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isor Jihoon Kim RAW novel - Chapter 127
126. 무게 (1)
2014년 5월.
지방선거 투표일을 사흘 앞둔 날, 정현석과 지훈은 여전히 전국을 누비며 선거운동을 해나가고 있었다.
보수당은 진보 단일화 후보에게 자신들의 텃밭인 영남지역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영남지역을 사수하면서 수도권 지역을 공략해나가고 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정현석은 험지라고 불리는 경기지역에 지원 유세를 돌고 있었다. 사실상 서울을 위시한 경기지역은 보수당에게 험지가 아닌 지역이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진보 단일화 후보의 지지율이 강세였다.
“오늘 지지율 나온 거 있나?”
정현석은 오랜만에 오전 지원 유세 일정이 없자, 국회에 있는 당 대표실에 출근해 전반적인 선거 상황을 확인했고, 중앙 선거캠프 관계자들이 나가자 지훈에게 디테일한 보고를 받고 있었다.
“네. 깜깜이 선거 기간에 후보들이 맘 졸여 하고 있어서 당 정책 연구원에서 자체적으로 돌려본 여론조사 결과가 오늘 아침에 각 지역 후보들에게 보내졌습니다.”
“한번 들어볼까?”
지훈의 말에 정현석은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지훈을 바라보았다.
“광역시도지사 결과만 말씀드리자면, 우리 당이 6석, 진보당과 사민당의 연합 세력이 11석입니다. 대안당은 0석이고요.”
지훈이 그렇게 말하자 정현석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힘들구만.”
“대표님 그래도 선거 초 조사보다는 당선 가능성이 있는 후보가 두 석이나 늘어났습니다. 또 이대로 당선만 된다면 지난 선거 때보다는 좋은 결과를······.”
“알고 있어. 하지만, 내 위치가 그 조사결과에 만족하면 안 되는 위치잖아.”
지훈은 정현석의 말뜻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정현석이 이 결과를 가지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했다.
“대표님 말씀도 맞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이 조사를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이고 더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
“뒷일은 미래의 대표님에게 맡겨두시고, 지금은 불안해하는 후보들에게 긍정적인 기운만을 북돋아 주어야 합니다.”
“그래,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네. 내가 불안해하면 후보도 불안해할 테니까.”
“네. 그러니 조금 착잡한 심정은 마음 마음속 한곳으로 모두 밀어내시고 지금은 이 지표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셨으면 좋겠습니다.”
“좋아. 보자 다음은······.”
“수원입니다.”
정현석은 지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지훈을 바라보았다.
“정영규 의원이 힘들다고 했던 지역인데 결국, 단일화 못했지?”
“네. 제가 알아본 바로는 대안당 후보가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해왔다고 합니다.”
지훈이 조심스레 말을 꺼내자 정현석은 궁금하다는 눈초리로 지훈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제안? 무슨 제안을 했길래?”
“여론조사에서 본인에게 가산점을 달라고 했답니다.”
“가산점 줘도 대안당은 우리가 이길 수 있는 거 아냐?”
“가산점이 10%였습니다. 단순 1대1 여론조사에서 10% 가산점은 꽤 큰 점수니까요.”
“나한테 보고 들어오는 단일화 협상은 전부 그런 내용이냐 왜? 나는 진심으로 대안당 후보들이 진지하게 단일화할 마음이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보수당은 후보 개인 사이의 단일화를 허용하는 방침을 정했고, 실제로도 경남지역에서 보수당 후보와 무소속후보 간의 단일화에 성공하고 있었다.
다만, 보수당 후보와 대안당 후보 간의 단일화는 없었고 정현석은 그 점을 지훈에게 말해오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가는 곳마다 대안당 후보들이 와서 옆에서 자기들 선거운동을 하는 것도 그렇고 마치 나한테 ‘연대 안 하면 너희 선거운동을 방해할 거야’라고 말해오는 것 같다니까.”
대안당은 정현석이 지원 유세하러 가는 곳마다 선거 유세단을 보내 바로 옆에서 자신들의 선거운동을 해오고 있었다.
분명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었지만, 대안당은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행동을 했다.
“저도 그 부분을 따로 생각해봤습니다. 아무래도 대안당은 처음부터 당 대 당 단일화를 요구했던 것도 그렇고 이번 선거에서 목적은 오직 우리 당과의 접점을 찾는 행위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나도 그렇게 느끼고 있어. 네 말대로 선거가 아닌 우리 당과의 통합을 생각하는 것 같네.”
