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133
133화 사전 답사 (1)
주말.
기숙사 근처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당규영이 정시에 맞춰 나타났다.
교복 차림이라는 점은 평소와 같지만, 전체적으로 더 깔끔하고 단정한 분위기다.
거기에 더해,
“향수 뿌리셨어요?”
“평소에도 뿌리는데?”
“오늘은 냄새가 다른 것 같아서.”
“완전 개코네. 맡아 봐.”
당규영이 손목을 내 코앞에 가져다 대자 꽃향기와 과일향 중간쯤 되는 향기가 코를 간질거렸다.
그리고 그녀는 내 코끝을 톡 건드리면서 씩 웃었다.
“오늘은 신경 좀 썼지.”
비단 나 때문만이 아니라, 지금부터 우리가 갈 곳에서 만날 사람들을 생각하면 평소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모습을 보여야 한단다.
“그럼 슬슬 출발하자.”
“예, 선배님.”
셔틀버스를 타면 이동은 편하지만, 자칫 추적당할 위험성이 존재한다.
해서 우리는 목적지까지 도보로 이동하게 되었다.
당규영이 가는대로 내가 뒤따라 걷는다.
방향은 번화가의 위치와는 조금 떨어진 곳으로 잡은 듯하다.
우리는 길을 따라 걷기도 하고, 이따금씩 길이 나있지 않은 숲 속을 비집고 들어가기도 했다.
잠자코 따라가고 있으니 조금 앞서 걷던 당규영이 어깨 너머로 슬쩍 고개를 돌렸다.
“뭐하러 가는지 안 궁금해?”
사실 안 궁금하기보다 이미 다 알고 있었지만, 굳이 분위기를 깨지는 않았다.
“때가 되면 얘기해 주실 것 같았습니다.”
“너는 가끔 보면 관심이 없는 건지, 참을성이 대단한 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제 얘기해 줄게.”
적어도 우리가 오늘 뭘 하러 가는 건지, 기본적인 목적 정도는 파악해 두는 편이 나을 테니까.
당규영이 이내 단어 하나를 입에 담았다.
“암시장. 블랙 마켓이야.”
도둑 동아리가 주체가 되어 열리는 이벤트로, 밴 리스트에 올라 있는 수많은 아이템들이 활발히 거래된다.
이 시기에 블랙 마켓이 개최되는 가장 큰 원인으로는 바로 멘토링을 꼽는다.
던전선 외부에서 유입되는 멘토들 십중팔구는 과거 용살학원에 다녔던 졸업생들.
그렇기에 재학생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누구보다 잘 꿰뚫고 있고, 거기에 맞는 아이템들만 엄선해서 인벤토리에 바리바리 싸 들고 들어온다.
“학생들한테 팔면 이윤이 꽤 남거든.”
더군다나 상대가 학생이라고 구매력을 걱정할 필요도 없는 게, 대부분 명문가, 길드, 기업, 마탑 등 쟁쟁한 세력들의 자본력을 등에 업고 있다.
해서 상당수의 아이템들이 멘토링 기간 4주 내내 활발하게 거래되는 반면,
“금지 아이템 거래는 아무래도 조심스럽지.”
팔면 이윤이야 일반 아이템보다 훨씬 많이 남겠지만, 걸리면 압수는 기본에, 멘토로서의 평가에 악영향이 가는 데다 소속된 세력에까지 소식이 닿는다.
이러니 졸업생 멘토라 한들 학사 측의 눈치가 보일 수밖에.
‘그럼 안 팔면 그만 아니야? 일반 아이템만 팔아도 충분하지 않나?’하고 묻는 이도 있겠으나,
“그러기엔 또 수요가 엄청나단 말이야.”
이 시기에 블랙 마켓이 열리는 큰 이유 하나 더.
바로 중간고사가 코앞이기 때문이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성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난 만큼, 금지 아이템의 유혹을 뿌리치기도 더 힘들다.
조금 무리를 하더라도 중간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내두면 나머지 학기가 편해진다는 마인드다.
요약하면 멘토들은 멘토링 기간이 끝나고 던전섬을 떠나기 전에 인벤토리를 최대한 비우고자 하는 입장.
학생들은 중간고사를 대비해 쓸 만한 금지 아이템을 확보하고 싶어하는 입장이다.
