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109
‘분명 죽였어. 이 사람 분명 뭔가 잔뜩 죽였어.’
태화가 평소대로 돌아왔음에도 유진은 여전히 패닉이었다.
그녀는 그 눈빛이 단순한 연기라 생각하지 않았다.
연기로 꾸며 낸 것과 본질은 달랐으니까.
아까 보였던 눈은 상상만으로 만들 수 없는 무언가였으며 최소한 직접 보고 겪지 않고서야 보일 수 없는 것이었다.
물론 태화야 직접 겪듯 꿈을 꿨으니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녀가 느낄 때, 그는 친절한 모습을 가장한 악마였다.
“유진씨.”
“힉.”
“진정하고. 이제 다시 가죠.”
“어, 어디를요? 저, 전 아무 것도 몰라요. 못 봤어요.”
“······촬영가야죠..”
정신을 못 차린 유진은 얼떨결에 세트장 위, 카메라 앞에 섰다.
보통 때보다 더 맹하게 구는 태도에 스텝들의 눈초리가 대번 사나워졌다.
평소라면 바로 위축되었을 텐데, 방금 전 여운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그녀는 그런 시선들을 신경 쓰지 않은 채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이윽고 슬레이트가 내려가고 ‘오민재’가 유진을 바라봤다.
‘어······?’
유진은 아까 겪은 일로 여전히 두근거리는 심장과 달리, 눈앞의 남자에겐 태평한 자신을 보고 놀랐다.
전혀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오민재가 무섭지 않았다.
‘······뭐지?’
외운 대사를 읊으며 그녀는 그를 살폈다.
왜 그가 단순히 헝겊인형처럼 느껴지는지, 아까 그 남자는 어디로 간 건지, 지금 이게 무슨 일인지.
감각이 엉망이 되어 오히려 고요하고 맑아졌다.
* * *
“도대체 무슨 마술을 부린 거냐?”
강원은 신기하다는 눈으로 유진을 응시했다.
쉬는 시간에 로맨스라도 찍듯 태화와 서로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대본을 소화했다.
다들 자신이 귀신에 홀려 환영을 보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며 그녀의 파죽지세를 쳐다봤고, 결국 촬영은 평소보다 두 시간이나 이르게 마무리 됐다.
‘설마 그 유명한 사랑의 힘인가? 그런 것치고 걔가 태화를 갑자기 피하는 것 같던데······.’
원래 카메라 앞에서 피하고 밖에선 어느 정도 동료 관계를 유지했다면, 그 일이 있은 다음부턴 밖에서는 피하고 안에서는 평범하게 대응했다.
그 짧은 시간에 뭘 했기에 저리 됐는지 강원은 미친 듯이 궁금해졌다.
“진짜 무시무시한 게 뭔지 알려줬죠.”
그런 그를 향해 태화는 담담하게 진실을 알렸다.
물론 당사자들 이외에는 이해 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끝
ⓒ 마늘소금
차유진이 완전히 중심을 잡은 후 촬영은 더할 나위 없이 순조롭게 돌아갔다.
물론 실행 전 예상했던 것과 같이 그녀가 태화를 피하고 꺼리는 일이 발생하긴 했으나 그리 친했던 관계도 아니었고, 또 촬영에 피해가 가지 않았기에 그는 크게 괘념치 않았다.
유진이 오해를 퍼트릴 성정도 아니었으니 누군가 그 날 있던 일을 알릴 리 없으며, 그 일을 털어 놓을 정도로 친한 사이라면 그녀의 성격을 알고 있을 테니 문자만으로 전해진 이야기를 믿지도 않을 테니까.
‘그래도 끝나면 사과는 해둬야지.’
의 촬영 기간 동안은 그대로 놔두는 편이 나을 거라 예상하던 그는 머리 위를 흐르던 따뜻한 바람이 사라지고 매만지던 손길마저 떠나자 거울을 들어 제 외모를 확인했다.
이 고작 10화만에 시청률 20퍼센트를 달성했다.
회당 평균 1퍼센트 상승했다는 말이었고 업계에서는 원작 팬들에 의한 초기 인지도 확보, 원작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그러나 원작팬과 드라마 시청자 모두를 만족시키는 대본, 전에 없는 색기로 무장한 남자 주인공 등을 성공의 요인으로 꼽았다.
중국에서도 그 인기가 만만치 않아서, 시청률 2퍼센트의 대청제국의 뒤를 이어 시청률 1.4퍼센트라는 엄청난 화력을 선보였다.
“이 얼굴에 포마드라니 뭔가 신선하네요.”
태화는 굵게 웨이브 처리되어 넘어간 앞머리를 거울너머로 바라봤다. 포마드를 묻혀 고정한 탓에 머리카락은 짙고 잔머리 하나 없이 깔끔했다.
인간 사회로 내려온 뒤, 봉인이 풀린 직후처럼 허리를 넘기는 수준은 아니었으나 해조는 언제나 어깨선 이상의 기장을 유지했다.
