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ocalypse became the strongest Alba RAW novel - Chapter 90
90화-시간을 줘야겠지
나는 갑옷의 소환을 해제했다.
“조 과장님! 대구에 안 계시고 왜 여기에 계십니까?”
베어랜드에서부터 함께 했다가 대구에서 헤어진 조위필 과장이다.
대구에서 헤어진 사람을 부산에서 보게 되니 너무 신기했다.
대구와 부산이 아주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지금 같은 세상엔 이 정도 거리를 이동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조금 마른 걸 빼면 크게 달라진 점이 없는 조과장은 헬멧을 벗고 씁쓸하게 웃었다.
“그동안 여러 일이 있었어. 다른 그룹에 습격도 당했고···어쩌다 보니 여기 와 있네···. 그래도 덕분에 진웅이 자네를 만나지 않았나?”
“예.”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고, 조 과장은 조금 과장되게 목소리 톤을 높여 이야기했다.
“그동안 진웅이 자네 소문을 들었어. 서울에 가장 최근에 들은 건 게이트를 파괴한 사람이 분홍색 곰 인형 옷을 입었다는 이야기였어. 자네가 맞지?”
“예. 저도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조 과장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웃었다.
“하하, 내가 생전 유명한 사람을 볼 일이 없었는데, 이런 세상이 되니 만나게 되네. 진웅이 자네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늘 해왔는데 이렇게 대단하고 유명해질 줄은 몰랐네.”
조 과장이 웃으며 이야기하는 데 한 경찰이 조 과장에게 조용히 이야기했다.
“저, 이제 철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분도 같이 가십니까?”
조 과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같이 가자고 제의했다.
“진웅이, 우리 임시캠프로 같이 갈 텐가?”
“임시캠프요?”
“어. 이 근처에 있는 병원에 우리가 며칠 묵으면서 정찰하고 있었거든. 늦었으니까 오늘은 같이 가서 쉬자고.”
“예. 좋습니다.”
나는 조 과장과 그 일행들을 따라나섰다.
우리 둘은 뒤에서 밀린 이야기를 하며 걸었다.
·
·
·
대구의 그룹은 다른 그룹의 습격에 와해 되었다고 한다.
나중에 지자체 그룹과 3군단이 같이 공격해서 해체 시켰다는 걸 보니 내가 하동에서 싸웠던 판초 우의를 입은 강도들의 원래 그룹인 것 같다.
같이 대구에 들어갔던 이 엽사 일행이나 교회 사람들의 소식은 모르는 상태로 가족들과 울산으로 피했다가 이 지자체 그룹에 합류해서 부산에 자리 잡았다.
그래도 가족들은 모두 무사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다행스러웠다.
가족을 지키니 어려운 시대라서 더 그랬다.
그렇게 대화하다 보니 한 시간이 조금 안 되어서 작은 병원에 도착했다.
일행들은 병원의 침상이나 보조 침상, 소파에 짐을 풀고 누웠고 나와 조 과장은 다른 사람들의 배려로 원장실에 자리 잡았다.
각자 텐트를 펼치고 간단히 허기를 때우며 대화를 이어갔다.
“너무 내 이야기만 많이 한 것 같네. 진웅이 자네 이야기를 좀 해봐. 가족은 잘 만났나? 어떻게 지냈어?”
조 과장의 질문에 가족 이야기를 했다.
처음엔 이야기하는 것조차 꺼려졌는데 이제는 좀 편해졌다.
“가족···어머니를 만났습니다. 일 년 전에 돌아가셨고요.”
“저런···. 괜찮나? 마음 정리는 다 됐고?”
조심스럽게 말하는 조 과장에게 슬며시 웃어 보였다.
정말로 이제는 괜찮다.
“예, 다 정리됐어요. 이제는 괜찮아요.”
“그래···. 다행이네.”
분위기를 환기하려고 일부러 밝게 이야기했다.
“뭐, 그 이후엔 이런저런 일을 하다가 강원도에 가서 게이트를 파괴하고 그랬죠.”
