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194
“하하하······. 네, 괜찮아요.”
“얼굴이 창백한데. 먹지도 못하고 돌아다니는 거 아니야? 엄마가 뭐라도 만들어 줄까?”
태화가 힘없는 웃음으로 괜찮다는 말을 뱉자 그녀의 걱정은 더욱 크기를 키웠다.
“아뇨. 정말 괜찮아요. 어머니도 들어가서 쉬세요.”
그런 선미에게 태화는 단호한 태도로 고개를 저으며 완곡히 거절의 뜻을 전했다.
그렇게 방으로 돌아온 태화는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침대에 쓰러졌다.
너무 정신적인 타격이 커서 아직까지 힘이 없었다.
‘내 비위가 이렇게 약할 줄이야······.’
태화는 BGA가 뽑아준 목록을 확인하고 적당한 프로그램을 골랐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요리 프로그램의 일종으로 요리 전문가, 유명 레스토랑의 헤드 셰프로 구성된 두 명의 고정 심사위원이 각각 40점, 매 라운드마다 바뀌는 연예인 게스트 한명이 20점으로 요리를 평가하여 탈락과 통과를 결정하는 요리 서바이벌이었다.
태화가 다른 예능이 아닌 음식을 먹고 리엑션을 보이는 프로그램을 선택한 건 팬들을 생각해서다.
그의 팬들은 예전부터 그가 무언가를 먹는 사진이나 영상에 격렬히 반응했으며 꾸준히 먹방을 찍어달란 글들을 남겨왔다.
어떤 부분이 그들을 매료시켰는진 몰랐지만 태화는 팬서비스를 확실하게 할 요량으로 음식을 먹고 짧은 코멘트를 남기는 예능을 선택했다.
문제는 그가 출연했을 때의 경쟁 주제가 돈낭(豚囊)과 생식기였다는 것이다.
‘······미식의 세계 같은 건 모르는 편이 낫겠어.’
구이가 일반적인 재료들이었으나 요리 토너먼트인 만큼 다섯 명의 참가자들은 재료를 열심히 손질하고 ‘각자의 독창적인’ 방법으로 조리했다.
심사위원으로서 먹지 않을 수 없던 태화는 간신히 표정을 가다듬으며 요리를 먹었다.
내장 부위인 만큼 냄새를 잘 잡아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으나 익숙하지 않은 재료에 실수한 이가 셋이나 있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태화는 동물이 아닌 짐승 냄새가 코를 찌르는 요리를 셋이나 입으로 가져가야 했다.
조리 과정도 충격적이었지만 맛도 충격적이어서, 태화는 모든 먹방 예능의 출연자들이 이런 고통을 받는 것인지 고민됐다.
‘뽑기 운이 없었어······.’
속은 찼는데 기운이 없다.
정신적으로 탈진한 태화는 걱정한 선미가 방문을 두드리기 전까지 그 상태로 잠이 들었다.
***
예능에서의 충격을 대본 연습으로 씻어낸 태화는 신상아와의 저녁 약속을 위해 E호텔을 찾았다.
덕분에 크게 성공했으니 한 턱을 쏘겠다는 의도였다.
‘확실히 성공하긴 했지.’
카메오로 출연한 태화야 언제나 그러했든 호평을 받았으나 이 영화의 가장 큰 수혜자는 신상아였다.
과거 자신을 이끌어준 감독을 향한 의리로 고작 2억이란 적은 출연료로 참여했다는 게 알려지자 대중들은 ‘신상아에게 이런 면이?’라는 생각을 하며 그녀에게 호감을 보냈다.
태화를 카메오로 출연시키고 친한 배우들도 함께 데려오면서 연예계 인맥을 자랑하기도 했으며, 투자 유치에도 큰 도움을 줬다는 게 감독의 인터뷰를 통해 알려지면서 수완도 대단하단 평가를 들었다.