“네. 대표님께서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자 이제는 우리 선거를 방해하겠다는 속셈으로 보입니다. 물론 모든 후보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 당의 발목을 잡아 대표님을 끌어내리려는 속셈 같기도 하고요······.”
지훈이 굉장히 조심스레 말해오자 정현석은 피식 웃으며 지훈을 바라보았다.
“하하, 음모론치고는 그럴싸했어. 우리가 선거에서 대패해 내가 그만두면, 우리 당이랑 통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네. 그렇습니다.”
“어쨌든 그 일은 생각하지 말고, 이제 선거가 며칠 안 남았으니까 최선을 다 해보자. 네 말마따나 지금은 긍정적인 생각만을 하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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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지사 후보와 수원시장 후보를 모시는 데 참 고민이 많았습니다. 수십 명을 대상으로 고민하고 고려해서 모신 분들이 바로 제 옆에 계신 최상호 경기도지사 후보와 윤경태 수원시장 후보님이십니다.”
수원의 한 번화가, 보수당의 경기도지사 후보와 수원시장의 합동 유세가 열리고 있었고, 유세차량 위에는 정현석과 경기도지사 후보, 수원시장 후보가 올라가 있었다. 또 유세차량 앞에는 수원 시의원 후보들이 서 있었다.
“또 여기 앞에 계신 시의회 후보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각자가 자신의 지역구에서 오래 산 토박이나 다름없는 분들이고, 또 해당 지역의 문제에 대해 지역주민들과 같은 고민을 오랫동안 해오신 분들 위주로 모시느라 고생을 했습니다.”
번화가답게 꽤 많은 지지자와 길을 지나가던 일반 시민들은 정현석의 연설을 보고 있었다.
“특히 윤경태 후보께서는 오랫동안 국토교통부에서 도시계획 전문가로서 행정 능력을 펼쳐오신 분입니다. 현재 지역 최대 현안인 교통혼잡 문제에 대해 평생을 고민하고 연구해온 일꾼입니다.”
정현석은 윤경태의 손을 잡고 들어 올리며 큰 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런 일꾼을 여러분들을 위해 수원에 모셔왔습니다. 수원을 위해 일할 행정 전문가! 지역에 필요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전문가! 윤경태 후보를 여러분의 일꾼으로 써주십시오!”
정현석이 그렇게 외치자 선거 유세단은 윤경태의 이름을 연호했다.
“또! 도청 이전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광교신도시에 몇 년째 도청 이전이 진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여기 계신 최상호 후보께서는 후보 중 유일하게 경기도청 이전을 공약사항으로 거셨습니다. 그리고! 임기 1년 이내에 확실한 이전 계획이 나올 수 있도록 하겠다고 여러분께 약속드렸습니다. 최상호 후보가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우리 당에서 적극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
정현석은 목이 쉬어라 큰 소리로 연설을 이어나갔다.
“저 정현석 지금까지 약속한 것들 지키려고 노력해왔습니다. 약속을 못지킬 때에도 그 상황변화에 따른 이해득실과 진행상황을 알려드렸습니다. 결코 일과성으로 뱉고 보는 공약은 없었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여러분 앞에 경기도가! 또 수원시가 여러분들이 살기 좋은 도시가 될 수 있도록 변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약속드리겠습니다! 보수와 진보를 떠나 진정 지역을 위해서 일할 일꾼인 최상호를 믿고! 윤경태를 믿어 주십시오!”
정현석의 연설에 구경하던 시민들은 작게나마 손뼉을 쳤고, 유세단은 정현석과 후보들의 이름을 연호했다.
한참 동안 이어지던 연호가 끝나자 정현석은 한쪽을 바라보며 작심한 듯 입을 열었다.
“이곳에서 드릴 말씀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확실히 선을 긋는 것이 유권자 여러분의 혼란을 덜어드리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훈은 정현석의 시선이 머무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고, 그곳에는 보수당 합동 유세를 의식한 듯 같은 장소에서 자신들의 후보와 유세단을 몰고 와 선거운동 중인 대안당의 선거 유세차량이 보였다.
“대안당과 우리 보수당은 연합하지 않았습니다. 어떠한 접점도 없고 전국의 선거구 중 단 한 선거구에서도 단일화한 후보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정현석은 그렇게 말하며 정면에서 자신을 찍고 있는 기자들을 바라보았다.
