wicked and become the strongest on Earth RAW novel - Chapter (130)
제130화. 사적인 의뢰만 받는 곳
카렌이 눈을 뜬 건 다음 날 아침이었다. 수면 가루 때문에 던전에서 잠든 이후, 호텔로 이동할 때까지 한 번도 깨어나지 않은 것이다.
‘피로가 좀 쌓였었나 보군.’
이제야 눈을 뜬 카렌을 보며 김진성은 추측했다. 왜냐하면 그 역시 어젯밤은 숙면했기 때문이었다.
어제 온종일 돌아다니기도 했고, 사건도 많이 겪었다. 무엇보다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불편하게 잤던 여파가 큰 것 같았다.
“…….”
카렌이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켜 앉고는 멍한 눈빛으로 자신의 헌터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이름 : 카렌
나이 : 29
직업 : 헌터
마계던전 : 10레벨 클리어.
시련의 탑 : 경험 없음.
“…제대로 묻어갔군.”
잠들었다 일어났더니 10레벨 마계던전의 클리어 헌터가 되었다.
이 상황을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애매해진 카렌이었다.
죽음에 가까운 충격을 받고 의식을 잃은 건 좋은 기억이 아니었지만, 어찌 되었든 10레벨 던전을 뚫었다. 그것도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하고.
“어떻게 혼자서 그 거대 골렘을 잡은 거요?”
어느새 다 씻고 옷을 입고 있는 김진성을 보며 카렌이 물었다.
“아니, 그것보다 어떻게 혼자서 반나절 만에 보스까지 전부 처치한 거요?”
“비밀.”
김진성이 고개도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카렌이 눈썹을 찌푸리자 김진성이 말을 이었다.
“설명하자면 길어. 그러니까 다음에 같이 공략할 때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
“…같이? 또?”
김진성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카렌을 돌아보았다.
“목숨 값 다 받을 때까진 계속 같이 다녀야지. 그러면 나 혼자 던전 뛸 동안 혼자 호텔 방에서 편하게 쉬고 있으려고 했어?”
김진성은 이내 카렌에게 손가락을 세 개 펴 보였다.
“어제 것까지 포함해서 벌써 세 번이나 목숨 구해줬다. 잊지 마.”
“이번엔 당신이 내가 숨어 있던 장소로 달려와서 그런 거잖소!”
카렌이 발끈하자 김진성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대답했다.
“누가 숨어 있으라고 했지? 네가 근처 숲에서 골렘의 발목을 묶을 만한 넝쿨이라도 구해서 도와주려고 했으면 거기서 기절할 일도 없었어.”
“…….”
할 말이 없어져 입을 꾹 다물고 마는 카렌.
그사이 옷을 모두 입은 김진성이 그를 향해 말했다.
“빨리 나갈 준비 해. 곧 체크아웃 시간이야. 나가서 네 목숨 값 벌러 가자고.”
헌터가 목숨을 걸고 돈을 버는 방법은 의뢰를 받는 것밖에는 없었다.
즉, 지금 김진성의 말은 카렌에게 용병 길드로 안내하라는 뜻이었다.
* * *
체크아웃을 한 둘은 택시를 타고 B15 구역을 벗어났다.
카렌이 말한 목적지를 향해 달리던 택시는 어느덧 B10 구역의 안으로 들어온 상태였다.
김진성은 차창을 통해 밖을 보는 중이었다.
목적지가 가까워질수록 주변 건물이 점점 허름해지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이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용병들이 자주 왕래할 만한 장소는 아닌데.”
너무 외진 곳이라는 걸 돌려 말하는 김진성.
뜻을 알아차린 카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지금 가고 있는 목적지에는 용병 길드가 없소.”
김진성이 눈썹을 꿈틀하자, 카렌은 피식 웃었다.
“일단 내립시다. 다른 사람이 알아서는 안 되는 장소라서.”
말하면서 눈짓으로 앞의 택시 기사를 가리키는 카렌.
택시 기사가 들어서는 안 되니 내려서 얘기하겠다는 소리였다.
이윽고 택시에서 내린 카렌은 김진성을 구석진 골목길로 데려왔다.
그러더니 주변을 슥 돌아보곤 골목길을 걸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 우리가 가는 곳의 명칭은 ‘아드리아’요. 정말 아는 사람만 알고 있는 비밀 의뢰소지.”
“의뢰소? 용병 길드와는 다른가?”
“일반적인 의뢰소는 용병 길드랑 크게 다르지 않소. 그런 곳은 의뢰가 용병 길드랑 겹치는 경우도 많소.
하지만 비밀 의뢰소는 다르오. 일반적으로 취급하지 않는 ‘사적인 의뢰’들만 취급하거든.”
