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111
“저건···.”
류트는 웨블이 가리킨 검을 보며 표정을 흐렸다. 저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대략적으로 알고 있는 류트로서는 저절로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류트는 웨블을 쳐다봤다.
“설마 저 검의 주인으로 선택을 받아라, 같은 요구를 하려는 건 아니겠죠? 정말 그런 거라면 아무리 저라도 조금 화가 날지 모르겠습니다.”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다. 가늘게 뜬 눈이 웨블을 본다. 웨블은 류트의 눈을 보고서 류트가 조금 화가 났음을 눈치 챘다. 저절로 입가가 호선을 그리게 된다.
녀석 나름대로 일행에게 호의가 있는 듯 싶다. 아무런 애정이 없다면 녀석이 화를 낼 리가 없다.
“설마. 나는 단순히 시험하고 싶은 거다. 네 놈이 있는 무리의 대장이 어느 정도 되는지 말이다. 나는 형편없는 놈을 위해서 망치를 들 생각 따위는 없다.”
“시험 말입니까···?”
“저 차가운 놈을 얼마나 붙잡고 있을 수 있는지, 그게 바로 시험이다. 누군가를 시험하는데 저것만큼 쓸만한 건 없지. 네 놈도 전에 시험 해본 적이 있지 않으냐?”
“···별로 좋은 기억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지금도 솔직히 자신은 없군요.”
류트와 웨블이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유현은 웨블이 가리킨 검을 지그시 쳐다봤다.
어디서 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수면 바로 밑에서 떠오를 듯 말듯한 흐릿한 기억에 눈살을 찌푸리며 유현은 계속 검을 응시했다.
검은 아름다웠다.
결국 무언가를 죽이기 위한 도구일 텐데도, 그런 살인 도구의 아름다움에 취해 자기도 모르게 욕심이 나고 만다.
거기서 유현은 자신의 감정을 죽였다.
녀석에게서 흘러나오는 마력을 차단하니 훌렁이던 감정의 변화가 사라졌다.
‘마검은 아닌 거 같은데, 재미있는 기운을 가지고 있군.’
사람을 홀리는 힘이 마치 마검 같은 녀석이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일행을 살펴보니 그들도 검의 마력에 홀린 것처럼 힐끗힐끗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선뜻 앞으로 나서지 못한다.
저 검은 아름다웠지만 반대로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조금만 다가서도 검에 베일 것만 같은 환상.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서늘한 무언가가 있다. 마치 검 자체가 생명처럼 느껴진다.
일행의 얼굴을 살피던 웨블이 묻는다.
“저 검이 어째서 마법진 안에서 봉인되고 있는지 알 것 같으냐?”
그 물음에 유현이 답한다.
“마법진으로 봉인을 해야 할 정도로 저 검이 가진 마력이 엄청나니까요.”
“훗. 그래도 리더이니 머리는 잘 돌아가나 보구나. 정답이다. 만약 저 마법진이 없었으면 지금 쯤 저 검을 잡아보겠다고 큰 소란이 났을 거다. 참으로 귀찮은 녀석이지.”
말과 달리 검을 바라보는 웨블의 시선은 애정 어려 있었다.
“저 검은 특별한 검이다. 저 녀석 안에는 한 때 설풍의 대정령이라 불렸던 어마무시한 놈이 잠들어 있지. 마법진이 없었다면 저 녀석의 마력에 이 주위는 모두 얼어붙어 있었을 거다.”
자랑하듯 웨블이 이야기를 흘린다. 그 이야기에 유현은 눈을 치켜떴다.
“설풍의 대정령이라면. 설마···.”
그 이름에 유현은 수면 바로 아래까지 올라와 있던 게 무엇인지 떠올랐다.
그건 사람의 이름이었다.
···천설화.
그런 이름을 가진 여성 플레이어어가 있었다.
그제야 답답했던 머릿속이 맑게 개는 기분이 든다. 뿌옇게 흐려져 있던 안개가 사라진다. 하지만 결국 그것뿐이었다. 유현은 씁쓸한 표정으로 검을 바라봤다.
“저걸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군.”
그녀와 사이가 좋았던 건 아니다. 그렇기에 지금 유현이 느끼는 감정은 그리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단지 어쩐지 회귀 전의 파편과 마주하게 되어 기분이 묘해졌을 뿐이다.
천설화-. 무서울 정도로 강한 힘을 보여주었던 그녀는 결국 유현의 손에 죽었었다.
인간에게 배신당하여, 인간을 두려워하고, 인간을 미워하여 끝내 모험가들의 편에 섰던 여자.
그녀의 손에 죽어나간 플레이어의 숫자만 해도 수백이 넘을 것이다.
그녀가 어떻게 모험가들과 같이 활동할 수 있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거기까지는 미지의 세계였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녀가 유현의 적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녀가 보여주었던 압도적인 힘은 머릿속에 생생하다. 천지가 얼어붙어 혼자서 수십 명을 상대할 때 보여주었던 그 힘은 결코 잊을 수가 없다.
그녀가 만들어낸 검극에 대기가 얼어붙어, 모든 것이 새하얗게 변한다.
그래서 그녀가 플레이어들 사이로 불려졌던 별명은 눈의 마녀였다.
정말로 이름과 어울리지 않을 수가 없는 여자였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사용하던 검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유현이 기억하고 있는 것과는 조금 형태가 달랐다.
그녀가 다루던 검은 눈처럼 새하얗고-. 좀 더-.