작품 속 해조의 주장은 ‘평생 길었던 터라 진정이 안 돼 짧게 치기 싫다’였지만, 원작가의 말에 의하면 그 편이 더 섹시해서 장발을 유지시켰다고 한다.
그런 뚝심 덕에 장발은 해조의 트레이드마크와 같았다.
작품 관련 행사에서 최대한 그 작품의 모습을 유지하는 태화는 를 홍보하거나 일부 광고주가 해조의 이미지를 원할 때 항상 머리를 붙였고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가발을 썼다.
그러한 세세한 이미지들 또한 팬들을 위한 배려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팬을 생각하던 그가 오늘은 시원하게 목덜미를 드러내며 앞머리를 넘긴 건, 원작가의 요청이 있어서다.
본인의 블로그에 단발 해조 보고 싶다고 징징 거린 뒤, 그 글 밑에 달린 댓글들을 내밀며 ‘이것이 천심입니다!’라 말하는데 팬서비스에 투철한 편인 그로선 거절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솔직히 짧은 게 편하긴 편해.’
태화는 해조를 연기할 때마다 아무 때나 흘러내리는 앞머리, 답답한 뒷목, 가끔 어깨에 뭐가 있어서 흠칫 놀라게 만드는 긴 머리카락이 참 불편했다.
미모를 위해 이 불편한 걸 묶지도 않고 다니는 여성들이 대단하게 여겨질 정도.
특히 외부 촬영을 하다가 바람 탓에 머리카락이 입에 들어가면 싸구려 고무줄로라도 질끈 묶어버리고 싶었다.
그렇기에 깔끔하게 넘겨 고정된 머리카락이, 태화는 상당히 기꺼웠다.
“태화야 입술 좀 벌려 봐. 살짝 당기고. 그래 가만히 있어.”
머리 정리까지 마친 나래는 마지막으로 얇은 붓을 들어 입술에 선명함을 더했다.
고작 입술 하나를 칠하는데도 비슷비슷해 보이는 분홍색을 세 가지나 사용하는 것을 보고 그는 ‘다 똑같은 색으로 보이는데 저게 구별이 되는 걸까’라는 쓸데없는 감상을 떠올리며 그녀의 손길에 얼굴을 맡겼다.
“네 팬이 에스테 리시야 사의 신상 컬러인 로즈 시크를 보내서 써봤는데 확실히 R&M의 런웨이로사나 로더루즈랑 비교하면 살짝 윤기고 도는 게 너랑 잘 어울리네. 이쪽도 한 번 파봐야겠어.”
“······그거 무슨 마법 주문인가요?”
태화는 완성된 얼굴을 거울을 통해 관찰하며 평소와 뭐가 다른 건지 고민했다.
그녀의 말만 들으면 뭔가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는 것 같은데, 거울에 비치는 건 항상 보던 해조의 분위기고 인상이었다.
“오늘도 잘 됐네요.”
차이점을 찾아내지 못한 그는 단순히 잘 된 화장을 칭찬했다.
고등학교 시절 풋풋하게 사귀었던 소녀가 앞머리를 1센티 자른 뒤 뭐가 변했냐고 물었을 때도 난감했지만, 그것이 본인 얼굴로 치환돼도 알아차리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뭐, 누군간 알겠지.’
‘나 오늘 뭔가 다르지 않아?’란 질문의 상대가 아닌 주체가 된 것만으로도 태화는 만족하기로 했다.
“역시 소재가 좋다니까. 일단 준비 끝났으니까 얼른 현장으로 가봐.”
언제나 그러하듯 바로 도구들을 챙겨 넣는 그녀를 보며 태화도 차의 문을 열고 봄 냄새가 묻어나는 바람을 얼굴로 느꼈다.
“다녀올게요. 형, 가요.”
“그래.”
차에서 멀어진 그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스텝과 신상아가 기다리고 있을 가게로 이동했다.
* * *
의 10화는 특별했다.
지금까지 단추 서너 개를 푸는 것으로 시청자를 애태우던 여우가 드디어 상의를 탈의한 순간이었으니까.
게다가 샤워를 하고 나온 장면인지라 젖은 머리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섹시함이 폭발했다.
“형, 등은 풀 업으로 만드신 거죠? 완전 멋있었어요. 프로틴 뭐 드세요?”
학생으로 보이는 소년이 열기 어린 눈으로 태화를 바라봤다.
그 장면이 어필된 것은 비단 이성에게만이 아니었다.
지방이 잘 붙지 않은 체질 탓에 그의 근육은 질감이 상당한 편이었고, 그 오밀조밀함은 사심이 듬뿍 담긴 카메라에 의해 그대로 방영됐다.
가슴 쪽뿐 아니라 등까지도.
그리고 그 물기 흐르는 역동적인 등은 보는 가족에게 채널 선택권을 빼앗긴 채 앉아 있던 동성(同姓)들에게 동경 아닌 동경을 심어줬다.
“고마워요, 알아봐주니 만든 보람을 느끼네요.”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을 해왔던 태화는 그 단단함을 알아봐준 팬에게 호감을 느꼈다.
