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GATE RAW novel - Chapter 265
화
소종족 회의, 아니 정확하게는 종족 소회의는 움알마에서 타모얀 종족이 하나둘 귀향을 하는 중에 이루어졌다. 그 말은 종족간의 협의에서 어떤 문제가 결정이 된다고 해도 타모얀 종족이 이번에 내린 결론은 바뀌지 않을 거라는 말이 된다.
물론 이제는 조금 사정이 달라지긴 했지만, 이전에는 대회합이 20년 후에나 다시 열리게 되는 만큼 대회합이 끝난 다음에 각기 다른 종족들의 회의가 있다고 해도 타모얀 종족의 거취에는 영향을 줄 수가 없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그저 종족 소회의에 참가했던 이들에게나 어떤 기대를 해 볼 수 있을 뿐인 상황이 되는 것이다.
뭐 그래도 일단은 옴파롱 울룰루의 아들들이 모두 남아서 회의에 참가하는 것이고, 대표 프락칸들도 남아 있는 이들이 많으니 종족 회의가 전혀 소용이 없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종족 소회의가 시작이 되었다.
그런데 장인어른 말씀을 들어보니 이번에는 어쩐지 대회합을 축하하기 위해서 왔다는 종족 대표들의 수가 이전에 있었던 대회합에 비해서 두 배는 늘어난 수준이라고 하신다. 그래서 생각을 해 보니, 이번에는 작정을 하고 사람들이 모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요즈음 알게 모르게 이알-게이트 회원들의 파워가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 때문에 내가 헌터 연합에게 큰소리를 치기도 했었다. 아니 일개 헌터가 헌터 연합이 제대로 일을 하지 않으면 헌터 연합을 대신할 새로운 협의체를 구성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대놓고 따지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런데 내가 그렇게 했을 정도로 우리 이알-게이트의 성장세는 두드러지고 있는 거다. 이런 상황에서 연합이거나 혹은 다른 길드들에서 제3 데블 플레인에서의 우월한 위치를 유지하려면 어쩔 수 없이 선주민들을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아마 그것이 타모얀 대회합에 이전보다 많은 종족들이 나타난 결과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예상을 해 본다.
그래봐야 결과적으로는 내게만 유리한 일이 되었을 뿐이라서 러츠커 그랜드 마스터가 불편한 얼굴로 얼마 전부터 천막 밖으로 나오지도 않고 있다고 했다. 원래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하는 것은 막고 있었지만 그래도 천막에 가두어 둔 것은 아닌데 러츠커는 듀풀렉 게이트에 대한 이야기를 알게 된 후로는 두문불출이라는 거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고민을 해 봐도 듀풀렉 게이트나 부유선에 맞먹을 가치를 지닌 것을 선주민들에게 줄 것이 없을 터였다. 그가 연합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인지 아니면 어떤 길드를 대표하는 것인지, 그도 아니면 모성의 거대 자본 세력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쨌거나 그가 어떤 카드를 내 놓아도 듀풀렉 게이트 앞에서는 배팅이 되지 않는 상황인 것이다.
이것은 다른 종족과 함께 온 헌터들 역시 마찬가지 입장이다. 알게 모르게 선주민 종족들과 함께 손님의 자격으로 온 헌터들이 제법 있는 모양이지만 나도 아직은 확실하게 소속을 알아내진 못했다.
그래도 손님인데 대지의 일족 전사들에게 손님의 뒤를 캐달라는 부탁을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물론 전사들이 출입을 통제하는 이들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으니 지금까지 그저 몇몇 헌터들이 왔다는 소식만 들었을 뿐이다.
그런데 막상 종족 소회의에 나가보니 또 상황이 이상해서 러츠커 그랜드 마스터를 비롯한 헌터들은 단 한 명도 종족 회의에 참가하지 못한 것 같다.
전부 선주민 종족들만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다.
