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21
21화 잡동사니를 뒤지다 (1)
학기 첫날임에도 마법공학 공방은 몹시 분주했다.
전투 계열 클래스들이 대인전 승패와 공략전 고득점에 사활을 걸듯, 생산 계열 클래스들은 양질의 아이템을 제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잘 만든 아이템들은 카탈로그에 실려서 포인트 벌이가 되기도 하고, 어떤 것들은 용살학원 외부로 팔려 나간다.
부족한 전투력으로 인한 실기 평가 점수를 성과를 내서 메꾸는 것이다.
그러니 첫날부터 뭐라도 하나 더 만들어 보겠다고 혈안이 될 수밖에.
공방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인데, 1군이 사용하는 제1공방의 시설이 가장 훌륭하고, 이 때문에 이용자도 가장 많다.
근처에만 가도 시끄러운 기계 소리가 윙윙 울려 대서 귀가 아프고, 곳곳에서 번쩍이는 푸른빛에 눈이 멀 것 같다.
반면 공방 앞에 붙은 숫자가 늘어날수록 시설의 수준도 떨어지고 자연히 사람도 적어진다.
해서 내가 제4공방에 가까워질 즈음에는 소음이 거의 잦아들어 고요해졌다.
4공방 문은 반쯤 열린 채였다.
안에서 작은 기계 소리와 함께 마나의 파동이 느껴진다.
열린 문틈으로 슬쩍 보니 학생 하나가 등을 돌린 채 무언가를 만지작거리며 몰두하고 있었다.
두 손에 각기 다른 공구를 들었으며 열 손가락이 모두 투명하게 푸르다.
[마법공학] 스킬이 발현되고 있다는 뜻.– 똑똑,
손을 들어 노크를 했다.
집중을 깨뜨릴 만큼 크게, 하지만 짜증은 덜 나도록 적당히 작게.
“누구세요.”
학생이 앉은 자리에서 상반신만 돌려 문 쪽을 확인했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꾸벅 인사부터 했다.
이 시각에 이런 곳에 있다면 100% 선배니까.
넥타이핀 색을 확인하니 3학년이 맞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신입생?”
“네.”
“마공학 동아리 들어오려고?”
“관심이 있습니다.”
같은 말처럼 들리지만 다른 말이다.
관심만 있고 가입할 생각은 없으니까.
3학년 선배는 그 차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아니면 알고도 신경을 안 쓰는지, 그저 하던 일이나 마저 하고 싶다는 눈치였다.
“그러면 1공방이나 가서 보지, 왜 여기까지 왔어?”
나는 난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실은 거기부터 갔는데, 선배님들이 4공방부터 돌아보고 오라고…….”
“아…… 진짜.”
3학년 선배의 얼굴이 있는 대로 구겨졌다.
자기한테 일을 떠넘겼다는데 누가 좋아할까.
1군에서 떠넘긴 일이라 안 할 수도 없는 노릇.
정작 나는 1공방에 발을 들인 적도 없지만, 이런 거짓말이라도 안 해 놓으면 아예 무시로 일관할 듯해서 불가피하게 구라를 쳤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순진무구한 얼굴로 물었다.
“둘러봐도 되나요?”
“……대충 둘러보고 가. 바쁘니까 나 좀 방해하지 말고.”
“감사합니다~ 조용히 볼게요.”
“…….”
휘휘 손을 저어 보이고 다시 자기 일로 돌아간다.
공구들이 재가동하고 손이 푸르게 변한다.
곁눈질로 지켜보며 [마법공학]의 수준을 가늠했다.
‘B랭크군.’
썩어도 준치라고, 아무리 4공방 구석에 박힌 신세라도 용살학원 3학년.
주력 스킬 정도는 B랭크를 달성한 것이다.
이곳에 온 첫 번째 목표였다.
[‘복사-스킬’을 사용합니다.] [대상의 스킬 ‘마법공학(B)’을 슬롯에 등록합니다.]▷복사-스킬[2/2]
1. 허밍버드(E)
2. 마법공학(B)
B랭크 아래였다면 1공방까지 돌아가서 스킬을 따로 복사해야 했겠지만, 이 선배의 성취가 의외로 높은 덕에 두 번 일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 다음 목표.’
