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60
60화 4주 차 공략전 (2)
대인전에서도 두 경기 연속 상대로 만나더니,
이번에는 홍연화와 파트너가 됐다.
나랑 무슨 인연이 있길래 자꾸 붙는지 모를 일이다.
‘나쁘진 않아.’
어중간한 상대와 공략전을 하느니 차라리 얘가 낫다.
유망주급이라 전투력 하나는 검증된 셈 아닌가.
전투가 필요한 부분은 다 떠넘기면 된다.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친근감이 느껴지는 구석도 있었다.
루비 마탑주는 예전 내 주류 픽이었고,
홍연화는 보면 볼수록 그 루비 마탑주를 많이 닮았다.
몇 년 젊어진 버전을 보는 것 같다.
‘표정만 비슷하면 완전 판박이인데.’
차이점이라면 나를 보는 표정.
루비 마탑주는 그 불같은 성정을 드러내듯 항상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은 분위기인 반면, 눈앞의 홍연화는 잔뜩 겁에 질려 위축된 상태다.
물론 이건 내 탓이 없잖아 있었다.
만날 때마다, 그것도 세 번이나 박살을 내 버렸으니 위축될 만도 하지.
그래도 저렇게 보자마자 지레 겁을 집어먹을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
무슨 큰 오해가 있는 게 아닐까.
지금부터라도 세상 스윗하게 대하며 차차 오해를 풀어 나가는 방법도 있겠지만,
‘굳이?’
꼭 풀어야만 하나?
지금 내 목표는 빠르고 효율적으로 퀘스트를 깨는 것이다.
어느 정도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편이 목표 달성에는 더 도움이 될 듯하다.
해서 나는 홍연화의 마음속 이미지대로 행동하기로 했다.
나를 폭군이라 생각한다면, 폭군이 되어 주리라.
섬뜩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홍연화의 얼굴이 더욱 하얗게 탈색되었다.
* * *
홍연화는 울고 싶었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전적으로 그녀의 잘못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던전동에 도착해서 매칭을 잡으려던 홍연화.
그러나 학생증을 스캔하기 직전, 그녀는 발견하고 말았다.
근처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김호를.
다행히 김호는 반대쪽을 바라보고 등을 돌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뒷모습만 보고도 홍연화의 등줄기에 오한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에게 새로운 목표가 생겨났다.
공략전 성적보다 더욱 중요한 목표가.
‘파트너만은 피해야 해.’
팀원은 랜덤으로 정해지지만, 지금 학생증을 찍었다가 만에 하나 저 괴물 같은 사내와 매칭이 잡힌다면…….
그리고 밀폐된 공간에 단둘이 된다면…….
상상만 해도 숨이 턱 막힌다.
홍연화는 언니 홍예화의 조언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오늘 공략전은 조금 기다렸다 신청하는 걸로.
김호가 다른 누군가와 함께 던전에 들어가면, 그때 자신도 팀원을 찾으면 된다.
해서 그녀는 김호를 몰래 훔쳐보며 하염없이 기다렸다.
그의 근처에 순간이동 포탈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계속 기다렸다.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홍연화의 자존심이 점점 더 구겨졌다.
그와 반비례해서 자괴감이 크기를 키워 갔다.
내가 명색이 차기 루비 마탑주가 될 사람인데, 이렇게 쥐새끼처럼 남 눈치를 봐야 하나?
다시 흘긋 김호를 보니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매칭이 잡힐 기미는 여전히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더는 못 기다려!’
두려움에 억눌리던 자존심이 거센 반발을 일으켰다.
계속 이렇게 눈치만 보지는 않겠다!
……그렇다고 김호와 파트너를 할 자신감이 생겨난 건 아니고, 작전만 슬쩍 변경했다.
잽싸게 먼저 들어가 버리는 쪽으로.
거기에 홍연화는 약간 더 잔머리를 굴렸다.
‘실전 모드로 가자.’
저자도 사람인 이상 연습 모드를 하기는 할 거다.
그러니 자신이 연습 모드를 건너뛰고 곧바로 실전에 들어간다면, 파트너가 될 일말의 가능성마저 차단할 수 있다.