“길게 끌며 이야기 할 것도 없이 우리들이 바라는 것을 타모얀들도 알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어찌 하시기로 했습니까?”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에치나기라는 이름의 종족 대표였다. 에치나기 종족은 귀 위로 동그랗게 말려있는 뿔을 지니고 있는 종족인데 산악 부족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 그들은 하나의 산을 영역으로 정하고 살아가는 종족이라고 하는데 인구가 늘어나서 그 산에서 나는 산물로 감당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마을을 반으로 나누어서 새로운 산을 찾아 떠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들이라고 했다. 물론 이 땅에 몬스터들이 나타난 이후로 점점 그 세력이 줄어들고 있는데 그건 어떤 종족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니 특별히 언급한 문제는 아니다. 다만 이들은 자신들의 영역에 대한 소유욕이 강해서 누구든 그들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고 했다. 같은 종족에게만 자신들의 영역을 개방하는 것으로 유명한 종족이란다. 그래서 헌터의 입김이 전혀 닿지 못하는 종족이라고 들었는데 이번에 이곳에 온 것을 보면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아니면 정말로 대회합을 축하하기 위한 순수한 의도를 가지고 온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디 쉽게 믿어지는 일이라야 말이지.
에치나기 대표의 발언에 사람들의 시선이 장인과 나에게 몰린다. 장인은 저쪽 첫 자리에 나는 이쪽 끝자리에 앉아 있는데도 맞은편 탁자에 앉은 종족 대표들의 시선이 모두 나와 장인어른에게 몰린 것이다.
“커엄. 그건 에치나기 대표께서 하실 말씀은 아니라고 봅니다. 사실 여기 계신 분들의 관심이 분명히 듀풀렉 게이트에 있을 텐데, 에치나기 종족은 예로부터 종족의 터전에 다른 이들이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듀풀렉 게이트를 에치나기 종족의 산에다 설치하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그 게이트를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산에 사는 에치나기 분들 밖에 없을 텐데요. 그건 너무 낭비가 아니겠습니까?”
장인어른이 뭐라 하기도 전에 마티아노 종족의 대표가 에치나기 종족의 대표에게 그의 말이 문제가 있다고 따지고 나섰다. 마티아노 종족은 타모얀 종족과는 달리 선이 곱고 가늘게 생긴 종족으로 평원에서 무리를 지어서 사는 종족으로 규모가 큰 마을이나 도시를 형성하는 선주민 종족이었다. 거기다가 지리적인 위치로 봐도 사람이 살기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기에 다른 선주민들이 그들의 영역에서 함께 어울려 사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다만 그런 경우에 다른 종족들에게 적잖은 대가를 받아서 원성을 사는 일이 종종 있다고 했고, 영역 내의 다른 부족을 자신들의 일꾼처럼 대하는 경향이 있어서 간혹 충돌을 일으키고 떠나는 종족들이 있다고 들었다. 그런 종족의 대표가 에치나가 부족에겐 듀풀렉 게이트를 유치할 자격이 없다고 공론화 시키려는 의도로 보였다. 하긴 다른 선주민들이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면 듀풀렉 게이트를 에치나기 종족의 마을에 설치를 해 줄 이유가 없다. 듀풀렉 게이트는 이 제3 데블 플레인에서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에 의의가 있는 물건이다. 그런데 그것을 마을 하나를 위해서 내어 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거기다가 마티아노 종족의 행태가 좀 좋지 않아서 그렇지 여러 부족을 아우르고 있다는 의미에선 그 종족의 마을이 듀풀렉 게이트를 설치하기엔 최적의 장소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말이지, 당신은 이미 나한테 찍였거든? 러츠커를 어떻게 할 건지는 몰라도 일단 그 사람하고 손잡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신은 에치나기 보다도 더 가능성이 없는 사람이란 말이지. 뭐 이젠 듀풀렉 게이트가 설치되는 마을이 곧 주변 모든 마을들을 이끄는 위치에 서게 될 테니 지금 얼마나 번성했는가 하는 것은 딱히 고려하지 않아도 될 문제기도 하다. 그러니 당신은 좀 가만히 있어 줬음 좋겠어요. 크크.
