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ing Genius Myung Do Hyuk RAW novel - Chapter 126
광고 천재 명도혁 126화
“온라인 사업부라면 저희도 계획 중이었습니다.”
도혁의 말에 이우영이 만면에 미소를 띠었다.
“역시, 명 대표님. 계획이 있으셨군요.”
“사실 이번 공채로 프로그래머를 뽑으려고 했는데 뜻대로 안 됐어요. 적당한 사람을 물색 중입니다.”
“오호, 이거 정말 저와 통했나 봅니다. 사람부터 챙겨야 한다고 말씀드리려던 참인데. 유능한 프로그래머나 웹디자이너를 구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온라인 사업을 제법 해온 이우영이 고충을 토로했다.
“저희는 게임 개발 쪽으로 집중하다 보니 마케팅을 강화하려던 참인데 DW애드 생각이 나더라구요. 이번 기회에 온라인 마케팅 사업부를 아예 DW애드에 만들고 마케팅은 통째로 일임하면 어떨까 해서요.”
“그렇게 믿어주시니 감사합니다.”
“당연하지요. 우리는 한배를 탄 거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저는 우리 엑슨의 계열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투자도 아끼지 않을 테니 이참에 온라인 사업 쪽 확장을 고려해 주십사 하고 겸사겸사 온 겁니다.”
투자를 또 하겠다는 이우영이 가고 도혁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툭툭 치며 생각에 잠겼다.
‘결국 그 자식, 영입해야 하는 건가?’
전생에서 만났던 전설의 프로그래머. 섭외가 쉽지 않을 텐데.
도혁의 고민이 깊어졌다.
* * *
그곳은 어둑하고 컴컴한 골목이었다.
그리고 서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동네였다.
도혁은 이진우와 달동네의 계단을 오르며 벅찬 숨을 가누었다.
“미안하다, 진우야. 야밤에 이런 곳에 오게 해서.”
“아, 아닙니다. 헉헉, 병장님, 아니, 대표님.”
끝없이 이어진 계단에 행군 때가 생각났는지 도혁을 병장이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이진우가 물을 꺼내 마시며 물었다.
“그런데 우리 어디 가는 겁니까?”
“사람 하나 스카웃하러.”
“네? 직원은 공채로 다 뽑았지 않습니까? 아! 헉헉.”
숨을 헐떡이며 말을 채 잇지 못하는 이진우 대신 도혁이 대답해 주었다.
“하나 남았잖아. 웹디자이너와 같은 감각을 가진 프로그래머. 그 뜨거운 아이스아메리카노 같은 놈은 내가 하나 알거든.”
“대표님이 직접 찾아올 정도면 실력은 좋을 것 같습니다만, 뭔가 동네가 심상치 않네요.”
이진우의 말처럼 달동네인 것이 문제가 아니라 골목이 이상했다.
외등조차 어둑한 거리, 연탄재가 나뒹굴고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비주얼의 주택들이 이어졌다.
도혁이 그중 다 찌그러져 가는 집 앞에 섰다.
녹이 잔뜩 슨 녹색의 철문을 밀자 끼이익, 괴기스러운 소리가 사위를 울렸다.
“으. 당장 몬스터라도 나올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몬스터라. 뭐 비슷한 놈이야.”
도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데려오려는 프로그래머는 태강에서 같이 근무했던 놈이다.
실력 하나는 끝내주는 인간이지만 조직 생활과 썩 맞지 않아 스카웃을 망설였었다.
대기업 여기저기 전전하다가 결국 해커가 되고 장렬하게 시장에서 사라진 인물이다.
‘야수 같은 놈이니 잘 길을 들여야 할 텐데, 길이 들어야 말이지.’
딱히 대안도 없는 터라 일단 스카웃하기로 결심했다.
아래 직원 하나 더 뽑아서 멘토라도 시키려고. 실력 하나는 끝내줬거든.
복잡한 심경으로 대문을 열었다.
이진우가 도혁에게 바짝 붙어섰다.
“제가 쫄보인 거 알면서 왜 저를 데려오신 겁니까? 대담한 직원도 많은데요.”
“뭔가 이 인간이랑 통하는 게 있을 것 같아서.”
큰 기대는 없었지만 아싸는 아싸끼리 통하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였다고나 할까.
“지, 지하로 가는 겁니까? 이런 폐가에서 또 굳이 지하로요?”
“아마 지하에 있을 거야. 예전에 이 인간 데리러 온 적이 있었는데 여기 지하에 살았었어.”
“악!!! 이런! 꺅!! 쥐, 쥐가!”
“조용히 해, 인마. 쥐가 너보고 더 놀랐겠다.”
소리를 지르는 통에 몬스터가 깨어났나 보다.
“누구야?”
날카로운 목소리가 사위를 갈랐다.
이진우가 힉 놀라며 도혁을 올려다보았다.
“사람이 있기는 있습니다!”
“도무진 씨 되시죠?”
