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22
22화. 거짓 잔치의 끝
황산오웅(黃山五雄). 안휘 황산 일대에 이름 높은 다섯 의형제다.
황태정도 딴에는 일류의 경지에 이른 무인이라고 하지만 이들에 비하면 손색이 있었다. 이들 다섯 전부가 확실한 일류였다.
그 자신과 한 사람만 같이 가도 간판이나 겨우 유지하는 호가무관을 끝내버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발끈한 황태정은 기어코 이들 다섯을 모두 이끌고 이른 아침부터 성난 걸음을 했다.
아주 호가무관의 주춧돌까지 들어내 버릴 작정이다.
‘흥, 자비를 베풀어 이름이라도 유지시켜주었으면 고마운 줄을 알아야지. 감히 뒤통수를 쳐!’
상화촌이 이제 멀지 않았다. 앞에 보이는 언덕길만 넘어서면 바로 그곳이다.
“응?”
황태정은 문득 걸음을 멈췄다. 언덕 위의 마른 나무 앞에 한 사내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오래되어 바랜 장포를 걸치고, 머리카락을 산발하고 있었다. 얼핏 보자면 비렁뱅이처럼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는 씩씩거리는 황태정 앞으로 나서며 손을 모았다.
“황가무관의 분들이시오?”
“응? 그렇다만.”
“혹시, 황 관주님이십니까?”
사내의 알은체에 황태정은 눈살을 찌푸렸다.
“나를 아는가?”
“그럼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다려? 나를?”
황태정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무관 제자들이 비렁뱅이 몰골을 한 자에게 당했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는 흠칫 물러서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네놈이 바로 그 흉수로구나!”
“흉수라니요?”
“이놈! 네놈이 지금 발뺌을 하려는 것이냐? 호가무관의 이야기를 들먹이며 우리 아이들을 그 지경으로 만들어놓고!”
“음, 제가 남긴 말씀은 듣지 못하셨습니까?”
“뭐? 무슨 헛소리냐!”
흥분한 황태정이었다. 그 모습에 사내, 소명은 눈살을 찌푸렸다.
“음, 얘기가 전해지지 않은 모양이군요. 뭐, 괜찮습니다. 이렇게 황 관주님을 뵈었으니 다시 말씀드리지요.”
“이, 이놈이…….”
차분한 그 모습이 황태정의 분노를 더욱 부채질했다. 살집 두둑한 얼굴이 썩은 돼지 간처럼 거무죽죽하게 물들었다.
“오신 걸음대로 가셔서 호 관주님께 사죄를 올리십시오.”
“하, 하하.”
황태정은 신기한 경험을 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치니 오히려 화가 나지 않는 것이다. 벌린 입에서 절로 웃음이 터졌다.
크게 웃은 그는 시뻘건 눈으로 소명을 노려보았다.
“그래, 남길 말은 그게 전부이더냐?”
“그렇습니다.”
“오냐, 저세상에서 사죄하마!”
크게 외치며 당장 출수했다. 서너 걸음을 한 걸음에 뛰어들며 일권을 내쳤다. 일류경에 오른 무인답게 매서운 권력이었다. 그러나 소명은 선 자리에서 손바닥으로 그의 주먹을 가볍게 툭 쳤다.
그 한 수에 황태정의 일권이 방향을 잃고 그의 중심마저 기우뚱했다.
“엇?”
입에서 당황한 소리가 새었다. 소명은 그대로 웃었다.
“오신 걸음대로 가셔서 사죄하시지요.”
“이, 이…….”
더없이 태연한 모습에 황태정은 말 그대로 분기탱천했다. 그러나 뒤에 있던 황산오웅이 발끈하는 그의 발목을 잡았다.
“황 관주!”
“음?”
발작하려던 그는 멈칫하여 황산오웅을 돌아보았다. 그들은 묵직한 얼굴을 한 채 앞으로 나섰다.
“황 관주께선 뒤로 물러서시오.”
“아니, 갑자기 왜…….”
그들은 당황하는 황태정을 돌아보지 않았다. 다섯의 얼굴이 상당히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오웅 중 네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한 걸음 옮기는 것과 동시에 자연스레 소명을 둘러쌌다.
“너는 누구냐?”
“상화촌의 소명라고 합니다.”
“소명?”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다.
“왜 황가무관의 일에 나서는 것인가?”
“호가무관의 일을 좌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러서라.”
“정히 손을 쓰시렵니까?”
둘은 서로 다른 말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의미하는 것은 다르지 않았다. 결국, 손속을 나누어야 한다는 뜻이다.
오웅의 다섯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그들이 보기에 눈앞의 소명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허름하기 그지없지만, 강호 경험이 그들에게 위험을 말해주고 있었다.
소명이 보이는 차분함은 단순한 허세가 아닌 것이다. 그들 다섯이 일시에 발한 기세를 흔적도 없이 흩어버리는 상대라면 더욱.
소명은 다섯의 눈짓을 빠르게 잡아냈다.
‘아까부터 귀찮게 하더니만.’
