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isor Jihoon Kim RAW novel - Chapter 128
127. 무게 (2)
지방선거 투표일.
정현석은 전날 서울지역과 충청지역의 합동 유세를 마지막으로 당양의 자택에 머물다 아침 일찍 투표한 이후 서울로 향했다.
선거 막판 커다란 변수 없이 진행된 이번 지방선거는 언론과 정치평론가들은 진보 연합세력의 승리를 예견하고 있었다.
“반전은 힘들겠지?”
조심스레 물어오는 정현석의 말에 지훈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래, 뭐 네가 판을 그렇게 읽었으면 그런 거겠지.”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지훈이 그렇게 말하자 정현석은 굳은 표정으로 지훈을 바라보았다.
“이기지는 못해도 지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이야?”
“어제 선대본에서 올린 보고서를 읽어보셨잖습니까?”
“그저 단순하게 험지 지역의 분위기가 좋다고······.”
“네. 기존에 험지에서는 우리가 선거유세를 하더라도 시민들이 우리를 피하는 경향이 있었다면, 분위기가 좋다는 것은 적어도 그런 모습은 사라졌다는 거니 의외의 선전을 기도 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지훈의 말에 정현석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얼마 후, 차량은 국회에 도착했고, 정현석과 지훈은 차에서 내려 국회 의원회관에 준비된 보수당 선거 개표 상황실로 걸음을 옮겼다.
“대표님, 오늘 승패 어떻게 예측하십니까?”
정현석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기자들은 기다렸다는 듯 다가와 평소와는 다르게 차분한 말투로 정현석을 향해 물어왔다.
“글쎄요. 김 기자는 어떻게 봅니까?”
“진보당과 사민당의 연대 후보가 이길 거라는 평이 많지 않습니까?”
“하하, 김 기자도 진보 연합세력이 이길 거라고 보는구만! 내기할까요? 만약 결과가 비기는 걸로 나오면 보수당이 승리했다고 기사 쓰는 걸로?”
정현석의 농담에 주변을 따라 걷던 기자들은 작은 웃음을 터뜨렸다.
“저희는 이미 내기했습니다.”
“그래요? 보수당 출입 기자들이니까 보수당 승리에 걸었겠죠?”
“하하, 대표님. 보수당 출입 기자니까 보수당 사정에 잘 알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저는 지는 싸움은 하지 않습니다.”
기자의 뼈가 있는 농담에 정현석은 그저 웃음을 지으며 길을 걸었다.
정현석이 선거 개표 상황실에 도착하자 당 비서실장과 사무총장은 정현석의 옆에 앉아 실시간으로 선거 상황을 보고하는 것 같았다.
지훈도 평소 친분이 있는 기자들에게 전화를 돌려 상황을 파악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정현석 대표 보좌관님 되시죠?”
“네, 그렇습니다.”
“TBS 이진태입니다. 대표님 짧게 인터뷰 가능할까요? 생방송입니다.”
지훈은 기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정현석의 곁으로 다가가 귓속말을 건넸다.
“TBS 생방송 인터뷰 요청 왔는데 어떻게 할까요?”
“짧은 거야?”
“예. 곧 발표니까요.”
“좋아, 한다고 해.”
지훈은 기자에게 다가가 정현석의 승낙을 전했고, 정현석은 뒤로 빠져나와 방송 장비를 착용하고는 기자에게 간단한 설명을 들었다.
“귀에 착용하신 이어폰에서 스튜디오 앵커의 목소리가 들리실 겁니다. 질문에 답해주시면 되고요, 잠시 후 연결하겠습니다.”
정현석은 긴장되는 듯 입을 풀면서 준비했고, 방송연결이 된다는 듯 기자가 손짓으로 알려왔다.
-정현석 대표님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십니까?”
-보수당 선대본부장님은 오늘 선거 결과를 긍정적으로 기다린다고 말씀하셨는데요? 대표님은 어떠십니까?
“저 또한,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난 지방선거 때 유세와 달리 적극적으로 지지를 표하는 분들도 계셔서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을 체감했습니다.”
-그렇군요, 선거 막바지에 대안당과 진보연대세력을 심판해달라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정현석은 앵커가 꽤 까다로운 질문을 해오자 살짝 미소를 흘리며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말씀드렸듯 국민의 생각과 달리 그저 이기기 위한 야합은 심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결과 어떻게 예측하십니까?
“지난 지방선거 때 보다는 결과가 좋으리라고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네! 정 대표님 말씀 감사드립니다.
잠시 후, 투표 종료와 방송사 출구조사 발표 시간이 다가오자 관계자들은 하나둘씩 자리에 앉았고, 정현석을 포함한 당 지도부는 긴장된 표정으로 단상에 설치된 모니터에 시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방송 3사 출구조사 카운트다운을 시작하겠습니다.