“사적인?”
카렌이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말 그대로 남에게 공개할 수 없는, 비밀 유지가 필수인 의뢰들을 뜻하오. 그리고 보통 떳떳하지 못한 요구들은 그에 따른 보상도 훨씬 더 큰 법이지.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보면 알게 될 거요.”
거기까지 설명을 마친 카렌이 어떤 건물 앞에서 멈춰 섰다.
허름한 3층 건물의 입구 간판에는 ‘HOTEL’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한국의 여인숙보다도 못한 곳인데.’
“들어갑시다.”
건물의 전경을 보고 있는 김진성을 입구로 안내하는 카렌.
어두운 로비에 작은 카운터가 있었다.
그들이 카운터 앞에 서자, 안쪽에 앉아 TV를 보던 수염 난 중년이 뚱한 표정으로 그들을 힐긋 보더니 입을 열었다.
“둘이오?”
중년은 그들을 제대로 보지도 않았다.
대놓고 귀찮아하는 모습만 보면, 장사를 하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모를 지경이었다.
카렌이 그를 향해 말했다.
“311호 방 주시오.”
그 말에 중년이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잠시 침묵하던 그가 대답했다.
“여긴 310호까지밖에 없소.”
“예전에 그 방에서 묵은 적이 있소.”
중년이 카렌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러더니 빠르게 카렌의 전신을 훑어보고는 한층 작아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사정이 있었소. 장사 안 할 거요?”
카렌의 재촉에도 한참을 더 말없이 쳐다보던 주인은 이내 입을 열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신분증.”
둘이 내민 헌터 시계의 스크린 안 코드를 측정기로 찍자, 카운터 한쪽에 있던 모니터에 둘의 신상이 떠올랐다.
그러곤 모니터와 둘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확인한 후에 311이라는 숫자가 적힌 카드를 카렌에게 내밀었다.
“따라오시오.”
카렌은 김진성을 데리고 3층으로 향했다.
복도 끝에 있는 숫자가 적혀 있지 않은 방문 앞으로 걸어간 뒤, 카드로 문을 여는 카렌.
놀랍게도 문이 열리자 안쪽에는 방이 아닌, 엘리베이터 문이 하나 더 있었다.
카렌이 자연스럽게 내려가는 버튼을 눌러 문을 열었다.
김진성까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오자, 카렌이 하나밖에 없는 버튼을 눌렀다. 버튼에는 ‘B’라고 쓰여 있었다.
꽤 긴 시간 지하 깊숙하게 내려간 뒤에야 열리는 엘리베이터의 문.
문 너머로 드넓은 방의 내부가 보였다.
사방의 벽면은 모두 책장으로 빈틈없이 채워져 있었고, 책장 안에는 하나같이 두꺼운 서류 파일들이 꽂혀 있었다.
방 중앙에는 커다란 원목 책상이 있었는데, 그 뒤편에는 동그란 안경을 쓴 마른 중년의 남성이 컴퓨터로 무언가 작업 중이었다.
그를 향해 가까이 다가간 카렌이 입을 열었다.
“반갑소, 세자로.”
세자로라고 불린 중년 남성이 고개를 들어 카렌을 빤히 쳐다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죽은 줄 알았더니, 용케 살아 있었구먼.”
그 말에 카렌이 움찔했다.
급격히 흔들리는 카렌의 두 눈동자를 본 세자로가 미소를 지었다.
“여기를 찾아오는 의뢰인은 그리 많지 않아. 그래서 목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알 수 있지. 앉게나.”
김진성과 카렌이 책상의 맞은편에 앉았다.
세자로는 모니터에 떠오른 둘의 신상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카렌, 그리고 이진환?”
“진.”
“진…. 그래, 둘 다 10레벨 던전까지 뚫었군. 몇 명이 뚫었나?”
세자로의 물음에 카렌이 손가락으로 자신과 김진성을 가리켰다.
세자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단둘이?”
고개를 끄덕이는 카렌을, 세자로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자네 혼자서는 절대 10레벨 던전을 뚫을 수 없을 텐데.”
“맞소. 그러나 던전을 둘이서 뚫었다는 것은 사실이오.”
그 말에 세자로의 시선이 자연스레 김진성에게로 향했다.
카렌의 말을 해석하자면, 눈앞의 진이라는 검은 머리 청년이 카렌보다 훨씬 강하다는 거다.
“…자네의 말이 사실이라면, 내가 생각했던 의뢰 단계보다 한 단계 높은 걸 줘도 되겠군.”
“그게 어느 정도요?”
“10레벨.”
“오…!”