이렇게 공급과 수요가 동시에 꾸준히 증가하다가, 결국 최고점에 달하는 8주 차 주말.
즉 다음 주 주말경에 블랙 마켓이 열리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주최자로서 도둑 동아리의 역할은 무엇인가,
“판매자랑 구매자 연결해주고, 선도부한테 안 걸리게 잘 숨겨 줘야지.”
선도부 측에서 블랙 마켓이 열리리란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밴 웨이브 다음에 도둑 동아리가 임시 보관소 침투를 시도하는 것처럼, 블랙 마켓 역시 연례행사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뭘 거래하려는 낌새만 채더라도 눈에 불을 켜고 추적해올 거다.
“뭐, 이거는 당연한 거고, 중요한 건 디테일이야.”
어떻게 선도부의 이목을 피해 안전한 거래를 주선하는가.
그리고 걸리더라도 어떻게 깔끔하게 꼬리를 잘라 피해를 최소화하는가.
이 전략은 매년 도둑 동아리 부장과 차장의 성향에 따라 달라진다.
가령 올해 도둑 동아리의 주요 전력은 당규영과 채다빈.
당규영은 그림자 술사로써 자신뿐만 아니라 범위 내 아군의 기척까지 숨기는 게 가능하다.
임시 보관소 및 심층부에 잠입할 때도 [그림자 안가], [쉐도우 파우치] 등을 활용한 은신술의 도움을 톡톡히 받았었다.
채다빈은 던전동 심층부의 마법 공학 시스템을 가볍게 뚫고 들어가 무력화하는 실력을 지녔다.
내가 평가하기에도 저것 하나 만큼은 이미 학생 수준을 넘어섰다.
그러니 아마 이런 강점들을 적극 활용해서 블랙 마켓을 준비할 테고, 그 모습을 지켜보라는 의도로 오늘 당규영이 나를 데리고 나온 것이다.
“쉽게 말하면 사전 답사 같은 거네요.”
“맞아, 사전 답사.”
당규영이 고개를 끄덕거려 긍정했다.
그리고 곧 그 사전 답사의 첫 번째 장소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허름한 3층짜리 건물.
군데군데 유리창이 깨져 있는 데다 담쟁이덩굴이 외벽을 타고 올라가고 있어 버려진 건물처럼 보인다.
“…….”
건물 입구로 다가가다가, 나는 시선을 위로 들어올려 물끄러미 옥상 쪽을 쳐다보았다.
당규영이 나한테 ‘왜?’ 하고 물으려다가, 마찬가지로 무언가를 깨달은 듯 같은 곳을 응시했다.
그러자 그곳에서 반쯤 놀란, 그리고 반쯤 흥미로운 어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이 좋은 친구네.”
이윽고 허공이 한 차례 일렁거리더니 한 쌍의 남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광학미채 길리슈트를 뒤집어쓴 채 은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동시에 3층 높이에서 훌쩍 뛰어내려 우리 앞에 가볍게 착지한다.
남성은 신병철과 동급으로 뺀질거리는 인상이지만, 차이점이라면 머리숱이 풍성하고 미남이다.
여성은 눈꼬리가 축 처져서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인상에, 눈가에 찍힌 눈물점이 포인트.
그리고 공통적으로 우리보다 나이가 들어 보인다.
‘졸업생들이군.’
내 짐작이 맞았는지 당규영이 그들이 내려앉자마자 허리를 90도로 굽혔고, 나도 눈치껏 뒤따라 묵례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들.”
“안녕하십니까.”
“응, 규영이 왔냐. 그리고 옆에는……?”
“제가 아끼는 후배에요.”
“아, 후배구나.”
그러자 뺀질이 사내와 눈물점 여성의 시선이 내 가슴팍으로 이동했는데, 넥타이핀 색깔을 확인하려는 듯했다.
곧 둘의 눈이 동시에 이채를 머금었다.
“……1학년?”
1학년이 투명 길리를 착용한 자신들의 은신을 꿰뚫어 보았으니 놀랄 만도 했다.
안정미도 내 고인물 센서에 발각되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었지.
“한 실력 하나 보네. 아니면 내가 한물간 건가.”
