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234)
그녀가 숨을 내쉰다.
아리스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내게 고개를 숙인다.
“감사합니다. 김덕성군. 덕분에 괜찮아졌습니다. 신세를 지고 말았습니다.”
“아뇨, 뭐 감사할 것까지야.”
“그래도 감사합니다.”
“괜찮습니다.”
몇 번이나 감사 인사를 받고 나서야, 나는 다시 아리스와 함께 현장 점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사소한 해프닝 이후 대로 노점 현장 점검은 거의 다 끝난 상황.
아리스의 시선이 딱 봐도 수상해 보이는 검은 텐트로 향한다.
“부회장이 하는 점집뿐이군요.”
아리스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나는 알고 있었다.
원작에서도 주인공과 아리스가 부회장이 하는 점집에 들어가서 연애운을 보는 장면이 있었으니까.
문화제에서 타로카드 점을 보는 건 라이트 노벨에서는 빠질 수 없는 클리셰다.
“들어가죠.”
“알겠습니다. 김덕성군.”
스윽.
입구를 통해 텐트 안으로 들어간다.
거기에는 마녀 옷을 입고 고깔모자를 쓴 올리브색 머리 미소녀, 학생회 부회장 모리시타 미호가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는 은은한 빛을 발하는 수정구슬과 타로카드 덱이 있었다.
대낮인데도 어두컴컴한 조명까지, 딱 애니메이션에 나온 모습 그대로였다.
“어서오세요. 회장님. 김덕성 군.”
모리시타 미호가 우리를 보며 생글생글 웃는다.
학생회 부회장 모리시타 미호.
아리스를 남몰래 짝사랑하는 서기 나가미네 레이지와는 다르게, 그녀는 학생회장의 연애를 슬쩍슬쩍 도와주는 도우미 포지션.
원작에서도 아리스는 히로인으로 합류한 이후에는 주인공의 관심을 끌기 위해 모리시타의 조언을 종종 듣곤 했다.
“현장 점검을 나왔습니다. 부회장.”
“네네, 알고 있어요. 회장님. 이왕 온 거, 점이라도 보고 갈래요? 김덕성군은······.”
미호가 나를 보며 미간을 좁힌다.
“······제 영능력으로도 앞날이 안 보이네요. 이런 일은 처음인데······.”
일본 서브컬쳐 점술가 캐릭터가 다 그렇듯, 미호 역시 점이 묘하게 잘 맞는다는 설정.
원작에서도 주인공의 연애운을 보면서 여난이니 뭐니 이야기했었지.
“아쉽지만 김덕성군은 점을 볼 수 없겠네요.”
나와 아리스를 번갈아 보면서 입맛을 다시는 모리시타 미호.
“그럼 김덕성군 말고 회장님만 점 보는 걸로.”
톡톡.
미호가 카드 덱을 손가락으로 두드린다.
“타로카드 점술이라, 그런 미신 같은 건 안 믿지만······. 현장 점검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지.”
스윽.
아리스가 앉는다.
그 모습을 본 미호가 손뼉을 치며 말한다.
“좋아요! 그럼 회장님의 연애운을 점쳐보겠어요!”
미호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원작과 동일한 진행.
“부회장? 연애운이라니 그건······.”
아리스의 눈빛이 흔들린다.
그녀의 눈길이 이쪽을 힐끔힐끔 바라본다.
아리스의 얼굴이 살짝 분홍색으로 달아오른다.
“혹시 싫으신가요? 회장님. 결과는 다른 사람들한테는 비밀로 해드릴 테니까 보시죠.”
스윽.
모리시타 미호가 타로카드 덱을 내밀면서 말한다.
“······이것도 현장 점검이니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저는 점술 같은 미신은 믿지 않습니다.”
흠.
아리스가 살짝 붉어진 얼굴로 헛기침한다.
“네네, 알겠습니다. 그럼 시작을 상징하는 첫 번째 카드 뽑아주세요. 회장님.”
스윽.
아리스의 떨리는 손이 첫 번째 카드를 뽑아서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그녀가 뽑은 카드는 0번, 광대(The Fool).
“다음으로 과정을 상징하는 두 번째 카드.”
탁.
이번에 아리스가 뽑은 카드는 8번, 힘(The Strength).
“마지막으로 결과를 상징하는 세 번째 카드, 뽑아주세요!”
그녀가 마지막으로 뽑은 카드는 19번, 태양(The Sun)이었다.
탁.
세 장의 카드가 테이블 위에 정위치로 놓인다.
그 모습을 본 아리스의 눈동자가 가라앉는다.
그녀가 진지한 표정으로 묻는다.
“부회장, 이건 무슨 의미입니까?”
“광대가 상징하는 건 모험, 회장님의 사랑 시작은 헤매거나 어렵다는 걸 뜻해요. 어쩌면 회장님은 마음에 둔 사람이 있지만, 아니라고 스스로 부정하며 헤매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움찔.