초장부터 실전이 다소 불안하기는 한데, 어떻게든 몸을 비틀면 되겠지.
홍연화가 자신의 천재성에 감탄하며 학생증을 스캔하자…….
순간이동 포탈이 그녀 앞에 입을 열었다.
그리고 김호 앞에도.
홍연화의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이, 이게 왜……?’
아니겠지?
그냥 우연히 동시에 열린 거겠지?
내 파트너는 다른 어딘가에 있는 거겠지?
홍연화가 열심히 현실을 부정하는 한편, 김호는 망설임 없이 던전에 발을 들였다.
다음은 그녀가 들어갈 차례.
그러나 쉽사리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평범한 순간이동 포탈이 그녀의 눈에는 지옥 무저갱으로 통하는 입구처럼 보였다.
계속 쭈뼛거리던 홍연화가 이내 크게 심호흡을 했다.
‘후……. 그래, 들어가야지.’
이러고 있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니까.
무거운 발을 억지로 떼서 던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물론 마음 한켠에는 실낱같은 희망이 남아 있었다.
들어가면 다른 사람이 있을 거라는 희망이.
“…….”
하지만 어림도 없지.
안에서 기다리던 김호와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홍연화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 바닥을 향했다.
‘망했네…….’
설마가 사람을 잡고 말았다.
설마 김호가 실전을 신청했을 줄은.
그제야 그가 한참이나 기다린 것이 설명되었다.
이제 막 공략전이 시작된 참이라 학생들 절대다수가 연습 모드에 몰렸고, 벌써부터 실전에 들어가는 사람은 손에 꼽았다. 아니, 없었다.
파트너가 도통 나오질 않으니 계속 기다리는 것도 당연했다.
자신이 매칭을 잡자마자 파트너가 되는 것도 당연했고.
호랑이 굴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간 격이었다.
‘나 진짜 왜 그랬지.’
뒤늦은 후회가 밀려들었다.
자존심 세우지 말걸,
잔머리 굴리지 말걸,
그냥 오늘 쉬고 내일 할걸…….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후회한다고 지금 이 상황이 변하는 건 아니다.
홍연화는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상황이 어찌 됐든 이 던전 내에서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남은 몬스터 수:88]이번 공략전의 목표는 소탕.
몬스터 88마리를 다 잡으면 100% 완성도로 만점을 받는다.
공략전 교사가 ‘디테일,’ ‘꼼꼼함,’ ‘관찰력,’ 등을 강조한 것으로 보아, 이 몬스터들이 제 발로 찾아올 가능성은 작았다.
분명 던전 곳곳에 교묘하게 몸을 숨기고 있으리라.
‘어떻게 찾아볼까.’
팀원과 논의할 필요가 있었다.
기존에 팀을 이루었던 백준석은 생각하는 걸 귀찮아하는 탓에 대개 홍연화가 일방적으로 지시를 내렸었다.
무식한 검사들이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반면 김호는 그녀와 같은 캐스터 계열.
나름대로 생각하는 바가 있으리라 짐작된다.
홍연화가 논의를 위해 바닥으로 향하던 시선을 들어 올렸다.
즉시 김호의 싸늘한 시선을 마주했고,
“…….”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백준석에게는 잘만 했던 말들이 입 안에서만 맴돌았다.
홍연화가 계속 입술만 달싹이고 말을 못 하자, 김호가 짤막하게 한 단어를 내뱉었다.
“따라와라.”
“어, 어?”
그리고 저 혼자 휘적휘적 걸어가기 시작했다.
홍연화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영문도 모르고 뒤따랐다.
한동안 빠른 걸음으로 나아가던 김호가 또 저 혼자 멈춰 서더니, 숲 한쪽의 덤불을 바라보았다.
홍연화가 같은 곳을 응시했으나 별다른 특이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데.’
그 순간, 김호가 발끝으로 근처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를 툭 걷어찼다.
그러자 돌멩이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쏘아져 나가 덤불 너머로 사라졌고,
“꽤액!”
외마디 단말마와 함께 남은 몬스터 숫자가 하나 줄어들었다.
홍연화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있었네?’
“케륵!”
