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238
막둥이로 태어나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답게 준은 어떻게 해야 호감을 사고, 어떻게 해야 타인의 마음에 들어가는 지, 또 어디까지가 상대의 미움을 사지 않는 아슬아슬한 선인지를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리고 상대방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도 쉽게 알아차렸다.
“형. 저 내일 연습하려 하는데 저랑 같이 호흡 맞춰 봐요.”
“그래요.”
“에이, ‘그래요’가 아니라 ‘그래’잖아요.”
“그······.”
“처음엔 입에 잘 안 붙어도 계속하면 익숙해지는 거예요. 형도 이제 5년 차니 후배도 많잖아요. 형님 누님뿐 아니라 동생들도 늘려야죠.”
태화는 깊은 관계에 큰 관심이 없다.
그러나 배우 일을 하는 이상 인간관계를 안 맺을 수는 없으며, 동료들과 적당한 친분을 유지하면서 마음 맞는 이들과 호형호제하기도 했다.
최준도 태화와 친해지고 싶었다.
누구는 ‘겨우 1년 차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준에게 태화는 동경하고 인정받고 싶은 대선배이자 롤모델이었으니까.
“글쎄요······.”
태화는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준이 부담스러워 맥주를 마시는 척 시선을 돌렸다.
준은 정석적인 길을 통해 차근차근 인지도를 올려가는 배우였다.
데뷔 1, 2년 때는 연기가 어색하다는 말도 들었으나 3년째 되었을 때 무섭게 성장하더니, 4년 차에 들어선 지금은 괜찮은 작품의 주연을 맡아 유의미한 성적을 거두었고 예능감도 좋았다.
방송에서 자신의 장점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종종 이야기했는데, 꼬아보는 이들조차 인정할 정도로 준은 작품에서나 예능에서나 자신이 맡은 역할에 열심이었다.
‘좋은 배우라곤 생각했지만······.’
첫 만남에서, 태화는 준이 꽤 괜찮은 후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준은 태화에게 그 이상을 요구했다.
‘······예능에선 이게 일반적인 건가?’
테이블에 있는 이들 모두 서로를 형이니 동생이니 부르고 있다.
아무리 눈치가 부족한 태화라도 저게 정말 친해서 저러는 것이 아님은 알았고, 프로그램의 원활한 진행을 위한 밑작업인 것도 모르지 않았다.
‘프로답게라······.’
준이 요구하는 것도 분명 그것이리라.
연기와 예능은 다른 자세가 요구되니 예능에 참여할 것이라면 태도부터 고치라는 의미.
······물론 준은 단순히 태화와 친해지고 싶어서 저러는 것이었으나 태화는 그렇게 이해했다.
“······그래, 천천히 해 볼게.”
“네, 천천히 해요. 형. 일단은 자작부터 멈추시고요.”
아까 전만 해도 하대하라며 종알종알 거리던 준은 태화가 말을 놓자마자 천천히 가란 역설적인 대답을 내뱉곤 술잔을 채워줬다.
무엇이 그리 기쁜지. 환하게 웃고 있는 그는 낮에 봤던 청년과는 다르게 앳된 모습이 드러났다.
받기만 할 순 없으니 역으로 채워주자 준은 두 손으로 잔을 들고 공손히 술을 받았다.
그 모습이 묘하게 ‘먹어’를 기다리는 두부와 겹쳤지만 태화는 쓸데없는 생각이라 치부하곤 준과 건배했다.
“오, 친해졌네! 태화씨, 나한테도 그냥 형이라 불러요.”
호덕은 한결 누그러진 둘의 사이를 재빨리 잡아내고 틈새를 공략했다.
이미 잘 적응해보기로 결심한 태화는 그의 말에 ‘형님’이란 말을 붙였고, 반쯤 졸던 아콰시도 다시 팔팔해져 친구 하자는 말을 꺼냈다.
그렇게 술자리가 무르익고 파할 시기가 되었을 때, 각자의 매니저가 취한 이들을 데리고 하나둘 사라졌다.