감탄사를 터뜨리는 카렌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세자로는 의자에서 일어섰다.
“한때 단골이었으니, 자네들의 실력을 굳이 테스트하지는 않겠네. 어디 보자….”
세자로는 왼쪽 구석으로 이동하더니, 책장 안의 두꺼운 서류 파일을 꺼내었다.
“자, 골라보게.”
김진성은 ‘평균 Lv 10’이라는 제목이 적혀 있는 파일을 받아서 열어보았다.
안에는 각종 의뢰가 적힌 문서들이 가득했다.
그 첫 장에 적혀 있는 의뢰는 두 개였다.
의뢰 내용 : B31 구역의 ‘셀레포 은행’ 지점장을 암살할 것.
주의 사항 : 지점장의 실력은 일반인 수준. 하지만 완전 범죄에 실패할 시, 대륙의 공식 수배자 신분이 될 수 있음.
은행과 자택에 최첨단 외부인 감시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음.
의뢰 레벨 : 9
보상금 : 성공 시 20억 블랑
의뢰 내용 : ‘69 st. 갱스터’ 클랜의 B6 구역 지부를 괴멸시킬 것.
주의 사항 : 평소 최소 15명 이상 거주 중이며, 지부장인 우버는 마계던전 10레벨 이상을 뚫은 실력자로 알려져 있음.
의뢰 레벨 : 11
보상금 : 처치한 클랜원 한 명 당 5억 블랑. 우버 처치 시 30억 블랑.
김진성은 페이지를 넘겨서 다른 의뢰들을 확인해 보았다.
대부분 앞의 두 개랑 비슷했다. 암살, 납치, 테러, 습격 등 죄다 불법 의뢰들뿐이었다.
‘…이래서 사적인 의뢰라고 했군.’
비밀스러운 의뢰소라는 카렌의 설명은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계속 페이지를 넘겨도 어째 대놓고 사람들에게 공개할 만한 떳떳한 의뢰는 하나도 보이지를 않았다.
“혹시 모르니, 그 ‘돼지’들과 관련된 의뢰가 있는지부터 찾아보시오.”
페이지를 넘기는 김진성에게 카렌이 그렇게 말해왔다.
세자로를 의식해서 일부러 ‘네이처 애니멀’이라고 대놓고 얘기하지 않고 돌려 말한 것이다.
그를 눈치챈 김진성이 고개를 끄덕인 후 계속 페이지를 넘겼다.
김진성과 같이 의뢰를 카렌은 어느 순간 갑자기 주머니 안의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이런, 배터리가 5%밖에 안 남았군. 왜 충전을 안 했지? 아, 어제 기절하는 바람에….”
카렌의 시선이 자연스레 김진성에게로 향했지만, 김진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의뢰 확인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카렌은 그를 흘겨보면서 스마트폰을 몇 번 터치한 뒤 세자로에게 내밀었다.
“혹시 충전 가능하오?”
세자로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스마트폰 화면으로 향했다.
화면에는 메모장 성격의 앱이 하나 떠올라 있었고, 중앙에는 이런 글씨가 적혀 있었다.
– 따로 개인 의뢰를 하고 싶소. 이곳을 나간 후에, 밑에 적혀 있는 번호로 문자를 하나 보내주시오.
문자를 읽은 세자로는 흘끗 카렌을 바라보았다.
“…….”
거의 애원의 눈빛을 보내고 있는 카렌을 잠시 바라보더니, 이내 다시 스마트폰을 돌려주며 말했다.
“이 방에는 없네.”
“이런…! 무슨 사무실에 충전기나 선이 하나도 없소?”
“그거야 내 마음이지. 가면서 보조 배터리라도 하나 사든가.”
“그래야 하나….”
중얼거리면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연기하려고 노력하는 카렌.
그때, 세자로가 모니터를 바라보며 키보드 쪽으로 양손을 옮겼다.
카렌은 흘끗 그의 손을 바라보았다.
곧 그는, 세자로의 손이 정확히 자신의 스마트폰 번호를 입력하는 모습을 확인했다.
‘됐어!’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 카렌.
그때였다.
“찾았다.”
그때 김진성의 목소리가 그의 귀에 들려왔다.
카렌은 바로 김진성이 바라보던 의뢰를 읽어 내려갔다.
의뢰 내용 : B16 구역 외곽에 있는 비밀 약물 제조 공장을 파괴할 것.
주의 사항 : 네이처 애니멀 클랜원이 항상 4명 이상 주둔하고 있음. 그리고 최근, 네이처 애니멀이 트리운포 클랜에 약물을 공급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음.
의뢰 레벨 : 13
보상금 : 100억 블랑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