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133
눈앞으로 수많은 정보들이 스쳐지나간다. 한 동안 눈을 감으며 정보를 확인하던 아이리스는 천천히 눈을 떴다. 회색빛이 눈동자 너머로 흑발의 아름다운 여인이 비쳐진다.
시노하라 료코.
2주 정도 전 클랜을 창설하기 위해 찾아왔던 여인이었다.
진지한 눈동자로 아이리스를 쳐다보고 있던 료코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서 결과는?”
물음에 힘이 들어갔다. 말을 하기 전 침을 꿀꺽 삼킨 건 자신의 떨림을 숨기기 위해서겠지. 아이리스는 그녀의 물음에 살포시 미소 지었다.
“합격입니다. 오히려 생각지 못한 성과를 가져오셔서 조금 놀랐군요.”
“···그래야지. 이것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주먹을 꽈악 쥐며 료코가 묵은 숨을 토해낸다. 그 숨소리에서 느낄 수 있는 그녀의 지친 듯한 감정에 아이리스는 미소를 유지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아이리스의 반응이 료코는 싫었는지 눈을 살짝 치켜뜨며 그녀를 노려봤다.
“그런데 그 인간은 도대체 뭐 하는 남자야? 우리랑 같은 플레이어 맞아? 아니면 사실 우리보다 먼저 소환되었다거나. 그 인간 너무 비정상이라고.”
한 사람에게서 몇 명이 당했지. 그 정도면 인간 병기 수준이다.
숲속에서 떼로 달려들었지만 상처 하나 주지 못했던 그 때 광경을 떠올리며 료코는 질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악몽 같은 남자였다. 만약 죽이려고 했으면 전부 죽였겠지.
수십 명을 죽이지 않고 제압했다는 건 그 강함이 어느 정도 되는지 짐작하기도 어렵게 만든다. 우스갯소리로 기절했던 동료들이 깨어났을 때 악몽을 꾼 게 아닐까 농담할 정도였다.
시노하라 료코의 목소리에 담긴 진지함에 아이리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오해해도 이상하지 않다. 아이리스가 봐도 그 남자는 이상했으니까.
“그럴 일은 없습니다. 여러분들보다 먼저 소환된 사람들은 없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정말이지?”
여전히 료코가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어도 아이리스는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단지 거기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똑같은 말만 되풀이 할 뿐.
아이리스의 태도에 료코는 어쩔 수 없다는 것처럼 한숨을 쉬고는 그 동안 궁금했던 사실 한 가지를 떠올렸다.
“어째서 퀘스트로 같은 플레이어를 조사하게 한 거야?”
“시노하라 료코님이 올리셨던 클랜 창설 신청서에 따르면 정보 수집에 특화된 집단을 만든다고 파악이 되었습니다. 혹시 저의 생각이 틀린 건가요?”
“틀리진 않았지. 오히려 정확하게 봤어.”
클랜을 창설하기 위해서는 그 목적을 뚜렷하게 보여줘야 한다.
단순히 친목을 위해 클랜을 만들 수는 없었다. 그런 점에서 료코는 신청서에 자신이 원하는 클랜의 방향을 정확히 적었다. 굳이 숨길 이유가 없었다.
료코는 요정과의 대립을 원하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맹목적인 호의를 보이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적대하는 것보다는 좋은 관계를 쌓고 싶다는 쪽이었다.
이쪽 세계에서 요정에게 적대하는 게 얼마나 멍청한 건지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저는 그런 퀘스트를 준겁니다. 시노하라 료코님의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고 싶었으니까요.”
“···만약 내가 미궁 탐사에 집중하는 클랜을 만들겠다고 했으면?”
“그러면 그에 어울리는 퀘스트를 드렸겠지요.”
“예를 들면?”
“지정된 몬스터를 일정 숫자만큼 잡는 정도의 내용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대충 퀘스트 내용이 어떻게 책정되는지 알게 된 료코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눈앞에 있는 요정이 알고나 있을지 모르지만 이것도 나름 좋은 정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궁금한 건 많다.