정점을 찍은 것은 ‘법의 경계’가 개봉하면서다.
연기력 논란은 없으나, 신상아는 ‘굳세고 당돌한 여주인공 역만 잘하는 배우’라 불렸다.
‘구미호’의 서아영을 맡았을 때도 그 평가는 변하지 않아서, ‘이태화가 이끌어주지 않는 장면에서는 다 비슷비슷한 모습만 보이네ㅋ’라는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그랬던 그녀가 ‘법의 경계’에서는 정의가 무엇인지 고뇌하고 좌절하기도 하며 주연다운 연기력으로 영화를 이끌었다.
인맥, 수완에 이어 획일적인 연기까지 탈피하자 그녀는 순식간에 ‘빛상아’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진짜 대단하다니까······.’
물론 속사정을 아는 이들은 신상아를 ‘빛상아’가 아닌 ‘강상아’라 불렀다.
그녀의 출연료가 2억인 건 맞았다. 그러나 그녀의 러닝 개런티는 사정이 달랐다.
러닝 개런티란 손익분기점을 넘긴 이후 들어오는 추가 분배금으로 태화가 ‘캐트시’를 찍으며 맺은 퍼센트 계약과 비슷한 개념이었다.
‘손익분기를 넘긴 후 관객 1인당 얼마’로 맺었는데, 영화에서 가장 큰 수익을 올리는 부분이 극장 상영이기도 하거니와 ‘순이익 전체의 몇 퍼센트’로 계약할 경우 그 금액이 너무 커지기 때문에 상영으로 고정되는 게 일반적이었다.
물론 신상아는 그런 관행을 무시하고 순이익의 13퍼센트란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다.
영화 순이익에서 배우 전체의 러닝 개런티가 평균 13~15퍼센트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혼자서 다 먹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투자나 배우들 섭외도 태화를 이용해 낚았다는 건 대중들에게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알만한 관계자들은 다 알았다.
그야말로 강상아(姜尙兒 태공망의 아이).
얻기 어려운 미끼, 태화를 이용해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얻어냈으니 참 잘 어울리는 별명이었다.
“어서 와요.”
그가 방에 도착하자 의자에 앉아있던 신상아가 일어나 그를 맞이했다.
그 사이 인기가 껑충 뛰어올랐다고 시사회 때보다 콧대를 세우는 모습이 참 그녀다웠다.
“고맙다고 한턱 쏠 겸, 할 말이 있어서 불렀어요.”
“굳이 그럴 필요 없는데.”
다른 사람이 보면 신상아가 얻은 것과 태화가 받은 것은 상당히 불공평해 보이겠으나 태화의 생각은 달랐다.
누군가에겐 고작 한 장의 티켓일지라도 태화에겐 반드시 필요한 티켓이었다.
그 티켓이 있었기에 록셀이 내년에도 공연할 수 있게 되었으며, 국내만 생각하던 태화가 할리우드 오디션을 고려할 수 있었으니까.
게다가 그는 상아의 성공이 단지 자신이 카메오로 합류했기 때문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태화라는 조커가 있었더라도 그녀가 움직이지 않았다면 투자자들은 제대로 결집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초기 망했다는 소문이 돌았던 만큼, 이상한 배우들로 채워졌을 가능성도 컸다.
‘다 제 공로로 둘릴 줄 알았는데 의외로 겸손······.’
태화가 그런 생각을 하며 칼질을 하고 있던 그 순간, 갑자기 상아가 들고 있던 포크와 나이프를 멈췄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요.”
고상한 척 약지를 살짝 들어가며 와인잔을 잡은 상아는 입가를 축인 뒤 다시 입술을 열었다.
“집까지는 힘들고 차 정돈 콜 할게요. 필요한 거 말해 봐요.”
태화는 작게 헛웃음을 흘렸다.
대충 이런 내용일 건 알았어도 너무 노골적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차라리 대놓고 말하니 거절하는 것도 어렵지 않아서 나은가?’