-3, 2, 1······.
모두가 숨죽이며 출구조사 결과를 바라보았고 카운트다운이 끝나자 결과가 발표되었다.
-시도지사 진보당 아홉 곳, 보수당 일곱 곳, 사회민주당 한 곳에서 승리한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박빙이 예상됩니다.
-다음은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예측 결과입니다. 총 다섯 석의 의석 가운데 진보당 한 석, 보수당 세 석, 무소속 한 석으로 예측되었습니다.
결과가 발표되자 모니터 화면에 비친 각 당의 모습은 어느 한 곳도 좋아하는 곳 없이 모두가 굳은 표정을 지었다.
정현석 또한 아무런 말이 없이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다 자리에서 일어나 개표 상황실을 빠져나왔다.
“대표님, 출구조사 결과 보셨는데요. 만족하십니까?”
“재보궐 선거에서 국회 의석을 늘리셨는데요······.”
“대표님, 향후 거취에 대해서는······.”
정현석이 개표 상황실을 빠져나오자 기자들은 정현석에게서 한 마디라도 얻으려는 듯 끈질기게 들러붙어 질문을 퍼부었고 정현석은 자리에서 멈춰서 기자들을 바라보았다.
“개표 결과까지 모두 지켜봅시다.”
정현석이 그렇게 말하고 걸음을 옮기자 기자들은 아쉽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정현석을 보내주었다.
**
“형님, 이제 우리가 나서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상석에 앉아 있던 남자는 측근의 말에 말해보라는 듯 눈빛을 보냈다.
“정현석이 당 내에서 더 자리 잡기 전 임기 초에 끌어내릴 명분이 생겼단 말입니다.”
“명분이 어디 있어? 자네는 지금 우리가 패배한 거로 보이나? 언론에서도 무승부라고 평가를 하는데?”
“형님, 그게 중요하겠습니까? 단순 광역시도지사 숫자만 보면 우리가 진 것이 맞습니다.”
“그래, 자네 말대로 숫자만 보면.”
“그럼 우리가 그것을 가지고 프레임을 전환해야 합니다. 언론에서 비겼다고 하는데 어떻게 보면 정 대표의 고집만 없었더라면 보수 진영이 뭉쳐서 승리할 수 있는 싸움이었다고 말이죠.”
“흠······.”
“이번에 내준 울산시장 자리를 보십시오. 안 그래도 힘든 지역에서 대안당 후보가 4% 가져갔어요. 그리고 승리한 진보당 후보와 우리 후보의 차이는 3% 고요.”
남자는 측근의 말에 흥미가 가는 듯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이런 지역이 광역시도지사 자리에만 있는 게 아니에요. 성남시장, 여주시장 등등 수도권에서 안타깝게 진 지역은 전부 대안당 후보의 표만 우리가 흡수했어도 이겼단 말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잔 말인가?”
“형님께서도 이제 대구시장이라는 타이틀을 떼셨으니 중앙에 자리 잡으셔야 하고, 정현석을 싫어하는 보수층의 대항마가 되시려면 이참에 들고 일어나야 합니다.”
“내가 직접 나서나?”
“형님은 가만히 계시고 대안당 김민수를 만나서 우리 당내에 있는 김민수와 친한 의원들을 우리 쪽으로 끌어다 주십시오. 저는 먼저 개인 SNS로 정현석 책임론에 대한 운을 떼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알았어. 한 번 해보지.”
**
「지방선거 ‘무승부’, 강원, 제주 민심 휘어잡은 보수당.」
「무승부에도 불구, 여야 내부에서 지도부 성토.」
「재보궐 승리했지만, 영남지역 다수······ 험난한 보수당의 앞길.」
사흘 후, 선거 이후 어떠한 의견도 내놓지 않으며 휴식을 취한 정현석은 지훈을 비롯한 자신의 측근들과 거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대놓고 발언은 못 하고 있지만, 대표님에 대한 책임론으로 끌고 가고 싶어 하는 듯합니다.”
당의 사무총장인 김기준이 그렇게 입을 열자 정현석은 심각한 표정으로 아무런 대꾸 없이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특히 대안당과의 접점을 아직 유지하고 있는 의원들과······ 원외에 있는 구윤서 전 시장의 측근들이 자주 만나고 있다고 합니다.”
김기준의 입에서 구윤서 전 대구시장의 이름이 나오자 지훈의 표정은 덩달아 굳어져 갔다.
구윤서 전 대구시장은 최근 3선의 시장직을 마치고, 다음 총선과 대선을 노리는 인물이었다.
대구와 그 주변 지역 의원들이 모두 그의 계파라고 불릴 만큼 중앙과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시장직을 12년을 지냈지만, 오랫동안 자신의 세력을 만들어온 인물이었다.