“누군데 내가 여기 있는 거 아는 거야! 어? 당신들 어디서 온 거야? 누가 보낸 거야?”
어둠 속에서 도무진이 나타났다.
‘도무지 답이 없다’던 별명이 생각나 웃으면서도 깜짝 놀라고 말았다.
기억하던 외모와 너무 달리, 털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이 자식 진짜 몬스터였구만.
“히이익!”
“사람을 보고 놀랄 거면 왜 찾아온 거야. 진짜 당신들 누구야!”
“어! 어! 잠시만요. 혹시 저거! 건담입니까?”
“아, 건담 매니아 모임에서 오신 거구나. 이거 거래 올려뒀었는데 제가 못 알아봤네요. 이쪽으로 앉으세요.”
응? 몬스터라고 무서워하던 이진우의 눈길이 벽장 가득 들어찬 건담에 꽂혔다.
더불어 도무진이 일어서 그에게 웃으며 다가갔다.
“역시, 알아보시는군요.”
“설마, 설마 저거 저거 그러니까!”
이진우가 침을 꿀꺽 삼키며 도무진을 바라보았다.
“샤아 전용 자쿠2!”
“샤아 전용 자쿠2!”
두 남자가 동시에 소리쳤다.
“샤아 전용 자쿠2!!”
무언가에 홀린 듯 이진우가 진열장 앞으로 다가갔다.
쓰레기통이나 다를 바 없이 지저분하고 비루한 공간에 홀로 고고하게 조명까지 받고 있는 장식장이었다.
“이거 샤아 전용 자쿠2 아닙니까?”
“자쿠2를 한눈에 알아보시다니!”
도무진이 벌떡 일어나 이진우 옆에 섰다.
“아니, 풀 컬러 코팅 버전! 한정판인데 도대체 어디서 구하신 겁니까?”
“역시 알아보시는군요. 무려 엑스트라 피니시 코팅입니다. 아주 힘들게 구했어요. 알바도 많이 하구요.”
“일반 유광 코팅과는 비교 불가네요. 와!”
“레드메탈릭 코팅 버전보다 가격은 낮지만 더 실감이 나서 이쪽을 골랐습니다.”
“역시 붉은 해성 샤아 아즈나브르 전용기는 붉은색이죠. 무려 자크2 S형입니다.”
둘이 알 수 없는 외계어를 떠들어댔다.
무슨 말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무튼 도무진의 얼굴에서는 자부심이 묻어났다.
이것이 덕후의 세계인가. 도혁은 가슴이 웅장해졌다.
도혁이 웅장하거나 말거나 두 남자는 건담을 바라보며 서로에 대한 신뢰를 다지고 있었다.
‘도무진 섭외에는 진우가 어울릴 것 같더라니. 역시 알아봤군요. 명도혁 대표님!’
건담 덕후들을 마음속으로 흉내 내며 스스로를 칭찬했다.
그 뒤로도 한참, 둘은 건담 품평회를 이어갔다.
세월이 흐르면 이들은 중년의 건담 덕후가 되어 엄청난 구매력을 뽐내게 되겠지.
덕후가 세계를 바꾸진 못하지만 세상을 풍요롭게 한다고 했던가.
아무튼 정신없이 건담 얘기만 하던 도무진이 드디어 도혁을 발견했다.
“이분은 따라오신 거예요? 설마 이 샤아 아즈나블 전용 무사이 파멜을 못 알아보시는 건 아니죠?”
“아, 그게…….”
뭔들 알아보겠냐?
도혁은 헛웃음을 겨우 삼키고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도무진 씨. 광고대행사 DW애드 코리아의 대표 명도혁이라고 합니다.”
“네? 갑자기 광고대행사요?”
도무진의 눈에 경계가 서렸다. 이진우가 다가와 부연했다.
“샤아의 헬멧 모양인 함교를 가지고 있는데 파멜을 못 알아볼 수 없지요. 그런 분 아닙니다.”
“역시. 역시 믿을 만한 사람이군요. 그런데 웬 광고 회사입니까?”
건담에서 막힌 도혁을 대신해 이진우가 청산유수로 섭외를 이어갔다.
“이번에 저희가 프로그래머를 뽑고 있는데 우리 대표님께서 백방으로 알아보시던 중 도무진 선생님을 찾은 모양입니다.”
“아, 잡 사이트에 올려놓은 거 보셨구나. 한정판 더 사 모으려고 일을 구하던 참이기는 했는데 이렇게 집까지 찾아오실 줄은 몰랐네요.”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하, 이 녀석들을 만날 인연이었나 봐요.”
이진우가 이렇게 청산유수였나.
구인 사이트에서 보고 전화도 해봤지만 받지 않아서 직접 와봤다, 포트폴리오가 상당히 마음에 든다, 등등.
도무진이 이상하게 여길 것을 대비해 이런저런 답변들을 생각하고 왔는데.
도혁은 말할 필요도 없이 이진우가 회사 설명까지 보탰다.
