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13
────────────────────────────────────────────────────────────────────────연예인에 관심 있어요?
거울을 본 태화는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잠시 피로를 잊을 정도로 신기한 변화였다.
“······화장의 신비란.”
남자인 자신이 이 정도로 변할 수준이니 화장이 변장이란 소리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었다.
“태화 씨! 준비 끝났어?”
“네, 나갑니다!”
라희의 부름에 태화는 인혜에게 감사를 표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마무리 지을 시간이었다.
***
“수고하셨습니다!”
4시간 반 만에 촬영이 종료되자 다들 환호하며 서로에게 인사를 건넸다.
태화도 즐겁기는 마찬가지였다.
두둑이 받을 돈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집에 가서 쉴 수 있다는 게 행복했다.
‘배고파······.’
라면 끓여 먹을 생각에 그는 재빨리 화장을 지우러 사라졌다.
휴식 없이 진행된 강행군 속에서 쌩쌩한 것은 창일뿐이었다.
그는 여전히 부족하단 눈빛으로 사라지는 태화를 바라봤다.
흰 바탕이 아닌 생동감 넘치는 공간에서 모델을 찍고 싶었다.
“선생님, 그만요. 지금 저희 예약 하나 펑크 낸 거 아시죠? 이 이상은 안 돼요.”
눈치 빠른 조수의 만류에 창일은 입맛을 다셨다.
그도 이 이상은 무리라는 걸 알았다.
모두가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좋은 그림이 나오긴 힘들었으니까.
게다가 그의 행동을 막는 방해물이 또 하나 있었다.
“저쪽에 JB 김기태 실장 와 있어요. 따지러 왔나 봐요.”
“······다음에 보충하겠다고 말 안 했어?”
창일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JB 앤터테이먼트 실장 김기태.
아이돌계의 미다스라 불리며 수많은 아이돌 그룹을 성공적으로 키워 낸 인물.
좀 더 올라갈 수 있는데도 현장이 좋다며 실장 자리에 눌러앉은 괴짜였다.
“말했죠. 근데 명색에 JB잖아요.”
그 말에 창일은 바로 납득했다.
한국의 삼대 기획사로 불리는 JB니 그냥 ‘아, 네.’ 하고 끝낼 수 없던 것이리라.
‘그래도 하필 쟤를 보내냐······.’
아이돌들은 기태가 담당이 되길 바라지만 주변 업체 입장에선 그리 선호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와 대화를 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손해를 보곤 했으니까.
‘그야말로 악마의 혓바닥이지.’
긴장한 채 들어도 결과는 마찬가지.
그렇게 홀린 채 도장을 찍은 이들은 곰곰이 생각하고서야 또 당한 것을 깨달았다.
물론 항상 손해만 본다면, 안 보면 그만이다.
그러나 기태는 당근과 채찍을 교묘히 사용할 줄 알았고, 그 탓에 다들 애증하면서도 그를 밀어내지 못했다.
‘정신 바짝 차리자.’
이번에도 아스러질 다짐을 하며 시선을 돌리던 창일은 예상치 못한 광경에 당황했다.
자신의 모델이 기태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라면을 떠올리며 흥얼거리던 태화는 갑자기 붙잡는 남자를 의아한 눈으로 훑었다.
블랙라벨 쪽이라기엔 처음 보는 얼굴이었고, 양복을 말끔히 차려입은 것으로 보아 스튜디오의 관계자로도 보이지 않았다.
의문스러워하는 그를 보며 김기태는 선한 미소를 지었다.
“제 소개가 늦었군요. JB 엔터테이먼트 실장 김기태라 합니다.”
“아.”
명함을 받아 든 태화는 묘한 탄성을 내질렀다.
드라마 촬영 현장도 아닌 스튜디오에서 이런 만남을 가질 거라곤 예상치 못했다.
“혹시 연예인에 관심 있어요?”
기태는 탐욕스러운 눈으로 태화를 훑었다.
아까와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겨도 괘념치 않았다.
중요한 건 그에게서 ‘스타성’을 봤다는 거니까.
‘이 정도 대어는 정말 오랜만이군.’
많은 이들이 아이돌에게 중요한 것을 외모나 군무, 가창력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능력은 그런 게 아니었다.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는 마력.
누가 가르치지도 노력할 수도 없는 타고난 재능이었다.
“관심이 있긴 한데······.”
태화는 곤란한 눈으로 기태를 응시했다.
JB 엔터테이먼트.
한국 굴지의 연예 기획사이니 들어간다면 공중파에 출현하는 것도 어렵지 않으리라.
“죄송합니다. 제 직업이 배우라서요.”
하지만 그들이 유명한 건 음악과 아이돌 분야였다.
“요즘 연기하는 아이돌이 유행이죠. 먼저 인지도를 올리고 서서히 넘어가게 되면 쉽게 주연도 가능합니다. 물론 공중파에요.”
기태는 포기하지 않고 태화를 설득했다.