보통 이런 상황의 답례품은 명품 시계나 지갑, 장신구가 보편적이었는데, 태화에겐 필요 없는 물건들이었다.
진짜 친한 사이라 카메오로 출연했다면 모를까, 신상아와는 그런 걸 주고받을 정도로 친하지 않았다.
“필요 없······.”
“솔직히 이태화씨가 나 보고 운 좋다고 생각하는 것도 알고, 계산 끝났다 생각해서 내가 돈이나 물건으로 갚는 걸 바라지 않는 것도 알아요.”
그가 거절을 뱉으려던 찰나 상아가 태화의 말을 끊고 짜증 난다는 듯 빈정거리는 투로 말했다.
선물 주려는 자세 한번 특이하다 생각하며 태화는 팔짱을 꼈다.
그녀가 어디까지 하나 궁금했다.
“아마 내가 태화씨 차기작에 카메오로 나와준다 말해도 눈 높은 태화씨는 됐다고 거절하겠죠.”
“눈 높은······.”
“태화씨가 친하지 않은 사람한테 뭐 받는 거 싫어하고 나도 내가 태화씨랑 그리 친하지 않은 거 알지만! ······그래도 아무거나 말 해봐요. 나 신상아에요. 고작 티켓 한 장으로 입 싹 닦을 만큼 염치 없지 않다고요.”
상아는 손가락으로 가슴을 두드리며 태화를 비장하게 응시했다.
기브 앤 테이크로 깔끔하게 끝난 거래였으니 영화가 적당히 성공했다면 그녀도 이런 자리를 마련하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법의 경계’는 그녀가 예상한 것 이상의 성공을 거두었고, 상아는 내적, 외적인 이유로 태화가 원치 않더라도 빚을 갚아야 했다.
이제 막 톱급의 길에 발을 올린만큼 그녀는 말 나올 상황을 사전에 차단하고 싶었다.
그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태화는 숨을 내쉬었다.
그녀와 달리 깃털처럼 가벼운 태도였다.
“진짜 필요 없다니까요. 근데 날이 갈수록 히스테리가 늘어가는 거 같은데, 철분 부족이에요?”
잡상인에게 ‘안 사요’라 말하는 이의 말투가 그러할까, 약간 귀찮음이 담긴 대답을 듣자, 자존심 상하는 사실까지 제 입에 담았던 상아가 부들부들 팔을 떨었다.
마음 같아선 한 대 때리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상황이 화가 났기 때문이다.
‘요새 정말 피곤한가 보네.’
태화는 씩씩거리는 상아를 보며 오늘 가는 길에 그녀의 소속사로 철분 한 통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끝
ⓒ 마늘소금
분하다는 얼굴로 태화를 노려보던 신상아는 등을 의자에 기댄 후 거칠게 식사를 진행했다.
태화도 딱히 할 말이 없었기에 다시 식기를 들었다.
‘그렇게 타인의 시선이 중요한가?’
조금 눈치 없게 말하긴 했지만 태화는 상아가 자신을 불러 대접하고 무언가를 주려 하는 이유를 알았다.
전말을 아는 이들이 왈가왈부하는 게 싫어서다.
우정 출연이라 알려진 것과 달리 태화와 그녀의 사이는 친하다 말하기 애매했다.
만나면 대화를 하고 농담 같은 말을 주고받아도 태화는 신상아에게 인간적인 관심이 없었다.
배려심이 부족한 말투에서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신상아도 태화의 연기력을 인정하기 때문에 그런 대접을 말로만 화내고 넘기는 것이지, 그가 자신보다 아래라 생각했다면 성격상 뺨부터 쳐올렸을지 몰랐다.
아예 모르는 사이보단 나으나 술이라도 같이 마시자 연락하면 ‘내가 왜?’라는 말이 나올 관계.