술을 마신 건 태화도 예외가 아니라서, 그는 현규가 올 때까지 준과 함께 서늘한 바람을 맞고 있었다.
“혀엉.”
“응?”
“형. 저 사인 한 장만 해주시면 안 돼요?”
“······응?”
태화는 취하면서 점점 애로 변한 준을 미묘한 표정으로 살폈다.
‘브레멘’의 멤버들과 어찌어찌 말은 놨지만, 심적으로 친해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준은 마치 밀물 썰물처럼 태화가 정해둔 선 근처를 오가더니 태화가 정신을 차렸을 땐 좋아하는 작품, 선호하는 연기, 롤모델, 심지어 키우고 있는 강아지 이름까지 이야기한 뒤였다.
‘아니, 그런 눈으로 바라보니까······.’
준은 태화가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태화를 응시했다.
나이 차가 조금 난다고 해도 고작 데뷔 1년 차인 만큼 시기나 질투가 있을 법도 한데, 너무 단순하게 바라보는 모습이 마치 간식을 기다리는 두부를 닮아있었다.
게다가 한 가지 역할에 몰두해 하루를 보내는 것이 힘들 때도 있지만 보람차고 즐겁다고 하는 것이 상당히 공감돼, 저도 모르게 긴장을 풀게 하였다.
‘······같은 배우에게 사인을 요구받는 건 오랜만인데.’
이제 막 데뷔했다면 모를까, 최준은 나름 이름을 알리고 있는 배우였다.
까마득한 대선배라면 모를까, 데뷔 년 차이가 얼마 안 나는 태화에게 사인을 부탁할 급은 아니라는 소리다.
태화가 뭐라 답하지 못하고 굳어있는 사이, 준은 이미지와 맞지 않게 눈썹을 늘어트리곤 미간을 좁혔다.
“형, 진짜 사인 한 장 해주면 안 돼요? 안 되면 집에 있는 형 블루레······ 억!”
“하하하. 준아 너 많이 취했다. 이렇게 휘청거리고. 이태화씨 죄송합니다. 우리 준이가 참 많이 취했네요. 얘가 안 그러다가도 취하면 주사가 조금 있어서.”
준이 무슨 말을 하려던 순간, 어느새 나타난 준의 매니저 박평호가 준의 무릎 뒤쪽을 재빨리 찬 뒤, 재빨리 부축하며 웃었다.
준은 마음에 드는 영화나 드라마를 시디로 구매해 소장했는데, 그중 태화의 작품만큼은 언제나 소장용, 감상용, 예비용 등으로 서너 개씩 모았다.
팬심으로 따지면 꽤 무거운 편.
그리고 그런 무거운 팬심을 가진 이가 가까이에서 친밀하게 구는 걸, 연예인들은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얜 긴장해도 모자랄 판에 무슨······.’
간신히 사고를 막았다 생각한 평호는 작위적인 웃음을 멈추지 않으며 빠르게 제 할 말을 했다.
“아, 네······. 근데······.”
태화는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둘을 바라봤다.
고작 사인을 요청에 저런 식으로 반응하는 매니저가 이상했고, 말려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됐다.
그러나 너무 빠르게 인사를 마치고 사라져버린 탓에, 태화는 붙잡을 타이밍을 놓쳤다.
“······음. 괜찮겠지.”
사이가 좋아 저런 것이라 애써 생각한 태화는 곧이어 도착한 현규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
관찰 예능, 특히 이런 노력형 프로젝트의 경우 촬영 시간에만 촬영이 이뤄지지 않는다.
VJ들은 멤버들이 다른 현장에 갔을 때도 따라붙어 그들이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는지 카메라에 담았고, 심지어 집으로 찾아가는 일도 잦았다.
“잘 나오네.”
피아노를 향해 카메라를 맞춘 태화는 화면을 한번 확인하고 피아노 앞에 앉았다.
예능이 시작 된 지 사흘이 지났을 때.
슬슬 현장 밖에서 출연자들이 어떻게 노력하는지 담기 위해 제작진은 각각의 멤버에게 VJ를 붙이려 했다.