“인터넷이 있으시면 저희 DW코리아에서 진행한 캠페인을 선보이고 싶습니다. 직접 보시면 아마 솔깃하실 겁니다.”
“그러시죠. 어! 이거 주식회사 엑슨 병맛 광고 맞죠. 와! 이거 만든 회사예요?”
“그렇습니다. 역시 알아보실 줄 알았습니다.”
“언제 출근하면 됩니까?”
이게 이렇게 간단할 일인가.
갑자기 찾아와서 단번에 계약하게 될 줄은 몰랐다.
어지간히 괴짜인 데다 폐쇄적인 도무진이라 한두 번 방문으로는 힘들 거라고 예상했었다.
아무튼 이진우 파이팅이다.
‘어쩌면 둘이 죽이 잘 맞아서 오래 좋은 친구로 남을 수도 있겠다. 시너지가 날 수도 있겠는데?’
취향이 맞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축복이니까. 심지어 회사에서 말이다.
도혁은 둘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물론 두 남자의 시야에는 이미 도혁이 없었다.
광대가 승천한 채 조명이 어린 벽장 속의 건담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 먹어도 배부른 건담 아빠들의 미소였다.
* * *
“여보, 뭐 해요?”
“그냥. 이놈이 잘 있나 살펴보려고.”
“어머! 우리 집에 기타가 있었어요?”
신문에서 AT텔레콤의 광고를 보던 남자가 장롱 문을 열었다.
남자는 옷장 깊숙한 곳에 넣어뒀던 기타를 꺼냈다.
먼지를 훅 불어 털어내곤 조심스레 기타 줄을 손끝으로 훑었다.
“당신 기타 만지는 거 처음 보는데요? 소리 낼 줄은 알아요?”
“그럼. 우리 세대에 웬만하면 통기타 정도는 치지. 왜, 듣고 싶은 노래 있어?”
“연주해 주게요? 그럼 예스터데이 듣고 싶어요.”
“그 정도야. 잠시만 기다려 봐.”
아내는 오래전 유행했던 올드팝의 제목을 말했고 남자는 기타를 조율했다.
잠시 뒤, 천천히 움직이는 남자의 손가락을 따라 고요히 기타의 선율이 흘렀다.
오랜만에 소리를 내는 기타의 음색은 투박했지만 아름다웠다.
여자의 입매가 부드러운 호를 그렸다.
“어머! 당신 생각보다 기타 잘 치는데요? 왜 진작 안 꺼내놓고 이렇게 숨겨뒀던 거예요?”
“원래 꿈이 기타리스트였어. 부모님이 반대하셔서 공대 갔던 거지. 젊은 시절 아주 오랫동안 밴드를 했었다고.”
“난 전혀 몰랐어요. 아니, 나 당신 노래 싫어하는 줄 알았어요. 음악 프로그램도 잘 안 보잖아요.”
“보면 마음만 상하니까 피했던 거지.”
“그랬구나.”
남자의 눈동자에 쓸쓸한 빛이 맺혔다.
아내가 남자의 투박한 손을 쓸어주었다.
“뭐. 그래도 괜찮아. 취직해서 밥벌이하고 당신 만나서 애들도 키웠으니 그걸로 충분해. 난 지금도 좋다고.”
“지금이라도 하고 싶은 거 해요. 아이들도 다 컸고 이제 우리 즐기면서 살 여유 정도는 있잖아요.”
“그래. 안 그래도 그러려고 오늘 기타를 꺼내봤지.”
“당신 오늘 낯설어요. 근데 멋있어.”
아내가 기타를 어루만지며 대꾸하자 남자가 부연했다.
“내가 사실 포크 음악만 잘하는 게 아니야.”
“그럼 또 뭘 잘하는데요?”
“속해 있던 밴드가 락 그룹이었어. 당신 남편 라커였다고. 그래서 말인데.”
남자는 신문 속 AT텔레콤의 광고를 내밀었다.
“여기 한번 나가보려고 생각 중이야.”
“이런 모델 대회가 있네요. 한번 나가봐요. 마침 애들 군대 가고 심심한데 잘됐다.”
“그럼 내 왕년 실력 한번 뽐내봐?”
“좋죠. 내가 현수막 써 가서 응원할게요. 그런데…….”
아내의 시선이 광고 하단의 문구에 꽂혔다.
“AT텔레콤에서 여자 중년 모델도 뽑는 거예요?”
“왜, 당신도 나가보게?”
“나라고 못 하란 법 있어요? 나도 한때는 모델이 꿈이었어요. 애들 낳는다고 주저앉아서 그렇죠.”
“하긴 우리 여보가 젊을 땐 한 인물 했지.”
“지금은 아니고?”
여자의 눈초리가 새초롬하게 올라갔다. 위기에 봉착한 남자가 급히 말을 돌렸다.
“아무튼 내일, 가리봉동 전설의 기타리스트 출격한다. 기대하라고!”
“그래서 여자 모델은 언제 뽑는다구요?”
전면 광고를 바라보는 두 부부의 눈동자가 빛을 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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