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242
“하아…하아.. 자..잠시만 기다려!”
“빨리 와! 이러다가 늦는다고!”
신난 얼굴로 뛰어가는 소년의 뒤를 소녀는 숨을 헐떡이며 쫓았다. 벌써 몇 번이나 기다려 달라고 외쳤지만, 소년은 마음이 급한 건지 소녀의 말을 따라주지 않았다.
최대한 힘을 내서 소년을 쫓지만 거리는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오히려 멀어지려고만 한다. 슬슬 폐가 아파와 다리의 속도가 줄고 있었다.
아마 선천적으로 약한 육체 때문이겠지.
숨이 급박해지니 다리와 팔에 힘이 빠지고 있다.
여기에 소환되기 전에도 소녀는 몸이 약했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지병이 있던 건 아니었지만…
“…..우와. 사람들이 많아.”
소년의 뒤를 쫓아 도착한 그곳에는 이미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모여 있는 사람들 중에는 소년과 소녀와 똑같은 플레이어들도 있었고, 이곳 세계의 거주민들도 잔뜩 모여 있었다. 벽처럼 막혀 있는 앞을 보며 소녀가 멍한 얼굴을 할 때였다.
그런 사람들 무리에 파묻혀 있던 소년이 빼꼼 얼굴만 내밀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야, 뭐해! 여기 있으면 하나도 볼 수가 없잖아!”
“자..잠시만, 이 사람들을 어떻게 뚫고- 꺄악!”
강제로 팔이 붙잡혀 소녀는 소년에게 끌려들어갔다.
이미 앞에 있던 사람들에게 몸이 이리저리 치인다. 누군가는 욕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용케 소년은 소녀의 손을 놓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소년이 누군가와 부딪칠 때마다 죄송하다고 하는 건 소녀의 몫이었다.
소녀는 사과를 몇 번이나 반복하며 소년의 등을 바라봤다.
이건 대단하다고 해야 하는 걸까.
어떻게든 몸을 내밀어 사람들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소년을 보며 소녀는 감탄했다.
그것은 마치 수만의 병사를 뚫고 앞으로 맹렬히 돌진하는 맹장과도 비슷해 보였다. 끝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 사이를 소년은 거침없이 뚫고 움직인다.
소녀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저런 행동을 할 수 있는 소년이 신기하기 까지하다.
소년이 행한 노력에 대가가 따라온 걸까.
드디어 사람들의 틈 속에서 빠져 나오고, 둘은 제일 앞줄로 나오는데 성공했다.
소녀는 숨이 트이는 걸 느끼며 앞을 바라봤다.
‘엄청난 숫자…’
앞 줄로 나왔지만 여전히 양쪽 옆으로 무수한 사람들이 있다. 힐끗 고개를 옆으로 돌려보자 끝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길 양쪽에 모여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현재 소년과 소녀가 도착한 곳은 로베리아의 게이트웨이였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었다.
그 동안 연락이 끊겨 있던 로렐라이의 사람들이 드디어 로베리아에 돌아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로렐라이에 있던 퍼스트 플레이어들 중에서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기에 반가움보다는 신기하다는 감정이 먼저 가슴 속을 맴돌고 있었다.
그건 아마 주위에 있는 다른 플레이어들도 똑같을 것이다.
심지어 소녀보다 먼저 소환되었던 2기 플레이어들도 퍼스트 플레이어를 잘 모른다고 했다.
그들이 훈련소에 들어가기 전에는 퍼스트 플레이어들과 접촉할 기회가 없었고, 훈련소에서 나왔을 때도 로렐라이와 연결이 끊겼기에 여전히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신규 플레이어인 3기 플레이어들과 마찬가지로 2기 플레이어들에게도 퍼스트 플레이어들은 신비의 대상이었다.
물론 로렐라이에 있지 않고 로베리아에 머물던 퍼스트 플레이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거주민들 밑에서 직원 노릇하며 살아가는 이들로 특별한 경험담 같은 걸 듣기에는 평범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2기 플레이어들과 다를 게 없다고 해야 할까.
3기 플레이어인 소녀의 입장에서는 이번에 돌아오는 퍼스트 플레이어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했다.
‘어떤 사람들일까.’
로렐라이와 연결이 끊긴지 3달이 넘어간 지금, 드디어 다시 연결이 되었다.
그 시간은 2기 플레이어들이 훈련소에서 나온 지 2달이 넘은 시점이었고, 3기 플레이어들이 새롭게 소환된 시간이기도 했다. 어느새 2기 플레이어들도 후배 같은 이들이 생긴 것이다.
소녀가 두근두근 거리는 심장을 주체하지 못한 채 게이트웨이를 응시한다.
모두의 시선이 한 곳에 몰린 상황 속에서 갑자기 게이트웨이가 파르르 진동했다.
그 순간.
“오오오오!”
사람들 사이에서 감탄인지, 환호인지 애매한 소리가 터져 나온다.
강렬한 광채를 뿜어내던 게이트웨이가 몇 분간의 안정화 끝에 연결에 성공했다.
신비로운 빛깔을 흘리며 만들어진 포탈의 모습에 모두가 소리를 높였다.
‘저 남자는?’
제일 먼저 포탈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아란스 디페로우,
로베리아 원정군 대장이었다.