“진웅이, 자넨 계속 혼자 다닌 건가? 어디 속한 그룹이나 동료들은 없고?”
나는 피식 웃었다.
“그룹은 없지만, 집은 있어요.”
“집? 지금 이런 세상에?”
“북한산 밑에 카페 건물이 하나 있는데 주변 세력들이 내 소유권을 인정해주고 건물과 앞산을 불가침 지역으로 지정했어요.”
조 과장은 신기해했다.
“하하, 그 나이에 건물주가 된 거네?”
“예, 그리고 건물 주변에 대장장이나 상인 같은 보조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요. 지금도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으니까 나중에 가보면 재미있을 거예요.”
“그래, 나중에 건물 구경하러 한번 가봐야겠네.”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조 과장은 문득 궁금해진 듯 물었다.
“다른 사람들 소식은 알지 못하나?”
“안성희는 세종시에 있는 그룹에 들어가 있고요. 얼마 전에는 유순태를 만났어요.”
유순태 이야기에 조 과장 눈이 동그래졌다.
“유순태를? 뭐 하면서 살았다는데?”
“정처 없이 다니며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그런 사람들과 싸우고 다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인지 몰라도 얼굴이 좋아 보였어요.”
내 대답에 조과장은 마음이 무거워진 것 같았다.
“음···. 그래, 그렇게 됐구먼.”
혼자 잠시 생각하던 조 과장은 다시 고개를 들고 물었다.
“그나저나 부산엔 어떻게 오게 된 건가?”
“여기에 일광교의 5성 사도라고 부르는 고위 사제가 한 명 있습니다. 그자를 찾아왔습니다.”
일광교의 이름을 듣자 표정이 굳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지방과는 달리 여기엔 일광교가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은 것 같다.
누가 봐도 광신도 같은 사람들이니 충격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일광교···. 그런 자들을 여기서는 볼 일 없을 거로 생각했는데, 아까 수류탄을 들고 뛰어드는 사람들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네. 광신도들이었어.”
“그뿐만 아니라 그 사람들이 이상한 괴물들을 불러내더군요. 게이트 비슷한 걸 만들어 내려는 것 같기도 하고요.”
“세상에 망조가 드니 별 이상한 놈들이 다 나오네. 그놈들은 주로 지하에서 튀어나오겠지?”
좀비들은 많이 봤겠지만, 일광교나 그들이 불러내는 헤카톤 킬리오이를 본 적은 없었을 것 같다.
손만 있는 놈들에, 머리만 있는 놈, 다리만 있는 놈들에, 늑대나 사자, 악어에 게까지 너무 다양한 괴물들이 나왔다.
“예, 그래서 지하철을 수색했었습니다. 역시 괴물들이나 좀비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누가 지하철 입구를 다 막은 거죠? 적어도 순찰은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조 과장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3군단이 주도해서 막은 것으로 아네. 실제로 그 이후에 좀비가 줄어들었다고 알고 있어.”
“막을 수는 있는데 정찰할 만한 최소한의 통로도 만들어 두지 않는 건 좀 이상하네요.”
“내일 날이 밝으면 우리 본부로 가서 대장하고 한번 이야기해 보자고.”
조 과장이 아는 일이 많지 않았다.
그 말대로 대장이나 지휘자를 만나야겠다.
“어떤 사람인가요?”
“울산시청의 공무원인데 그 사람 밑에 경찰이나 소방관들이 모였어. 나쁘지 않은 사람이고 우리보다는 정보가 많을 테니 진웅이 자네가 찾는 그 사도인가 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물어보자고.”
그룹을 조직하려는 사람은 본인의 무력이 강하거나 세력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 더 유리할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경찰이나 소방관들이 아닌 공무원이 조직을 지휘한다는 건 없는 일은 아니지만 특이하기는 한 일이다.
흥미로웠다.
“예, 알겠습니다.”
***
몇 시간 자고 일어난 다음 날 아침 일찍 캠프를 정리하고 이동했다.
