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321)
제 319화
나랑 일 하나 같이 하자
눈을 감은 채로 입에 빼빼로를 물고는 이쪽을 향해 입술을 내민 올리비아.
그녀의 새빨갛게 물든 얼굴이 들어온다.
11월, 초겨울이라 그런지 벌써 해가 떨어지기 시작한 오후.
싸늘한 바람이 내 몸을 감싼다.
뇌 정지가 왔다.
온갖 라노벨 클리셰는 다 꿰고 있다고 생각한 나였다.
그런데 옥상 위에서 빼빼로 게임이라니.
게다가 그게 한국의 전통이라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예상했을 리가.
당황스럽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아니 애초에 빼빼로 데이랑 빼빼로 게임을 엮은 발상은 대체 누가 한 거냐고.
2000년대에나 유행했던, 한물간 연예인 짝짓기 예능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 한 인간이 대체 누구야?
[파트너. 한국에는 정말 그런 전통이 있는 거야?]머릿속에서 흑태자가 말한다.
‘그럴 리가.’
없다.
이건 100% 벨라의 소행일 거다.
왜곡된 한국 문화 주입이 이렇게 사고를 칠 줄이야.
머릿속에서 흑태자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한다.
흑태자가 허구한 날 꺼내는 신사와 레이디 이야기에 동조할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굳이 이건 한국 문화가 아니라고 말해서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 정도로 눈치 없게 굴 생각도 없다.
다른 히로인이라면 모를까, 올리비아라면.
날 가장 많이 도와준 그녀라면.
나와 가장 오래 있었던 그녀라면.
이 정도는 어울려줘도 되겠지.
[파트너. 왜 가만히 있어? 혹시 내 시선이 신경 쓰여서 그래? 그런 거라면 난 지금부터 잠수할게. 흡.]흑태자가 숨을 참는 소리를 내면서 그의 존재감이 사라진다.
듀랜달 안으로 숨어버린 모양.
내 눈앞에 올리비아의 붉어진 얼굴이 보인다.
설정집에 대놓고 미소녀라고 적힌 라노벨 히로인답게 웬만한 연예인 뺨 때리는 예쁜 얼굴.
빙의 전이라면 말도 못 걸어봤을 수준의 미녀다.
괜히 의식하니까 얼굴이 화끈해진다.
쓸데없이 마음이 동요한다.
빼빼로 게임이라.
원하면 해주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얘 빼빼로 게임 룰은 알고 있겠지?
빼빼로의 초콜릿 부분을 문다.
달콤한 초콜릿 맛이 입안에 감돈다.
초콜릿을 갉아먹는다.
“······!!”
얼굴이 붉어진 올리비아의 몸이 파르르 떨린다.
빼빼로를 계속 갉아먹자 내 입술이 점점 그녀의 입술에 가까워진다.
내 숨결이 그녀에게 닿는다.
어느새 저녁 노을이 지고 있는 하늘.
올리비아의 얼굴도 저녁 노을처럼 새빨갛게 물든 순간.
나는 입술 바로 앞에서 빼빼로를 끊어냈다.
“후우.”
아슬아슬하게 끊었다.
그녀에게서 떨어진다.
“이제 끝이지? 빼빼로 게임.”
손에 든, 과자 조각 수준으로 짧아진 빼빼로를 들어 보인다.
내 말을 듣고 올리비아가 눈을 뜬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흔들린다.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잠깐, 눈물?
“······흑, 흐윽······. 흑흑······.”
올리비아가 고개를 숙인다.
그녀가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펑펑 운다.
당황스럽다.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
빼빼로 게임 룰이 원래 그런 거잖아.
“야, 올리비아. 너, 너 왜 그러냐?”
서럽게 울기 시작하는 올리비아의 모습에 당황한 내가 말했다.
올리비아가 눈물을 닦아내면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한다.
“다, 당신. 저, 저저저저와 이, 이, 입맞춤하는 게······. 흑, 그······. 그, 그렇게 싫었던 건가요?!”
올리비아가 빨개진 얼굴로 훌쩍이면서 말한다.
입맞춤?
설마 빼빼로 게임 하자는 게 그런 의도였다고?
올리비아가 고개를 든다.
그녀가 빨갛게 부어오른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에서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린다.
그녀와 만나서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이렇게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다.
마음 한쪽 구석이 쿡쿡 찔리는 기분이다.
“다, 다른 사람들하고는 이, 입맞춤했으면서. 저, 저한테는 왜 안 해주시는 건가요?! 저, 저는 당신의 전속 시녀라고요!”
올리비아가 눈을 질끈 감으면서 소리친다.
다른 사람들?
린이랑 아리스, 에반젤린을 말하는 건가?
그거 때문에 질투가 났던 건가?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
올리비아가 내 품에 뛰어든다.
차가운 초겨울의 바람 속, 그녀의 따뜻한 체온이 느껴진다.