나는 정말로 공방을 견학하러 온 신입생인 양, 일부러 이곳저곳을 열심히 둘러보는 척했다.
‘우와! 이건 뭐지?’, ‘너무 신기하다!’를 연발하면서.
그렇게 한 바퀴를 돌고 도착한 곳은, 정체불명의 아이템들이 가득한 잡동사니의 산이었다.
양이 얼마나 많은지 쌓인 높이가 어깨까지 온다.
나는 초롱초롱 눈을 빛내는 척하며 물었다.
“선배님, 이건 뭐예요?”
“그냥 실패작들이야.”
제작 도중에 일부분이 파손되거나, 초안에 비해 결과물이 별로라 판단했거나, 재료 충당이 안 되는 등, 갖가지 이유로 만들다 만 아이템들을 쌓아 둔다.
제4공방은 반쯤 쓰레기장 역할도 겸하는 셈이다.
나는 대놓고 호기심을 드러냈다.
“와, 안에도 뭐가 많은 것 같은데, 한번 뒤져 봐도 돼요?”
“그러든가 말든가.”
허락이 떨어졌다.
한계를 넘은 귀찮음에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인 느낌이 강하지만 어쨌든 허락은 허락.
나는 잡동사니의 산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위에서부터 잡템 쪼가리들을 한 아름씩 덜어 내 옆으로 쌓고, 계속해서 더 깊은 곳으로 파고든다.
내 주위에 작은 산 여러 개가 쌓일 즈음, 손에 잡히는 게 있었다.
‘찾았다.’
축구공보다 조금 작은 정육면체.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수한 손톱만 한 정육면체들이 합쳐진 것이다.
마법공학 아이템이 제작되는 방식 중 하나인 ‘큐브’다.
자그마한 정육면체 하나하나에 복잡한 마법 회로가 새겨져 있고, 그 정육면체들을 알맞은 장소에 배치하여 아이템으로 완성하는, 일종의 입체적 설계도인 셈이다.
다만 일반적으로 큐브는 가로 셋, 세로 셋, 높이 셋의 3x3x3으로 27개, 4x4x4로 64개 설계도를 주로 사용하는데,
내 손에 들린 이것은 10x10x10이었다.
작은 정육면체가 무려 천 개.
나름 한 솜씨 하는 장인들도 건드릴 엄두를 못 내는 초고등급 설계도라는 뜻이다.
큐브를 손에 드는 즉시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서브 퀘스트:의문의 큐브]마법공학 공방에서 매우 특이한 설계도를 발견했습니다.
▷목표:설계도에 대해 조사하십시오.
▷보상:연계 퀘스트 수행 가능
[수락/거절]기나긴 연계 퀘스트의 시작이다.
설계도에 대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조사하고,
선배, 선생님, 졸업생에게 자문을 구하고,
제작에 동참할 장인들을 모으고,
재료를 구하러 이 던전 저 던전 밥 먹듯이 들어가고,
특별한 재료를 구하기 위해 보스 몬스터를 잡고…….
그런 기나긴 대장정 끝에 완성되는 것.
바로 S랭크 아이템인 [생명의 큐브]다.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는 ‘생큡’이라고 불리는 매우 강력한 아이템.
‘응, 안 해.’
문제는 수락하는 순간 최소 1년 이상 이 퀘스트에만 붙잡혀 있어야 한다는 것.
나는 곧바로 퀘스트를 거절하고 치워 버렸다.
내 목표는 오직 큐브 설계도뿐이다.
막 다시 집중하려는 3학년 선배에게 큐브를 가져갔다.
“저, 선배님. 저기에서 이런 걸 찾았는데요…….”
“……?”
자꾸 방해를 받아서 버럭 화를 내려던 선배가 내 손에 들린 큐브를 발견했다.