부족한 시간을 쪼개서 연습하고, 공부하는 모습을 원한 것이리라.
그러나 태화는 그런 요청을 거부했다.
작품 활동이나 기타 광고 활동이 없는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마찬가지로 스케줄이 적은 준과 함께 연습실에서 보냈다.
연습실에 설치해둔 카메라로 충분히 모습을 담을 수 있는데, 굳이 따라다니는 것은 사생활 침해라고 일갈했다.
계약서에도 나와 있는 조항인지라 PD는 거기에 무어라 떠들지 못했다.
-하지만 분량 차이가 너무 나서······. 정말 일부라도 좋으니 다른 곳에서 따로 연습하는 장면을 촬영하면 안 될까요?
태화와 준의 동선은 단조로웠다.
그나마 준은 광고라도 찍으면서 중간중간 다른 곳에라도 가지, 예능 하나밖에 스케줄이 없는 태화는 아침 운동, 연기 연습, 악기 연습 등, 타인이 보기에 질리기 딱 좋은 스케줄로 움직였다.
당연히 장면은 지루할 수밖에 없었고, 태화가 집에서 피아노로 연습한다는 걸 들은 제작진은 셀프 카메라라도 좋으니 연주하는 모습을 담아달라고 부탁했다.
카메라뿐이라면, 이란 생각으로 태화는 부탁을 수락했다.
집에 잠시 들른 현규가 카메라 설치를 도와줬기에 문제는 없었다.
‘연습부터 하면 되겠지.’
키보드를 다룰 때와 달리, 태화는 피아노로 연습할 땐 기본적인 손가락 풀기부터 진행했다.
하농을 연주했단 의미다.
간단한 음계를 반복적으로 오가며 손가락을 풀고, 그다음엔 연주하기 쉽게 번안된 OST 곡들을 연주하고 준성이 준 샘플곡을 연주한다.
태화는 언제나 그 순서를 지켰다.
“두부야.”
연습을 진행하던 태화는 페달 밑에 기어들어가려는 두부를 불렀다.
두부는 그가 하농을 치고 있을 때면 어김없이 거실에 나타나 페달 아래로 들어갔다.
그렇게 하면 태화가 의자 옆에 앉혀주기 때문이다.
오늘도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두부를 옆에 앉혀두자 두부는 곧 태화의 무릎 위에 안착했다.
그 모습은 카메라에 고스란히 찍혔고, 태화가 그것을 깨달은 건 녹화가 전부 끝난 뒤였다.
끝
ⓒ 마늘소금
태화는 기계치는 아니었으나 처음 보는 기계를 설명서 없이 손쉽게 다룰 정도로 요령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특히 그 기계가 전문가용에, 타인의 기계라면 함부로 누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형, 어떻게 할까요?”
따라서 영상을 제작진에게 건네기 전, 태화는 현규에게 상의했다.
두부를 찍어 SNS 개인 계정에 여러 차례 올린 후이기에 이 영상이 나가면 개인 계정이 들킬 위험이 크다.
아직 뽀송한 털을 털어버리지 못한 하얀 포메라니안이, 두부라는 이름을 가지고, 나무 장판이 깔린 집에서 살 확률은 정말 적으니 말이다.
이미 팬들에게 개인 계정임을 들킨 걸 모르는 터라 태화는 이 영상이 나가면 자신의 계정이 소란스러워질 것을 걱정했다.
그는 정말 SNS와 친하지 않았고, 새로 계정을 만들어 다시 친구 관계를 이을 것을 생각하면 골치 아팠다.
“괜찮지 않아? 어차피 문제 될 내용을 적었던 것도 아니잖아?”
사정을 다 아는 현규가 미묘한 표정으로 태화에게 물었다.
혹시나 하는 상황을 위해 태화는 알려지지 않은 계정일지라도 민감하거나 문제가 될 만한 발언을 삼갔다.
당연히 계정이 수면 위로 드러난다 해도,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은 없었다.
“그래도 제 파랑새 친구들은 아직 어리니까요.”
태화는 ‘리체의 손자들(Grandbabies)이 태어났어!’라는 글에 하트를 누르며 답했다.
