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40
“우린 여기서 할 거예요. 오늘 기초 트레이닝 받을 거잖아요. 아니에요?”
“아, 네.”
“이제부턴 말도 편하게 할 건데 괜찮죠?”
“······그러세요.”
“응, 알았어.”
깔끔하게 말을 논 그녀는 가장 기초적인 부분부터 확인하겠다며 폐활이나 기본 음정을 확인했고, 구석에 있는 키보드를 두드리며 음역을 잡았다.
‘······괜찮네?’
그녀는 키보드의 건반을 한 칸 더 올리며 살짝 감탄했다. 호기심에 받아들였는데 태화란 남자는 의외로 재능 있었다.
넓은 음역대뿐 아니라 필요한 부분에 바이브를 넣는 것도 쉽게 따라한다.
악보 보는 게 서툴러 가이드를 제공해야했지만 곧잘 쫒아오며 약간이나마 감정도 담아낼 줄 알았다.
“잠깐 기다릴래? 준비해둔 악보 말고 다른 걸 좀 들고 오게.”
“네? 물론이죠.”
살짝 흥이 난 제이는 난이도를 올렸다.
확인해 보니 확실히 초짜인데, 그런 주제에 시키면 어찌저찌 따라온다.
기술면에서 부족하긴 했으나 재능은 충분했다.
결국 1시간 반이 지난 후 그녀는 아쉬운 눈으로 태화를 응시했다.
새턴의 레슨 대신이었기 때문에 그와의 만남은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잘 아는 선생을 소개시켜줬으나 마음 같아선 수제자로 키워보고 싶었다.
“정말 가수 할 생각 없어? 제대로 배운 것도 아닌데 이 정도면 갈고 닦으면 더 빛날 거야.”
“없습니다.”
태화는 단호하게 제이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는 이 재능이 가짜인 것을 잘 알았다.
축복을 통해 개화한 능력.
원래 없던 것을 강제로 박아 넣었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다음 단계로 올라갈 때 반드시 보상을 통해야 했다.
‘딕션이나 굳건한 정신처럼 다른 길도 존재하지 않지.’
언어Ⅰ을 습득하면서 길이 열린 딕션과 1년간의 면벽 수련을 한다면 상승이 가능했던 굳건한 정신.
그런 재능들과 길이 달랐다.
[위기 대응의 숙련도가 99에 다다랐습니다] [위기 대응이 사용자의 기본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보상을 통해서만 다음 단계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그야말로 거짓으로 쌓는 금자탑.
처음 그것을 알고 태화는 자신의 재능과 꿈이 같은 것에 안도했다.
만약 배우로서의 재능이 부족했다면 단계를 올리기 위해 호불호와 상관없이 다작을 하거나 혹시나 따라 붙을 조건에 걱정하면서도 모든 신들의 후원을 받아들였으리라.
그가 여유로울 수 있는 것은 재능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쉬워하는 제이를 떨쳐내고 태화는 나머지 일정을 소화했다.
촬영과 직접적으로 관련 없는 PT나 바뀔 가능성이 농후한 대본들까지 전부 외워가며 자신을 발전시키는데 힘을 쏟았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드디어 첫 방영일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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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쟁이 열여섯 살
6월 3일 월요일.
마침내 의 첫 방영일이 찾아왔다.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때문인지 촬영장의 분위기도 한결 들떴다.
시청률이 몇 %나 나올지 내기하는 장부도 등장했으며 가끔 벌어지는 NG에도 다들 너그러웠다.
태화도 들뜨기는 마찬가지였다.
방송 후 반응이 나오면 드디어 차기작 대본들이 도착할 테니까.
[안녕하세요? BGA의 임서연입니다. 현장에 파견된 저희 쪽 직원과 김현규 매니저가 보내온 영상을 전부 확인했습니다]BGA와 계약하고 매니저를 고용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담당자 임서연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당연히 다음 작품에 대한 리스트라 여겼던 태화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코코아톡을 확인했다.
그리고 뜻밖의 말을 접했다.
[차기작에 관해서 한 동안 보류해두고 싶습니다]짧은 한 줄이었으나 태화의 머릿속엔 닿지 않았다.
인간이 가장 목말라하는 순간은 갈증을 참고 있을 때가 아니다.
갈증을 해소해 줄 것 같았던 물방울이 한두 방을 떨어지고 그대로 멈췄을 때, 사람은 더 심한 기갈을 느낀다.
소금 뿌려진 수박이 더 달게 느껴지는 것처럼 극렬한 대비가 허무를 증진시키는 것이다.
태화의 허기도 똑같았다.
이제 겨우 하나의 역을 맡았고 겨우 기획사를 구했으며 겨우 매니저까지 갖췄다.
고작 한 걸음 걸었는데 보류.
딱딱하고 예의바른 문자가 잔인하게 느껴졌다.
[배우님께서 불만스러워 하실 것을 압니다. 조급해하는 마음은 또한 충분히 이해합니다]태화가 항의를 하려던 찰나 또 다른 내용이 도착했다.
그리고 바로 뒤 장문의 글이 따라왔다.
[하지만 처음, 그리고 다음 작은 배우의 이미지를 굳히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냉정하게 말해 현재 배우님의 인지도는 0에 수렴하지요. 당연히 주연급의 경우 오디션조차 보지 못합니다. 이 상태로······(중략)······ 저희는 고객에게 최고의 환경을 제공합니다. 그 환경은 계약금, 작품 활동, 고객이 그리는 이미지 등 다양한 것이 포함되며 ‘열망’또한 고려 대상입니다. 직원과 매니저를 통해 전달된 영상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배우님께서는 현재 심한 갈증을 느끼고 있으며 조연으로는 만족하지 못 하신다는 걸요]BGA의 분석팀은 날뛰고 싶어 하는 그의 심리를 꿰뚫었다.