놀라는 것도 잠시, 덤불 안에서 고블린 세 마리가 튀어나왔다.
매복했다가 동족의 죽음에 분개하여 모습을 드러낸 듯했다.
김호는 놈들을 한번 일별하더니,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고블린들의 이목은 남아 있는 홍연화에게 쏠렸고.
홍연화는 두 눈을 끔벅거리며, 떠나는 김호와 달려오는 고블린들을 번갈아 보았다.
“아니, 저기.”
이래 놓고 그냥 가 버린다고?
어이없음이 정도를 지나쳐서 화도 나지 않았다.
루비가 번쩍 붉은빛을 발하고,
– 퍼펑!
[남은 몬스터 수:84]고블린 세 마리가 숯덩이로 화했다.
사실 고블린 따위는 그녀 혼자서도 해결할 수 있는 잡몹이기는 했다.
그렇게 알아서 대강 납득을 한 다음 시선을 돌려 보니, 김호가 벌써 저만치 앞서가고 있었다.
홍연화는 놓칠세라 전력 질주로 달려갔다.
겨우 따라잡았을 즈음.
김호의 손에는 어디서 주웠는지 큼지막한 짱돌이 들려 있었다.
그것을 가차 없이 인근 덤불에 집어 던지자, 또 성난 고블린 네 마리가 튀어나왔다.
이미 한번 겪어 본 터라, 홍연화는 당황하지 않고 곧바로 마법을 시전했다.
– 퍼펑!
[남은 몬스터 수:80]돌아보니 그 짧은 시간에 또 한참 거리를 벌린 김호.
홍연화가 결국 폭발했다.
솔직히 그녀의 성질머리에 이만큼 참았으면 많이 참은 것이다.
‘야!! 같이 좀 가자!! 공략 혼자서 하냐!!’
—라는 말은 마음속으로만 했고.
실제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이랬다.
“야, 같이 좀.”
김호를 상대로는 신기하게도 볼륨이 자동으로 조절된다.
그 조그마한 말이 들렸는지 그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걸음걸이를 늦춰 주었다.
‘진짜 늦춰 주네…….’
새삼스럽게 저 남자도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는 걸 확인한 홍연화였다.
어쨌든 슬슬 패턴이 몸에 익어 간다.
김호가 앞서서 걷다가 돌을 던지거나 무형의 힘을 써서 덤불이나 나무 위, 바위 뒤편 등의 매복지를 자극하면, 그에 반응해서 몬스터가 튀어나온다.
그리고 뒤처리는 홍연화의 몫.
대개 고블린이나 오크 따위의 저등급 몬스터라 어려울 건 없었다.
– 화르르륵!
“케륵!”
몬스터들이 모두 같은 반응을 보인 건 아니었다.
간혹 발각되자마자 등을 돌려 도망치려는 놈도 있었다.
[소탕] 규칙에서는 이런 놈이 골칫거리인데, 그렇게 도망쳐서 다른 곳에 숨으면 이미 갔던 장소를 또 돌아봐야 할 일도 생기기 때문이다.“케륵?”
그러나 도주는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한 줄기 바람이 불어오고, 놈들은 마치 투명한 벽에 막히기라도 한 것처럼 나아가지 못했다.
그리고 이내 홍연화가 소환한 화염에 삼켜져 버렸다.
– 화르르륵!
몇 번 반복하니, 처음에는 뭐가 숨겨져 있는지 감도 못 잡던 홍연화의 눈에도 조금씩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몬스터들이 매복한 곳에는 특유의 위화감이 존재했다.
보면 볼수록 그 위화감이 점점 더 눈에 잘 띈다.
저도 모르게 관찰력이 쑥쑥 늘어나는 것이다.
홍연화가 김호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거 이상……한데?’
뭐 이렇게 쉽지?
워낙 성미가 급한 그녀라 소탕전 같은 느긋하고 세심한 작업과는 거리가 멀다.
해서 던전에 입장할 때만 해도 고생 좀 하겠구나 예상했었다.
그런데 실상은 김호가 가는 곳마다 몬스터가 튀어나오니, 그의 뒤만 졸졸 따라다니면 전부 해결되었다.