“얘가 좀 1학년 답지 않은 데가 있어요.”
“그렇지? 역시 내가 퇴물일 리가 없다. 도둑 동아리의 미래가 밝구만.”
그 말에는 당규영이 대답 대신 빙긋 웃기만 했다.
정작 내가 부원이 아니었으니까.
따라서 몰래, ‘왜 빨리 입부 안 해?’ 하고 묻는 눈빛을 보냈으나, 내가 일부러 딴청을 피우자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그러나 졸업생 둘을 앞에 둔 상태라 오래 한눈을 팔지는 못하고, 눈물점 여성에게 물었다.
“왜 밖에 나와 계세요. 쉬고 계셔도 괜찮은데.”
“너무 가만히만 있기도 뭐해서, 혹시 누구 안 오나 보고 있었어.”
이 건물에서 모인다는 사실을 행여 선도부에 들키기라도 할까 봐, 밖에서 망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당규영이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노고에 감사드려요.”
“별것도 아닌데 뭘. 이만 들어가자.”
“예, 선배님.”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소파에 느긋하게 앉아서 카드를 치던 이들이 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일전에 봤던 쌍둥이들과 신병철, 그리고 2, 3학년 도둑 동아리 부원들.
맞은편에는 졸업생들로 보이는 아저씨들이 더 있었고, 당규영과 가벼운 인사를 주고 받았다.
“규영이 안녕.”
“당 부장. 왔나.”
“안녕하세요, 선배님들.”
뺀질이 남성과 눈물점 여성을 포함해 졸업생이 총 다섯.
이들 중 대부분은 과거에 당규영 또는 도둑 동아리와 인연을 맺었거나, 용살학원 외부에서 활동하는 도둑길드와 밀접한 연관이 있을 거다.
설령 밀접한 연관이 없더라도 멘토들 역시 개인적인 이득을 추구하기에, 암시장 건에 한해서는 선도부보다 도둑 동아리의 손을 들어 주는 편이다.
해서 이중 한두 명 정도는 당규영이 따로 찾아가 의뢰를 했을 테고.
‘그래도 다섯 명이나 붙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선도부 쪽에 졸업생 또는 교직원급이 몇 명이나 가담할지는 모르겠지만, 눈앞의 다섯만 해도 상당히 막강한 전력이다.
나로서는 잘된 일이었다.
‘버스타는 맛이 있겠군.’
하는 일 없이 금지 아이템만 주워 먹을 수 있으면 그게 최선 아닐까?
당규영의 지시에 따라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건물 계단을 올랐다.
3층에 가까워질수록 시끄럽게 웅웅 울리는 기계음이 귀를 때렸다.
이내 3층에 오르자 그 기계음의 출처가 눈에 들어왔는데, 그것은 바로 방 하나를 가득 채운 수십 개의 모니터들이었다.
대부분은 검은 화면이지만 몇몇은 다른 방들의 모습을 비춘다.
“…….”
그리고 한쪽에 앉아 바쁘게 태블릿을 두들기는 채다빈.
이따금씩 시선을 들어올려 모니터를 확인하고, 다시 태블릿을 두들기기를 반복한다.
그럴 때마다 검은 화면 하나에 불이 들어온다.
이렇게까지 세팅을 했다면 이곳이 임시 집결지일 거라는 내 첫 예상과는 달리, 아예 컨트롤 타워로 활용하려는 모양이다.
당규영이 그런 채다빈을 바라보다가, 잠시 손이 멈췄을 때를 틈타서 끊었다.
“다빈이 잠깐 나와.”
“네.”
채다빈은 즉시 태블릿을 집어넣고 따라 나왔다.
나를 발견하곤 가볍게 눈인사를 건네고, 나 역시 꾸벅 고개를 숙여 답했다.
우르르 위층으로 올라온 도둑 동아리 부원들과 졸업생들이 회의실에 모였다.
의외로 졸업생 다섯 중에 발언권이 가장 강한 사람은 뺀질이 사내인 모양이다.
자연스레 상석의 당규영 근처로 이동하는 데다 모두 그에게 이목을 집중하는 걸 보면 말이다.
뺀질이가 좌중을 한 번 훑은 다음 말문을 열었다.
“그럼 회의를 시작해 봅시다.”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