그렇기에 둘의 성격을 아는 이들은 모종의 거래로 인해 태화가 카메오로 출연했음을 눈치챘다.
실제로 효신의 그룹에 속해 태화와 자주 술자리를 가졌던 이들과 상아의 지인 중엔, 상아에게 ‘어떻게 이태화를 꼬신 거냐? 대가를 줄 테니 자신에게만 그 방법을 알려 달라’라는 제안을 은밀히 건네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 뒷이야기까진 몰라도 태화는 갑자기 많은 관심을 받게 되고 대중과 업계 관계자들의 시선 속에 갇힌 신상아가 자신을 억누르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신경 쓰지 않아도 크게 문제없어요. 상아 선배님이라면 그거 참다가 폭발할 테니 차라리 원래대로 하는 게 나을 거예요.”
“미안한데, 난 태화씨랑 다르거든요?”
그가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한 상아가 부루퉁하게 답했다.
태화의 실력은 ‘진짜’다.
그의 스타성은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그는 반사된 빛으로 빛나는 달이 아닌, 홀로 온전한 태양이었다.
태양은 어디에 있어도 빛나는 별이다.
작품이 망해도 혼자만 연기력이 좋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구설수가 조금 생겨도 실력으로 입 다물게 할 수 있었다.
흠집이 나도 실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존재들.
그에 비해 대부분의 연예인은 스스로 빛나지 못하는 달에 가까웠다.
그들은 이미지가 비슷한 대체품으로 교체되기 쉬우며 어느 순간 사라져도 티가 나지 않았다.
일정 나이가 지나거나 트렌드가 바뀌어 효용성을 잃으면 유행 지난 물건들처럼 진열대에서 빠졌다.
‘지금까지야 한 가지 줄만 확실히 잡으면 됐는데 이젠 줄타기를 해야 하니까.’
그런 경향은 의외로 톱급 연예인들에게서 자주 나타났다.
매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상품들이니 구석에 처박아둔 상품보다 더 기민하게 확인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한 가지 연기만 잘하는 것으로도 어찌어찌 위치를 유지했으나 등급이 올라간 지금은 그렇게 했다간 과거보다 더 아래로 떨어진다.
톱 반열에 오른다는 건 그런 의미였다.
“다른 건 몰라도 그 사람들이 저랑 상아 선배님 둘 사이에 거래에 대해 떠들어봤자 아무런 영향도 못 준다는 건 알죠. 제가 불만을 이야기할 것도 아니고요. 아래 있는 배우들이 시기한다고 무너지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 사람들이 영향을 줬다기보다 본인이 자멸한 거죠.”
태화라고 시기 어린 시선을 안 받아봤을까?
데뷔한 지 5년도 안 돼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그를 시기하고 질투하며 적대하는 배우는 많았다.
그러나 그들의 평가는 감독과 제작사 캐스팅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연기력과 인지도가 태화를 증명하기 때문이다.
“법의 경계에서 보였던 연기력은 나쁘지 않았어요. ······엄청 좋다고 말하기도 힘들지만.”
“그게 무슨 황희 정승 같은 소리에요?”
덧붙여지는 말을 듣고 신상아는 삐딱하게 말을 받았다.
그러나 그가 무슨 의도로 한 말인지는 이해해서, 그녀는 날 서 있던 분위기를 약간이나마 누그러트렸다.
“그 정도 성질이면 개성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말이죠. 걸 크러시라잖아요.”
“뭐, 내가 한 걸크하기는 하죠.”
그새 기분이 풀어진 신상아가 경쾌하게 고기를 자르자 태화도 자신 앞에 있는 고기를 잘랐다.
‘항상 무심히 넘기다 이런 식으로 챙기려니 힘드네.’
언제나 신상아가 하는 말은 반쯤 무시하거나 삐딱하게 듣다 보니 그녀에게 ‘좋은 말’을 건네는 게 의외로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