김호는 공략전 내내 일 초도 고민하지 않고 다음 장소, 또 다음 장소로 거침없이 나아간다.
마치 이런 것을 수십 수백 번은 해 본 것처럼 능숙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수십 수백 번 해 봤을 리가 없으니, 눈썰미가 엄청나게 좋거나, 그에 준하는 감지 계열 스킬을 갖고 있는 게 분명했다.
홍연화가 머릿속으로 김호의 정보를 추가했다.
엄청난 마법 방어력, 극에 달한 권법, 그리고 매우 높은 수준의 감지 능력.
“…….”
그러던 와중 또 김호가 제자리에 정지했다.
홍연화가 따라 정지해서 전방을 살펴보니, 깊게 파인 웅덩이 같은 지형이 그들 앞에 자리했다.
이 대수림의 지형이 불규칙적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편이기는 했는데, 저건 유난히 부자연스럽게 보였다.
누가 봐도 수상할 정도로.
김호가 손을 가볍게 휘젓자,
– 퍼서석,
과연 웅덩이 한쪽의 흙이 무너져 내리며 토굴 입구가 드러났다.
홍연화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저게 보였다고?’
내려가서 자세히 살펴볼 만하다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단번에 찾아낼 줄은.
당황스러움을 뒤로하고 홍연화 역시 토굴을 관찰했다.
크기는 고블린들에 맞춰져 있어, 사람이 들어가려면 불편하게 몸을 웅크려야 할 것 같았다.
그때, 김호가 입을 열었다.
“확인해 봐라.”
“……내가?”
“싫은가?”
김호의 표정이 점점 굳어져 갔다.
홍연화가 본능적인 위기를 느끼고 재빨리 답했다.
“가, 가면 될 거 아냐. 가면…….”
그리고 툴툴거리면서 토굴 안으로 기어들어 갔다.
사실 ‘확인해 보라’는 말은 저 안으로 화염 마법을 써 보라는 뜻이었으나, 홍연화로서는 그 사실을 알아챌 도리가 없었다.
그녀가 들어가고 잠시 후,
– 펑! 퍼펑!
[남은 몬스터 수:35]안쪽에서 폭발음이 몇 번 울리고 몬스터 숫자가 제법 많이 줄어들었다.
뒤이어 자욱한 연기와 함께 홍연화가 토굴에서 기어 나왔다.
온몸이 흙투성이로 지저분하고, 불쾌한 심정을 대변하듯 오만상을 쓰고 있다.
‘내가 왜 이런 짓을 해야 되는데!’
그러나 김호와 시선이 마주치자 재빨리 표정 관리를 했다.
‘……생각해 보니 이런 짓 좀 할 수도 있는 것 같아.’
여태 저 남자 덕분에 편하게 갔으니까.
빠르게 합리화를 마친다.
“…….”
김호는 그런 홍연화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말없이 다음 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홍연화가 황급히 그 뒤를 졸졸 따라갔다.
* * *
폭풍처럼 몰아치던 공략전도 어느덧 끝이 보인다.
마지막 두 마리는 힘들게 찾지 않아도 될 듯했다.
바로 눈앞에 있었으니까.
트롤.
성인 남성보다 조금 더 체구가 우람한 중형 몬스터다.
재생력이 높고 나름의 마법 저항력까지 갖춰서 마법사가 상대하기 까다로운 편이다.
그런 트롤이 두 마리.
심지어 이놈들은 한눈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게 보스 몬스터 분위기를 풀풀 풍겼다.
한 놈은 큼지막한 곤봉, 다른 놈은 쌍도끼를 들었다.
홍연화가 김호에게 조심스레 어떻게 할지 묻는 눈빛을 보냈다.
김호가 그 눈빛을 몇 초간 마주 보더니 짤막하게 답했다.
“싸워 봐라.”
“……나 혼자?”
“…….”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홍연화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조금이라도 기대한 내가 바보지.
저 남자가 친절하게 합을 맞춰 줄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홍연화가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곧 그녀의 주변이 서서히 열기로 달아올랐다.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속 트롤들이 흔들거렸다.
‘나 혼자서도 충분해.’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