“흐음. 그런 건가. 그런데 그렇게 되면 퀘스트 수준은 어느 정도 되는 거지? 서로 형평성 같은 건 맞추고 있는 거겠지? 솔직히 말해서 내 건 조금 어려웠다고 생각하는데.”
“처음에는 너무 쉽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의아한 듯 조롱하는 감정 없이 순수한 눈동자와 함께 아이리스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료코는 입술을 바득 깨물며 시선을 피했다. 그 말은 정말로 멍청했다.
“···으윽. 그건 내가 그 인간에 대해서 전혀 몰라서 그랬던 거야. 만약 그 인간이 어떤 인간이었는지 알고 있었으면 다른 퀘스트를 달라고 요구했을 거라고.”
“후후. 그렇습니까? 하지만 그래도 꽤나 잘 조사해 오셨는데요.”
“그렇게 말하니 다행이고···.”
당연히 잘 조사 될 수밖에. 당사자가 직접 정보를 풀어주는데 잘 조사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사실은 전혀 말하지 않은 채 료코는 쓴웃음만 지으며 아이리스를 쳐다봤다.
“유현, 그 남자의 레벨은 몇 정도 되는 거야?”
여러 정보를 풀었지만 레벨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비밀이었다. 그건 그의 동료에 대한 레벨도 똑같았다. 어떻게 보면 그에게서 얻은 것들은 전부 빈 깡통 같은 정보들만 가득했다.
“그건 비밀입니다. 플레이어의 정보에 대해서는 말해드릴 수 없습니다.”
목소리가 차갑다.
요정이 저런 태도를 보일 때 더욱 깊숙이 파고들려고 하는 건 멍청한 짓이었다.
게다가 플레이어에 대한 정보를 비밀로 하는 건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료코는 아이리스가 웃음을 지우며 진지하게 말하자 곧 바로 한 발 물러났다.
“그럼 이만 나는 가볼게. 그래도 마지막으로 다시 확인하는 건데.”
료코는 입구 앞에서 잠시 멈춰선 채 고개를 돌렸다.
“이제부터 검은 고양이 클랜으로 활동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거겠지?”
“40명 정원만 넘지 않으신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좀 더 많은 인원을 원하시면 그 만한 활동 기록을 가져오셔야 합니다. 그러면 등급을 올려드리도록 하지요.”
···40명 정원
아슬아슬하지만 세이브다. 료코는 나직이 고개를 끄덕이며 방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
1주일 정도 지나자 상당한 숫자의 신규 플레이어들이 로베리아의 훈련소에 입소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중에는 김유성의 일행도 포함되어 있다.
김유성. 패기가 좋은 건지 아니면 그 때 힘을 냈던 건지 알 수 없지만 유현에게 자신의 일행을 동료로 넣어달라고 말하던 소년이었다.
그렇지만 갑자기 많은 인원을 일행에 넣을 수도 없다. 게다가 그 때 처음으로 얼굴을 알게 되었으니 더더욱. 그래도 그 후로 몇 번 정도 만남은 있었다.
이 세계에 대한 조언을 물으러 온 것이다.
나이 대가 비슷해서 그런지 일행과도 빠르게 친해지기도 했다. 김유성의 일행에도 고등학생 소녀들은 있었고, 성격도 얼추 잘 맞은 것이다.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길유미와 남궁민의 성격을 떠올려 볼 때 그 누구라도 친해졌을 거다.
김유성은 주로 앞으로 자신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진지하게 묻고는 했는데 유현은 일단 훈련소부터 들어가라고 말했다. 거기에는 능력 좋은 교관들이 있다.
‘훈련소가 열렸으니 슬슬 로렐라이로 돌아갈 때가 되었나.’
슬슬 활동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에 여관 지붕에서 멍하니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을 때였다.
‘왔나.’
누군가 여관 지붕에 올라왔다. 옅은 그림자를 내세우며 나타난 건 검은 로브로 자신의 몸을 가리고 있는 여인이었다.