“그래서, 유현이라고 했나? 한 번 도전해 보겠느냐?”
그 때 쯤에서 웨블의 목소리가 상념에 잠겨 있던 유현의 정신을 이끌어냈다.
“만약 네가 저 검을 붙잡고 5분 이상 버틸 수 있다면 아주 싼 가격에 장비를 만들어 줄 수도 있다.”
웨블의 제안에 류트가 한숨을 흘리며 나섰다.
“유현 포기하시는 게 좋을 듯 합니다. 저 검을 손에 대는 순간 당신은 저주에 걸립니다. 아무리 못해 최소 1달 동안 계속되는 저주인데 걸리면 극한 추위를 느껴야 하죠.”
“마치 경험해 본 듯한 말툰데.”
유현이 묻자 류트는 몸을 가볍게 떨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날 겪었던 끔찍한 고통은 다시 겪기는 싫다. 사제들의 축복으로 씻겨낼 수 없는 강력한 저주다.
“제가 신병 시절 웨블의 제안에 낚여 험한 꼴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제가 버틴 시간은 20초 겨우 안팎인데, 솔직히 말해서 지금도 1분 이상 버틸 자신이 없군요.”
“나쁘지 않네.”
유현이 입술을 비틀며 웃자 류트는 울상을 지었다.
“···끄응. 유현. 이건 제가 농담하는 게 아닌 정말로 진심 어린 충고를 하고 있는 겁니다. 차라리 다른 제안을 해보라고 말해보시는 게 어떤지요.”
류트의 표정을 보아하니 진심이 느껴진다. 하지만 유현은 이미 웨블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르신께서 제안하는 건 겨우 그 정도뿐입니까?”
유현의 물음에 웨블이 멈칫하며 고개를 들었다. 히죽 웃고 있던 그가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유현을 노려본다. 노기가 어린다.
“···네 놈 하고 싶은 말이 뭐냐?”
“말 그대로입니다. 5분이 아니라 10분도 버텨드릴 수 있습니다.”
담담하게 말하는 유현의 말에 웨블은 속으로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방인이 거만을 떠는 모습이 무척이나 거슬리다. 하지만 인내하며 길게 숨을 내쉬고는 말한다.
“만약 네 녀석이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오래 버틴다면 원하는 건 모두 들어주마.”
“그 약속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흥! 어리석은 놈 같으니!”
성난 듯한 웨블의 꾸짖음에도 유현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마법진에 가까이 걸어갔다. 성큼성큼 유현의 여유로운 발걸음에 웨블의 눈썹이 벌레가 기듯 꿈틀거린다.
그 분위기에 뒤에서 유현의 말을 듣고 있던 일행이 불안한 표정을 했다.
유현이 마법진 바로 앞까지 가자 웨블은 칫, 혀를 찼다.
“일단 네놈이 도전을 한다니 설명 정도는 해주는 게 좋겠지.”
“무언가 룰 같은 게 있는 겁니까?”
“룰? 그딴 건 없다. 그냥 그 검을 붙잡고 오래 버틸 수 있으면 되는 거다. 하지만 문제는 검에 손을 대는 순간 네가 겪을 일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거겠지.”
유현은 흐음, 하고 마법진 중심에 꽂혀 있는 검을 내려다봤다.
생각해 보면 천설화를 죽였을 때도 그 검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가 죽음으로서 검이 주인을 잃었을 때 검은 스스로를 봉인 하듯 주위의 모든 걸 얼렸다.
검 하나만으로도 그 주위에 거대한 에이리어가 하나 생겨났다.
그 정도로 대단한 마력을 지닌 검이 이 녀석이었다.
생긴 건 기억하는 것과 묘하게 다르지만 이 녀석을 손에 쥐었을 때 무엇을 겪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그녀를 죽이고 검의 주인이 되려고 했던 사람들 중 하나가 유현이었다.
하지만 실패했다. 검은 유현을 거부하고 더더욱 접근을 거부할 뿐이었다.
“그 녀석에게 손을 대는 순간 너는 환상을 볼 것이다. 검에 봉인되어 있는 정령의 심상에 침식되어 정체를 알 수 없는 곳에 강제로 이동되는 거지. 몸이 아닌 정신만 말이다. 지금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느냐?”
이해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경험 했던 것이니 모를 수가 없다.
유현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웨블은 어딘가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이야기를 계속했다.
“정령의 심상 속에서 너는 끊임없는 적과 싸우게 될 것이다. 그곳에서 너는 홀로 적들과 싸워 고통 받겠지. 심상에서 나올 수 있는 수단은 오로지 하나다.”
“죽어야 한다는 것.”
“···흠. 그래, 정답이다.”
담담한 유현의 말에 웨블은 멈칫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은 이걸로 끝이다. 자, 그럼 한 번 도전해 보거라. 좋은 결과를 기대하지.”
웨블의 말에 유현은 마법진 안으로 거침없이 발을 내딛었다.
곧 바로 공기가 달라짐을 느낀다. 냉기가 온 몸 구석구석까지 파고든다.
마법진 안의 공기는 차갑게 얼어붙어 있어, 겨울을 떠올리게 한다.
차갑게 얼어붙은 냉기에 익숙해지기 위해 숨을 몇 번 내쉬고는 검에 손을 뻗는다.
그리고 그 직후.
유현은 눈보라가 거세게 몰아치고 있는 새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는 설원 위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