조연이기에 가해지는 제약들.
평범한 신인이라면 그런 제약을 무시한 채 자신의 재능을 뽐내겠지만 신인답지 않았던 태화는 ‘조연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까지만 다가섰다.
그것에 감탄하며 작품을 추리던 BGA는 승우를 도발하는 태화를 보고 급히 회의를 가졌다.
그리고 만장일치로 보류를 결정했다.
[저희는 대중들과 관계자들이 알아볼, 약간의 기다림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신인으로서 조급한 마음은 이해되오나 부디 저희의 조언을 살펴주셨으면 합니다]문자를 받은 그는 하루의 시간을 가지며 마음을 정리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볼 수 있는 오디션들을 받아 차기작에 들어가고 싶다.
신인답게 여러 작품을 거치며 시청자에게 매력을 보이고 싶다.
그러나 태화는 자신을 최고급 보석으로 취급하며 조심스레 세공하려는 이들의 심정을 이해했다.
계단이 아닌 엘리베이터를 준비하는 이들.
결국 그는 다시 한번 목마름을 참으며 축복을 사용할 수 있는 대본 속에 빠졌다.
가끔 허기가 질 때면 참여할 리 없는 4개의 대본들을 이용했고 9화까지 나온 를 탐닉했다.
게임의 전 맵을 돌아다니며 깃털과 악보 조각을 수집하는 사람처럼 그는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 완성도를 높여가며 때를 기다렸다.
‘그 짓도 조금 있음 끝이야.’
조연으로 등장하는 만큼 바로 반응이 오진 않을 것이다.
그래도 눈앞까지 다가왔다며 태화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끌어올렸다.
“오! 태화 오빠 오늘 기분 좋으시네요?”
“······에스터?”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에 그는 당황한 눈으로 활발한 소녀를 응시했다.
촬영이 거의 끝나 해산할 무렵이긴 해도 외부인이 들어올 수는 없을 텐데, 그녀는 당당하게 웃고 있었다.
“화장지우고 후드티입고 모자 쓰니까 다들 스텝으로 알더라고요.”
“아.”
“······아무리 그래도 태화 오빠 화장빨 만은 못하거든요? 뭐예요, 이 얼굴. 다른 사람인 줄 알았네.”
에스터는 딴 사람이 된 태화를 흘겼다.
열여섯이란 어린 나이를 티내지 않기 위해, 그리고 레퍼라는 포지션을 위해 그녀는 항상 강렬하고 진한 스모키 화장으로 얼굴을 꾸몄다.
그렇다보니 화장 전후로 인상이 상당히 다르다는 평을 받았는데, 그런 자신도 태화에 비할 바는 못 됐다.
‘화장한 티도 별로 안 나는데 뭔가 껄렁하게 잘생겨졌어.’
도대체 어떤 화장을 받으면 티도 안 나면서 외모는 올라가고 인상도 변하는 것일까.
어느 아티스트의 솜씨인지 궁금해 하며 에스터는 모자를 눌러썼다.
“사실 다른 언니들은 차에서 기다리는데 전 기다리기 귀찮아서 작은 언니 데리러 왔어요.”
“······예전부터 궁금했는데 왜 유라씨를 작은 언니라 부르는 거야?”
“공식 설정은 소연 언니가 있으니까 작은 언니······. 라는 거지만 사실 키가 젤 작아서예요.”
“······.”
에스터의 키는 대략 170. 다른 멤버들도 165이 넘는, 여성으로 치면 큰 편에 속하는 신장을 가지고 있었다.
유라를 제외하면 말이다.
‘가슴께에 간신히 올까말까 한 정도니까 대략 160이려나?’
“작은 언니한텐 비밀이에요? 이거 퍼트렸다고 하면 혼나요.”
“그래······.”
조잘 거리던 소녀는 다른 스텝이 지나가자 요상한 말을 뱉으며 스텝을 흉내 냈다.
7살짜리 아이가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 더 서툰 모습이었다.
“······넌 연기 안하는 게 낫겠다.”
“안할 거거든요! 참, 태화 오빠 오늘 시간돼요? 저희 이제부터 작은 언니 드라마 감상회를 가질 건데.”
첫 방영이니만큼 멤버들이 옹기종기 앉아 구경하려는 것을 에스터는 감상회로 둔갑시켰다.
사실 비슷하긴 했다. 사장이 꽉꽉 채우려던 일정을 파업하겠다고 협박하며 비워낸 시간이니까.
정산은 제대로 해주는 편이나 새턴의 소속사는 너무나 빡빡하게 그녀들을 굴렸다.
“첫날이니까 오늘은 가족들하고 볼 생각이야.”
“아, 그렇겠네요.”
그녀는 이해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장난 반 진심 반으로 유라를 돕고 있어도 치고 빠지는 타이밍 정도는 잘 맞췄다.
가족과 기념할 날에 낄 정도로 개념 없지 않았다.
현규를 기다리며 대화를 나누는 사이 태화의 주머니에서 작은 진동이 울렸다.
그의 어머니 선미였다.
“네, 어머니.”
-태화야 아버지가 갑자기 간부 회의가 잡히셨대.
“바쁘시네요.”
우석은 연습을 마치고 늦게 들어오는 태화보다 더 늦은 시간에 돌아오는 일이 종종 있었다.
기밀인 만큼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했으나 기사 등으로 봤을 때 하반기에 발표할 무언가가 원인인 듯 보였다.
-오늘은 다 같이 모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쩔 수 없죠. 어머니와 단 둘이 오붓하게 봐야지.”
-······그것 때문에 말인데, 사실 선애가 지금 집에 와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