그녀가 내 가슴을 토닥토닥 때리면서 소리친다.
“저는······. 저는······. 으으으으으으······. 레이디한테 이런 부끄러운 말을 먼저 꺼내게 하다니······. 당신은 정말 눈치 없고 매너 없는 서민에 왕바보라고요!”
올리비아가 눈물을 흘리면서 붉어진 얼굴로 횡설수설한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결국은 키스해달라는 말이지?”
생각해보면 올리비아가 뺨에 키스한 적은 있지만, 그녀와 서로 입맞춤을 한 기억은 없다.
하지만 린, 아리스와의 키스도 어디까지나 라노벨 특유의 빌어먹을 럭키 스케베 이벤트 때문에 벌어진 사고.
내 의지로 그녀들에게 입을 맞춘 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다.
그렇다면······.
그게 정말 그녀가 바라는 바라면.
머릿속에 지금까지 그녀와 보냈던 수많은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입학 직후 결투를 신청했던 때.
쓰러진 내게 병문안을 와서 전속 시녀를 자처했을 때.
도쿄만이 보이는 해변 공원에서 내 전속 시녀 제의를 받아들였을 때.
함께 그라운드 제로에서 유적을 공략했을 때.
임간학교, 여름학교, 약혼자 배틀, 문화제, 수학여행, 체육대회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올리비아다.
그런 그녀라면 저 정도 소원을 들어주는 것 정도는 상관없겠지.
빙의 이후 지금까지, 올리비아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테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으읏?!”
올리비아의 몸이 움찔한다.
다른 손으로 그녀의 턱을 붙잡는다.
그녀의 얼굴이 빨개진다.
두근.
올리비아의 얼굴을 의식하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심장이 쓸데없이 뛰기 시작한다.
스르르.
올리비아의 눈이 감긴다.
눈물 때문에 빨갛게 부어오른 그녀의 눈두덩이가 보인다.
그 상태에서 그녀의 입술 위로 내 입술을 포갠다.
부드러운 감촉이 입술에 느껴진다.
*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올리비아의 심장이 뛴다.
그녀의 얼굴이 새빨개진다.
올리비아의 머리가 하얘진다.
입맞춤.
그것이야말로 그녀가 원하던 궁극적인 목표이기는 했다.
그렇기에 빼빼로 게임을 할 때, 그가 키스하지 않고 떨어졌을 때 서운함과 야속함이 북받쳐서 울음을 터뜨린 것이기도 했다.
자신이 솔직하지 못한 것은 알고 있었다.
빼빼로 게임 핑계로 입맞춤을 요구하는 것이 거의 반쯤 억지에 가까운 행위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라면, 자신의 마음을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 그녀에게 있었다.
게다가 린, 아리스, 에반젤린과도 이미 먼저 입맞춤을 하지 않았는가?
자신에게도 입맞춤을 받을 권리가 있다.
올리비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그녀가 바라던 입맞춤이 이뤄진 순간.
올리비아의 머릿속은 새하얘졌다.
그녀의 심장이 고장난 것처럼 미칠 듯이 뛰기 시작한다.
그녀의 얼굴이 새빨개진다.
끝없이 길게만 느껴지던 키스 타임이 끝난다.
그녀의 입술에서 그의 입술이 떨어진다.
“이제 됐지?”
김덕성이 고개를 돌리면서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흐, 흥······.”
올리비아가 고개를 돌린다.
어느새 달이 뜬 초겨울의 옥상,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후끈 달아오른 얼굴 때문에 춥지 않다.
두근, 두근.
심장은 여전히 고장난 것처럼 폭주하며 질주하고 있엇다.
올리비아가 손으로 입술을 매만진다.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자신을 포함한 모든 히로인들에게 언제나 일정 선 이상의 스킨십을 하지 않던 그가 먼저 나서서 키스해주다니.
그의 입술 감촉이 아직도 남아있는 느낌이었다.
‘바, 바바방금 저, 처, 처처처첫 키스 한 거죠?’
퍼스트 키스.
그것도 좋아하는 사람과.
올리비아의 뺨이 후끈하다.
‘처, 첫 키스는 레몬 맛이라고 들었는데······.’
아니었다.
그녀의 첫 키스는 초콜릿처럼 달콤하고 솜사탕처럼 푹신한 맛이었다.
올리비아가 그렇게 첫 키스의 여운에 잠겨 있던 그때.
“······빼빼로 게임은 원래 입맞춤하면 아웃되는 게 룰이야.”
등을 돌린 김덕성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리고 빼빼로 데이는 서로 빼빼로를 주고받는 날이지, 빼빼로 게임하는 날이 아니고.”
김덕성의 말에 올리비아의 얼굴이 이번에는 다른 감정으로 붉게 달아오른다.
“으으으으으······.”
올리비아의 입술이 삐죽 튀어나온다.