머리에 쓰고 있던 로브를 벗자 밤바람에 흔들거리는 흑발이 무척이나 요염하다. 지붕에 누워있는 유현을 깨끗한 검은 눈동자로 한 동안 쳐다보고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왜 하필 이런 곳에 있는 거야? 덕분에 찾느라 한 참 시간이 들었잖아. 다음에는 그냥 방 안에 있어주면 안될까?”
지붕에 올라오자마자 그녀는 지친 듯한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어쩔 수 없는 것이 유현을 찾기 위해 여관 안을 전부 뒤져야 했기 때문이다.
유현의 일행이 여관 안에 있다고 말하지만 찾을 수가 없어서 미칠 것 같았는데 우연히 고개를 들었을 때 지붕에 누워있는 검은 인영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설마 싶어 올라와 보니 정말로 유현이 있다. 지붕에 올라오며 그를 확인했을 때 료코는 안도와 작은 분노를 느꼈다. 하지만 눈에 힘을 주어도 그는 별 느낌이 없는지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다.
오히려 시노하라 료코, 그녀의 투덜거림에 유현은 피식 웃고는 몸을 일으켰다.
“이건 가벼운 시험이야. 내 위치도 유추하지 못하면 클랜을 운영할 능력이 없는 거지.”
“···어디서 말도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애초에 벽을 타고 지붕에 올라와야 한다는 생각은 그 누구도 쉽게 하지 못한다고.”
“그것보다 내가 부탁한 건 어떻게 됐어?”
당당한 유현의 태도에 료코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천설화. 이 여자가 네가 찾아달라고 했던 사람이 맞는 거지?”
“표정을 보니 찾은 거 같네. 역시 능력 좋은 걸.”
“흠흠. 당연하지. 나는 검은 고양이 클랜의 클랜장이라고.”
유현의 말에 료코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어째서일까. 그의 마지막 말에서 진심을 느낄 수 있어 조금 기쁨을 느꼈다. 그걸 뒤늦게 눈치 채 미소를 지웠지만 이미 늦었다.
료코는 그것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몇 번 헛기침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한국인이라 그런 건가? 한국 사람을 찾아달라고 한건. 혹시 전에 알던 사람?”
“내가 그걸 알려줄 필요는 없는 거 같은데?”
“챗. 차갑기는. 몇 번이나 밤에 몰래 만난 사이 치고는 너무 차가운 걸? 그래 가지고는 여자에게 인기 없을 거야.”
아무런 표정 변화 유현이 어깨를 으쓱이자 료코는 혀를 찼다.
“발견한건 훈련소 입구였어. 정확히 말하면 입소하고 있을 때 발견할 수 있었지. 만약 훈련소에 들어가는 걸 확인 못했으면 3개월은 아무런 소식을 얻을 수 없었을 걸.”
“···훈련소인가.”
솔직히 말해서 천설화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유현이 부탁한 건 천설화가 소환되었는지에 대해서였다.
지금 이 세계에 있다면 그 때서야 위치를 알아보면 된다.
그렇지만 소환되었는지 확인하는 것도 상당한 일이었다. 일행의 훈련을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사용하고 있는 입장상 여유로운 시간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유현은 료코에게 그 일을 시켰다.
“···이미 알고는 있겠지만 훈련소가 열리는 건 3개월 후. 만나고 싶다면 조금 시간이 필요해. 그래도 굳이 만나고 싶다면 훈련소에 침입해야겠지만.”
“상관없어. 굳이 지금 당장 만날 필요도 없고. 내가 필요한 건 그녀가 소환되었는지에 대한 사실 뿐이었으니까. 어쨌든 수고했어.”
유현은 준비해놨던 돈 주머니를 그녀에게 던졌다. 생각지 못한 보수에 료코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돈을 받아 챘다.
“뭐야? 보수가 있다고는 못 들었는데?”
“수고는 했으니까 그에 어울리는 대가 정도는 줘야겠지.”
“···정말이지. 나쁜 놈인지 착한 놈인지 알 수가 없다니까.”
헛웃음을 흘리며 료코는 로브를 뒤집어쓰고는 등을 돌렸다.
========== 작품 후기 ==========
내일 부터 다시 정상 연재 들어갑니다. 이사 때문에 며칠 간 글을 쓰지 못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