지자체 그룹은 해운대의 한 체육관을 중심으로 주변 건물에 나눠서 주둔해 있다.
조 과장처럼 가족들이 있는 사람들은 바로 옆 초등학교 건물에 일반 각성자들은 체육관 옆 건물에 나눠서 있고, 경찰이나 소방관들은 체육관 물을 다 뺀 수영장에서 지낸다고 한다.
나 같은 외부인에게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비밀로 해야 할 내용이라면 조 과장이 이야기하지는 않을 것이고 주변의 다른 사람도 그냥 듣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모인 그룹마다 분위기가 다 다르긴 하지만 이 그룹은 조금 더 자유로운 것으로 보였다.
정오 무렵 도착한 이 해운대그룹의 본거지를 통과하며 그 자유로움을 느꼈다.
가족들이 있는 사람이 머문다는 초등학교에는 아이들과 비 각성자들이 돌아다녔다.
내가 보기엔 무방비에 가까웠지만 큰 문제 없으니 저러는 거겠지 싶었다.
초등학교 운동장과 화단을 밭으로 꾸민 것도 보였다.
겨울이라 대부분의 텃밭은 방치되었지만, 한쪽 구석에 작은 비닐하우스도 있었다.
초등학교를 지나서 주차장에 들어간 일행은 각자 흩어졌다.
경찰은 경찰대로 다른 각성자들은 각성자들대로 자신들이 머무는 곳으로 향했고 조 과장은 나를 이곳의 대장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마땅한 호칭이 없어서 그냥 대장이라고 부르는데 대장은 좀비 사태 이전엔 4급 서기관이었어. 4급 서기관은 군대로 치면 대령급이지. 소방관 중에는 소방정, 경찰은 총경이 다 비슷한 계급이라고 보면 돼.”
조 과장의 설명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 과장을 아직도 조 과장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이제는 크게 의미 없는 계급이지만 알아두어서 나쁠 건 없다.
“그렇군요.”
“두 사람 인사시키고 나는 가족들한테 가 있을 거야. 이야기 끝내고 가능하면 식사나 같이하자고.”
“예, 저도 좋습니다.”
곧 조 과장은 4층의 한 사무실 문을 두드리고 열었다.
군 조직이나 이런 지자체 그룹들의 경우 지휘관들이 다들 피곤한 얼굴로 수기로 작성한 서류들을 살펴보는 게 어째 다들 비슷했다.
50대로 보이는 남자는 야구 유니폼 같은 옷에 방탄조끼를 입고 있었다.
덩치도 큰 게 방탄조끼만 빼면 어디 야구동호회의 평범한 회원으로 보였다.
책상에서 서류를 읽고 있는 남자에게 조 과장이 나를 소개했다.
“대장! 이 친구가 내가 여러 번 말한 그 친구예요!”
남자는 무슨 일이냐며 멀뚱하게 조 과장을 보다가 시선을 돌려 나를 보고 눈이 동그래졌다.
“여러 번 말했다고? 그게, 무슨···아! 게이트를 파괴했다던 그 친구?”
“예, 맞아요. 어젯밤 지하철역에서 나온 좀비들과 싸우다가 만났어요.”
고개를 끄덕이던 남자는 좀비 이야기에 또 놀라서 되물었다.
“지하철에서 좀비들이 나왔다고?”
“그 이야기는 이 친구한테 더 들어 보세요.”
“아, 그래 며칠 나갔다 왔지? 그래요. 식구들 만나야지. 가봐요.”
“예, 가보겠습니다.”
조 과장은 남자에게 인사하고 내 어깨를 두드리고 나갔다.
약간 어색해진 분위기에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나는 부영호라고 합니다. 이전에는 울산시 4급 서기관 공무원이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이 해운대그룹의 지휘를 맡고 있습니다.”
“예, 반갑습니다. 전 진웅이라고 합니다.”
부영호는 나를 흥미롭게 보면서 이야기했다.