모처럼 분위기 좋은 한 때였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설레서 미칠 것 같은 감정에 이렇게 찬물을 끼얹다니.
“이 바보, 멍청이, 해삼, 멍게, 말미잘! 우주 제일 바보!! 무드도 모르는 서민 같으니!! 그런 이야기, 지금 꼭 해야 할 필요는 없잖아요!!”
척.
올리비아가 가슴 위에 손을 얹으면서 소리친다.
믿을 수 없다.
어떻게 이런 말을······.
“으으으으, 당신한테 기대한 제가 바보죠! 아, 아무튼! 다, 당신이 제 퍼스트 키스를 빼, 빼앗아 갔으니까······. 위대하고 고귀한 보나파르트 황실의 적장녀인 제 입술을 가져갔으니까······.”
올리비아가 얼굴을 붉힌다.
그녀의 가슴이 쿵쾅쿵쾅 뛴다.
“그러니까 아무튼 당신이 지금부터 전부 책임지라고요! 아시겠어요?!”
올리비아의 검지가 김덕성을 가리킨다.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다.
어차피 그는 대답을 회피할 테니까.
그냥······.
모처럼의 달콤한 분위기를 깬 그에게 심술이 나서 한 말이었다.
올리비아가 눈을 질끈 감은 그때.
“······그럴 생각이야.”
올리비아의 귓가에 김덕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올리비아의 눈동자가 크게 떠진다.
그럴 생각이라니?
“전부 책임질 생각이라고. 그러니까 앞으로는 쓸데없이 튕기지 말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냥 솔직하게 말해.”
마지막까지 뒤돌아선 채로, 김덕성이 말했다.
평소와 같은 말투지만, 진심이 담긴 발언.
그의 말을 들은 올리비아의 눈동자가 커진다.
가슴 위에 올려진 그녀의 손이 셔츠 옷깃을 꽈악 부여잡는다.
“그럼 난 먼저 가본다. 날 추운데 밖에 있지 말고 너도 빨리 들어가라. 감기 걸리니까.”
김덕성은 그렇게 말하면서 쫓기듯 옥상 문을 열고 내려갔다.
탁.
옥상 문이 닫힌다.
어느새 밤하늘 중앙에 뜬 달빛을 받으면서, 홀로 남은 올리비아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전부······. 책임······.’
올리비아가 김덕성의 말을 곱씹는다.
두근두근.
조용해진 옥상에서 혼자 남은 그녀의 심장이 거침없이 뛰었다.
*
그날.
옥상에서의 일을 끝으로 빼빼로 데이 별일 없이 마무리됐다.
유세라, 에반젤린의 빼빼로는 숙소에 도착해서 받았다.
에반젤린의 빼빼로는 기대 이상으로 평범하게 맛있었다.
이거 본인이 직접 만든 거 아닌 거 같은데.
그런 의문과 함께 11월이 지나가고.
마침내 12월이 다가왔다.
2학기의 끝.
한 해의 마지막 달.
그리고 빠질 수 없는, 12월 최대 기념일인 크리스마스가 있는 달.
12월의 최고 화제는······.
“김덕성 님. 학원 내에서는 김덕성 님의 데이트 지명 대상이 현재 최고 이슈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지명권의 유효 기간은 올해 내인데, 크리스마스에 반드시 쓸 게 분명하다고······.”
빌어먹게도 나였다.
정확히는 내가 지명하는 데이트 대상.
눈이 펑펑 내리는 12월의 교정을 보면서, 나는 한서진의 보고를 받고 머리를 부여잡았다.
[하하하하. 파트너. 파이팅이라고!]머릿속에서 흑태자의 파이팅 소리가 들려온다.
이제 와서 크리스마스에 데이트 티켓으로 누구 한 명을 지명하는 것도 곤란하다.
탈락한 다른 히로인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테니까.
그렇다고 모두를 지명하기도 그렇고.
다른 모두를 납득시킬 만한 지명 대상도 없다.
이 빌어먹을 데이트 지명권을 그때 찢었어야 했는데.
모두가 상처 안 받게 하고 싶다는 빌어먹을 라노벨 주인공의 헛소리를 이제 와서 이해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역시 그냥 찢을까?
내가 그렇게 고민하고 있던 그때.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십니까?”
한서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잠깐, 모두를 납득시킬 만한 지명 대상······.
어쩌면.
고개를 돌린다.
거기에는 한서진의 모습이 있었다.
잿빛 머리카락, 검은 눈동자.
그래, 그녀라면.
모든 히로인이 질투 없이 묘하게 따르고 있는 그녀라면.
아직 나와 별다른 관계가 없는 그녀라면.
모두를 납득시킬 수 있을 것이다.
묘안을 떠올린 나는 데이트 지명권을 한서진에게 내밀면서 말했다.
“한서진. 너, 나랑 일 하나 같이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