그러나 여전히 심드렁한 태도인 걸 보면 잡동사니에 있을 만한 아이템이라 생각하나 보다.
“설계도네. 이게 뭐?”
“10x10x10이면 엄청난 거 아니에요? 전설의 아이템?”
“완성을 해야 전설의 아이템이지. 그건 그냥 쓰레기야. 6x6x6도 완성하기 힘든데, 어떤 욕심 그득그득한 인간이 일을 벌였나 몰라.”
그 말대로, 절대로 완성되지 않을 설계도는 그저 쓰레기에 불과하다.
그러니 저렇게 신포도 보듯 하는 것이고.
나는 학구열에 불타는 신입생을 가장했다.
“저 이거 너무 재밌어 보이는데, 가져가서 뜯어봐도 돼요?”
“가져가 봤자 완성이 안 된다니까? 그게 되면 우리가 벌써 만들었지.”
“다 못 만들어도 보면서 공부 좀 하려구요. 제가 이런 거 모으는 취미가 있기도 하고…….”
선배가 ‘안 돼, 자식아!’ 비슷한 말을 하려다가 도로 입을 다물었다.
내가 적절한 타이밍에 인벤토리에서 꺼내 든 아이템을 보고.
1,000포인트를 주고 구매한 [열 촉매 시약].
마법공학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많아도 부족한 아이템이다.
“그냥 가져가긴 당연히 저도 죄송하고, 염치가 없기도 해서……. 대신 이거라도 드릴까 하는데, 어떻게 안 될까요?”
“…….”
선배의 눈이 흔들렸다.
지금쯤 머릿속이 맹렬하게 회전하는 중일 것이다.
저등급 던전 한두 번만 깨면 얻는 포인트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나에게 이 시약을 받으면 던전 한두 번을 덜 들어가도 된다.
거기에 들어갈 시간과 노력, 스트레스 등을 절약하여 온전히 마법공학에 집중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반면 저울 반대쪽에 놓인 것은 자신과 아무 관련도 없는 잡동사니 하나.
고등급 큐브 설계도라는 점이 살짝 마음에 걸리지만, 어차피 누구도 완성하지 못할 것 아닌가?
이곳에서 사라진들 누구도 찾지도, 신경 쓰지도 않을 쓰레기다.
당장 자신에게 도움이 될 1,000포인트어치 재료와 쓰레기 하나.
답이 정해져 있는 문제다.
선배가 슬그머니 손을 뻗어 [열 촉매 시약]을 챙겼다.
“……이번만 특별히 해 주는 거다. 원래 이런 거 함부로 못 가져가.”
“감사합니다, 선배님!”
“다른 데에는 절대 말하지 마라. 우리끼리만 알고 있어야 돼. 부장이 알면 그거 도로 뺏어 갈걸?”
“당연하죠.”
아무리 이 잡동사니들이 쓰레기나 다름없다 한들, 외부인에게 넘겨줄 권한은 동아리 부장만 갖고 있다.
그것을 사소한 포인트 절약을 위해 나에게 넘겨주는 것이니 가능한 비밀에 부치고 싶을 것이다.
거듭 당부하는 선배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럼 저는 들어가 볼게요. 감사합니다.”
“그래라.”
마지막까지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 4공방 문을 뒤로 닫으며 나왔다.
문 너머에서 ‘아싸! 천 포인트 굳었다!’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웬 어리숙한 신입생한테 쓰레기를 대동강 물 팔아먹듯 팔아먹었으니 신날 만도 하지.
하지만…….
‘과연 정말로 쓰레기일까?’
큐브의 연계 퀘스트를 거절한 첫 번째 이유는 시간을 지나치게 많이 잡아먹어서.
기반을 다지기에는 1학년이 가장 중요한 시기라 봐도 과언이 아닌데, 퀘스트에만 매몰되다 보면 정작 더 중요한 히든 피스들을 획득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
나 자신의 성장도 더뎌지고, 고현우와 서예인을 챙겨 줄 시간도 부족해진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내가 너무 고인물이라서 연계 퀘스트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만드는 방법을 알거든.’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