마주한 순간부터 겁박하듯이 농도 짙은 살기를 계속해서 발하던 다섯이었다. 그들은 일단 한 사내에게 눈짓을 주었다. 황태정의 뒤편에 자리한 사내였다. 그가 이들 다섯을 이끄는 입장인 것이다.
머리를 알았으니. 소명이 먼저 움직였다. 장포 자락이 크게 펄럭였다.
“헛!”
그의 움직임에는 어떤 전조도 없었다. 어느 찰나에 황태정의 코앞으로 짓쳐들어갔다. 중간의 모습을 눈에 담은 자는 아무도 없었다. 소명의 앞을 막고 있던 오웅의 둘째도 정신 차렸을 때는 이미 소명을 놓친 뒤였다.
황태정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는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소명은 그대로 주먹을 내질렀다. 그리고 동시에 다른 손으로 황태정의 뒤에서 미간을 향해 뻗어오는 다른 주먹을 맞잡았다.
터턱!
소명과 오웅 중 첫째의 주먹이 각기 황태정의 귀밑을 스쳤다. 그들은 서로의 주먹을 단단히 맞잡은 채 멈췄다. 그들 사이에서 황태정은 바짝 얼어버렸다.
다른 네 사내가 한발 늦게 소명을 둘러쌌다.
“손속이 제법이시군.”
소명의 주먹을 잡은 사내가 나직이 말했다.
굳은 눈초리에는 지금껏 품고 있던 여유가 조금도 남지 않았다.
소명은 말없이 싱긋 웃어 보였다. 그리고 좌우에 늘어선 사내들을 빠르게 살폈다. 그들은 공력을 끌어올린 채 긴장한 낯으로 서서히 맴돌았다.
‘다섯 모두 일류라.’
오웅 중 맏이인 철장권 도벽성은 일그러진 눈으로 소명을 노려보았다. 만만치 않은 권력이다. 두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런 개 같은!’
욕지거리가 절로 일었다.
내지른 주먹은 무슨 철벽에 부딪힌 듯 고통스럽고, 막은 손바닥은 그대로 꿰뚫리는 듯했다.
철장권이라는 명호대로 상승의 철장수를 익힌 도벽성이었다. 그런데 앞에 선 무명 사내의 권력 하나 감당하지 못하다니.
그대로 버티려는 순간, 그들 사이에서 멍하니 서 있던 황태정의 신형이 크게 휘청거렸다. 오웅들이 크게 발하는 기세를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오금이 풀린 그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황태정의 신형이 쑥 가라앉는 순간, 소명의 손에서 힘이 확 풀렸다. 맞버티던 힘이 사라지자 도벽성은 그만 자세가 흐트러졌다.
“흡!”
급히 중심을 바로잡으려 했지만, 상대가 이미 손을 쓴 뒤였다. 도벽성은 엉거주춤한 모습 그대로 굳어버렸다. 놀라 치뜬 눈은 소명의 빠른 뒷모습을 겨우 쫓았다.
소명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큰 덩치의 사내에게로 파고들었다. 오웅 중 막내인 거웅도 계양벽이다. 다가서는 소명의 그림자에 부리부리한 큰 눈을 치켜뜨며 당장 큰 칼을 휘둘렀다. 그러나 소명이 이미 그의 품으로 파고든 이후였다.
처음의 묵직한 일권은 단순히 보여주기 위해서였다는 듯, 순식간에 계양벽의 인중을 다섯 차례나 가격했다.
타타타타탁!
힘이 실리지 않은 가벼운 단타(短打)였지만 연이어 두들기니 도리가 없었다. 단단한 덩치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계양벽은 신음 소리 한 번 흘리지 못하고 눈을 하얗게 뒤집었다. 소명은 그의 허리춤을 움켜쥐고는 이리저리 휘돌렸다. 축 늘어진 거대한 몸뚱이로 달려들려는 다른 삼웅의 앞을 막아섰다.
“이, 이런!”
“젠장.”
“막내야!”
외쳐보지만 축 늘어진 계양벽은 정신 차릴 줄을 몰랐다.
“빌어먹을!”
한순간에 도벽성과 계양벽이 제압당해버렸으니. 황산오웅이란 이름에 걸맞지 않은 일이었다.
이십 년 강호행 동안 이토록 참담한 꼴은 당한 적이 없었다. 빠득 이를 갈아붙였지만 서두르지는 않았다. 전에 없는 강적이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허름한 행색을 하고 있지만 상대는 족히 일류 이상의 고수다. 아니, 무위보다 경계할 점은 따로 있었다. 그는 오웅, 자신들 못지않은 어쩌면 그 이상의 경험을 지닌 것이 분명했다.
망할 작자는 혼절한 막내의 덩치 뒤에서 이쪽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차분한 눈동자, 보는 것만으로도 성질이 났다.
소명은 흥분한 세 사내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이대로 힘이 빠지기를 기다리기라도 하려는 것인가. 아쉽게도, 시간을 오래 끌 생각은 없었다.
“흡!”
힘을 쓰며 기절한 덩치를 앞세워 왁 밀어붙였다. 사내들이 급히 물러섰다.