아리스의 몸이 떨린다.
그녀의 얼굴이 살짝 붉어진다.
“······그런 건 아닙니다. 부회장. 저는 슈오우 학원의 학생회장. 그 누구도 마음에 담은 적 없습니다.”
아리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그냥 점이니까요. 전부 적중한다는 보장은 없어요.”
싱긋.
미호가 웃는다.
탁.
미호가 광대 카드 옆에 있는 태양 카드를 가리키며 말한다.
“그다음은 힘, 힘 카드는 용기를 뜻해요. 회장님이 사랑을 쟁취하려면, 그 과정에 용기가 필요하다는 뜻이죠. 용기를 낸다면 반드시 사랑을 쟁취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저는 누구보다 용감합니다. 부회장.”
“마지막 결과를 상징하는 태양의 카드는 밝은 미래. 헤매던 마음을 다잡고 용기를 내서 사랑을 쟁취하면,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에요.”
밝은 미래.
아리스가 낮은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린다.
“가령, 마음에 두고 있는 분과의 행복한 결혼이라던가. 퇴근한 그분을 현관에서 맞이할 때 알몸 앞치마 차림으로 식사, 목욕, 아니면 저부터? 라고 할 수 있는 그런 결혼 생활 말이죠. 회장님.”
화악.
아리스의 얼굴이 완전히 붉어진다.
그녀가 살짝 당황한 목소리로 말한다.
“······결혼까지는······. 그런 입에 담을 수조차 없는 파렴치한 말까지! 거기까지는 생각해본 적 없습니다.”
“어머, 거기까지 생각해본 적 없다는 건, 마음에 두고 있는 분과 하고 싶은 다른 행위는 생각해본 적 있다는 이야기인가요? 회장님.”
아리스의 은빛 눈동자가 흔들린다.
그녀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든다.
“그것도 아닙니다. 마음에 둔 사람 같은 것도 절대로 없습니다. 역시 점술이라는 건 순 엉터리에 미신에 불과하군요. 하나도 맞지 않습니다. 그럼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드르륵.
아리스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녀와 내 눈이 마주친다.
홱.
아리스가 시선을 돌린다.
그녀의 빨개진 귓불이 보인다.
“회장님! 파이팅이에요! 전 언제나 회장님 편이에요! 마음에 둔 그분, 용기 내서 확 넘어뜨린 다음에 기정사실을 만들어버리라고요!”
휘이이익.
미호가 휘파람을 분다.
머리가 어지럽다.
뭐? 기정사실?
넘어뜨려?
“······수고하십시오. 부회장. 그럼, 갑시다. 김덕성군.”
아리스가 손부채를 부치면서 나를 점집 바깥으로 끌고 나온다.
그렇게 대로변 노점 현장 점검을 전부 끝낸 아리스가 아직 붉은 기운이 남은 얼굴로 내게 말했다.
“다음 점검 장소는 어디입니까?”
“제1별관입니다.”
부활동 부실이 모여 있는 장소.
클래스와는 별개로 부활동에서도 문화제 행사를 하기 때문에, 그쪽 부분 점검도 필요하다.
“좋습니다. 그럼 가장 먼저 요리부부터 점검하도록 하죠.”
요리부면 내 부활동?
대체 왜 내 부활동을 가장 먼저 찍은지는 의문이지만, 어차피 들를 예정이었으니까.
상관없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아리스와 내가 도착한 요리부 부실에서 만난 건.
[요리부 코스프레 카페!] [뚱카롱, 빙수 등 K-디저트 절찬 판매 중!] [여성 손님만 받습니다.]보기만 해도 머리가 어질어질한 입간판과.
“주인님! 에리냥이다냥☆ 어서와라냥! 우리 카페는 남자 출입 금지지만, 주인님은 특별히 예외인 것이다냥♥”
메이드복을 입고, 빨간 개목걸이를 차고, 고양이 머리띠와 꼬리를 착용한 에리였다.
이건 대체 무슨 해괴한 컨셉이야?
검은 귀축 하렘부
코스프레 카페라니.
당황스럽다.
일본 만화, 라노벨에서는 문화제 때 코스프레 카페 아니면 연극 양자택일이 국룰이기는 한데.
최약영웅 원작에서는 연극이 나와서 코스프레 카페 쪽은 안 나왔다.
즉, 내가 보고 있는 이 미친 광경은 원작에서 없던 광경이라는 거다.
거기에 뭐? K-디저트?
대체 한국 디저트가 뭐 특별한 게 있다고 저렇게 자랑스럽게 입간판에 걸어놓은 거지?
문화제 코스프레 카페와 한국 디저트의 만남이라니.
이 무슨 불쾌한 골짜기란 말인가?
“뭡니까? 니시자와 양. 이 파렴치한 복장은······.”
아리스의 얼굴이 붉어진다.
에리의 복장은 가슴골이 푹 파인, 노출이 있는 메이드복.