존재 자체는 유명해도 저 남자의 이름까지 외우고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지만, 우연한 기회로 소녀는 저 남자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얼굴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
소녀가 소환되었을 때 아란스는 로베리아에서 자리를 비우고 로렐라이에 가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란스.
그의 등장에 요정 하나가 쪼르르르 날아와 웃는 얼굴로 환영한다.
아란스는 절도 있는 자세로 기사의 인사를 하는 걸로 대답했다.
그러고서 그는 등을 돌렸다.
그러자 동시에 포탈을 타고 무수한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저 사람들이 퍼스트 플레이어..’
소녀는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지금 나타나는 사람들이 모두 플레이어라는 걸.
그 동안 그들이 겪은 처참함을 보여주듯 그들의 겉모습은 심각했다.
피로 얼룩진 갑옷들과 무기들. 여기에 오기 직전에도 싸움이 있던 건지 무기와 갑옷에 묻어 있는 피들은 축축해 보였다. 실제로 비릿한 피냄새가 공기를 타고 전해진다.
여기까지 전해지는 지독한 피 냄새에 소녀는 코를 막고서 몸을 움찔거렸다.
그들의 외견은 보고 있는 입장에서는 섬뜩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보고 있던 사람들도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에 숨을 죽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 소란스럽던 광장에 무거운 침묵만이 맴돌고 있다.
‘무..무서워..’
소녀는 여러 번 2기 플레이어들을 만난 적이 있다. 실제로 몇몇 하고는 친분도 있었다. 여관에 머물다 보면 가끔씩 2기 플레이어들이 찾아와 파티원 영입을 제안하고는 했다.
훈련소에서 나오면 자기들의 파티로 오라나.
아무래도 2기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인재 영입은 뜨거운 주제 거리인가 보다. 신규 플레이어들이 훈련소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훈련소가 끝난 이야기를 논하고 있는 걸 보면.
어쨌든 그런 제안은 소녀에게도 찾아왔다.
정확히는 소녀의 옆에 있는 소년에게.
소년은 소녀가 없으면 안 된다고 무리한 요구를 했다. 자신을 영입하고 싶으면 소녀도 같이 영입하라고 말이다.
덕분에 곤란한 건 소녀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2기 플레이어들은 소년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소년에게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까. 2기 플레이어들은 소년에게서 특별한 무언가를 보았나보다.
분명 그들은 신규플레이어들 하고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온갖 위험들을 겪은 듯한 노련한 분위기가 보고 있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들이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그들도 특별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저 자신들보다 경험이 많은, 그런 인간들이라고 느껴질 뿐이었다.
그런 점에서 게이트웨이에서 만들어진 포탈을 타고 넘어오는 사람들은 2기 플레이어들과는 조금 많이 달랐다.
무섭다. 소녀는 그들이 무섭다고 느껴졌다.
얼굴에서 느낄 수 있는 분위기에서는 귀기마저 느껴지고 있었다.
마치 끔찍한 전쟁을 겪고 살아 돌아온 병사를 보는 것만 같았다.
소녀가 1기 플레이어, 즉 퍼스트 플레이어들을 보며 무서움을 느끼고 있을 때.
옆에 있던 소년은 달랐나보다.
“대..대단해!”
입을 벌린 채 눈을 반짝이며 퍼스트 플레이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계속해서 감탄사만 내뱉고 있다. 저러다가 턱이 아래로 떨어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그 천진난만해 보이는 소년의 모습에 소녀는 쓴웃음을 지었다.
저렇게 눈을 반짝이며 볼 만한 광경인 걸까.
소녀는 감탄보다도 어쩐지 슬프다고 느껴졌다.
퍼스트 플레이어들이 겪은 일은 가볍지 않았을 것이다.
소녀는 고개를 돌려 다시 퍼스트 플레이어들을 바라봤다.
모두가 하나 같이 전부 칼날처럼 날카로운 눈을 하고 있다.
그들이 긴 행렬을 만들며 지나가자 저절로 눈이 내려 깔아진다.
그들이 무언가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몸이 떨린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며-. 무섭다고 소리친다.
저들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피를 손에 묻힌 걸까.
로베리아로 돌아왔음에도 그들은 기뻐하지 않는다.
단지 숨이 막혀올 정도로 엄숙한 분위기를 무장한 채 앞만 보고 걷고 있었다.
기쁨보다도 어딘가 슬퍼보인다고 하는 게 옳을 것이다.
거기서 소녀는 생각했다.
저들이 정말로 자신과 같은 지구의 사람인가, 하고.
도대체 무엇을 겪었던 것이기에 모두가 하나 같이 저런 얼굴을 하는 걸까.
저들을 보며 소녀는 그런 의문이 생겨났지만, 굳이 알고 싶지는 않았다.
그들에게서 이야기를 들을 때 어떤 표정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으니까.
퍼스트 플레이어들이 긴 행렬을 만들며 등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질 때까지.
광장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그들에게 돌아왔음을 축하 하지 못했다.
이 장면을 보고 있던 2기 플레이어들 중 누군가가 말했다.
-그들은 귀신이 되어 돌아왔다.
그 말에 소녀도 동감했다.
그들이 보여주었던 눈동자는 숨이 막혀올 정도로 차가웠다.