흩어지는 그들을 쫓아, 소명은 한 걸음에 거리를 바짝 좁히며 어깨를 뒤틀었다. 가슴팍에 틀어박히는 고격(靠擊). 켁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사내가 튕겨나가는 것과 동시에 소명은 신형을 돌렸다. 바로 날카로운 공격이 몰아쳐왔다. 머리를 노린 발차기다. 발끝에 묵직한 경력이 실려 있다. 소명은 손을 들어 머리를 막으며 다른 손을 앞으로 밀어붙였다.
상대는 막은 팔과 소명의 머리를 한꺼번에 부숴버릴 작정이었다. 위력도 그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헙!”
상대의 당황한 소리가 들렸다. 그의 발차기는 소명의 손에 덥석 잡혔다. 동시에 다른 주먹이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끅!”
숨 막히는 소리와 동시에 몸이 축 늘어졌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
오웅 중 셋째인 단봉철우 선평금뿐이었다. 연이어 달려들려 했으나 두 형제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바람에 움직일 순간을 놓쳐버린 것이다.
그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미 전의를 잃어 보였지만, 그렇다고 물러설 것 같지도 않았다.
소명은 허리를 세우고 그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그 모습에 선평금은 자세를 잡은 채, 주춤주춤 물러섰다. 앞으로 내민 쌍단봉의 끝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 이런…… 젠장!”
그는 결국 욕지거리를 거칠게 내뱉으며 냅다 달려들었다. 좌우의 단봉이 빠르게 움직였다. 허공을 찢는 파공성이 날카롭게 울렸다. 그러나 소명은 걷는 동작 그대로 상체만을 흔들어 단봉의 모든 궤적을 흘려버렸다.
“헉!”
헛손질로 인해 앞으로 기울어진 상대를 소명은 부축하듯이 안았다. 그리고 앞으로 디딘 발을 한차례 비틀었다.
둥!
낮은 울림에 상대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의 손에서 두 단봉이 툭 떨어졌다. 소명은 축 늘어진 그를 조심스레 바닥에 뉘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섯 모두 뻗어 있다. 아니, 여섯이다. 소명은 성큼 걸어 구석에 있는 황태정의 목덜미를 붙잡아 일으켰다.
“으으…….”
“정신이 좀 드십니까, 황 관주님?”
황태정은 소명의 목소리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한층 두렵게 다가왔다. 그들이 보내준 무인 다섯을 때려눕히는 것을 똑똑히 보지 않았던가.
“누, 누구요, 당신은?”
“말씀드렸다시피, 상화촌의 소명라고 하는 졸자입니다.”
소명은 씩 웃어 보였다. 감정 없는 미소에 황태정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제야 깨달았다. 그는 상대를 잘못 건드린 것이다.
소명은 나직이 물었다.
“누가 있습니까?”
“뭐, 뭐가 말이오?”
“저런, 같은 질문을 여러 번 하는 것만큼 지루한 일도 없는데요.”
소명은 쓴웃음을 머금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겁먹은 황태정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위협이었다.
황가무관이나 황태정 정도의 위인이 일류의 무인을 다섯씩이나 부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과연 그 뒤에서 누가 사주했을지.
소명의 눈길에 황태정은 비명처럼 소리를 높였다.
“무가련(武家聯)! 무가련이오!”
“무가련?”
“그렇소, 무가련이오.”
뜻밖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무가련은 하남, 하북, 안휘 일대에서 무림세가라 칭하는 다섯 가문의 연합을 뜻했다. 그곳이 딱히 주목할 것 없는 상화촌의 작은 무관인 호가무관을 겁박할 이유가 무엇이 있단 말인가.
소명은 굳이 캐묻지 않고 황태정의 말을 들었다.
하남 일대에 가장 큰 위명을 떨치는 것은 다름 아닌 숭산의 소림이다. 일컬어 천하공부출소림(天下功夫出少林)이라 하지 않던가. 그러나 소림사는 구름 속의 신룡과 같은 존재. 여간한 일이 아니고서는 소림이란 이름이 산문을 벗어나는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소림의 위명이 천하에 넓게 드리우는 것은 소림 속가가 있기 때문이다.
구파라 불리는 다른 무파도 있지만 소림 속가라는 이름의 무게는 크게 달랐다. 천하 각지에 흩어져 있는 소림 속가와 지파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달리 소림을 천하제일이라 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 소림본산이 자리한 하남 땅에는 그 위세가 고스란했다. 소림 속가의 연합인 등용문이 또한 하남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남에도 세력권을 넓히고자 하는 무가련으로서는 좋은 일이 아니었다.
하여, 등용문의 기반이라 할 수 있는 제반 무관들을 흡수, 견제함으로써 등용문을 견제하려 하는 것이다. 그중의 하나로 황태정이 선택된 셈이었다.
황태정은 무가련에서 계획해준 대로 무관을 열고, 보내주는 제자들을 받아들였으며, 호가무관과 겨룬 것이었다.
구구절절한 사연을 다 듣고, 소명은 가만히 물었다.
“이제 어쩌실 테요?”
“나, 나는 다 필요 없소. 그저 고향으로 돌아가겠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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