꽉찬 B컵이라는 그녀의 장담대로 살짝 볼륨이 있었다.
쫑긋.
에리 위에 있는 고양이 귀가 움직인다.
아니 저게 왜 움직여?
“사이온지 선배도 오셨구냥. 후후후후. 어서오는거다냥! 주인님이랑 사이온지 선배 전부 최고의 서비스로 대접하겠다냥!”
딸랑.
에리의 개목걸이에 달린 방울이 소리를 낸다.
기가 막힌다.
끼익.
에리가 문을 연다.
꽤 넓은 부실을 꾸며서 만든 코스프레 카페 안에는 의외로 제법 손님들이 있는 편이었다.
여자 손님만 받는다는 말처럼 나만 남자라서 문제지.
“다들 이거보라냥! 에리냥의 주인님 오셨다냥!”
쫑긋쫑긋.
흔들흔들.
에리의 머리에 채워진 고양이 귀가 쫑긋거리고, 고양이 꼬리가 흔들린다.
에리의 소리와 함께 코스프레 카페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린다.
“저 사람이 검은 귀축?”
“여긴 남자 출입 금지라고 하지 않았어?”
“너 몰라? 여기 검은 귀축 하렘부잖아.”
“매일매일 부실에서 그동안 손에 넣은 미소녀들과 하렘 플레이를 즐긴다던데?”
“밤마다 부실의 불이 꺼지지 않고 정체불명의 교성이 울린대.”
“귀축 하렘부라니! 무서워! 꺄악!”
수군대는 엑스트라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뭐?
하렘부?
어이가 없다.
하렘부는 누가 하렘부야.
내가 뭐라 하려던 그때.
“다들!”
탁.
아리스가 손에 든 서류철을 테이블에 내리쳤다.
그녀의 말에 부실 내부가 쥐 죽은 듯 조용해진다.
“품위에 어긋나는 파렴치한 말은 그만해줬으면 좋겠군요.”
아리스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떠오른다.
“슈오우의 학생회장으로서 그냥 웃어넘길 수 없어서요.”
그녀의 몸에서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것처럼 알 수 없는 검은 오오라가 피어오른다.
그 모습을 본 엑스트라들이 기겁하며 입을 닫는다.
이제 좀 조용해졌네.
[파트너. 사이온지 양, 뭔가 조금 심기가 안 좋아 보이지 않아?]흑태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리스가 이쪽을 돌아본다.
그녀가 살짝 입술을 내밀면서 말한다.
“······김덕성군도 풍기를 조금 지킬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설마 삐진 건가?
내가 뭐라 답하려던 그때.
“후냥! 에리냥은 사이온지 선배가 무섭다냥!”
찰싹.
에리가 내 품에 달라붙는다.
후냥이라니.
벌써 속이 니글거린다.
얘는 진짜 오늘 뭐 잘못 먹은 거 아니야?
그런 에리를 보면서 아리스가 미간을 좁힌다.
“니시자와 양.”
“후냥!”
화들짝 놀라는 에리.
“불순 이성 교제는 그만두고, 테이블 안내를 해줬으면 합니다.”
뒤이은 아리스의 말에 에리가 내 품에서 떨어진다.
“알겠다냥! 주인님! 이쪽이다냥!”
그녀가 주황색 트윈테일을 흔들며 테이블을 안내한다.
분홍색 식탁보가 씌워진 테이블.
“메뉴판은 여기 있다냥!”
테이블 위로 메뉴판이 올려진다.
“메뉴 정하면 벨을 눌러달라냥!”
에리가 테이블 위에 설치된 호출벨을 가리키면서 사라진다.
쓸데없이 레이스가 달린 화려한 메뉴판.
[뚱카롱] [초코 쿠키 빙수] [허니브레드] [흑당 버블티] [튀김 소보로]······.
국내 카페에서 보던 익숙한 메뉴들이 보인다.
근데 흑당 버블티는 대만 거 아닌가?
“김덕성군.”
아리스의 목소리가 들린다.
“혹시 추천 메뉴라도 있습니까? 저는 한국 요리는 잘 몰라서······.”
아리스가 살짝 부끄럽다는 표정으로 내게 말한다.
“그냥 튀김 소보로랑 버블티 두 잔 시키죠.”
정식으로 영업하는 카페도 아니고, 문화제에서 영업하는 임시 카페에 퀄리티를 기대할 수는 없으니.
그냥 아무 메뉴나 시키기로 했다.
메뉴판에 적힌 튀김 소보로는 대전에서 직접 구매했다고 나와 있으니까, 그럭저럭 맛 보장은 되겠지.
“알겠습니다.”
아리스가 고개를 끄덕인다.
삑.
호출벨을 누르자 에리가 나타난다.
“주인님! 메뉴 결정했나냥?”
“버블티 두 잔이랑 튀김 소보로 두 개.”
“알았다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