“내가 그만 두어야 합니까?”
정현석이 그렇게 입을 열자 자리에 배석한 사람들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사퇴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오히려 외부의 평가는 훌륭합니다. 취임 다섯 달 만에 이런 결과를 끌어내신 것도 그렇고, 재보궐에서는 승리하지 않았습니까?”
원내대표 이영식의 말에 정현석은 여전히 고민이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루빨리 대표님의 입장을 내야 할 것 같습니다.”
정현석은 투표일 다음 날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보수당을 선택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짧은 모두 발언으로 선거에 대해 평가를 하지 않고 있었다.
지도부의 자화자찬이 될 수도 있다는 걱정에서였는데, 일단 며칠간은 외부의 평가를 지켜본 후 결론을 내리겠다고 언론을 통해 말해왔다.
“입장이라······.”
“아무래도 지도부의 이번 선거 평가가 안 나오니 다른 마음을 먹고 있는 의원들이 언론을 통해 산발적으로 개인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게 문제입니다. 더 끄시다가는 소란이 더 커질 겁니다.”
이영식의 말에 정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분들이 내리는 평가는 어떻습니까?”
“말씀드렸듯이 만족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대표님께서 힘을 쏟으신 지역은 다 승리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대표님을 향해 ‘선거의 남자’라는 타이틀이 붙은 기사도 나왔습니다. 제주를 탈환했고, 경기도지사와 최근 여권이 강세였던 곳들을 다시 찾아왔습니다.”
이영식과 김기준의 말에 정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여러분들의 평가 또한 참가해서 내일 아침에 제 평가까지 기자회견을 열도록 하겠습니다.”
정현석이 그렇게 말하며 두 사람을 바라보자 두 사람은 정현석의 현명한 판단을 바란다고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현석이 배웅을 하고 두 사람이 정현석의 집을 빠져나가자 정현석은 말석에 앉아 있던 지훈을 향해 입을 열었다.
“네가 내리는 평가는 어때?”
“대표님께서 흔들리시는 거 같습니다.”
지훈은 대답 대신 정현석을 향해 되물었다. 정현석은 지훈 자신을 향해 하나하나씩 해나가자고 했지만, 결과를 보고는 성적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숫자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광역도지사에서 우리가 가져온 곳은 일곱 자리입니다. 광역시장과 도지사 자리만 보면 대표님께서 생각하시는 것처럼 우리가 졌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다만.”
지훈의 말에 정현석은 입을 꾹 다물고는 지훈을 바라보았다.
“기초단체장 226석 중 111석, 광역의원 789석 중 394석, 기초의원 2898석 중 1213석을 확보했습니다.”
지훈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정현석을 바라보았다.
“자화자찬이라는 평가 좀 들으면 어떻겠습니까? 성적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습니다. 당권을 잡은 지 5개월이 지난 대표가 지방선거에서 여당을 상대로 고군분투 했다. 이거 하나만으로도 고개 드셔도 됩니다. 저는 오히려 왜 그렇게 대표님께서 고민하시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싸움하는 게 지겨워서 그래. 나도 알아 이 정도 성적이면 떳떳해도 된다는 걸. 그런데 정치적 목적으로 나를 흔들려는 대상들과 싸움을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
“…”
지훈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정현석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그동안 당을 바꾸겠다는 생각 하나로 다른 세력들과 싸워왔는데 대표 자리에 올라오니 ‘내가 생각하는 게 맞나? 저들이 맞지 않을까?’, ‘이게 맞아?’ 같은 생각이 매일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어.”
지훈은 정현석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당내에서 바른말을 해온다는 평가를 듣는 소장파들이 당권을 잡거나 당직을 맡았을 때 정현석과 같은 고민을 하다 몰락하고는 했으니까.
지훈은 언젠가 이런 타이밍이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고, 정현석에게 확신을 심어줄 차례라고 느꼈다.
“대표님의 생각에 대한 확신을 바라시는 거군요?”
“그래. 내가 내리는 평가가 아니라 모두가 ‘그쯤 하셨으면 잘하신 겁니다.’ 말해줬으면 좋겠다.”
지훈은 정현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 아침까지 대표님의 입장문을 쓰려면 시간이 촉박한 것 같습니다.”
“내 입장문?”
“예. 대표님께서 모두의 평가를 듣고 싶다고 하셨으니 평가를 한번 받아보도록 하죠.”
지훈의 말에 정현석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지훈을 바라보았다.
“전 당원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시행한다는 입장문을 준비하겠습니다. 자신들의 이득만을 생각하는 사람들 말고, 당당히 당원께 평가받으시죠.”
지훈이 그렇게 자신을 향해 말해오자 정현석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