소속사도 없고 얼굴도 알려지지 않은 상태인데 현재의 직업이 뭐가 중요할까.
‘아무리 재능 있어도 1, 2년 만에 주연을 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메리트라고?’
이미 데뷔시킨 이들 중에도 배우가 목표인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팀으로 인지도를 쌓은 뒤 솔로 활동으로 배우를 겸하며 서서히 이미지를 바꿨다.
배우만 주구장창 파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드라마 주연으로 발탁됐고, 명성을 이어 갔다.
“매력적이긴 한데 이미 드라마를 찍게 돼서. 죄송합니다.”
그의 회유에 태화는 쓴웃음을 지으며 명함을 돌려줬다.
대형 기획사의 실장이니 인연을 만들어 두는 것도 나쁘지 않았지만, 집요한 눈동자가 마음에 걸렸다.
“어머! 태화 씨, 드라마 들어가?”
그렇게 거절하고 끝내려던 찰나 옆에서 구경하던 라희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갑작스런 고함에 주변의 시선이 모이는데도 그녀는 태화의 입만을 바라봤다.
“네. tvM 월화 드라마 에 출연하게 됐어요.”
“tvM 월화면 더럽게 재미없······. 태화 씨 나오니까 꼭 챙겨 볼게! 지금 찍기 시작하면 6월 초에 나오는 거지? 무슨 역이야? 많이 나와?”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질문에 태화는 곤란한 눈빛을 보냈다.
다른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데도 라희는 전혀 못 느끼는 것 같았다.
“이번 월화 끝나고 6월부터 방영하고 역은 여주인공 친구예요. 매회 한 번씩은 나오는데 정확한 건 지금 작가님이 대본을 고치셔서 잘 모르겠네요.”
물론 홍보할 수 있는 기회이니 태화는 착실하게 답했다.
여기 있는 사람 중 몇 명이나 볼지는 몰라도 시청자가 늘면 좋은 일이었으니까.
“······안타깝군요.”
기태는 돌아온 명함을 만지작거리며 신음을 흘렸다.
처음부터 배우로 시작하기에 JB는 매력적인 회사가 아니라는 걸 그도 알고 있었다.
몇몇 아이돌 때문에 부서가 설립되긴 했어도 여전히 미흡했고, 속한 직원들의 안목도 부족했다.
‘꼭 키워 보고 싶은데.’
그런 회사의 사정에도 기태는 그를 선뜻 포기하기 힘들었다.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돕고 싶다.
그런 기묘한 욕구가 기태의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그러면 혹시 인지도도 올릴 겸 MV에 출연할 생각은 없습니까? 이번에 컴백하는 여자 그룹이 하나 있는데······.”
그는 어떻게든 태화와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다른 권유를 건넸다.
아이돌이 아니라면 배우로라도 붙잡고 말리라.
평소 간택하던 그가, 이번엔 간택을 바라는 입장이 되어 태화에게 매달렸다.
전혀 놓아 줄 기색이 없는 태도에 태화는 어찌 대처할 지 고민했다.
라면 생각이 간절해지는데 수락하지 않으면 보내 줄 것 같지 않았다.
‘일단 알았다고 할까. 근데 수락하면 한 번으로 안 끝나고 코가 꿰일 거 같은데······. 이럴 때 누가 짠 하고 불러주면 좋을 텐데 말이지.’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던 순간, 거짓말처럼 진동이 울렸다.
누군진 몰라도 참 고맙다 생각하며 태화는 폰을 꺼냈다.
“······죄송하지만 급한 약속이 생겨서. 오늘은 그만 가 봐도 될까요?”
화면을 들여다보던 그는 미안하단 표정으로 기태를 바라봤다.
사실 광고성 문자라도 친구의 연락으로 둔갑시켜 자리를 피할 요량이었다.
그에겐 그 정도 연기력이 있었고, 배우를 하는 이상 아이돌 매니저와의 접점이 크지 않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그럴 필요 없이 진짜 도움 요청이 날아왔다.
“보시다시피 제 친구들이 곤란한 상황이라서요. 다음에 연락하겠습니다. 이사님, 나중에 봬요. 그럼.”
태화는 그가 말 걸 틈도 없이 재빨리 인사만을 남기고 자리를 피했다.
아쉬운 눈으로 뒷모습을 쫒던 기태는 손가락에 느껴지는 매끈한 감촉에 고개를 숙였다.
“명함······.”
안 들고 갔잖아.
그는 허탈한 시선으로 손에 남은 명함을 응시했다.
혓바닥으로 남을 홀리던 남자가 오늘은 타인의 시선에 홀리고 말았다.
***
“온대?”
“응. 근처라고 10분 안에 도착할 거래.”
“잘됐다! 오빠! 구했대요!”
걸 그룹 새턴(Saturn)의 막내 에스터가 매니저를 향해 소리쳤다.
방방 뛰는 그녀를 놔둔 채 유라는 재차 문자를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