“대안당 지도부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대안당이 한 정당으로서 고민한 정책과 소신을 보여주기 전까지는 그 어떠한 대화도 연대도 없을 거라고 말입니다. 혹시 저 정현석만 사라지면 보수당에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정현석의 작심한 발언이 시작되자 사진기자들은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진즉에 사라져야 했지만, 그저 정치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지역에 대한 어떠한 고민도 없이 지방선거에 뛰어든 정당을 유권자 여러분께서 표로 심판해주십시오! 진보당과 사민당은 또 어떻습니까? 정책의 연대 없이 승리만 하면 된다는 아주 못된 정치인들의 나쁜 생각을 멈출 수 있는 건 유권자 여러분의 한 표뿐입니다! 지역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일꾼들만 데려왔습니다. 보수당을 선택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정현석은 그렇게 말을 마치고는 한참이나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유세 현장에 나온 지지자들은 큰 소리로 보수당과 후보들의 이름을 연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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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석 보수당 대표, 대안당은 진즉에 사라져야 했을 정당 ‘연대 없다’ 재확인.」
「대안당, 정현석 무례한 발언 국민 앞에 사과해야.」
「막판 표심 잡기 나선 정현석, ‘지역 일꾼론’ 내세워 전국 누비며 연일 광폭 행보.」
지원 유세를 마치고 서울로 향하는 미니밴에서 휴식을 취하며 휴대전화로 뉴스를 보던 정현석은 지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심하긴 했나?”
정현석은 마치 자신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라는 듯 지훈에게 확인하는 것처럼 보였다.
“먼저 계속해서 우리의 유세를 방해해온 것은 대안당이었습니다. 언제고 해야 했을 말입니다. 다만, 같이 연단에 서신 후보님들이 더 집중을 받지 못해 안타까울 뿐입니다.”
지훈이 그렇게 얘기하자 정현석은 머쓱해진 듯 코를 훔치며 입을 열었다.
“안 그래도 두 분께는 내가 따로 사과드렸어. 오히려 엄지손가락을 추켜 세워주시던데. 속마음은 모르겠지만.”
“후보들께서 대표님께 괜찮다고 말씀해오셨으면 마음 편히 먹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결국 방향은 유권자들을 향한 어필이었으니 한 정당의 대표로서 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그럼 다행이고. 이제 이틀 남았네, 선택을 기다린다는 게 참 초연해지기 힘들어.”
“압박감을 느끼십니까?”
지훈은 최근 들어 정현석이 직책에 대한 압박을 심하게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라면 거짓이겠지.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말로는 했지만, 내가 이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면 다시 당이 예전으로 돌아갈까 봐 무섭기도 하고, 또 정치인 정현석이 국민 눈 밖에 나게 될까 두렵기도 하고 뭐 그냥 여러 감정이 섞여 있다고 해야 하나······.”
“대표님께서는 지금까지 할 도리를 다하셨습니다.”
지훈이 그렇게 말하자 정현석은 시선을 지훈에게로 돌렸다.
“공천과정에서 잡음을 최소화했고, 또 선거 과정에서 후보들에게 지원도 아끼지 않으셨고 대표님 본인 또한 열심히 선거운동을 해오셨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대표님과 우리 당의 진심을 유권자가 알아봐 주기만을 바라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알아봐 주겠지?”
“제가 유권자라면 이번 한 번은 의심의 눈초리로 지켜볼 것 같습니다.”
“뭐야 실컷 말해놓고 김빠지게.”
“어디까지나 깐깐한 저 같은 사람들은 그렇다는 겁니다. 다만, 대표님과 손을 맞잡고 우리 후보들과 손을 맞잡은 국민은 우리의 진심을 믿어 주실 겁니다.”
지훈이 그렇게 말하자 정현석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찌 됐든 이것도 내가 감당해야 할 무게라면 그냥 앞만 보고 가련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모든 걸 감당하겠다 말해오는 정현석의 말에 지훈은 정현석을 향해 입을 열었다.
“힘드실 때는 그저 저에게 같이 짊어지자 말씀해주십시오. 제가 그 짐을 조금이라도 나누어 짊어지도록 하겠습니다.”
“새끼, 말은······.”
“저도 있습니다!”
앞에서 운전하던 최준호마저 그렇게 말하자 정현석은 여전히 자신의 어깨 위에 놓여 있는 짐들은 무거웠지만, 같이 짊어질 동료들이 있다는 생각에 마음만은 한결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