같은 성별이라 그런지 근육의 미학을 좀 아는 소년이었다.
신상아와 허그하고 그에게까지 오는 남자 팬들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악수를 나누는 이들은 꼭 한 번씩 근육이 아주 멋있었다는 칭찬을 건네, 태화를 흡족하게 만들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우리 자기가 형 보고 되게 좋아하던데······. 어떡해하면 형처럼 섹시해질 수 있을까요?”
“남자는 근육이에요. 근육이 최고야.”
“그런 것 치고 형은 부피가 별로 없잖아요.”
“싸울래요?”
여자 친구 따라 왔다며 질문을 건네고 답변에 대한 답례로 시비 같은 말을 남기는 팬도 있었으니까.
아무튼 비율로 따지면 여성 팬이 20 남성 팬이 1정도 됐는데, 그들 중 마레드라며 항상 응원한다는 말을 남기는 이들이 많아 태화를 기쁘게 했다.
“오빠! 저 머리 토닥토닥 한번만 해주시면 안돼요?”
기뻐하며 태화의 등을 한 번 꼭 안았다 놓은 소녀가 장화 신은 고양이와 같이 반짝이는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녀의 요청에 대기 중인 이들인 기대된다는 눈빛으로, 이미 지난 이들은 허망하단 시선으로 둘을 응시했다.
별 것 아닌 부탁이나 형평성을 생각한 태화는 가능한 선에서 최선을 다했다.
무슨 뜻이냐면, 말로만 해줬다.
“토닥토닥.”
“꺄악!”
입으로만 토닥여줬음에도 소녀는 기뻐하며 계단을 뛰듯이 내려갔다.
참으로 순수하고 올바른 팬의 정석이었다.
많은 팬들이 그를 거쳐 가면서 ‘완전 섹시해요’, ‘역시 경국지색’라 칭찬했고 ‘오빤 장미향이 어울려서 한번 사왔어요’, ‘저 쓰는 건데 완전 좋아서 하나 사왔어요’라며 여성에게 어울리는 향수나 화장품을 건넸다.
군대도 만기 전역한 대한의 건아로서 이래도 되는 건가라 생각한 태화는 옆에 있는 ‘여주인공’ 신상아를 바라봤다.
어째서인지 히로인이 받아야할 찬사를 태화에게 빼앗겼음에도 그녀는 참으로 태연해보였다.
“뭘 봐요? 요물.”
“요······.”
“여우니까 요물 맞죠. 안 그래요?”
“맞아요, 언니! 완전 잘 아셔!”
상아가 기가 막혀하는 그를 내버려 둔 채 고개를 돌려 묻자 그녀에게 안겨있던 여성팬이 거침없이 말을 받았다.
태화는 꼭 안겨 있는 두 여성을 응시했다.
비슷한 키인데도 상아 쪽이 더 커 보이는 건 비단 힐때문만은 아니리라.
그가 예쁘다는 소리를 듣고 있는 사이, 상아는 멋지다, 굉장하다, 대단하다와 같은 감탄을 듣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남자 주인공에게 가야할 찬사 말이다.
‘뭔가 남녀 주연이 바뀐 것 같은데······.’
해조를 휘어잡는 아영의 포스가 여타 드라마의 여주인공들과 남달랐고 요즘 유행한다는 ‘걸크러쉬’란 단어가 아주 잘 어울렸다.
신상아도 제 성격과 묘하게 비슷한 서아영 역을 꽤 마음에 들어 했던 터라 ‘아영이 멋져요!’라 외치는 팬들에게 기분 좋게 웃었다.
“언니! 저도 여우 키우고 싶어요! 목줄 잘 해줄 자신 있는데! 나만 없어 여우!”
‘······못 들은 걸로 하자.’
가끔 무시무시한 소리를 부끄러워하며 뱉는 여성들을 애써 넘기며 태화는 여기까지 와준 팬들을 하나하나 안아줬다.
“오빠 얼굴에 뭐가 묻었어요.”
“네? 어디요?”
“섹시함과 어여쁨이 묻었어요! 어떡해!”
“······고마워요.”
팬들이 열 명도 채 남지 않았을 때 태화는 슬슬 화장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했다.
사실 너무 여성적으로 꾸며서 보는 이들마다 착각을 하는 건 아닐까.
물론 차에서 내리기 전 본 얼굴은 평소 해조에 비하면 수컷의 향기가 물씬 풍기긴 했으나 피라도 머금은 듯 선명하게 물든 입술은 묘한 구석이 없지 않았다.
‘아니면 내가 너무 여성적으로 연기했나? 유혹한 적은 있어도 가녀리고 여성스러운 분위기는 안 풍겼는데······.’
“제가 남자로서 매력이 부족한가요?”
조금 시무룩해진 태화는 앞에 있는 여성에게 무의식적으로 색기를 흘리며 우수에 찬 눈으로 물었다.
내성이 없던 그녀는 본인의 가슴을 부여잡으며 왈칵 무거운 진심을 토했다.
“······결혼해주세요! 제가 돈 벌어 올게요! 정말 잘 할게요!”
“미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