“조위필, 조 과장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그 친구가 보기에 좀비 사태 이후에 본 가장 강한 사람이라더군요. 그냥 그저 그런 허풍이라고 생각했는데 게이트를 파괴한 사람에 관한 소문이 들려왔고 알고 보니 그게 우리가 조 과장에게 많이 듣던 진웅 씨더군요.”
기대감 어린 눈빛은 늘 부담스럽다.
더욱이 50대 아저씨의 눈빛이라 더 부담스러웠다.
“소문이 조금 과장 된 겁니다. 게이트는 완전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 불완전한 게이트를 다른 사람들은 파괴하지 못했다고 들었습니다. 아니, 접근도 못 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기로는 게이트를 파괴한 유일한 사람이 진웅 씨, 당신 혼자입니다.”
부영호의 말은 부담스러웠지만 사실이기는 했다.
“아직은 그건 맞는 것 같긴 합니다.”
“조 과장 말로는 좀비에 대해 할 말이 있다고 하던데요?”
“아, 예 그건···.”
나는 부영호에게 일광교와 그 다섯 사도가 피의 땅을 인위적으로 만들고 괴물을 불러올 문을 열려 한다는 걸 알려주었다.
거기에 어제 만났던 스켈로스라는 다리가 수백 개인 괴물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지하철을 누가 막도록 지시했는지 물었다.
“흠, 당시엔 지하철에서 좀비뿐만 아니라 악어들도 나올 때였으니까 지하철의 모든 출구를 막고 그들을 고사 시키자는 게 특별히 이상한 의견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몇 개월간 고립되어있던 좀비는 쇠약해진 채로 가사 상태에 빠진 것도 볼 수 있었습니다.”
부영호의 이야기에 예전 평택 미군기지에서 본 창고에 갇혀있던 좀비들을 떠 올렸다.
“그렇다면 딱히 의도가 있는 게 아닐 수도 있겠군요?”
“그건···. 음, 의도가 없더라도 한번 살펴볼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부영호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야기했다.
“일단 우리 영역 안에 있는 지하철역은 우리가 확인 하겠습니다. 중립지역이 문제인데 진웅 씨가 조 과장과 같이 3군단 장 소령에게 다시 이야기해 주십시오. 일단 실체를 확인했으니 장 소령도 거부하진 않을 겁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영호의 말대로 피의 땅과 스켈로스, 좀비들을 확인했으니 장화진 소령도 내 말을 믿을 것이다.
내 말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조 과장이 같이 가는 것이니 만약 끝까지 나를 믿지 못해도 이 해운대그룹의 뜻을 거부하지는 못할 거다.
“알겠습니다. 조 과장님도 가족들을 만나야 하니 조금 뒤에 찾아가겠습니다.”
부영호는 책상 서랍에서 배지 하나를 꺼내서 넘겨줬다.
“예, 그러시죠. 그리고 이 배지도 하나 가져가세요. 지금 달고 계신 배지와 같이 우리 영역을 문제없이 지날 수 있습니다.”
부산시 마크가 새겨진 걸 보니 원래 있던 배지를 사용하는 거겠지만 의외로 배지가 쓸만한 것 같다.
일단 눈에 잘 띄니까 적인지 아군인지 금방 구별이 가능하다.
나는 배지를 받아서 가슴에 달았다.
“감사합니다.”
인사하고 밖으로 나왔다.
조 과장에게는 식구들과 식사나 하자고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그럴만한 시간은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잠시 더 시간을 줘야겠지?’
건물을 나와서 건물 주차장에서 그냥 주변을 죽 둘러봤다.
12월 중순이라 날씨는 쌀쌀했고, 숨 쉴 때마다 입에서는 입김이 나왔다.
그리고 멀리서 가느다란 연기가 피워 오르는 게 보였다.
‘저게 뭐지?’
곧 커다란 폭발음이 들렸다.
콰콰콰콰콰콰쾅-!!
굉음과 진동에 휘청일 정도의 폭발이었다.
나는 폭발 후 불길이 솟아오르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