영화 관련 이야기는 현태를 비롯한 동료 배우들과 충분히 할 수 있기에 태화가 개인 계정으로 떠드는 내용은 일상에서 일어나는 가벼운 사건들과 두부에 대한 게 전부.
그렇다 보니 태화가 SNS를 통해 대화하는 이들도 동물에 열성적인 이들이었다.
브라이언의 딸 에슐리와 록셀의 손녀 킴벌리가 바로 그들이었는데, 아직 유치원도 안 간 에슐리의 SNS를 보고 있노라면 태화는 브라이언의 집안 교육이 종종 궁금해지곤 했다.
킴벌리와는 태화가 두부의 사진을 올리면서 친해졌다.
킴벌리에겐 우유(Leche)라는 이름을 가진 하얀 고양이가 있었다. 나이가 많아 움직이는 걸 귀찮아하는 고양이었다.
킴벌리는 리체와 똑같은 색을 지닌 두부를 참 좋아했다.
그렇게 나이와 지역을 넘어 친해진 이들은 항상 두부와 리체에 대한 이야기를 꽃피웠다.
“계정이 유명해지면 팬분들뿐 아니라 온갖 사람들이 붙을 텐데 그 사람들이 에시나 킴에게 뭐라 할지 모르니까요.”
파랑새에선 친구 관계가 아니더라도 서로 댓글을 달고 대화할 수 있었다.
태화는 익명의 탈을 쓴 이들이 단순히 태화와 친하게 대화한다는 이유만으로 둘에게 무어라 떠들 것을 우려했다.
“어? 그 둘은 계정이 보호되어 있어서 글이 타인에게 안 보일걸?”
“······보호요?”
“응. 옆에 자물쇠 모양이 있잖아. 그건 친구 관계 맺지 않으면 안 보인다는 뜻······ 인데.”
“······.”
기본적인 기능만 간신히 사용했던 태화는 상대의 파랑새에 가서 댓글을 달고 하트를 클릭하는 것밖에 몰랐다.
그 기능만으로 충분하다 여겨 이것저것 눌러 보거나 바꾸지를 않았던 것이다.
덕분에 태화의 고민은 그의 계정을 잠그는 것으로 간단히 해결됐다.
몰래몰래 지켜보고 있던 마레드로선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였으나 태화는 개인의 즐거움을 지킬 수 있단 사실에 기뻐했다.
***
셀프 영상 촬영으로 제작진을 흐뭇하게 한 뒤에도 태화의 일정은 단조로웠다.
연습과 연습과 연습의 연속.
관찰하는 사람들이 질릴 정도로 태화는 연습에 빠져들었다.
소문으로만 들어봤지 태화가 정말 미친 듯이 연습과 노력에 매진할 것이라 생각한 이는 없어서, 그 모습을 배속으로라도 담아보는 게 어떠냐는 의견이 제작진들 사이를 오갔다.
“이 부분에서는 짧게 끊어서 기타 솔로를 돋보이게. 그래, 가볍게 음을······.”
옆에 달라붙은 준성이 악보로 표현하기 힘든 미묘한 부분을 설명하며 건반을 두드리자 태화는 그것을 곧 눈과 손으로 익혔다.
태화는 PD와 스텝들 사이에서 ‘노력하는 천재’로 통했다.
한 번 들은 것을 쉽게 잊지 않고, 하나를 가르치면 그 하나를 완벽하게 해냈으니까.
누군가는 하나를 가르쳐 열을 아는 것도 아닌데 무슨 천재냐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하나를 잊지 않고 굳건히 쌓을 수 있다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이렇게 빠듯한 일정 속에서 무엇하나 놓치지 않고 달릴 수 있다는 점은, 그의 모습을 보고 있는 이들에게 ‘사실 이게 쉬운 미션이 아니었을까?’하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음을 좀 추가할까요? 건반이 살짝 가벼워서 손이 좀 도는 거 같은데.”
“솔로 부분도 그렇고 아직 노래도 미숙해서요. 좀 더 익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