내 시선을 느낀 것인지 마티아노의 대표가 내게 시선을 던지더니 활짝 웃는다. 그에게선 어쩐지 모성의 권력자들 같은 인상을 받게 된다. 뭐랄까 정치인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그래요? 하긴 마티아노 대표의 말에도 일리는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고 있다면 우리들도 변해야겠지요. 그래서 우리 마티아노도 삶의 방법을 조금 바꿔 보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듀풀렉 게이트는 굉장히 매력적인 것이지요. 우리 다른 종족과 공유하며 교류를 하는데 이만한 호재도 없을 테니 말입니다. 그러니 마티아노 대표께서 그렇게 노골적으로 반대를 하실 이유가 이젠 우리들에게도 없는 것이지요.”
에치나기 종족의 대표는 언성을 높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마을에 듀풀렉 게이트를 유치하려는 뜻을 확실하게 밝혔다. 저렇게 나오면 다시 시비를 걸기도 어려워진다. 더구나 에치나기 종족은 산에, 마티아노 종족은 평원에 자리를 잡고 사는 종족이라 서로 영역이 겹치지도 않으니 듀풀렉 게이트가 하나가 아니라면 서로 싸울 이유도 적은 종족이다.
“사실 인원이 많고 번성하고 있는 마을들 보다는 그렇지 못하고 소외된 소수 종족에게도 기회는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종족들은 나름의 역할을 가지고 있습니다. 산과 들, 물과, 하늘, 나무와 풀과 동물들, 하다못해 바위와 돌과 모래와 흙, 바람, 비, 천둥 등등 그 어떤 것이라도 하찮게 여기고 버릴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타모얀 대지의 일족이 땅을 지키고 있다지만 에치나기는 산을 지키고, 마티아노는 초원을 지키고, 우리 훈산다커는 살아있는 동물들을 지킵니다. 그리고 여기 다른 종족들은 또 뭐가 되었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저 괴물들로부터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종족들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지요. 그러니 이참에 그런 소수 종족들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만.”
“커엄. 그건 좀 다른 문제지요. 사실 세가 약한 종족의 마을에 듀풀렉 게이트를 설치해 주는 것 보다는 차라리 그런 부족들이 번성할 수 있는 터전을 먼저 찾아 주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 아닌가 합니다만.”
“하지만 그게 지금 말씀하신 마티아노 종족의 방법이 되어선 아니되겠지요. 그렇지 않아도 마티아노 종족이 다른 종족을 홀대하고 있어서 여기저기서 원성이 많은데 말입니다.”
“뭐라고요?”
“화를 내실 이유는 없지요. 여기 있는 모든 대표들께 물어보십시오. 마티아노 종족이 얼마나 원성을 받고 있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이제 세상이 변해요.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선주민들이 자유롭게 오가며 교류를 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마티아노가 계속 그와 같은 방식을 고수한다면 마티아노는 결국 외면을 받게 될 것입니다. 대표께서도 깊게 생각을 하셔야 합니다. 이번에 대지의 일족 전체가 툴틱이란 것을 가지게 될 거라고 하던데, 그것이 세상 어디에 있더라도 옆에 있는 듯이 대화를 할 수 있고, 먼 곳의 모습을 직접 보여줄 수도 있는 거라지요? 그게 그렇게 퍼지며 마티아노의 실책이 얼마나 빠르게 세상에 알려질지 생각을 해 보세요. 화를 낼 것이 아니라 잘못을 바로잡아서 우리 사이의 불화를 미리 방지하자는 이야깁니다.”
아까부터 이야기의 주도권은 에치니가 종족의 대표가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거기에 훈산다커의 대표도 말발이 서는데 마티아노 대표는 이리저리 치이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도 종족의 대표라는 자리를 아무에게나 맞긴 것은 아닌지 얼굴이 붉어진 상태에서도 뭔가 느끼는 것이 있는지 꾹꾹 참고 있다. 딱 봐도 지금 성질을 내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때가 아닌 것이다. 에치나기 종족의 대표가 하는 말이 맞다. 세상이 그렇게 바뀌는데 마티아노 종족의 정책이 바뀌지 않으면 마티아노 종족은 모든 선주민들에게 버림을 받게 될 것이다. 에치나기 종족은 산에서 세상으로 나오는데 마티아노 종족은 도리어 숨어야 할 상황이 될 수도 있다. 그걸 아는 마티아노 종족의 대표는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으려 안간힘을 쓰면서 버티고 있는 듯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